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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안나푸르나 또 갈까?
작성일 :8.29~31
작성자 :보리샘
day1 8/12 일 인천공항 (흐림) - 광저우 (비옴)- 카트만두- 조이하우스
히말라야까지 가는 길 ~네팔 행 비행기에서 생긴 일
1. 인천공항 새벽 3시 고산 출발/ 6시 도착후 9:10 탑승
부슬부슬 비가 조금씩 내려 우산을 받고 센터에서 잠을 잔 성현과 현민을 깨우고 내려와 마지막 짐을 챙겼다. 삼촌샘이 3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사히 인천 공항에 도착하리라 믿었다. 익산 리무진 버스가 서있는 우리 주유소에서 민석, 은경, 은경어머니, 사촌을 태우고 다시 어둠을 뚫고 달렸다. 아이들은 차속이라 불편하지만 새벽잠을 자고 삼촌샘은 쉬지 않고 운전을 했다. 날이 조금씩 밝아질 때쯤 인천공항에 들어가는 다리에 도착했다. 멀리 해가 떠오르고 금방 사방이 밝아졌는데 6시였다.
아이들과 은경어머니가 출국장 1층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올라오고 3층에서는 삼촌샘 가족들이 와 있었다.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 주셔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보리샘이 마지막에 G번을 6번이라고 잘못 문자를 보내서 모이는 장소를 몰라 헤매기도 하였지만 사진과 여권은 빠짐없이 가져와 주어서 다행이었다. 준비해온 단체 노란 티셔츠와 명찰을 나누어 주고 둘러 앉아 삼촌샘의 회의시간! 비행기를 갈아타게 되는 공항과 해외에서의 에티켓,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리고 필요한 짐만을 챙기도록 하기 위해 다시 가방을 풀었다. 빨리 여권을 다 모으지 못해서 항공권 발권이 늦어져 앉는 자리가 여기 저기 떨어져 버렸지만 수하물을 무사히 붙이고 검색대를 지나 101번 출국게이트에 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의 수많은 가게, 쇼핑몰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끝을 알 수 없는 공항의 모습보다도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하느냐만 생각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친구도 있고 많이 타본 친구도 있지만 모두 설레는지 조금은 굳은 얼굴이다. 날개의 움직임과 서서히 큰소리를 내는 엔진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활주로를 달리고 10시쯤에 드디어 비행기는 한국 땅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했다.
인천공항은 다행히 비는 멈췄지만 안개와 구름이 가득해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륙한지 30분이 지나니 기내식으로 준비된 BEEF 와 FISH 두가지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아이들은 간단한 빵과 밥에 고기를 먹고 일찍 일어나느라 못잔 잠을 잤다. 중국의 하늘은 맑고 푸르러서 뭉게구름이 많았다. 구름을 통과할 때는 기체가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탑승객 모두 재미있어하는 듯 했다. 옆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2. 광저우 공항 9:40 ~12:50 (한국시간)
비행기가 덜커덩 하는 바퀴 소리를 내면 중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보니 큰 버스 두 대가 다가와 탑승객들을 태우고 A GATE로 들어갔다.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6시간 가까이 남았지만 면세점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서 환율과 중국 돈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라면 하나를 사먹는데도 비싸다고 하면서 4명이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삼촌샘이 주신 돈으로 미션을 수행하며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삼촌샘이 네팔과 히말라야에 대한 이야기, 고산병의 증상 등을 알려 주시는 동안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비행기 시간이 늦어 질까봐 알아보았지만 정각에 출발해서 카트만두까지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광저우공항에서 미션수행하며 친해졌지만 정식으로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복식호흡 하는 법을 배우면서 한결 가까워진 아이들!
해가 지고 조금 있으니 CZ3067 번 비행기를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탑승하기 전 짐을 들고 탑승구로 가는데 원이가 기내에 들고 갈 가방이 없다고 찾는 것이다. 삼촌샘이 미리 챙겨 놓았는데 원이는 혼자 가방을 잃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란 것이다. 친구들하고 정신없이 놀다보니 소지품도 못 챙기는 것이라고 삼촌샘이 주의를 주시고 가방을 주셨다.
기내에 타기 전부터 배고프다고 하던 아이들은 좌석에 앉자마자 밥을 언제 주는지 물어보느라 바빴다. 친구들이 주변에 나란히 앉게 되어 5시간이나 되는 비행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기내식을 먹고 또 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자면서 어두운 하늘을 날아갔다.
3. 카트만두 공항 19: 30~ 새벽 1시
기내에서 쓴 입국신고서를 들고 카트만두 공항에 내려 비자 발급을 받았다. 네팔어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서야 진짜 네팔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공항 바닥에 둘러앉아 비자신청서를 쓰고 여권을 나눠주고 비자비도 챙겨 주고 정신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잃어버린 것 없이 잘 지나갔다. 수하물을 챙기는 중에 몇몇 친구들이 몰려든 네팔 사람들에게 달러를 팁이라고 주다가 빼앗기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네팔에 들어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수험료를 내고 배웠다. 달러 관리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조이하우스의 선교사님 두 분의 마중으로 두 대의 버스에 짐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차속에서 창밖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산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이들도 어렴풋이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듯 알 수 없는 히말라야 산행을 하며 어떻게 2주를 보낼까 생각하는 듯 했다.
깨끗한 침대가 있는 4층으로 올라가 손발을 씻고 한국시간으로는 3시 가까이 되어서야 짐을 풀고 잠에 들었다. 20시간 가까이 걸려 누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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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 8/13 월 맑음 -
1. 네팔에서
히말라야까지 가는 길 ~
카트만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숙소
(1) 조이하우스에서 처음 맞는 네팔의 아침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이동 시간까지 꼬박 하루를 보낸 아이들 !
새벽에 도착해 피곤했을 텐데 일찍 일어나서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의 산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설산 속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신기하고 설레는 아침을 열면서 자신이 가져온 짐에 이름을 쓰고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선교사님들이 준비 해주신 한국의 밥상을 받았는데 선교사님이 앞으로는 네팔의 전통음식을 먹게 되니 많이 먹어두라고 당부하셨다. 아이들은 한상에 둘러앉아서 미역국과 한국에서 먹던 오이무침, 멸치, 소시지볶음 등을 맛있게 먹었다.
망고는 철이 지나가서 마지막 나온 것이라며 잘라주셨는데 생과일로 처음 먹는 아이들도 잘 먹었다.
산행에 꼭 필요한 물건만 다시 싸서 짐을 챙기는 것은 저녁으로 미루고 히말라야 산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입산허가서 준비물을 챙겼다. 사진 두 장과 여권 사본이 필요한데 여분의 여권사진을 남겨두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출력해 준비했다.
일단 입산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가이드이자 이번 여행을 담당해 주시는 텐디 아저씨를 만나 고, 또 카트만두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러갔다.
(2) 해발 1,300m 내외의 구릉지= 카트만두 분지 속으로
산꼭대기에 위치한 조이 하우스에서 내려오는 길에 물소, 염소, 닭들이 길 옆을 지나다녔다.
다 함께 전용 버스에 올라 시내로 나오는 길은 좁은 비포장도로!
덜컹거리는 버스가 트럭들 사이로 달리는 걸 앞자리에서 보고 있으니 자동으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뼘도 되지 않는 간격으로 큰 차들이 씽씽 지나다니고 중앙선이 없어서 택시, 버스 할 것 없이 앞지르기는 보통이었다.
신호등이나 건널목이 따로 없어서 위험하지 않은지 선교사님께 여쭤 보니 한국처럼 과속하지 않기 때문에 큰 사고도 없고 서로 조심한다고 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도 헬멧을 모두 쓰고 있긴 하지만 추월할 때는 아슬아슬 위험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트럭이 지나가면 검은색 진~한 매연이 앞을 가릴 정도였다 .
휘발유의 질이 좋지 않아서 인지, 규제가 없어서 인지 기침이 나올 정도로 시내공기는 좋지 않았다.
종횡무진 달리는 자동차사이를 뚫고 달리다 텐디 아저씨와 잠깐 만나 입산허가서류를 전해주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네팔의 한 음식점에서 치킨커리와 치킨칠리, 모모(만두), 란(빵), 볶음밥을 먹으면서 음료수도 시켜먹었는데 선교사님이 산에서 먹게 될 음식을 생각하면 진수성찬이라고 많이 먹어두는 것이 좋다고 당부하셨고 아이들 모두 많이 먹어 두었다.
식당에서 나와 잠깐 걸어가니 큰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부유층들이 많이 이용하고 한국의 마트를 벤치마킹 했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초코파이가 아이들 키만큼 쌓여 있었다. 한국의 과자부터 많은 상품이 진열 되어 있어서 놀랐다.
점원으로 일하는 분들도 전통의상보다 현대식 옷을 입고 있었고, 네팔의 전통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선교사님들이 시장을 보시고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셨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간식을 먹었다. 산에서는 절대 먹을 수 없으니까...
(3) 트리부반 대학교 가는 길
우리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시내를 가로질러 빈민층들이 살고 있는 다리 위를 지나 갔다.다리아래에는 300가구 가까이 쓰레기 더미 옆에서 집을 판자와 돌로 짓고 살고 있었다.
선교사님께서 옛날부터 네팔은 계급사회였고 지금도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크다고 했다. 요즘 들어 한국에서 돈을 벌어 들어오는 사람들 수도 늘고 있지만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도 관광객들 중심의 소비로 유지 된다고 한다. 게다가 내륙지방이라 물류 수송이 어려워 중공업이 발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TATA란 인도의 자동차와 토요타 택시가 거리의 대부분이었다.
히말라야 산으로 트레킹 오는 많은 사람들도 잠깐 머물다가 떠나버리고 관광수입으로 네팔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버스는 산을 돌고 돌아 높은 곳에 위치한 트리부반 대학교에 도착했다. 네팔의 유일한 국립대학교로 트리부반 왕을 기념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제 도착한 카트만두의 공항이름도 트리부반 이었다.
아스팔트 도로 외에는 풀이 우거져 있었고 흙길을 걸어 들어간 대학교 도서관 옆에는 4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무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내려오는 길에도 버스 지붕이 나무에 걸려 후진하기를 반복해야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80년 동안 분열되었던 샤 왕조를 통일시킨 위대한 왕~
근대 네팔의 아버지라 불리는 트리부반 국왕을 기념하는 박물관도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사원의 도시란 말로 카트만두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서민들의 생활과 함께 구왕궁인 하누만 도카와 꾸마리 사원, 쉬바 빠르바티 사원 대부분이 더르바르 광장에 모여 있었다.
카트만두 거리 곳곳을 지나가다 보면 기념동상이 하나씩 있고 1800년에 만들어진 학교도 그대로 건물이 남아있고 벽에도 전통 문양이나 그림들이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4) 다시 숙소로 /천국의 아이들과 축구한판
조이하우스로 돌아온 우리들은 한 팀을 이루어 조이하우스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농구하는 넓은 공터에서도 한참을 뛰어 놀았다.
(5) 네팔어만큼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들
저녁을 먹을 때도 조이하우스 친구들과 함께 먹었는데 줄서서 기다리다가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선생님들에게도 먼저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어 실력을 뽑내는 어린 친구들..
우리 아이들과 같은 학년 친구도 불러와 소개를 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고 나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네팔어를 모르면 영어로 몸짓과 눈짓으로 소통하는 모습에서 히말라야에 가기 전부터 든든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을 자는 방에 올라와서 자기 짐을 모두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카레와 참치캔, 라면, 고추장, 초콜렛 등 간식류, 모두 쌓아 놓고 보니 양이 엄청나다
산을 이루고 있는 음식들은 공동 짐으로 빼놓고 최소한의 짐을 챙겨 배낭을 줄였다.
포터들이 들고 갈수 있는 짐도 한계가 있고 필요 없는 것을 가지고 가서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꼭 쓸 것만 챙겼다.
2시간 가까이 18명의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고 내일 새벽 포카라까지 버스를 타고 7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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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3 8/14 화 흐림 - 맑음
2. 네팔 제2의 도시이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한 중간기지
=포카라까지 장거리 버스여행
(1) 깊은 산속 버스 안에서
버스 출발시간은 5:30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여야 하는데다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 해서 모두 눈을 뜨자마자 정신없이 서둘렀다.
아침은 포카라 가는 도중에 간단하게 먹을 것이고 5:30쯤 버스에 오르자마자 아이들은 또 잠에 빠져들었다.
뒷자리엔 포터들 5명과 텐디 아저씨도 함께 가는 길이라 든든하다.
조이하우스에서 큰길로 나와 포카라 까지 가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출근시간이라고 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시외에서 밤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들어오는 차들이 많아서 빠져나가는데 애를 먹었다.
고속도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버스와 대형트럭들이 지나다녔지만 민가들이 주변에 모여 있어서 그냥 시골 도로 같아보였다.
도로를 그대로 읽는 버스는 좌우로 흔들흔들 덜컹덜컹 ~
경적소리로 급커브 길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때문에 3분이 멀다하고 빵~빵~ (사실 경적소리가 음악소리 같았다
브레이크 소리는 내리막길이든 오르막길이든 차들이 마주칠 때마다 끼이~~~끼이익~
경쾌한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아이들은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네팔은 평야가 적기 때문에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어서 벼를 심고 2모작을 한다고 한다. 옥수수도 많이 심어져 있는데 과연 ‘저 산 한쪽 면을 언제 다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을까’ 싶을 정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꼭대기 아무데나 농사져도 될까 싶었지만 선교사님 말씀이 모든 땅이 소유자가 분명해서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가 소유 땅도 과거엔 그냥 집짓고 농사짓다가 요즘은 도로를 넓히느라 사람들이 무단으로 사용한 곳에서 내보낸다고 한다.
(2) 파도가 치고 진주빛 물이 소용돌이치는 강 옆에서 먹는 아침
자동차들의 곡예주행과 산 사이로 펼쳐진 운해를 바라보며 한참을 달려서 잠깐 휴식!
아침으로 빵과 바나나를 먹으며 음료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처음으로 시켜먹는 밀크티는 새로운 맛이었다.
선교사님께서 한국에서 마시는 우유와 다른 맛이지만 히말라야 산행 중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귀한 차라고 하였다.
1/2 지점을 지나는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 버스 안에는 에어컨도 없고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힘들어하자 선교사님들이 시원한 환타를 사주셔서 한 병씩 마시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그새 밝아졌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잠만 자던 아이들에게 삼촌샘이
“ 평생 오고 싶어도 못오는 사람이 많은 이 히말라야를 자면서 지나치지 말고 잊지 못할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니 눈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산과 강들 잘 보자” 하고 말씀해 주셨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과 집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산들과 논
축제하는 행렬을 만나기도 하고
물소, 염소 떼를 만나기도 하고
충돌사고 난 차를 지나치기도 하고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을 거 같던 버스 여행길이 수많은 장면의 사진처럼 한 장면씩 찍히고 끝났다.
(2) 포카라 ~ 까레
13시 가 넘어서야 포카라 시내로 들어 왔다. 포카라의 많은 사람들과 차를 보니 매연조차 반가울 정도 였다.
이제야 땅을 밟고 걸어서 산마루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은 3층이었는데
포카라의 유명한 폐와 호수를 멀리 바라다 보이고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식당 안에는 한국 글씨로 써있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네팔의 땅에서 보는 한국 글씨가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그런데 준비된 음식은 된장찌게 ~ 와 놀라는 아이들!
아이들은 인천을 떠날 때부터 네팔 음식만 먹어야 할 줄 알았는데 포카라 시내에서 한국의 된장찌게 먹게 되다니 감탄한 듯 했다
밥과 반찬들을 금새 바닥냈다.
포카라 시내구경은 산행을 끝내고 내려와 하기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히말라야의 산행 시작은 까레까지 가야는데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3) 까레 ~ 포타나
까레에 도착해 모든 짐을 내려 포터들은 각자 배낭을 3-4개씩 끈으로 묶어 등에 지고 올라 갔다.
우리도 신발끈을 질끈 묶고 안나 푸르나를 향한 한 걸음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어린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후발대는 천천히 올라갔다.
처음부터 45도 가까운 계단식 오르막길이라 힘들었는데 한번씩 산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었다.
지나가는 길마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 사람들을 만나면
나마스테 인사를 하고 네팔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짜 히말라야 산에 오긴 했구나 실감이 났다.
검은색 물소도 보고 저 멀리 폐와 호수를 바라보며 걷다보니 이끼 낀 큰 나무들도 만났다.
저녁노을이 질 때 오스트레인 숙소를 지나 fishtail 이름의 숙소에서 자기로 했다.
숙소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을 때 구름이 물러가서 안나푸르나 Annapurna south모습과 마차푸차레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저녁먹기 전까지 아이들이 쉬고 씻는 동안 포터아저씨들은 저녁준비를 해주셨다. 아이들이 가져온 짜장과 참치, 김치, 김 등을 볶음밥과 함께 먹었다. 포터들의 더 먹으라는 말에
아이들은 서로 더 먹는다고 했다.
포터들의 소개를 받으면서 이름을 외우라고 하셨는데 쉽지 않은 네팔의 이름에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았다.
쟁아 다이, 링마 다이, 럭시마 다이, 빠상 다이, 깐차 다이, 텐징 다이, 텐디 아저씨까지 7명의 포터아저씨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텐디 아저씨(40세) 빼고는 20대 초반이 많았다.
결혼한 분도 계셨는데 가족과 떨어져 무거운 짐을 지고 산행하신다.
ABC를 올라갔다가 내려 올 때도 많은 포터분들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비닐로 짐을 가리고 슬리퍼나 고무장화를 신은 채 오르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관광객들에게는 적은 돈이지만 네팔에서 루피로 따지면 포터에게는 큰 돈이라 한다.
내일의 8시간의 산행을 위해 일찍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자기 위해 바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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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4 8/15 수 맑음
1.안나푸르나의 전경을 바라보며
고산 지대의 특성상 이른 아침나절에만 청명하기 때문에, ABC 까지 올라가서 잠을 자고 새벽 산을 보고 내려온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산 쪽을 바라보니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쏟아지는 밤하늘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한국보다 높은 고도여서 인지, 공기가 깨끗해서 인지 아름다운 별들에 고개가 아픈지 모르고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선명한 모습의 안나푸르나를 볼 수 있었다.
(1) 삼촌샘의 아침열기
히말라야 품속에서 처음 맞는 아침을 삼촌샘과 모든 아이들이 모여 명상을 하면서 시작했다. 복장 주의사항을 듣는데 카트만두, 포카라와 달리 산 위로 올라갈수록 춥기 때문에 잠 잘때는 따뜻하게 하고 낮에는 땀이 빨리 마르도록 가볍게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단합을 위해 처음에는 단체로 맞춘 농촌살림연구소 티셔츠를 입고 올라가기로 했다.
뒤에오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앞에 가는 사람은 보폭을 조절하고 뒷사람을 챙겨주며 갈수 있기를 당부하셨다.
“히말라야에 온 이상 모든 것은 히말라야에 맞추어야지 자기 마음대로 하다보면 산은 받아주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하산할 때까지 무사히 지낼수 있다.”
(2)장로님의 식사기도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스스로 있는 분이시고 심판해 주시는 분
살아가는 많은 날들 중에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과 함께 하는 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하여 주시고, 이 음식을 준비해 준 분의 손길위에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3) 선교사님의 한 마디
김정숙 선교사님 - 각자의 환경이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길을 한마음으로 걷게 됩니다.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웃으면서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잠들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한혜숙 선교사님 - 첫 산행에 힘들지도 모르지만 ABC까지 모두 무사히 다녀 올수 있으리라 믿어요 산은 절대 자만해서 올라 갈수 없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겸손입니다. 천천히 히말라야를 만나는 시간이 되길 빕니다.
(1)
한사람의 말과 행동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허용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강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생활 합시다.
2. 거머리와의 첫만남
아침으로 컵라면, 밥을 먹고 포터들이 먼저 짐을 들고 출발 했다. 우리들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헉헉 거리면서 앞으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 하느라고 시끌벅적했다. 비온 뒤라 땅이 촉촉하고 물소들이 싸놓은 소똥을 피해가면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머리 들이 다리와 스틱을 타고 올라와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아 먹었다. 소금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떼어냈지만 속수무책으로 붙는 거머리에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거머리를 확인하며 걷느라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다.
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며 20분 간격으로 있는 숙소에서 간식도 먹고 물도 마셨다. 이 높은 곳에서도 과자와 음료수를 먹을 수 있다니 신기했다. 누군가 짐을 지고 이 산길을 올라왔겠지.... 많은 집들도 기계의 힘이 아닌 사람들이 손으로 지었다는게 대단하다.
선두로 가는 텐디 아저씨와 초딩 들을 따라가며 이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잠깐 쉬는 시간에는 사진도 찍었다.
3. 산 속의 점심시간을 게임과 함께
포타나(pothana -1890m)를 떠난 지 거의 4시간 만에 톨카 (tolka -1700m)를 지나 란드룩 (landrung -1565m)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포터들은 라면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산행으로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면서 맛있는 밥을 먹고 마피아 게임을 했다.
오전 산행동안에 끝말잇기, 한국영화이름대기, 여자 아이돌 가수 이름 대기 등 걸으면서 게임을 하긴 했지만(지면 소똥 한번 밟기), 점심 먹고 하는 마피아 게임은 아이들을 금방 친해지게 만들었다. 푸른 하늘과 주변의 웅장한 산들 사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출발할 시간! 지누(jhinu -1780m) 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회색 진주빛의 강까지 산을 내려왔다. 계단식 논 사이로 난 길을 지나갈 때 주변의 폭포와 개울을 건너고 큰 강을 어떻게 건널까 했는데 커다란 다리가 나왔다. 허공에 길게 늘어선 나무다리.... 영화 속에서나 볼 듯한 허술해 보이는 흔들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물살이 세고 다리 아래쪽이 훤히 보이는 아찔한 다리를 건너 다시 산을 타고 올라갔다.
뉴 브리지(new bridge -1340m)를 지나니 한바탕 소나기가 내렸다. 숙소인 지누까지 300m 고도를 올라야 했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삼촌샘이 사주신 네팔과자를 먹고 힘을 내서 마지막 오르막길을 향해 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는 길을 폭포로 만들었다. 또 불어난 시냇물이 무서울 정도로 굉음을 울리며 흘러갔다. 온몸이 흠뻑 젖고 신발에는 물이 들어가 걷기 힘들었지만 모두 무사히 지누에 도착했다.
4. 다국적 숙소
4시 조금 넘어서 도착한 지누에 짐을 풀고 젖을 옷을 말렸다.
우리가 잡은 1층 방 옆으로 많은 외국인 들이 쉬고 있었는데 적으면 2명 많으면 8명 가까이 팀을 이루어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도 많지만, 소리는 들리지만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탈리아어, 스페인어등)를 들으니 히말라야의 숙소가 각 나라의 대표들이 모인 것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쉬는 시간동안에도 포터들은 저녁준비를 해주셨고, 남은 반찬과 볶음밥/ 흰밥을 먹으며 오늘 산행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촛불을 켜고 먹는 저녁이 히말라야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또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아이들은 늦게까지 마피아 게임을 하면 산속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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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 8/16 목
1.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히말라야 산속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는 세 번째 아침이다. 새벽의 상쾌한 공기와 물소리, 새소리 가득한 이곳에서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또 볼 수 있었다. 만년설의 빛나는 산을 바라보며 아침을 열기 위해 식당에 모였다.
(1) 삼촌샘의 아침열기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복식호흡을 하며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자연적으로 긴 복식호흡을 하지만 살면서 호흡이 짧아져 버린다. 집중력도 높이고 건강에 좋은 복식호흡을 해야 산행하기도 편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연습을 해서 일상생활에도 명상을 생활 하면 좋겠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같이 불러 본다.
“ 기분이 어떤가요? 안나푸르나의 모습 본 사람? 웅장한 산의 모습을 창밖으로 보면서 진짜 히말라야를 느꼈나요?
노래 가사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것을 실감하나요?
우리가 왜 태어났는가? 물음에 부모님의 덕분이라 말할 수 있지만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면 온 우주의 사랑으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으로 온 우주의 사랑에 의해 떠받들여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살아가는 태도가 다릅니다.
산꼭대기를 목표로 하고 항상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은 중간에 어려움이 있어도 금방 이겨내지만, 목표가 없으면 도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매 순간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다보면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 히말라야에 온 것은 우리나 우리들의 부모님 결정때문 일까요? 우리가 히말라야와 한번은 만나게 정해져 있었던 거 아닐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즉 신과 자연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겁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갖는다면 히말라야는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자 내안에 살아계신 분을 찾는 여행! 서로 아끼며 보살피며 운명공동체로 한 몸처럼 산행합시다. 그러면 히말라야가 기적처럼 두 손 벌려 우리를 받아줄 것이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이 됩시다. ”
(2) 장로님
신과 우주로부터 사람이 사랑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남을 위해 베풀자
어제도 거머리 때문에 힘들어 했는데 생각하는 것에 따라 거머리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3) 선교사님들
운명공동체 ! 앞서가든 뒤에 가든지 서로를 생각해서 기다려주고, 어제 형들이 동생들을 챙겨주는 아름다운 모습 보기 좋았어요. 혼자 걷는 것 보다 함께하기 때문에 먼 길을 갈 수 있는 겁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봐주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게에요 항상 먼저 다가가 인사라도 건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요
(1)
지금 이 순간
평생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해집니다. 잊혀지기 전에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가족덕분에 선생님 덕분에 포터,선교사님들 덕분에 이곳에 여러분이 서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혼자 여기 있게 된다면 살아서 내려가기 어렵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이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을 잘 살았는가는 무엇을 소유했는가도 아니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도 아닙니다. 어제보다 10년 전보다 좀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을 갈고 닦으며 완성시켜가는 사람이야 말로 충만함에 가득차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산증을 겪게 되거나 힘들 때 우리는 우리안에 그분을 찾게 되고 간절히 누군가에게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2. 끝없는 천국의 계단
아침으로 볶음밥을 한 그릇(아침부터 두 그릇씩 먹는 사람이 반절이상이다) 뚝딱 비우고 짐을 챙겼다. 모두 모여서 준비운동을 하고 나서 8:15 출발이다.
숙소를 빠져나오는 계단이 끝나자 산꼭대기까지 계속되는 계단을 올라가다보니 바로 눈 아래 천수답이 보였다. 건너편 산 곳곳마다 마을보다 적은 가구수가 흩어져 있었다.
‘와! 그동안 비가 내려 주지 않으면 벼에 물을 댈 수 없는 하늘이 허락한 쌀을 먹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집마다 천장을 가릴 정도로 걸어놓은 옥수수 또한 마찬가지겠지 겨울이 되면 여름, 가을에 비축해 놓은 식량으로 긴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다.
밤마다 아니 시도 때로 없이 정전이 되니 불편했지만, 태양열로 쓸 만큼만 사용하는 이곳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전력을 만들고 낭비하고 있는 우리보다 현명해 보였다.
오르막길에 잠깐 쉬는 동안 성현이가 포터의 짐을 한번 들어보았다. 몇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는데 삼촌샘은 포터를 도와주려고 가파를 계단을 포터의 커다란 짐을 들고 오신 것이다. 체력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오는 모습에 아이들은 감탄을 했다.
계단이 언제쯤 끝날까? 힘들어하는 아이들!
촘롱의 한 롯지에서 선교사님께서 레모네이드를 사주셨다. 우와~ 아이들은 시원하진 않지만 새콤달콤한 한잔의 레모네이드에 피로를 날려버렸다.
각자 행동식(간식)을 꺼내 나누어 먹는 동안 양발을 벗어 땀에 젖은 발과 신발을 바람과 뜨거운 햇볕에 말렸다. 조금 있으니 한국인 청년들이 abc에서 내려왔는지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로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정보도 주고 받았다.
한국어로 큰 식당마다 주문판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한국인이 많이 온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직접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산에서 만나면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우기(비가 많이 와 트레킹을 피하는 시기)에 만나서 특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촘롱에서 내려오는 계단도 끝이 없다. 돌아올 때는 이 계단을 올라와야 한다니..
가구 수도 많고 학교도 있는지 아이들과 주민들이 많았지만 비가 시작되기 전에 뱀부까지 도착해야 해서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서둘러 촘롱을 빠져나왔다.
산 중턱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시누와! 시냇물을 건너 다시 시누와까지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왔다.
히말라야의 전설은 사실일까? 이 계단을 오르면서 의문이 들었다. 히말라야에 한번 온 사람은 또 오게 된다고? 이렇게 하루 6-7시간을 걸어야하는 힘든 산에 또 오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거머리와 계단이 히말라야의 숨은 다른 매력인가? 내일 모래 abc 가는 길에 해답이 있을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 높은 산들과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 어제의 산행 중에 어떤 악조건도 지나간 아픔일 뿐이다. 아침 햇살아래 참으로 히말라야의 산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웅장하며 거대하다. 자연의 힘이 경이로울 뿐이다. 아침이면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것! 이 또한 히말라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적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앞사람을 따라 올라가니 시누와다.
점심으론 역시나 라면과 볶음밥이었다. 힘든 계단을 지났으니 배가 많이 고팠는지 호산이도 몇 번이나 밥을 더 달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고산증을 예방한다는 블랙티와 밀크티를 마셨다.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1시간정도 가면 나온다는 뱀부를 향해 다시 출발! 앞산에서 산사태가 났는지 흙이 바닥까지 흘러 내렸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3. 뱀부에서 대나무 숲 숙소
어제보다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여유롭게 방 배정을 하고 짐을 풀었다.
뱀부에 도착해서도 힘들지 않은지 열심히 이야기중인 아이들! 우인이는 천진난만한 웃음과 입담으로 큰 형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6살 차이도 훌쩍 뛰어넘어 친구처럼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2시간정도 자유시간을 갖고 저녁6시에 스파게티와 감자튀김에 케첩을 뿌려 저녁을 먹었다. 네팔의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는 친구도 있고 입에 맞지않아 남기는 친구도 있었다.
4. 저녁 일정 회의
우비에 데우랄리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올라가는 일정을 그려가며 설명해주시는 삼촌샘!
“이제 내일 모래면 abc에 올라 갑니다. 우리 일정의 1/3이 지났는데 기록은 잘하고 있나요? 한 단어라도 일기에 적어 놓으면 다음에 기억이 잘 나는데 아무것도 적지 않으면 산을 내려가는 즉시 잊어버립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잘 적는 습관을 들이세요.”
“ 산행은 항상 스스로 자신을 지킬수 있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사람만이 산행을 잘 끝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화장실이 더러워서 참고 똥을 안 싼 사람있죠? 사람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에 독소가 쌓이지 않도록 잘 배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쾌변, 쾌면에 신경쓰도록 하세요.”
“ 고산병의 증상은 고도가 올라가면서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고 혈관이 확장되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게 됩니다. 또 자신감이 결여 되고 두려움으로 난폭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이 두통이 있을 때 누우면 더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 좋고 특별한 약이 없기 때문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캔산소도 준비했지만 심각한 사람을 우선 배려해야 하니까 다들 예방이 필요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하산 할때는 즐겁게, 빠른 속도로 내려올 수 있지만 체력을 잘 안배해야 합니다.
정상 등정 후 내려오는 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산행 끝나면 포카라에서 구경할 것이 많으니까 조금 더 힘을 냅시다.
위험한 상황, 힘든 일을 함께 이겨 내면서 우리 모두 한 몸처럼 가까워 질 것입니다.”
인샬라 라는 말은 신의 뜻대로 되기를 이란 뜻이다. 하늘의 뜻에 맡기고 우리의 할 일을 다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며 저녁 회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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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6 8/17 금
1. 더 높이 ~ 더 높이
일상의 삶 10년은 여행 1년을 사는 것과 같다.
(1) 우리 모두 우주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입니다.
* 노래 -또 다른 열매를 바라시며..
“ 이 노래 가사 중에 ‘소중한 존재라는 것’ 남이 행복해야만 나도 행복한 것인데 우리들은 그동안 경쟁 속에서 우리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자기비하, 자기학대 해왔다. 그런 나의 모습을 깨닫고 반성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안에 있음을 알게 될 날이 옵니다.
‘감사해요, 고마워요’ 자기 고백했음에 큰 의미가 있다. 모든 일에 불평, 불만하기보다 ‘지금 이대로’ 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고, 축복이고 은혜다.”
“ 고통을 피하는 습관이 된 사람은 언제나 나약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살면서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려 말고 정면 승부하여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2) 장로님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다. 매일 승리하면 인생을 승리하는 것과 같다.
한 발짝씩만 매순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욕심은 줄어들 것이다.
(3)선교사님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기쁘게 지내도록 해요
[함께 비를 맞고 해를 맞이 해요~ 새로운 길을 가며 두려워하지 마요]
라는 산촌아이 가사처럼 21명 모두 함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요
2.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원시림을 통과하며
아침을 먹자마자 짐을 챙기고 준비운동을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편하고 짧은 길이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길은 좁고 빗물에 젖어 미끄럽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도반을 지나 히말라야(2900m) 향하는 길!
점심 먹게 될 곳에 도착할 때까지 햇빛도 강하지 않고 정글 숲속이라 나무그늘이 있어 시원했다.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하니 식당주변에 여러 명의 외국인 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일찍 도착한 선교사님께서 미리 주문해주신 점심으로는 네팔의 전통음식인 달 밧= 밥과 국이다. 장로님의 식사기도 “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 모두 이곳까지 안전하게 올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귀한 음식을 먹고 강건해져서 목적지에 도착할 힘을 주십시오.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후 달밧을 먹었다.
망고김치라는 것이 있어서 아이들이 먹어보고 서로 먹어보라고 권했다. 맵고 시큼한 맛이어서 먹은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그리고 죽순, 카레는 우리가 그동안 먹던 카레와 좀 다른 맛이었다. 젓가락게임과 마피아를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우기라 오후엔 비가 자주 오는데 주변 산이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금방 소나기가 쏟아질 듯했다. 우비를 챙겨 입고 숙소인 데우랄리까지 가기로 했다. 우비가 없는 아이들이 있어서 삼촌샘과 조금 기다렸다가 오기로 하고 선교사님과 다른 아이들은 출발 했다.
이슬비라 걷는데 불편하진 않았지만 길이 미끄러웠다.
깊은 계곡을 옆으로 끼고 폭포들을 지나가는 길!
하늘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산 위의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 폭포들이 일직선으로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장관을 보기도 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자연 그대로의 돌계단과 나무다리를 건너며 많은 시냇물을 건너갔다.
3. 폭포의 메아리가 들리는 데우랄리
2시가 조금 지나서야 3200m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친구들은 비에 젖은 빨래감을 널어 놓았다. 햇볕이야 금방 지나가겠지만 바람에라도 말려야 내일 입을 수 있으니까
근석은 한자리에 앉아 멋진 산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고 우인이와 원이는 스스로 빨래를 했다. 저녁 먹기 전에 밀크티와 건빵을 먹고 허기를 달랬다. 한국에 있을 때 집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건빵이겠지만 이곳에서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다 아이들에게 편식도 사라졌다.
** 해가 높은 산사이로 사라지고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모두 식당에 모여 쌀쌀해진 날씨에 마늘스프의 향기와 따스함이 온몸을 녹여 준다. 볶음밥과 감자튀김을 2그릇씩 먹으면서 내일 결전의 산행에 대비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은 후 카드게임도 하고 싶어 했지만 삼촌샘이 내일 새벽기상과 고산증을 예방하기 위해 금지령을 내리셨다.
내일은 매시간 몸 상태를 포터나 선생님들에게 알려 주어야 고산증을 대비할 수 있다. 가장 가까이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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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7 8/18 토요일
1. 안나푸르나의 품속으로
오늘은 아침 5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늦잠을 자서 6시쯤 일어나 아침으로 갈릭스프와 미숫가루를 먹었다. 고산에서는 소화도 잘 않되기 때문에 가볍게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장로님의 식사기도 *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새날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abc에 오르는 일정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불굴의 의지로 오늘 힘든 산행을 이겨낼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여기 모인 모두가 우리 사회와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귀한 음식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오늘은 내 생애의 최고의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한번 바라보기도 힘든 안나푸르나를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가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히말라야와 하나 될 수 있는 순간을 느끼고, 히말라야가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는다면 단순히 하나의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2) 장로님
다갑이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3) 선교사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함께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냅시다.
(1)
오늘 일정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고 내려올 것입니다. 이 숙소에서 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하산준비를 할 것입니다.
방문을 잘 잠그고 배낭을 가지고 나오면 됩니다.
2. 안나푸르나의 숨은 비밀을 찾아서
준비운동을 마치고 선발대가 출발했다.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안나푸르나의 모습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보이고 마차푸차레가 가까워짐에 따라 여러 가지 신기한 풍경을 볼수 있었다.
검은 바위덩어리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빙하처럼 얼음덩어리였다. 주변에는 푸른색의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어있는데 얼음을 볼 수 있다는게 신기하였다. 포터 아저씨들도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얼음동굴로 들어가기도 하고 얼음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신나게 사진을 찍는데 민종이가 머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 혹시 걱정하던 고산증세인가 했는데 텐디 아저씨가 속이 울렁거리지 않으면 참는게 낫다고 해서 약은 먹지 않았다.
꽃동산이 넓은 평야처럼 펼쳐지고 온갖 무지개빛의 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있었다.
양귀비꽃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보니 마약의 한 종류라 반입 금지품목이라고 했다. 아쉬워하는 아이들~
푸른 하늘아래 웅장한 설경을 뽐내는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층층히 누워서 솟아있었다. 깍아지는 절벽을 덮고 있는 나무와 바위사이에서 자라는 이끼,풀들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기운같은 것이 느껴졌다.
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s커브의 강은 얼음이 녹아 흘러가는지 보기만 해도 차가워보였다. 회색빛의 파도가 큰 바위를 통과하고 물보라를 마구 품어내는 강물을 지나 큰 언덕위로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가 보였다.
3. mbc 통과
두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올라와서 도착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따뜻한 차를 마시고 건빵과 네팔과자등 간식을 먹으며 지친 발을 쉬게 했다.
초록평온이 멀리 보이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 안나푸르나까지 올라간다.
네팔은 매우 독특한 지리적 위치와 편차가 큰 고도로 인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풍부한 생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다양한 풀들을 배경으로 수많은 꽃들이 한껏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해발 60m부터 지구상 가장 높은 8,848m의 에베레스트를 반경 150km 이내의 거리에 아우르고 아열대에서 북극에 해당되는 각종 기후 조건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는 더워서 땀이 났는데 산행을 시작하고 높은 산에서 지내면서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제 잠을 잔 데우랄리 부터는 아침과 밤에 추워서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였는데 점점 구름이 계곡을 타고 올라와 우리를 따라왔다. 안개가 가득 차 주변이 잘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체온이 떨어지는지 손과 발이 차가워 졌다.
4. 정상에서
저 멀리 보이던 안나푸르나가 사라지고 겨우 오솔길의 발밑만 보면서 앞으로 나갔다.
산소가 부족해서 인지 모두들 머리가 조금씩 아프다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캔산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삼촌샘을 따라 모두들 조금씩 산소를 마시고 점심을 기다렸다. 따뜻한 라면 국물과 밥을 먹고 조금 휴식을 취했다.
밖은 하얀 안개속이어서 하늘 궁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생 기억하게 될 안나푸르나는 우리 모두의 단체사진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몇 장의 사진은 우리 모두 히말라야 속에 그대로 멈춰있으리라.
점심을 먹는 동안 주변에서 쉬던 외국인들은 베이스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안나푸르나를 보고 내려가려는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들도 머리가 더 아프기 전에 서둘러서 내려올 채비를 했다. 아직도 안개가 가득 해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앞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우비를 입고 3시간을 꼬박 걸어내려오는 길이었다. 올라갈 때 감탄하던 풀과 꽃, 폭포, 시냇물을 안개는 모두 가려버렸지만 모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며 숙소로 내려왔다.
5. 전쟁을 치른 전사들처럼
저녁을 먹기 위해서 모인 아이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비에 젖은 신발도 벗어놓고, 두꺼운 옷이 없어서 침낭을 두르고 나오기도 하고 피곤해하는 얼굴이다. 그래도 일정의 반절은 끝났다는 것을 안도감을 이야기했다. 마카로니와 볶음밥을 먹고 오늘의 피로를 풀기 위해 뜨거운 차도 마셨다.
혹시 고산에 다녀와서 감기 증상이라도 있을까 걱정되는 친구들에게 약을 주고 숙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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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8 8/19 일요일 맑음- 비
1. 마법의 성
늦잠 자는 바람에 6:50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 모두 피곤해서인지 짐을 챙기는 것도 힘들어했다. 데우랄리에서 촘롱까지 최고 장시간 하산해야하기 때문에 서둘러서 식당으로 보냈다.
* 매일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끼면 그렇게 된다
* 기적처럼 하늘 속에 있는 성(abc) 을 다녀왔으니 마법의 성을 한번 불러 봅시다.
(1) 삼촌샘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전체에 영향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고 해서 우리 산행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abc는 우리 트레킹의 일부 과정일 뿐 목적자체는 아닙니다. 히말라야의 산을 찾는 사람들 모두 그렇듯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충분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해발 1000m정도 낮아지고 산을 내려가는 길이지만, 계단이 많아지고 오르는 길보다 방심하기 쉽기 때문에 서서히 걸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8시간 가까운 산행에 맞게 체력안배를 잘하도록 해야 합니다.”
(2) 장로님
지금은 수많은 어려움이 우리 앞에 닥칠지라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을 끌어올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 기회입니다. abc를 다녀오며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선교사님
특히 산에 올라갈 때마다 내려갈 때 사고가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장난치거나 하지 않아야 합니다.
(1) 삼촌샘
자~ 내 얼굴은 누구 꺼죠?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함부로 인상을 찌뿌리지 말고, 항상 웃는 얼굴
**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하루를 유익하고 보람 있게 하시고, 촘롱까지 여정을 안전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하늘과 연결된 계단
펜케이크와 계란에 꿀과 잼을 발라서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챙겨서 한곳에 모아 두었다. 본격적인 산행 시작하기 전 준비운동을 했다.
오늘은 하루 + 반 거리를 내려가야 했다. 데우랄리에서 도반, 뱀부를 거쳐서 오전에는 쉬는 시간을 줄이고 부지런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는 시누와까지...
대나무와 울창한 나무들을 지나면서 산 속의 시원한 바람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가 지나가면서 조금씩 몸이 젖고 계속되는 계단은 지치게 했다. 한번 뒤쳐진 사람들은 앞사람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점심때가 되어서도 만나지 못했다.
포터아저씨들이 먼저 비를 맞으며 시누와까지 와서 점심 준비를 해주셨다. 드디어 발을 뻗어 쉴 수 있다는 것도 감격스러웠는데 저 멀리 촘롱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게 감사할 뿐이었다. 달 밧=녹두죽, 커리, 양배추볶음을 밥과 맛있게 먹었다.
선교사님과 포터아저씨들은 저녁에 묵게 될 숙소로 미리 출발하셨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구름이 심상치 않더니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챙겨 입고 다시 촘롱 으로 출발!
도대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빗줄기~ 히말라야의 비구름이 얼마나 거대한지 마을을 지날 때는 소똥들이 쓸려 내려갈 정도였다.
숙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야 했다. 계단 옆 시냇물의 물줄기가 콸콸 쏟아지는 곳을 지나자, 학교가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우산을 받고 내려왔다. 삼촌샘의 몇 살이냐는 말에 15살이라고 답하고 잠깐 멈추는 우리 아이들을 소개해 주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개학을 해서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이곳에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히말라야의 짧은 15일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한바탕 꿈처럼 여겨질 지라도 히말라야의 산속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듯 마음속에 발자국이 되어 남아있을까?
우산 속의 해맑은 촘롱의 아이들 모습이 우리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걸 기억하게 될까?
하늘을 향해 뚫린 계단을 오르면서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 갈 우리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히말라야!
3. 백숙과 함께 춤을~ 히말라야 토종닭 수난
기다리고 기다리던 숙소에 올라가서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나와서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을 향한 거머리의 습격이 시작 되었다. 현민, 준환, 근석이는 다리에 피가 많이 났다. 우기 중 히말라야에 올 땐 거머리가 물지 못하도록 스타킹을 신고 와야 할 듯.... 이 비가 와서 춥고, 젖은 옷에 신발, 거머리까지 참아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바로 ~ 저녁으로 백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삼촌샘 말씀에 따르면 텐디 아저씨가 숙소에 도착해 미리 저녁주문을 해서 식당 아저씨가 촘롱의 자연이 키운 토종닭을 잡았다고 한다. 20명이 먹으려면 닭이 몇 마리나 잡혔는지 모르겠지만 산 속으로 도망다니다 운이 나쁜 닭이 잡혔을 것이다.
와 우~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안나푸르나 꼭대기까지 들릴 만큼 크다. 저녁이 되자 서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데우랄리보다는 따뜻했다. 식당에 모여서 밀린 일기를 쓰고 창밖이 어두워 보이지 않을 때쯤에 그토록 기다리던 백숙 냄새가 났다. 백숙에 관한 이야기로 군침을 다시던 아이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앞접시에 담긴 닭고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쟁반에 담긴 양배추는 보이지도 않았다. 냠냠 후루룩 소리만 들렸다. 국물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 사라진 닭고기와 닭죽!
이토록 맛이 있는 닭죽은 처음 먹는다면서 시끌벅적 ~
이때 장로님의 퀴즈가 있었다. 촘롱에서 올라온 계단의 수가 몇 개인가요?
1천개부터 5천개까지 많은 응답이 나왔는데 근접한 숫자도 나왔다.
정답은 ? 2295개의 계단을 올라왔다.
따뜻한 국물을 먹었고 배도 부르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포터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히말라야의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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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9 8/20 월요일 흐림-비
1.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1) 삼촌샘
* 음악과 함께 시작된 아침 -음악에 온 마음을 담아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흘려보내자.
* 명상 1분
자~ 모두들 몸 상태는 어때요? 잘 잤나요
히말라야 대지와 하늘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명상을 해볼까요? 매일 명상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고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 들여 살아 갈수 있습니다.
* < 사랑으로 > 라는 노래를 함께 불러 봅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할 일은 사랑을 나누는 것 아닐까요?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라는 가사가 우리는 ‘바람 부는 히말라야의 정글 숲속에 서있어서도’ 라고 들리지 않나요?”
“ 우리 마음은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바뀝니다. 이곳에 와서도 매일 다른 마음 상태를 경험했을 겁니다. 멋진 히말라야의 산을 보면 즐겁지만, 매일 걷다보면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힘든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관해 깊이 연구했던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마음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렸습니다.
- 마음은 ‘전갈에 쏘인 원숭이’와 같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으로 날뛰는 원숭이처럼 매 순간 변한다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공부하고 알아차리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 것입니다.
세계의 위대한 인물들은 마음을 깨닫고 스스로 모범적인 삶을 살면서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인류의 발전을 이루어낸 위인들 또한 자신의 잠재력을 깨우쳐 그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숨겨진 내안의 거인을 깨울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화두로 삼고 깊이 탐구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근본= 본래면목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직업, 성격, 외모, 지위 등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를 떠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알맹이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는가?] 란 근본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에 관해 수많은 책과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만, 공통되는 한 가지는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과 연결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조건과 상황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세가 어떤가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변화무쌍한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가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 모두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 장로님
이곳까지 산행의 반절이 지났는데 잘 와주었어요. 관심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항상 친구들과 부모님을 생각하고 먼저 관심을 갖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산에 올라봅시다.
(3) 선교사님
이곳에 우기마다 거머리가 많습니다. 거머리에 겁먹지 말고 앞을 보고 열심히 걸어갑시다. 성실하게 산행을 해온 친구들이 대견하고, 거머리에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화이팅
(1)
오늘의 산행은 5시간쯤 걸리지만 비도 많이 오고 힘들 것입니다. 긴장하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거머리에게 마음을 빼앗겨 주변의 풍경을 놓치지 않아야 겠습니다.
* 아침기도
“ 우리의 몸과 맘을 지켜주시는 아버지.
은혜로 60억 인구 중에 하나로 태어나게 해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음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우리 공동체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 거머리의 충격적 비밀
8시에 준비 운동을 마치고 촘롱을 뒤로 한 채 구름 속으로 길을 떠났다. 소똥이 가득하고, 좁은 산길을 따라 한 줄로 내려오니 우리 옆으로 구름이 따라왔다.
계단식 논밭을 지나면 옥수수 밭이 나오고 산허리를 개간해서 식량을 생산하는 히말라야의 사람들! 마을에 학교도 있고, 축구장 같은 평지도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나라도 기계화되기 전에는 이곳 풍경과 똑같았을 텐데...
아마존 정글 속의 나무들처럼 울창한 숲 속에 쓰러져 있는 나무위로도 꽃과 풀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담쟁이덩굴과 가시나무들이 바닥에서 꼭대기 까지 나무를 덮고 있었다. 생명력 가득한 히말라야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것 같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머리들이 사정없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를 빨아먹고 또 멈추기 전에 다른 거머리가 ..... 서로 거머리를 떼어주면서 관찰을 하고 근석이는 병에 거머리를 수집하였다. 꼬리가 어디고 잎이 어딘지 거머리를 분석하며 한국으로 가져가서 치료하는데 쓰이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 사업적 기질을 보이는 아이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점심을 먹기로 한 출리까지 올라가는 길은 비도 내리고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 이런때 쓰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아이들의 비옷에 7-8마리의 거머리가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풀에 붙어있던 거머리가 점프를 하는 것이었다. 피를 빨아먹는 능력에 점프능력까지 있을 줄이야..... 아이들은 비옷을 벗어버리고 나서도 거머리의 공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겨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와서 보니 피 나지 않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문한 라면과 밥이 나왔다. 열심히 밥을 먹고 있던 그 때 민석이의 볶음밥위로 거머리가 떨어졌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경악을 하였지만, 이제 면역이 되었는지 금방 라면을 더 먹겠다고 삼촌샘에게 더 주문해 달라고 졸랐다.
2그릇씩 싹싹 비우고 나서야 아이들은 또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ABC와 제로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 언제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왔는지는 잊어버린 듯이...
3. 다라빠니에서 밤을 보내며.
한참을 놀다가 창밖을 보니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밀림 속의 나무들 사이를 뚫고 숙소로 향해 출발이다. 마지막 힘을 내서 한 발자국씩 옮기다보니 숙소가 보였다. 아 ~ 얼마나 기다리던 곳인가... 이 숙소는 고도가 높고 멀리 첩첩산중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식당에는 난로가 있어서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릴 수 있고 따뜻한 물도 나와서 샤워를 할수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긴팔을 입어도 춥다니. 한 겨울에는 어떻게 지낼까?
창밖으로는 구름이 계곡 사이로 서서히 밀려들어오고, 외국인 여행자들은 흐린 날씨에도 웃으면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오고 빛이라고는 주변 롯지의 전등 한 두개 불빛만 빛나고 있었다.
저녁에는 텐디 아저씨가 직접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감자가 들어간 수제비는 한국에서 먹는 친숙한 음식인데 히말라야에서 먹게 되다니.. 만두와 밥까지 뚝딱 해치우고 아이들은 카드놀이와 마피아게임을 하러 올라갔다.
식당에 남아 일기를 쓰면서 밀크티를 마시고, 포터 아저씨들에게 네팔어도 배웠다. 치뚜종(빨리 가요), 비스타르 정(천천히 가요), 따또 빠니(따뜻한 물) 다라 빠니(많다 물이) 등등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한국어 , 영어 , 네팔어로 대화 하는 동안 밤은 깊어 갔다.
일출이 아름답다는 이 숙소에서 아침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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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0 8/21 화
1. 다라빠니의 아침풍경들
(1) 삼촌샘
*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히 아침명상에 빠져든다.
또다른 열매를 바라시며 노래를 하고 아이들의 몸상태를 물어보시는 삼촌샘~
“ 오늘 컨디션이 어떤가요? 어제 힘들어하던 준환이도 침낭으로 둘러싸고 나오긴 했지만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하니까 오늘 산행은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오해, 괴로움, 외로움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상처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혼자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 주장, 관점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생명체와 땅 공기 등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한순간이라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내 재능 또한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들의 것입니다.
항상 주변을 둘러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다보면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들이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히말라야를 생각할 때가 옵니다. 힘든 때에 히말라야에서 삼촌샘한테 이런 말을 들었었지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가를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2) 장로님
히말라야라는 터널도 언젠가 지나가고, 매 순간 새로운 터널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히말라야의 추억은 저 멀리 과거가 되겠지요.
인생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언제나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참고 견딜 힘이 생기게 됩니다.
(3) 선교사님
시작이 반 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밝은 햇빛이 아침을 열어주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읍시다. 한참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땅으로 새 마음으로 기쁘게 걸어갑시다.
2. 안나푸르나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고레빠니 가는 길
간식이 떨어져서 중간 중간에 롯지에서 과자를 사먹었다. 시작은 평지여서 힘들지 않았지만 조금 있으니 계곡을 타고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오르는 길마다 외국인들도 많이 만나고, 한국 사람도 만났다. 나무뿌리가 땅위로 드러나서 계단을 이루고 원시림처럼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 산을 이루고 있었다. 절벽에는 온갖 풀들과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여유로운 얼굴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점심 먹게 될 데우랄리까지 열심히 걸었다.
점심은 달 밧 녹두죽은 인기가 많았고 아이들은 밥을 먹자마자 제로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비오는 중에도 30분간 더 쉬었다 가기로 했다.
고레빠니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많았다. 산 능선을 타고 좌우로 산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에델바이스란 꽃도 보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말들이 풀을 뜯는 푸른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산 정상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싱그러운 풀을 뜯고 있는 말들!
매미소리가 나무마다 들려서 시끄러운 나무숲을 지나니 큰 마을에 들어섰다. 많은 숙소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거리마다 서있었다.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하늘 속의 마을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짧은 여정으로 안나푸르나 등정을 할 때도 꼭 들르는 고레빠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면서 힘들었던 것도 모두 잊게 만드는 풍경에 감탄을 하며 숙소에 짐을 풀었다.
3. OPEN MIND !
오늘의 저녁메뉴는 바로 바로~치킨커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일정을 이야기하느라 아이들은 시끌벅적하다.
장로님의 감사 기도와 함께 식사가 시작 되었다. 냠냠 쩝쩝 소리만 들리는 식당 안!
며칠을 굶은 것처럼 아이들은 커리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후 일정공유와 마음 열기를 할 때 정전이 돼서 촛불을 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느꼈던 것 함께 나누기= 한마디]
삼촌샘 옆자리부터 시작해 이번 여행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민석 / 8일간 밤마다 너무 추웠어요. 어제도 친구들 사이에 끼어서 잤어요
산행은 즐겁고 재미있었는데 넘 추웠어요
*근석 / 힘든 일도 많았지만 다 같이 있어서 힘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한국 돌아가기 전까지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 아침마다 해주신 삼촌샘과 선교사님 포터 아저씨들에게 감사해요
*현민 / 잠도 잘 못자고 음식도 안 맞았지만 즐거운 산행이었어요.
3일 동안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민종 / 좋은 형들과 동생, 친구들과 산행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응원해주면서
힘든 것도 잊을 수 있었어요 감기에 걸리고 변비도 있지만 괜찮아요.
*은경 / 처음에 여학생은 저 혼자라서 걱정했었는데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힘든 길을 지날 수록 마음이 뿌듯하고 제가 자랑스러워 졌어요.
*호산 / 저는 히말라야에 오른다는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어요.
거머리를 보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아침, 저녁으로 좋은 말씀 듣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잘 배우고 잘 먹고 좋은 사귐을 기억 할 거에요.
*다빈 /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다들 산행하면서 친해져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어려운 과정을 함께 하면서 더욱 긍정적이된거 같아요.
*준환 / 기대한 것보다 몸 상태(체력)가 안 좋아서 힘들었어요. 헬기를 타고 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짜증도 내고 욕도 많이 했는데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어서 감사해요
*성현 / 제가 학교 자퇴한지 3개월 정도 되었어요.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도서관에 가서도 꾸준히 앉아있지 못했는데...
히말라야에 와서 10일동안 억지로 새벽에 일어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고, 만나기 싫은 것도 만나고 반강제적이지만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좋았어요.
그리고 큰 형이 선두에는 못 갈망정 꼴등으로 다닌 게 부끄럽고요.
어린 친구들이랑 친동생처럼 지낼 수 있어서 기뻐요 우인이가 웃는게 이쁘고 말도 잘해서 재미있었어요.
*김시원 / 서먹서먹했던 또래들과 친해지고 형들과도 재미있게 게임도 하고 힘든 산행도 보람있었어요 히말라야의 높은 산을 다녀봤으니 한국에서 고도 낮은 산에 올라가면 우스울 것 같아요
*우리 / 산행에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다빈이 형이 그림도 그려주고 재미있게 놀았고 스스로 옷 입고 신발 끈도 묶고 밥도 많이 먹고 재미있었어요.
*우인 / 저는 잠잘 때 많이 떨어져서 아팠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성현이 형이랑 디지몬 이야기 하는 것은 좋았어요.
*재원 / 4130m까지 어떻게 가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어렵게만 느껴졌지만 산 타는게 재미있었어요.
*시원 / 산은 걷기도 힘들고, 거머리도 많고, 음식도 입에 안맞고 힘들었지만 히말라야에 점점 익숙해지고 형들이 잘해줘서 고마웠어요.
*서원 /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마피아 게임하면서 재미 있었어요.
* 장로님
나는 66년을 살았고 아이들은 서른 살이 넘었는데 그동안 한번도 이런 기회를 못 만들어줬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니까 손자들에게만은 히말라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선교사님 덕분에 일정에도 없던 안나푸르나까지 올수 있게 되었고 60년동안 가장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일을 했습니다.
* 김정숙 선교사님
함께하면서 나이도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새 힘을 얻어 히말라야를 내려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남은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 한혜숙 선교사님
시간의 벽을 넘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저의 지난 7번의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서 가장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 힐라샘
히말라야에 오면서 죽을 고생을 하겠다는 각오로 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날씨는 춥고, 비는 많이 오고, 밤마다 왜 왔을까? 하고 물어봤는데 아침이 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침 해가 떠오르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적극적이고 힘차게 살겠습니다.
***삼촌샘
참으로 감동적인 마음 나눔이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에게 절을 한 번씩 해주고 싶을 정도로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우리 모두 육체는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생명이요 하나의 얼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이 점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히말라야에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일들을 영원히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순간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기적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 잘 했다는 응원의 박수를 쳐 줍시다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열어서 드러내니 한층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촛불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때마침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웃으며 각자 쉬기 위해 방으로 올라가고 또 히말라야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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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1 8/22 수
1.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삼촌샘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노래 로 시작
이 노래를 부르면 사랑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느낌입니다. 위대한 자연과 신과의 사랑, 부모님과의 사랑등 결국 우리 삶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초능력으로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해도,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명예를 얻어도,
심지어 영원히 살 수 있다 해도,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데 기초가 되는 사랑!
오늘 3가지 비밀을 전수 하겠습니다.
바로 성취의 비결 ~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이룰 수 있는 실천 방법입니다.
1> 하던 일을 멈춘다.
생각과 말 행동이 끝없이 이어져서 하루를 만들어 갑니다. 내 자신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 생각도 말도 행동도 잠깐 비우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들을 쫓다보면 공상만 늘어나고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고, 공부를 할 때는 공부만 해야 합니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오직 그 목표(정상)을 바라보고 걸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수 있습니다.
다른 잡념을 없애고 집중해서 오직 한 가지만 해야 합니다. 오직 할 뿐!
2> 말하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합니까?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정말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닌데도 입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가슴을 울려 나오는 ‘참된 언어’가 아니고 그저 목구멍에서 바로 튀어나가는 쓸데없는 ‘거짓된 언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라고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입니다.
혹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불만, 불평을 말하기보다 조용히 내안의 적을 직시해야만 빨리 해결 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침묵하면서 오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3> 잘 듣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말만을 할 뿐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듣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배우고 익힌 대로 머릿속에 지혜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현인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두분은 자신이 말하는 진리와 행동이 일치 했습니다. 공자도 하늘아래 내가 만든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뛰어나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고 배워 익힌 것을 잘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진로문제나 학교성적, 가정문제등 많은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3가지 비밀은 어떤 길을 가든지 성공할 수 있는 비법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갈 시대에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과거의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지고, 자격증만 가지고 살 수도 없습니다. 창의력과 독창성만이 경쟁력이 되고 섬기는 리더십이 전문문야에서 최고 실력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이 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성공의 진정한 의미는 돈이나 명예,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들이 아닙니다.
< 오직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가 >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만족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워집니다.
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갖고 있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바다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장로님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삶은 진정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입니다.
(3) 선교사님
오늘은 내리막길이 많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입니다. 산 앞에서는 항상 겸손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2. 신나는 하산 길
고레빠니에서 마을을 통과해 계속되는 산행 길! 깊은 정글 속을 탐험하는 것처럼 얼마나 우람한 나무들이 가득 차있는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밤사이 내린 비로 축축한 흙길을 따라 말들도 지나다니고 시냇물을 건너면서 안나푸르나와 점점 멀어져 갔다.
우인이와 성현이는 디지몬 어드벤처 이야기가 한창이다. 성현이는 외우기 어려운 디지몬의 이름들을 술술 대는 우인이에게 문제를 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을 빵과 계란으로 간단하게 먹어서 인지 배고파하는 아이들은 점심먹는 식당이 어디인지 계속 물어보았다. 텐디 아저씨가 5분만 더 가면 있다고 하자 5분이30분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가게 주변으로 음악이 흘러 나오자
삼촌샘이 다 같이 댄스를 추자고 제안했고 춤을 추면서 미션을 통과하면 에그누들스프를 사주신다고 했다. 길 위에서 신나게 한바탕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니 다시 힘이 솟아났다.
조금 더 오르락 내리락 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같은 곳에 식당이 있었다.
구름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라면과 밥을 기다렸다. 서로 라면을 더 달라고 해서 깨끗이 먹어 치우고 나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지 밥을 다먹고 주변을 돌아 다니며 구경을 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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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2 8/23 목
힐레 - 비레탄티 - 너야풀- 포카라
1. 아침열기 6:30~ 7시
*명상 5분
*산촌아이 -- 즐겁게 손뼉을 치면서
(1) 삼촌샘
오늘은 히말라야 산 속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입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 남은 시간이 있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지고 있죠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제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과 싸우게 되는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일단 싸움의 원인제공은 서로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양자의 잘못이 있는데도 한쪽만 잘했다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은 계속됩니다.
성경 말씀에 ‘내 눈의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의 티끌을 빼주려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잘못과 실수는 철저히 심판하려고 하는 반면, 나의 잘못과 실수는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왜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으로 완벽한 사람임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너그러울까요? 왜 남의 과오는 2배로 응징하려하고 자신의 과오는 용서받길 원하는 걸까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여기서 폭력이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 폭력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폭력을 말합니다. 이것을 폭력의 재생산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차원을 떠나 국가적 차원으로 본다면 전쟁의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 유지군이란 명목으로 많은 군인들을 보내지만 현지인들, 즉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평화유지군은 또 다른 복수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도 자살 폭탄 테러등으로 유엔이나 미군의 사상자가 셀 수 없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성경 한 구절로 돌아가 반대로 읽어보면 ‘남의 실수는 티끌에 불과하니 관대하게 넘어가고, 나의 실수는 들보와 같으니 엄하게 반성해야 한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철저한 자기성찰을 통해 ‘너의 잘못(허물)은 곧 나의 잘못(허물)이다.’ 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은 비판하는 만큼 비판받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허물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그런 상대의 언행으로 인해 내가 슬프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닫힌 마음으로 소통을 거부하며 서로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진심어린 대화를 한다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노력하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소통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 하는 것입니다. 폐를 끼치는 언행의 피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매일 저녁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진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2) 장로님
산행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인생에 마디마디를 잘 끝맺을 때 하나의 온전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저도 어제 내리막길에서 발을 잘못 딛어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산과 자연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서 항상 건강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오늘도 안전하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리샘~ 지소 선후 면 즉근 도의 라. 일의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 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그리고 내일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달이 되고 한달이 모여서 일년이 됩니다. 결국은 하루에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히말라야에서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선순위를 정해 하루를 생활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밥기도 7~ 7:30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마지막 산행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음식을 준비해준 귀한 손길에 은총을 내려 주시고 건강해진 저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항상 가진 것을 베푸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출발
(1) 힐레 ~ 비레탄티 8- 10:40 (2:40)
아침으로 계란과 펜케이크를 먹고 포터와 숙소의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하룻밤 잠깐이지만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면서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
돌로 된 계단 이곳저곳에는 소똥과 말똥이 흩어져있어 아이들은 피해 다니느라 바쁘다
빗물이 계단 옆으로 흐르고 산사태로 길이 반절은 가려졌지만 포카라로 간다는 마음 때문인지 신나게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간 중간 말들이 짐을 싣고 내려갔다 향기로운 냄새는 나지않았지만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사람과 짐을 옮긴다는 것이 신기하다.
계곡의 물살이 빠르고 폭포도 있어서 귀가 아플정도로 물소리가 우렁차다. 이곳 사람들은 깍아지는 절벽 끝에 나있는 길을 따라 벼농사도 짓고, 집을 지어 생활한다. 무너진 산을 평평하게 하고 나무를 일일이 톱질해서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해내는 모습을 걷는 중에 쉽게 볼 수 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발걸음도 가볍고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인지 열심히 산을 올라오는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이 시간 이 길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 히말라야에 와서 만나는 모든 네팔사람들과 외국인들은 특별하게 생각이 든다.
조금 아쉬운 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과자봉지 등 쓰레기가 그냥 길가에 버려져 있다는 것이다. 히말라야에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산을 아끼는 아름다운 마음을 냈으며 좋겠다.
(2) 11-12:10 점심
비레탄티 중심지를 지나 삼거리에 한국어로 표지판이 하나 있어서 읽어보았다. 코이카와 엄홍길휴먼재단에서 세운 학교가 있다는 알림이 아닌가! 코이카의 활동이야 책과 TV를 통해 자주 봐 왔지만 이렇게 현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한혜숙 선교사님께 물어보니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에 2곳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와서 사랑을 실천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아이들이 기억하고 10년 후에는 직접 코이카 단원이나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에 좌판을 벌인 아저씨 주변에서 아이들이 계속 구경을 하고 있다. 신기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찾아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결국 아저씨는 삼촌샘에게 종하나를 팔고 자리를 떠났다. 우리의 점심은 달밧~녹두죽과 밥 감자볶음 케찹을 서로 달라고 해서 비벼먹기도 하고 칠리 소스를 뿌려먹기도 한다.
*오늘 하루 일과를 시작해 너야풀 까지 올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일정도 함께 해주시고 좋은 음식 감사히 먹겠습니다.
(3) 비레탄티 ~ 너야풀 1210~ 12:45 (35분)
영화 속에서 많이 봤던 거리! 인도의 한 거리를 닮은 이곳 저곳에 음식과 장식품 생활용품을 팔고 있는 상점들이 좌우로 가득하다. 거의 열흘 만에 다시 보는 차들!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좁을 길을 경주하듯 달려간다. 사람도 짐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 들정도로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네팔의 차들이다.
저 멀리 언덕에 우리가 포카라에서 타고 온 버스가 보인다. 와! 아이들이 달려서 올라간다. 버스에 타기 전 삼촌샘과 선교사님들 모두 아이들과 포옹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힘들었던 열흘간의 산행을 끝냈다. 한국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좋아하던 아이들은 의자에 앉기 무섭게 잠에 빠져 들었다. 그동안의 긴장이 다 풀린 것처럼.. 이런 아이들의 잠자는 뒤통수만 바라 보아도 대견하다. 어떻게 이토록 작은 손과 발로 저 거대한 히말라야 곳곳을 뛰어다녔는지 뿌듯하고 정말 대단하다.
깊고 높은 산을 돌고 돌아 다시 버스를 타게 되다니... 편안하게 앉아서 끝이 어딘지 모를 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을 다시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계단식 논과 성냥갑처럼 작게 보이는 집을 뒤로 하고 버스는 쉬지 않고 포카라로 향한다. 버스에 탄지 30분쯤 지나니 까레! 처음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 곳이다. 열흘이 열달 처럼 길게 느껴졌느데 지나고 보니 또 한여름 밤처럼 잠깐이 아닌가.
다시 눈을 뜨니 시끌벅적한 포카라 시내다. 차는 구경도 할수 없고, 사람도 찾기 힘든 구름이 절반쯤 가린 산중턱만 바라보다 많은 집과 사람을 보게 되니 반갑기까지 하다.
3 도착 버스 12:45~ 2:20 (1:35)
(1) 숙소
-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던 산마루 식당이 있는 호텔이다. 각 방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고 좋아하는 아이들 ! 짐을 풀자마자 씻고 나서 4시부터 한방에 모여서 회의를 했다. 삼촌샘은 자유시간을 주고 각자 먹고 싶을 것을 사먹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저녁식대로 준비된 돈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우리에게는 1끼 식사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큰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도 선뜻 동의해 주었다.
아이들 각자 환전도 해보고 흥정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포카라 시내의 약도와 주의 사항들을 귀 기울여 듣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 열심히 시내구경을 했다.
성현,준환, 호산등은 컴퓨터 게임을 하러가고 초등학생들과 힐라샘, 삼촌샘은 같이 폐와 호수 구경을 간다. 삼촌샘은 1달러를 87루피에 환전했는데 장소마다 조금씩 환전금액이 달랐다. 100원에 7루피 가까이 되니까 700루피면 1만원이 되는데 아직 돈계산에 서툴러서 인지 물건을 구경할 때마다 한참을 계산해야 했다.
폐와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삼촌샘과 힐라샘 보리샘 초등학생모두 피자와 모모(만두) 닭다리를 먹었는데 산속에서 달밧과 펜케이크를 먹어서 인지, 포카라 음식이 맛있어서 인지 순식간에 음식들이 사라졌다. 환타와 콜라같은 음료수도 큰걸로 3병이나 사왔는데 다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면서 길거리 음식을 기웃거리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감동그자체였다.
폐와 호수 주변에 상점도 많고 자전거 타는 사람, 배타는 사람, 신혼여행 온 커플들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한눈에 보여서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사진찍느라 한 장소는 계속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지도를 파는 분들이 관광객들을 잡으려고 한국말(안녕하세요)까지 써가면서 졸졸 따라왔다. 흰색의 새와 검은 까마귀들이 하늘 위를 날고 200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하루 종일 폐와 호수만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쇼핑을 하러 다시 큰길로 나왔는데 등산복, 전통의상, 골동품, 책과지도 엽서들을 파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흥정하면서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떻게 물건을 사야 할지 난감해 했다. 일단 내일 오전에도 시간이 있기 때문에 눈으로만 살 것을 골라 놓고 다시오기로 했다.
네팔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춤과 공연도 볼 수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바비큐와 치킨 밥 누들을 시켜 놓고 음악을 들었다. 폐와 호수의 밤바람을 맞으면서 네팔의 전통음악을 들으니 다른 세계에 온듯했다. 음식도 맛있어서 접시도 깨끗하게 비웠다.
포카라의 하룻밤은 이렇게 눈도 귀도 입도 즐겁게 해주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제대로 느끼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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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3 8/24 금 포카라- 카트만두/ 조이하우스
1. 아 침
푹신한 침대에서 잠에 깨어보니 벌써 밖은 차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산에서는 5:30부터 일어나 짐을 싸느라고 힘들어 하던 아이들도 오랜만에 늦잠다운 늦잠을 잤다. 간단히 갓구운 빵으로 요기를 하고 삼촌샘과 초등학생 몇 명은 폐와호수에 배를 타고 꼭대기까지 구경을 하러 가고 중학생들은 따로 아침을 먹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2. 점 심 1시에 산마루 식당에 모여서
아이들은 포카라를 떠나기 전 필요한 옷만 간단히 빨래를 하고 나머지 냄새나는 옷이지만 다시 배낭에 싸서 한방에 모였다. 카트만두의 숙소까지 여섯~ 일곱 시간은 버스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짐을 모두 1층으로 옮기고 식당으로 올라왔다.
우리들은 돌솥비빔밥과 김치 부침개를 먹었다. 한국음식 냄새는 산에서 맡지도 못했었는데 맛있는 냄새부터 식욕을 자극했다. 아이들은 장시간 버스여행을 대비해 많이 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버스에 짐을 싣고 포카라 공항을 지나 좁은 산길로 향했다.
열흘 전에 히말라야 올 때 보았던 풍경이지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 아이들은 피곤해서인지 잠을 자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
3. 카트만두 까지
버스의 앞 유리창을 통해 보면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쌩쌩 지나가는 차들!
고속도로 주변으로 소와 염소들이 지나다니고 장사하는 분들도 많았다. 단층으로 된 허술한 집들은 지붕위에 평평한 돌을 올려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아 놓았다. 또 불편해 보이는 생활에도 웃으며 지내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식량을 먹을 수 있고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행복한 웃음이 아닐까?
아슬아슬하게 곡예운전은 여전했지만 옆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풍경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몇 십톤은 되어 보이는 돌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회색빛 강을 따라 도로가 나있어서 산과 강이 만들어낸 풍경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점점 주변이 어두워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잠깐 멈추었다. 저녁메뉴는 먹고 싶은 것을 모두 골라 먹는 뷔폐식! 주로 네팔의 전형적인 음식들이었다. 밀크티까지 마시고 다시 카트만두를 향해 출발~
어두운 밤길을 달리니 주변은 보이지 않고 차들이 지나가는 불빛만 보며 3시간쯤 달려 드디어 카트만두의 야경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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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4 8/25 토
1. 아침
조이하우스에서 일어나는 아침! 푹신한 침대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일어났다.
아침을 먹기 전 삼촌샘이 오늘의 일정과 출국시간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7:30에 아침을 먹으러 3층식당으로 내려가니 선교사님께서 준비해 주신 김치찌개와 계란 후라이, 오이소박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의 산에서는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항상 짐을 싸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해야 했는데 여유로운 아이들의 모습에서 정말 네팔에서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네팔의 마지막 날에 거룩한 안식일을 맞을 수 있게 해주시고 귀한 음식을 준비해준 선교사님들께 축복과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아멘
2. 예배
아침을 먹자 마자 4층 숙소에서 짐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산행 중에 더러워진 옷도 세탁하고 방청소도 하면서 한국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9:30 ~ 10:30에는 조이하우스 아이들의 예배시간이라 장로님과 선교사님이 5층 예배당으로 가셨다. 우인,시원,재원,보리샘,힐라샘도 같이 예배를 드렸다. 찬양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미리 준비했는지 중간에는 리코더로 한국의 노래도 연주했다. 우리에겐 쉬운 곡이지만 네팔아이들이 연주하니 대단해 보였다. 기타를 치는 네팔 친구와 피아노를 치는 선교사님의 모습에서 어디서 태어났는지 보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았다. 서로 자신의 선택으로 선교사님과 이곳 조이하우스를 거쳐간 친구들이 만난 것 같지만 더 큰 힘이 끌어당기지는 않았을까?
3. 마지막 짐싸기
조이하우스 선생님의 설교가 끝나고 예배가 끝났다. 11시쯤 아이들 모두 모여서 30번의 오체투지를 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오체투지의 시간은 짧았지만 지난 산행을 돌아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각자 소감을 한마디씩 했다. 힘들었다는 말로 산행을 정의하기도 하고 언제 일정이 끝날까 했는데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아쉽다는 말과 한국과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제 아이들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스스로 히말라야 산속에서 경험했던 인내와 끈기를 기억하면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 모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삼촌샘은 오체투지의 문구 하나하나를 언급하시면 얼싸안기를 하자고 하셨다. 말 그대로 얼을 감싸 안아 주는 것이다. 포옹을 하면서 고통을 함께 나누며 이겨낸 동지애가 생기는 듯 했다. 힐라샘과 몇몇 친구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특히 아프고 힘들어했던 친구들의 마음속에 더욱 큰 히말라야 산이 새겨 졌으리라 믿는다.
얼싸안아주고 나서 조이 하우스 친구들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기부할 가방을 만들었다. 한번씩 사용하긴 했지만 소중히 사용되길 바라며 가방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풍요로워지는 시간이었다.
4. 카트만두 시내구경- 쇼핑
짐정리 후 12:30~1:30까지 점심으로 자장밥을 먹었다.
조이하우스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사진을 찍으러 농구장 쪽으로 내려갔다. 조이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러 짐을 들고 출발!
카트만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선교사님들과 장로님과는 헤어졌다. 항상 아이들을 챙겨주시고 모든 일정까지 계획해 주신 분들의 귀한 도움으로 우리들이 무사히 히말라야의 산을 다녀왔으니 아이들도 아쉬워했다.
조이하우스를 뒤로 하고 카트만두의 시내구경을 갔다. 네팔의 유명한 카멜시장을 돌아보고 공항을 갈 예정이었다. 힌두문화를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사원들이 있고 네팔의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되어있었다.
게스트하우스와 기념품 가게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네팔 사람보다 외국인이 많은 것 같았다. 삼촌샘은 한국음식점인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자유롭게 3시간의 쇼핑시간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없는 신기한 물건들에 아이들은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바빴다. 짧은 시간이지만, 흥정을 하는 법도 배우고 좋은 물건 고르는 법도 배우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청아한 소리가 나는 종과 동전을 넣을 수 있는 수공예품 지갑, 네팔의 전통술, 향기 나는 초, 네팔의 전통차, 스카프등을 사는 아이들 손에 봉투가 하나씩 늘어났다.
저녁으로는 삼겹살과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몇 분지나지 않아 고기는 사라졌다.
네팔의 마지막 식사는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네팔의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쇼핑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 싸게 구입했는지 비싸게 구입했는지를 토론하면서 네팔의 쇼핑노하우를 나누었다.
미리 공항에 도착한 선교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기념품을 가방에 넣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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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5 8/26 일
카트만두 공항에서 광저우로
광저우에서 인천공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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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리샘이 정리하고 있었던 일지랍니다. 놀랍도록 현장감이 있죠? 모두의 글을 잘 정리해서 책자로 발간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강압(?)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