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지고 찬바람이 불면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오른다...
17살 경 일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병든 어머니를
돕느라`` 중학교를 중퇴하고 인천 소방서에
사환으로 일을 할 때였다...
소방과장님 큰 딸이 인천 서림 국민학교 동창이었는데```
(80여 명 중 1-5등 안에서 늘 경쟁했었다.)
점심때가 되면 날마다 2km 떨어진 과장님 자택에서
점심 도시락을 가져와야 했는데```
겨울에는 밥이 식을세라 헉헉 뛰어다녔다
낮은 자존감에 나는 늘```그 시간이 괴로웠으며```
혹시 동창과 마주칠세라 조마조마했고```
동창이 교복을 입고 소방서로 놀러 오는 날이면
나는 창피하여 재빨리 숨어 버렸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소방서로 나를 찾아오셨다.
실업자가 넘치고 가난했던 시절이라 빽 없이는
관공서 사환 자리도 취직이 어려웠었으므로```
아마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찾아오셨던 것 같았다.
(지금은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공서가 대수롭지 않지만)
어머니의 초라한 형색이 창피하고````
비참한 나의 모습이 원망스러워,,,,
어머니를 쳐다보며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 왜 오셨느냐고 빨리 가시라고"
외면을 하고 휭 ``` 피해버렸다.
3년이 지난 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행동이 얼마나 비겁하고 치사한지를
깊이 깨닫고 회개를 하였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하여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1978년 늦가을```
인천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던 오라버니가
동료 노숙자를 데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올케가 술 때문에 쫓아내서 노숙자로 살았다고 함)
친정어머니와 언니가 가까이 살고 있었는대
호되게 야단을 치시면서 문전 박대를 하였다고 한다...
남편이 허락하여 우리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오라버니는 주민등록증도 말소되었고
예비군훈련도 받지 않아 수배 대상이었으나
남편이 경찰서와 시청에 찾아가 회복을 시켜주었다.
3년을 함께 하던 중 우리 사업이 부도를 맞이하여
정리하는 과정에 오라버니는 본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부부는
신학과 사역과 개척으로 정신없이
사느라 오라버니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교회로 구걸하러 오는 분들을 볼 때마다
오라버니 생각이 나서 따뜻한 밥과 옷
1000원이나 5000원이라도 하얀 봉투에
(더러운 지폐는 항상 비눗물로 세척하여 다리미로 다렸다)
정성껏 담아 주었다.
1 오라버니가 개척교회로 찾아오셨다
(십년만에 만남)
술을 달고 사는 버릇 때문에 올케하고 싸우고
곧바로 나와서 청량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중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포천 할렐루야 기도원에 다니는 신도가
발견하고 가까운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위암 말기로 생존 가망이 없다고 하여
" 할렐루야 기도원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신도가 택시를 불러 함께 그곳에 가서
김계화 원장님의 기도로 1개월 만에 완치 되었으며```
기도원에서 숙식하며 겨울이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어느 날 노숙자들끼리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부천 새 힘 교회에 가면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돈도 주는데
너무도 친절하고 좋았다고 전국에서 제일 좋은 교회라고"
다른 노숙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오라버니는" 그 교회 목회자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하였더니
내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대더란다...
너무도 기가 막혀서 호통을 치면서" 다시는 그 교회 가지 말라고"
물론 동생 부부라고 하지는 않고 단숨에 달려왔다고 한다.
오라버니는
"너희 보다 노숙자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아``
돈도 더`` 많아 절대 적선하지 마"
오라버니는 그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난 후 교회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나는 협심증으로 남편은 간경화로 힘들게 사역하고 있었는데``
8년이 지난 늦 봄
오라버니는 기도원 생활을 접고 우리 집에 오셨으나
당뇨와 결핵을 앓고 있었다.
새벽예배, 낮기 도회, 저녁기도회를 열심히 참석하시면서
기도하셨고, 교회 안과 밖에 손질할 것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셨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4개월이 지나자 몰래몰래 음주와 흡연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실망하여 오라버니에게 짜증을 내면서
"성도들이 목회자 가정을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동생인 나를 언제까지 힘들게 하겠는가```
오라버니는 며칠을 말없이 지내더니``
" 너 너무 교만하다...." 이 한말을 남기고 나가 버리셨다.
그해 11월은 매우 추웠다.
눈도 일찍 내렸고 영하의 날씨로 쌀쌀하였다.
11월 20일경 청량리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오라버니 주소가 우리 집으로 되었기에)
"조 00씨 아십니까"
"저의 오라버니인데요"
"오늘 경찰서로 오셨으면 합니다."
"무슨 일인데요?
"11월 17일 노상에서 동사하셨습니다."
전화기를 붙든 손이 풀리고 다리가 풀렸다
남편이 대신 전화를 받고 남동생과 올케에게 전화를 하고
곧바로 남편과 큰아들 셋째 아들과 함께 청량리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의 소견을 다 듣고 청량리 성모병원 영안실로 향하여
안치되어 있는 오라버니를 보았다...
노상에서 추위를 해결하느라 술에 만취하여 불을 피우고 잠들다
이불에 불이 붙었는데 청소하는 분이 신고하였다고 한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였으나 마음이 모질지 못하여
언제나 술로 마음을 달래고 살았다.
주님을 붙들고 살려고 몸부림쳤으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늘```넘어졌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붙들어 줄 것을 ````
인생은 짧은데
인내와 바람과 믿음과 견딤이 부족한 나는
늘 이맘때만 되면 후회하며 회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