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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사 → 숫가마터 → 주능선 → 잠두산 → 주능선 → 백석산 → 마랑치 → 영암사 → 던지골 → 대화 4리정류소' 7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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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산
높이: 1,364.6m
위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백석산, 잠두산은 능선상으로 두 산이 이어져 있어 함께 종주하는 맛도 일품이다. 서울에서 당일로 종주하기에는 어려운 코스이므로, 진부에서 마평리행 막차(19:30)를 타고 민박하는 편이 좋다. 청심대에서 자우실 마을로 들어가는 농가 주변에는 배나무 거목이 많으며 배꽃이 만발한 산촌의 풍경이 매우 정겹다. 잠두산 정상은 초목이 무성하고, 백석산 쪽으로 하산하는 넓은 능선에는 산죽이 장관을 이루며 콩제비꽃이 특히 많다.
백석산 정상 평지에는 깃대봉이 세워져 있고 서편은 기암절벽이며 동쪽으로는 가리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정상 남쪽 마랑치에서 서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암봉 밑에 영암사가 있다. 영암사는 100여 년 전 산삼을 캐기 위해 지은 산막이 사찰로 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암사에서 내려가는 길은 돌이 많고 경사가 급해 주의를 요한다. 던지골 마을에서 약 30분 거리에 대화리 3반 간지동 마을에 닿게 되고 가게에서 전화로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간지동 회관에서 다시 30분을 걸으면 대화 4리 버스 정류소에 닿게 되고 이곳에서 버스 또는 택시를 타고 장평으로 나가게 된다.
장평에서 승차하게 되는 서울 직행버스는 강릉에서 시발, 통과하는 관계로 만원인 경우가 많아 입석도 불가피하다. - 한국의 산하
잠두산, 백석산에 대해서는 '한국의 산하', '높이별 분류' 중 1,000m 이상의 산만 줄 세워 놓은 후 미지의 산에 대해 정보를 확인하던 중 발견한 산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 산행이 가능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사실 대중교통이 아니면 갈 방법도 없다. 안내 산악회 입장에서는 인기가 없는 산이라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좀 규모가 되는 산악회에서나 계획을 세워볼 만한 산이다.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산이라 매번 안내 산악회가 취소되면 Plan B로 제일 먼저 검토되는 산이나, 중요한 산행 계획이 나오면 그 산행으로 변경해 계속 순위에 밀리는 산이었다.
애초 이번 주 산행은 흥수와 매월 2주 차 1박 2일로 낙동강 종주하고 있는 친구들 위문 산행을 하기로 했었다. 부산에서 시작해 조금씩 북상해 낙동강의 발원지까지 가는 일정으로 낙동강 순례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처음 이 순례를 기획했을 때 미친 짓이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의지가 강한 친구들이라. 어쨌든 농반진반으로 흥수와 한여름 땡볕에 낙동강을 걷고 있는 친구들 옆을 하드를 입에 물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그리고 일단 입 밖으로 꺼내면 실행하는 게 우리의 모토라, 위치와 계절을 고려하여 그 시기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순례할 것도 아니고, 등산방답게 아침 일찍 주변의 가까운 산에 올랐다가 기온이 최고에 달하는 2~3시 사이에 순례에 지친 친구들을 지나가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8월 2주 차 일요일 순례팀이 구미로 올라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해서 당일 일찍 구미로 출발해 금오산에 올랐다가 낙동강 변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귀경하는 거로. 해서 기차도 예약했다.
그런데 나중에 순례팀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구미는 9월에나 도착할 예정이라고. 시기상으로는 8월이 순례팀과 접선하는 게 가장 좋지만, 적당한 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 계획도 9월로 연기했다. 고로 8월 금오산 산행이 9월로 연기되었다. 그럼 금오산을 대신할 산을 찾아야 했다. 해서 각 산악회에 들어가 이번 주 산행을 찾아보니 눈에 띄는 게 합천 가야산과 청화산~조항산 연계 산행이었다. 먼저 가야산 계획에 회비를 입금하고 자리 배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가야산은 신청자가 화요일까지 나를 포함 2명에 불과해 성원 미달로 취소될 확률이 높았다. 반면 청화산은 신청자가 많아 만원으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제3의 해결책이 필요했고 그때 떠오른 산이 가고 싶을 때 언제나 갈 수 있는 진부에 있는 산 중 하나인 잠두산, 백석산이다.
'한국의 산하' 소개 글에도 있지만, 과거에는 당일 산행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동계 올림픽 덕에 평창에 역이 생기고 KTX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당일 산행이 가능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서울역(청량리역)에서 강릉역까지 가는 노선이기 때문인지 휴일 이른 시각과 늦은 시각은 매진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앉아 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화요일 현재 동일한 상황이다. 해서 계속 취소되는 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평창까지 서서 가야 할 듯. 초행의 산이기 때문에 산의 상황을 알 수 없어 굳이 다른 친구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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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아침 5시 40분에 기상해 폰을 보니 흥수가 "자냐?'라고 문자를 보냈다. 뭔 말인지 몰라 "?"라고 보냈더니, 어제 늦게 카페에서 백석산 산행을 봤는데 혼자 가는 건지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해, 시간 맞춰 청량리역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기차 좌석 현황을 보기 위해 '코레일톡'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빈 좌석이 몇 개 보였다. 덕분에 매진된 기차 며칠 전부터 열심히 확인할 게 아니라, 당일 아침 한 번이면 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진 상황에서 매시간 확인해 간신히 좌석표 한 장을 구했는데, 그것도 하루 전 출근길에 혹시나 하고 확인하던 중. 어쨌든 단독 산행에서 2인 산행을 바뀌었으니 배낭도 다시 싸야 했다. 1인용 코펠과 버너를 빼고 2~3인용 코펠과 버너로 바꾸고 라면도 하나 더 챙겼다. 그리고 운봉표 안주를 안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가져가는 거로. 술이 독주라 애초 혼자 마시기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둘이 마시기에 충분할 거 같아 더 챙기지는 않았다.
바쁘게 배낭을 다시 싼 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6시 45분경 집을 나서 불광역으로 향했다. 청량리역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뉴스를 보며 가고 있는데, 청량리역 몇 정류장 전에 흥수에게서 '졸려서 기차에 타 잔다.'라고 문자가 왔다. 7시 38분 청량리역에 도착해 7시 40분 승차장으로 가 7시 50분발 강릉 행 KTX를 탔다. 배낭은 짐칸에 두고 패드와 핸드폰, 카메라만 들고 객실로 들어가니 저 멀리 흥수가 자는 게 보였다.
패드로 한 시간가량 책을 읽고 나니 평창 도착 2분 전이었다. 해서 짐칸에서 배낭을 들고 와 산행에 필요 없는 것들은 배낭에 넣는 등 산행 준비를 했다. 그리고 1분 정도 연착한 KTX에서 내렸다. 평창역에서 나와 버스 타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9시 20분 평창 대화 행 농어촌 버스를 기다렸다. 그동안 역 주변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역 하나 달랑 있었다. 하다못해 편의점 하나 없는. 심심해 역 광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평창 시티투어버스 정류장에 있던 평창 관광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년 평창 진부를 베이스캠프로 주변 산을 다녔지만, 가야 할 산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청옥산(1,256m), 중왕산(1,376m), 발왕산(1,356m), 고루포기산(1,236m), 태기산(1,261m), 금당산(1,173m), 거문산(1,173m), 대미산(1,232m) 등, 뭐 대관령이 있는 대관령면이 평창이니. 평창은 수시로 드나들어야 할 듯.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버스 운행 정보에는 어떤 차도 없어 고장 난 거라고 자위하며, 9시 20분 대화행 농어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20분이 지나자 장평 종점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1분여가 지나자 그 정보도 사라졌다. 분명히 평창군에서 제공하는 농어촌 버스 시간 자료에 9시 20분 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확인하니, 내가 시간을 잘 못 본 거다. 9시 45분 차다. 고로 청량리역에서 7시 22분 차를 타야 한다. 어쨌든 줄 서서 기다리는 택시 쪽으로 가 농어촌 버스 시간에 관해 물어보니 모른다고. 이제 방법은 Plan B로 생각했던 택시다. 해서 제일 앞에 있던 택시에 탄 후 대화4리로 가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산행 들머리인 산불감시 초소에 도착한 시각이 9시 57분이다. 참고로 대화행 버스를 탔다고 해도 산행 들머리까지 아스팔트 도로 5km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고로 고민하지 말고 평창역에서 택시를! 특히 여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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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의 시작점인 산불감시초소에서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9시 57분이다. 초소에서 임도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자 임도 삼거리가 나타났다. 임도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올라가도 되지만, 삼거리에서 앞에 보이는 계곡을 건너 지름길로 가는 게 빠르고 산행답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시멘트 포장길인 임도보다는 낫다. 지름길로 2분 정도 올라가면 다시 임도를 만나고 거기서 위로 10m 정도 가면 우측 숲속으로 철책 같은 것에 잔뜩 달린 리본을 볼 수 있다. 숲이 울창해 잘 안 보일 수도 있으니,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이 대화방면 백석산 산행의 사실상 들머리다.
고로 본격적인 산행은 10시 6분에 시작했다. 철봉에 달린 리본 중에는 반가운 리본도 있어 사진 한 장 남기고 백석산 산행을 시작했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에 의하면 막판 1.3km에서 700m를 올라가야 한다고 해 깔딱 수준에 대해서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머리를 들어서자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계곡이 나타났다. 시원한 계곡을 따라 12분가량 올라가자 앞에 돌탑이 나타났다. 산에서 뭔가 이상한 게 나타난다는 건 선배 산꾼이 후배 산꾼에게 보내는 표시가 대부분이다. 즉 길이 바뀐다는 거다.
그래도 몰라 계곡 쪽으로 길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예상대로 없었고 왼쪽으로 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길 같은 게 보였다. 오늘 산행이 백석산 정상에 올라 능선을 따라 북진해 잠두산을 거쳐 상황이 받쳐주면 백적산까지 가는 거라, 저 길에 올라서는 순간 하산 시 만나게 될 계곡이 아니면 앞으로 물 만날 일이 없다는 얘기다. 해서 백석산 탐험 기념(다시 올 일도 없을 거 같고) 계곡에서 씻고 가기로 했다.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고.
10시 19분 능선을 향하는 길에 접어들며 깔딱이 시작되었다. 11시 27분에 주왕지맥의 능선에 올라섰으니 대략 1시간 8분 정도 깔딱을 올랐다. 높이로는 대략 600여 미터.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나뭇잎이나 풀잎은 이슬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하게 젖어 있었고, 그건 흙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렇지 않아도 가팔라 미끄러운 길이 더욱더 미끄러웠다.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향할 때 앞에 보이는 백석산 정상에 구름이 걸려 있어 흥수에게 "저기, 비 오는 거 아니냐?"라고 했었는데, 정말 비가 온 거 같았다.
정상을 향하는 길은 바로 치고 올라가면 얼마 안 되는 거리로 보이는데 길은 갈지자를 그리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곳곳에 너덜과 부서져 떨어지는 암릉 지대를 지나고 있어 직접 치고 올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껴 그렇게 길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설치한 줄이 있는 암릉도 가끔 나타났다. 바지와 등산화는 풀잎과 나뭇잎이 품고 있던 빗물을 넘겨받아 흠뻑 젖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이 아니라 차갑게 느껴졌다. 입추가 지났다는 게 이런 의민가? 올 들어 가장 더웠다는 날이지만, 생각보다 땀을 많이 흘리지는 않았다.
11시 27분 깔딱을 다 올라 주왕지맥에 올라섰다. 처음 주왕지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주왕산까지 가는 게 가능하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들 주왕지맥이라고 부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 흥수에게 여기가 주왕지맥 능선이라고 말하니 흥수가 주왕산은 아니겠고, 가리왕산과 관계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런데 가리왕산과 관계있다면 가리지맥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둘은 저 멀리 가리왕산을 보며 주왕산까지 이어지는 거로 결론짓고 말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궁금해서 '주왕지맥'에 대해 찾아보니 흥수가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주왕이 우리가 아는 국립공원의 그 주왕이 아니라 가리왕산 옆의 중왕산이었다. 그 중왕산이 주왕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주왕지맥! 내가 가리왕산과 연계해 산행을 계획하고 있는 그 중왕산이다.
◆ 주왕지맥(住王枝脈) 개념
주왕지맥(住王枝脈)은 한강기맥의 계방산(1,577m) 동쪽 2.3km에 있는 1,462봉의 동쪽 210m 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백적산(1141.2m), 잠두산(1243.2m), 백석산(1364.6m), 주왕산(住王山, 1376.1m), 청옥산(1255.7m), 삿갓봉(1055.4m), 접산(835.3m), 발산(675.0m)을 지나 영월읍 하송리 남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83.1km 되는 산줄기이다.
주왕지맥의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오대천이 되어 조양강에 합수하여 동강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흐른 물은 속사천이 되어 흥정천과 주천강이 합수되어 서강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평창강으로 흐른다. 동강(한강)과 서강(평창강)은 영월읍 하송리에서 남한강으로 합수되어 충주호로 흘러간다.
주왕지맥(住王枝脈)은 이 산줄기의 제일 높은 산인 주왕산(住王山)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인데, 한때 중왕산(中旺山)이라 불러오던 것을 2003년에 이르러 中旺山 지명을 住王山으로 변경 고시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주왕지맥(住王枝脈)은 계방산에서 분기하고 높이로나 유명세로도 쉽게 알 수 있어 혹자들은 계방지맥(桂芳枝脈)으로도 부른다. <출처: 구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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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능선에 올라서도 800여 미터를 더 가 12시 1분 백석산 정상(1,365m)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을 향해 가며 우리 기준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가 몇 개 있었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앞쪽에 높은 봉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유는 정상에 도착해서 알았다. 정상이라고 봉우리가 있는 게 아니라, 헬기장이었다. 그러니 봉우리가 보일 리가. 그리고 아무리 헬기장이 정상이지만, 정상석 하나 없이 깃대에 산악회에서 매단 정상표지만 있을 뿐이었다.
12시가 지나 배도 고프고 해서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정상인 헬기장이 좋기는 하지만, 햇볕이 따가워 1분 이상 있기가 힘들었다. 인증만 찍고 바람 시원하고 그늘진 식당 자리를 찾아 능선을 따라 잠두산 쪽으로 북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능선을 올라오면서도 느낀 거지만, 능선은 등산길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무성한 풀과 나뭇가지가 길을 막고 있었고 그래서 길을 잃기도 쉬웠다. 정상석 하나 없는 백석산의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이정표가 있을 리도 없고. 그리고 앞선 산꾼의 평가에 의하면 북진하며 앞으로 보이는 조망이 절경이라고 했는데, 울창한 밀림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서 여름을 피해 겨울에 가는 듯.
이정표 하나 없는 백석산 정상에는 우리가 온 길을 포함 세 개의 길이 있는데, 주왕지맥은 북쪽 기준 왼쪽으로 가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길을 찾느라 울창한 밀림을 헤치는 고생도 했다. 물론 뚜렷하게 '이게 길이다.'라는 건 없다. 길 같아 보이면 가는 거지. 물론 주왕지맥의 능선을 따라 움직이는 거라 굳이 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주왕지맥의 시작 계방산까지 가봐야 적당한 식당 자리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해서 정상에서 35분 정도 떨어진 멧돼지가 땅을 헤쳐놓은 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거 같은, 바위라 부르기에는 작은 널찍한 돌을 식탁으로, 생긴 건 비슷하지만 작은 돌을 주워 의자를 만들어 식당을 차렸다. 라면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흥수가 얼려 가져온 막걸리(슬러시)로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막 끓인 라면에 반주로 또 한잔. 그런데 한 병이라는 게 아쉬웠다. 해서 부족한 술은 내가 가져간 블루로. 남은 라면 국물에 햇반을 넣고 다시 끓인 돼지죽을 안주로 블루를 비우고, 라면 국물도 깨끗이 비웠다. 남은 과일과 먹을 걸 다시 배낭에 넣고 주변의 우리가 만든 쓰레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주워 배낭에 싸서 다시 북진을 시작한 시각이 1시 35분경이다.
몇 년 전 봉 감독과 덕항산~두타산~청옥산 2박 3일 연계 산행하며 느꼈지만, 비록 암릉이 간혹 있어도 이 동네 능선 대부분 육산으로 걷기에는 좋았다. 이 주왕지맥 또한 육산인 데다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멧돼지가 나무뿌리를 찾기 위함인지 땅속의 벌레나 지렁이를 찾기 위함인지 아주 광범위한 지역을 파헤쳐 놓은 곳이 곳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서는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동물을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고라니라고 생각했는데, 멧돼지일 수도.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계속 갔는데 비슷한 높이의 두 산을 연결하는 능선이라 길 자체의 고저는 심하지 않아 트래킹 코스로도 좋았다. 물론 겨울에! 그렇게 가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변의 풀을 헤치자 땅에 떨어진 같은 열매가 많이 나왔다. 어느 나무에서 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혹시 같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나 눈을 들어 위를 보았지만, 나무에 달린 열매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뭔 열매인지 둘이 머리를 쥐어짜 봐야 답이 나오지 않아 속은 어떻게 생겼나 칼을 꺼내 잘라보았다. 그런데 반으로 잘리지 않았다. 안에 든 씨?가 너무 커 표피를 벗겨내는 수준이었다. 그걸 보고 흥수에게 '이거, 복숭아 종류(열매의 털 때문에) 아니면, 호두 종류 같은데!'라고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사랑방과 등산방에 올려 뭔지 물어보니 가래나무 열매, 곧 추자라고. 어쨌든 내 예측이 맞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넓은 멧돼지가 파헤친 땅에 놀라 먼저 내가 농담으로 '이거 아무래도 멧돼지가 이웃사촌 불러다 잔치를 한 거 같은데...' 이에 대해 흥수가 '겨울에 도끼 들고 개구리 잡으러 갔는데, 개구리가 없어 온 개울의 얼음을 다 깼다!'라고.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북진하다가 길에 있는 뱀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 쳤다. 성인이 된 이후 산에서 본 가장 큰 살무사였다. 크다기보다는 굵은. 손에 들고 있던 추자를 흥수에게 넘기고 카메라를 꺼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인증 하나 남기지 않고 풀숲으로 사라졌다. 거의 매주 산에서 뱀을 보지만, 위협을 느껴보기는 어렸을 때 이후 오랜만인 살무사였다. 인증을 남기지 못한 게 아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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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렌즈를 바꿔 주변의 꽃을 찍으며 길을 가니 어느 순간 잠두산 정상에 도착했다. 잠두산 정상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등산앱이 알려줘서 알았다. 정성석이 있을 리 없어, 여기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지나쳤을 텐데, 앱이 정상이라고 알려줘 주변을 살펴보니 산악회에서 만들어 나무에 매단 정상표지가 있었다. 평창에 워낙 유명한 산이 많아 비록 1,000m가 넘고 주왕지맥의 핵심 산이라고 해도 대접을 못 받고 있었다. 하긴 주왕지맥이란 게 있다는 걸 아는 등산객이 몇 명이나 될까? 나도 백석산 산행 계획을 세우며 정보를 찾다가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 나무에 달린 리본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오지 탐험 내지는 등산객이 잘 안 찾는 산에서 볼 수 있는 리본은 거의 다 있었다. 1대간 9정맥을 넘어 지맥까지 찾아 다니는 놀라운 산꾼은 모든 지맥을 꽤 뚫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고로 그들 외에는 찾지 않는 산으로 보였다.
정상에서 인증을 찍고 쉬는 동안 흥수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날카로운 돌조각을 주웠다. 그 돌을 무슨 암이라 부르던데 기억이 안 난다. 뭐라 부르든 석기 시대 칼로서 역할이 가능했는지 실험해보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주변의 쓰레기를 주워 배낭에 넣고 날머리 또는 중간 기착지인 모릿재 터널을 향해 내려갔다. 2시 48분에 잠두산 정상을 떠나 울창한 밀림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백적산을 바라보며 계속 북진했다. 1,200m가 넘는 정상에서 모릿재까지 거의 450m를 하산해야 한다. 고로 곳곳이 급경사로 여기를 거꾸로 오르는 것도 지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략 800여 미터의 급경사를 내려가면 다시 쉬운 능선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800여 미터를 더 가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거기가 모릿재 갈림길이다. 그런데 그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눈앞에 산악회가 만들어 나무에 박은 화살표 형태의 이정표가 보인다. 그 화살표 안에는 "신리3리 방향''이라고 쓰여있다. 당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화살표 방향으로 갔다. 그렇게 100여 미터를 간 후 모릿재가 얼마나 남았나 앱의 지도로 확인했다. 그런데 우리는 모릿재가 아닌 지난 7월 13일 올랐던 이끼 계곡으로 유명한 두타산[산행기]의 날머리인 수항계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항계곡에 국립두타산수목원이 있을 정도로 계곡이 좋지만, 이미 가봤던 곳이다. 그에 반해 모릿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상황만 되면 모릿재를 지나 백적산까지 바로 달릴 생각이었다. 해서 산행 중 되돌아가는 걸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대략 왕복200여 미터 알바를 했다.
다시 돌아가 그 봉우리에 도착하자 눈앞에 화살표로 만든 이정표 두 개가 눈에 딱 들어왔다. 반대편에서 올라올 때는 볼 수 없었던. 그걸 보고 느낀 허탈함은. 그 길을 따라 급경사를 20여 분 내려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무선 송신탑이 보이고 가시가 달린 풀로 우거진 풀숲이 길을 막는다. 계속 찌르는 가시에 손이 아파, 줄기를 잡아 헤치고 나갈 수도 없었다. 해선 이건 길이 아니라는 판단에 길을 찾아 다시 10여 미터 올라가 찾아봤지만 없었다. 아무리 봐도 가시 달린 풀이 우거진 거기가 길이 맞았다. 무릎 이상은 이름 모를 가시 풀이 길을 막고 있었지만, 분명 바닥은 풀 한 포기 없는 길이었다. 해서 바닥에서 주운 나무로 풀숲을 두들겨 헤치고, 또는 가지고 있던 칼로 자르고 길을 만들며 전진했다. 내가 이번 산행을 계획하며 본 산행기를 믿고 평소 정글도로 사용하던 군용칼을 가져오지 않은 걸 산행 내내 후회했다. 앞으로 오지가 붙은 산에는 무조건 군용칼!
가시에 찔리며, 군용칼을 안 가져온 걸 후회하며, 주운 나뭇가지로 길을 뚫고 나오니 옆으로 아주 상태가 좋아 보이는 길이 있었다. 아니, 이런! 저 길은 뭐야? 분명 위에는 없었는데. 어쨌든 흥수와 나를 가시로부터 보호해준 나뭇가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름 모를 꽃 옆에 꽂고 그 길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겨 기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송신탑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사람이 왔었는지 모르는 계단 풀을 헤치고 내려가니 모릿재였다. 거기에는 오랜만에 보는 세금을 들여 만든 백적산 이정표가 있었지만, 풀이 우거져 길을 가리고 있었다. 애초 목적은 가능하면 백적산까지 달리는 거였지만, 길 상태를 보니 '저길 가야 해?'라고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이 4시 11분이다. 백적산을 간다면 거리상 6~7km, 시간상 2~3시간. 거리나 시간이나 별문제는 없다.
이번 산행의 처음 목표를 달성했으니 미련을 버리고 둘이 계곡에서 땀을 씻고 다른 때보다 일찍 귀경하는 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모릿재를 내려와 터널에서 평창역 쪽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우리가 씻을 만한 계곡? 개울을 찾아 내려갔다. 옆에서는 우렁찬 물소리가 들렸지만, 접근이 쉽지 않아 계속 갔다. 그리고 발견한 KTX 평창경사터널? 뭐 이런 곳이 있었고, 그 옆 산에서 내려오는 조그마한 계곡이 우리에게 딱 맞아 보였다. 해서 제방을 넘고, 숲을 지나 그야말로 청정 특급 수 자그마한 계곡에 자리를 잡고 땀을 씻었다. 도로에서 차를 세워두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그래도 몰라 알탕이 아닌 냉욕을 즐겼다. 술이 없어 아쉬웠지만, 남은 과일인 참외, 토마토 등을 다 먹고 5시 20분경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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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씻은 후 KTX 시간을 보니 6시 50분대 아니면 7시 20분대가 좌석이 있었다. 그럼 남은 시간 평창역 근처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뒤풀이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해서 계곡? 개울을 떠나며-그래 봐야 도로까지 100m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침에 이용한 택시 기사에게 전화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다시 전화하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 통화하는 와중에 이미 도로에 도착했다. 지나는 트럭을 얻어 타자고 농담을 던지고, 다른 택시에 전화하고 있는데 모릿재를 내려오던 차가 우리 앞에 서서 태워줄까 물어봤다. 아니 우리가 태워 달라고 부탁할 생각도 없었는데, 차가 우리를 태우겠다고 서다니!
마다할 이유도 없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차에 탔다. 차주는 젊은 사업가로 가평에서 잣 공장을 운영 중으로 평창에 잣을 사러 왔다고. 잣 농사와 잣 가공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갔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대화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하고 내려, 먼저 버스 터미널로 가 서울 행 버스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평창군 대화면 버스 터미널에는 동서울터미널행 버스가 오전, 오후 각 한 편씩 하루 두 대가 있었다. 오후는 2시대 차라 우리가 이용하기에 늦었지만. 면 소재지에 불과한 지역이 일 년 전만 해도 서울을 오가는 차편이 거의 매시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이유(굳이 찾아볼 이유도 없고)로 차편이 대폭 줄어 시외버스 앱으로는 아예 검색 자체가 안 된다. 서울을 떠나기 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확인 사살 차원에서 혹시 다른 지방과 같이 앱을 통한 예매를 지원하지는 않지만, 차편이 있을 수도 있을까 해서 찾아본 거다. 이제 우리의 선택지는 7시 27분 청량리행 KTX다. 남은 시간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뒤풀이!
매시간 서울을 오가는 차편이 있을 정도니, 면 소재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식당이 많았다. 그 대부분은 막국수 또는 국밥 집이었지만. 해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혼란이 생겼다. 사실 배가 고픈 상태도 아니고, 시간을 보낼 장소가 필요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뒤풀이라면 당연히 맛집! 해서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다녀봤지만, 터미널 광장?-면 소재지에 이런 곳이 있다니-주변의 식당만 그나마 문을 열었고 손님이 있었다-서울을 오가는 차편이 거의 없어진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평창군 과거의 부심이 대화였다면. 지금은 장평이나, 진부가?
코다리비빔막국수 전문이라는 식당에 들어가 수육과 소주, 맥주를 시켜 먼저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하는 소맥 한잔했다. 수육 안주로 이슬이 두 병을 비우고, 어떤 맛인지 궁금해 코다리비빔막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싹싹 비웠다. 그걸 다 먹고 계산하고 나오며 사장에게 코다리비빔막국수와 명태 식해를 넣은 함흥냉면과 다른 게 뭔지 물어봤다. 우리 젊은 여사장은 내가 뭘 묻는지도 잘 몰라 주방에 있던, 쉐프인 모친에게 "엄마!"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쉐프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미련 없이 식당을 떠나 터미널 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평창역으로 향했다.
7시 18분 평창역에 도착해 정말 역내에 편의점조차 없는지 확인해 봤다. 그런데 있었다. 문제는 지방민이 향토 물건을 파는 게 목적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편의점이 아니었고, 당연히 문도 본인들이 필요할 때 여는 구조였다. 당연 문은 닫혀 있었는데, 문제는 그 자동문을 짐으로 막아놨다는 거. 고로 언제 문을 열지는 그들만이 아는. KTX가 생겨 빨라졌는데, 그 덕분에 시외버스는 사라지는 중이고, 더 빨라져 지역 경제가 사는 게 아니라, 당일치기로 모든 걸 해결하고 소비는 돌아가서! 지방에서 고속도로와 다리와 KTX를 원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탄 KTX는 강릉발, 평창 정차, 청량리 착인 고속철이었다. 평창 외에는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없다는 얘기다. 고로 차도 많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어디에 가 있든 자리를 비켜줘야 할 위험도 없었다. 그만큼 빠르고. 8시 32분경 청량리역에 도착해 흥수와 헤어져, 집으로 향해 10시 30분경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애초 계획과는 달리 '산불감시초소 → 임도 삼거리 → 던지골 → 마랑치 → 백석산 → 잠두산 → 986봉 → 모릿재 → 모릿재 터널 → KTX 평창 터널'의 11.09km(트랭글 기준), 7시간 11분의 오지 탐험이었다. 이동 5시간 17분, 휴식 1시간 54분. 오지 탐험이지만, 흥수나 나나 딱히 급하게 달릴 이유는 없었다.
백석산, 잠두산 연계 산행 한번은 가봐야 할 코스다.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들머리는 대화로.
평창이 얼마나 대단한 산지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산행이었다. 덕분에 수시로 평창을 드나들 듯. 계획한 산행이 불가피하게 취소되었을 때 대체 산행지로, 정글도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