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비가 구슬프게 내린다. 여름비라고 하여야 하나, 아니면 가을비라고 하여야 하나? 적어도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좀 완연해질 듯하다. 물론 벌써 8월 말이고, 곧 9월과 함께 학교도 개학이다.
오늘 오후 3시에는 둔산도서관에서 인문학 특강을 다시 시작한다.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남은 8회를 하여야 한다. 『햄릿』, 『돈키호테』, 『멋진 신세계』를 함께 읽고,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21 Lessons』 그리고 조이 이토와 제프 하우가 쓴 Whilplash: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멋지게 대응하며 잘 살아 남는 전략 9가지』를 갖고 초 연결 시대의 인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본다. 이 특강은 문체부가 발주한 <인문독서아카데미>를 둔산도서관이 주관하는 15회 강의이다. 지난 학기에 7번 하였고, 이제 남은 강의가 8회이다. 금년에는 "초 연결 사대의 인간을 말하다: 르네상스 시대 인간 대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란 큰 제목에서 이루어 진다.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에 빠져 어이없는 소동을 일삼는 충동적 몽상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인간형이다. 그러면서 우스꽝스럽긴 하나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한번쯤은 그처럼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 인물을 만들어 낸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는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고 본다.
- 자신의 분신인 돈키호테를 통해 아무리 인간 존재를 불가능하게 위협하는 외압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불합리한 규정을 강요하는 사회에 절대 굴복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그러한 체제나 규정에 저항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 돈키호테는 웃음이라는 코드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을 읽어야 한다. 우리 의식을 개조하여 소유 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존재 지향적인 삶을 추구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 또 다른 측면으로는 사회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가 정치 답고, 종교가 종교다운 모습을 가져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와인 강의를 하다가, 갑자기 인문학 강의를 하려면, 뇌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상을 지배하고, 이 글을 쓰는데,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늘 아침 공유하는 천상병 시인의 "비 오는 날"이 생각난다.
어제 낮에는 페이스북의 포스팅에서 소개하는 이근후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들었다. "나이 들어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살까지 재미있게 사는 법으로 다음의 S•M•A•R•T를 기억하라고 한다. 난 완전히 동의한다.
- Simplifying: 생각과 일상은 단순하게 한다.
- Moving: 몸은 움직인다.
- Affection: 오감각을 키운다. 늙으면 늙을 수록 감각이 떨어진다.
- Relaxation: 쉬어 가며, 오만과 탐욕을 버리고 비운다.
- Together: 함께 한다. 커뮤니티, 즉 공동체에서 함께 한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아침에, 오늘 시인이 말하는 "노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나의 <One Note>에 적어 둔 글을 찾으니 이런 것이 나온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 교훈같은 이야기지만, 천천히 읽어 보니 일상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노인이다.
- 노인은 몸과 마음이 세월이 가니 자연히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자신을 가꾸고 젊어지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방에게 이해심과 아량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다.
- 노인은 상대방을 자기 기준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좋은 덕담을 해주고, 늘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 노인은 상대에게 간섭하고, 잘난체하며, 지배하려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스스로를 절제할줄 알고, 알아도 모른체 겸손하며, 느긋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대가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고, 활발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 노인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물건들을 재활용할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 노인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댓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뜨끔하다. 얻어맞은 것 같다. 잘 늙어가길 다짐하는 아침이다.
비 오는 날/천상병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 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 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 감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