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7권 제주편 이후 일본편(전4권)으로 잠시 무대를 옮긴 지 3년 만에 돌아와 8권 '남한강편'을 선보였다. 이번 '남한강편'은 강의하듯 정색하는 설명이나 날카로운 비평이 줄어들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 난다. 유 교수는 이번 책이 남한강의 산수를 누워서 즐기는 '와유(臥遊)'가 되기를 바란다며, 소파에 편히 기대어 읽으면서도 마치 현장에 동행하는 느낌을 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신간 '남한강편'은 남한강을 따라가는 여정을 주제로 삼았다. 남한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해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의 본류로, 우리 국토의 핏줄이자 상징으로서 유유히 흐르면서 곳곳에 유서 깊은 역사의 흔적들을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산과 강과 호수가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우리나라 산천의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으로서, 자연과 역사와 인문이 어우러지는 유홍준표 답사의 현장으로 더없이 적격인 곳이다.
유 교수는 머리말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답사에 나서면 "정말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뼛속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며, '오래전부터 이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강변 풍광과 그 고을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밝힌다. 특히 이번 남한강편에는 실제 유홍준 교수가 여러 차례 남한강을 다녀온 일정을 바탕으로 여느 권보다 더욱 풍성한 답사 일정표가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읽고 답사와 여행에 나설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답사 여정의 제1부는 먼저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영월, 그중에서도 서강으로 흘러드는 주천강에서 시작된다. 남한강 상류의 호젓한 정취를 느끼기에 이곳의 강마을과 요선정, 요선암이 제격인 까닭이다. 법흥사와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소 등 들러볼 만한 곳도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영월은 단종이 억울하게 죽은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어 그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광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곳곳에 단종과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 있다. 단종이 유배된 육지 속의 섬 청령포, 단종이 자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슴 절절한 시를 지은 자규루, 그리고 단종의 억울한 죽음만큼이나 긴 사연과 뒷이야기를 지닌 단종의 장릉은 역사에 대한 긴 상념을 자아내게 한다.
이어 물길을 따라 남한강 답사의 중심이라 할 단양, 제천, 충주로 이어지는 제2부에서는 먼저 단양8경을 비롯한 남한강의 수려한 경관이 우리를 반긴다. 예로부터 제천, 청풍, 단양, 영춘을 남한강의 사군(四郡)이라 묶어 부르며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만큼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유람하며 남긴 자취가 곳곳에 가득하다.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등의 시와 글을 비롯해 사인암에 새겨진 빼어난 글씨들,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능호관 이인상, 단릉 이윤영 등이 남긴 그림들과 함께 접하는 명승은 그저 한번 가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깊은 감흥에 젖게 하며, 옛 사람들이 지닌 서정을 생생히 느껴보게 한다. 더불어 이러한 명승 곳곳에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의 아픔이 얽혀 있음은 안타까움과 무상함을 자아내게도 한다.
또 남한의 3대 정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벽루에서 생활 속 공간으로서의 우리나라 정자의 미학을 설명하는 대목은 한국미의 특질에 대한 통찰을 전해주는 답사기만의 미덕이며, 조선 중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이 피폐해진 고을을 살리기 위해 눈물로 쓴 상소문을 읽고서는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목민관의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남한강 답사의 비장의 답사처로 소개되는 영춘향교와 온달산성은 남한강이 아니고서는 접할 수 없는 자연과 건축의 어울림을 보여주는 곳으로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제천에서 만나는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의 훤칠한 모습도 특별한 인상으로 남을 만하다.
이어 박달재 고개에 이르면 그 북쪽과 남쪽으로 19세기 역사의 양극단에 선 이들의 삶을 증언하는 두 장소가 나란히 있어 역사의 기구함을 되새기게 한다.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서양의 무력개입을 요청하고자 한 '황사영 백서사건'의 현장인 배론성지, 위정척사의 기치를 내걸고 일어난 을미의병운동의 발상지인 자양영당이 그곳이다. 그런가 하면 박달재 넘어 충주에서는 단양의 신라 적성비와 더불어 삼국시대 한반도의 중심인 남한강 유역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원 고구려비와 그 지리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중앙탑, 그리고 우륵의 탄금대와 그곳에 얽힌 옛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리고 목계나루에 이르러 물길은 옛 나루터의 흥성함을 뒤로하고 무심히 서쪽으로 흘러간다.
제3부는 성격을 다소 달리해 충주에서 원주에 이르는 남한강변의 폐사지를 답사하는 여정으로 이루어진다. 원주의 거돈사터, 법천사터, 흥법사터, 충주의 청룡사터, 여주의 고달사터 등 남한강변의 폐사지는 고즈넉한 정취에 흠뻑 젖게 하는 깊은 산중의 폐사지이면서 서울에서 당일 답사로 다녀오기에 좋은 숨은 명소라 할 만한 곳이다. 특히 남한강변의 폐사지에는 국보와 보물에 값하는 탑, 승탑, 탑비가 하나둘씩 있어 우리나라의 뛰어난 석조미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각각의 승탑의 양식, 비석의 돌거북 받침과 용머리 지붕돌 등이 보여주는 다양한 디테일과 그 차이를 마음껏 비교 감상하는 즐거움은 이렇게 여러 폐사지를 한번에 둘러보는 기회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주 신륵사에 이르러 남한강 절벽 위에 자리잡은 강변 사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남한강 답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인간과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짐은 '답사기'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지만, 특히 남한강편에서는 그런 면모가 더욱 두드러진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답삿길에서는 국보나 보물 같은 눈에 보이는 미술사적 유물도 유물이지만, 강물과 산과 들 같은 자연 풍광과 그에 얽힌 사람과 역사와 내력 이야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한강은 단순한 강물이 아니라 예로부터 한양과 충청도, 경상도를 잇는 나라의 중요한 길이 되어왔으므로 그 길 위에 숱한 사연과 역사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글에서 점차 역사, 문학, 민속, 나아가 자연유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늘어났다며, 그러면서 "마치 달밤에 시골집 툇마루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나 제자들에게 얘기해주는 기분"을 갖게 된다고 밝히기도 한다. 덕분에 독자는 강의를 듣는 듯이 바싹 긴장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남한강을 따라가는 그 길에 함께하고 있는 듯한 경험을 얻게 된다. 예술과 역사에 대한 안목과 지식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전해지는 것이니, 그것이 곧 연륜에서 나오는 글쓰기일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을 보면서도 구도와 필치를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김홍도의 그림과 그를 모방한 작품을 나란히 놓아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둘의 차이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고달사터의 원종대사 승탑과 국보 제4호 승탑을 비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그저 저마다의 방법으로 남한강을 즐기면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떠나도 좋고, 다녀온 다음 책을 읽으며 되새겨도 좋으며, 당장 떠나지 못하더라도 책 속에서 남한강을 여행하는 것도 좋다. 어느 편을 택하더라도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답사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남한강의 이모저모를 만끽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