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역사의 개관으로서 손주영ㆍ김상태 편, 『중동의 새로운 이해』[도서출판 오름, 1999] 제2장 "간추린 중동의 역사"를 참고할 것.
중동문화 제6강: 이슬람 출현 과정과 이슬람의 기본 내용
1. 아랍민족의 선조는 누구인가?
아라비아 - 메마름의 의미. 아라비아 - 대상 무역을 한 나라.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라.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사 21:13)
"20. 드단은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탈 때 까는 담으로 너와 무역하였도다. 21.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방백은 네 수하에 상고가 되어 어린양과 수양과 염소들, 그것으로 너와 무역하였도다. 22. 스바와 라아마의 장사들도 너의 장사들이 됨이여 각종 상등 향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23.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들도 너의 장사들이라. 24. 이들이 아름다운 물화 곧 청색 옷과 수 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백향목 상자에 담고 노끈으로 묶어가지고 너와 통상하여 네 물품과 무역하였도다." (겔 27: 20-24)
아라비아 사람 - 예루살렘성 재건에 적대적 태도를 취함. (느 2:19, 4:7, 6:1)
* 이스마엘과 미디안 족속.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이스마엘의 후예. (창 25: 12-18)
나바티족, 마카비, 헤롯, 로마 통치때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거주했던 주민들. 수백년후 아랍지역에서 이들을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을 지칭하는 "나바티"로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아랍족은 낙타 사육자, 약탈자, 해외 무역상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됨.
* 이슬람과 유대교의 유사성이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유사성보다 더 많다. 이슬람 치하의 유대인의 법적 지위가 유럽 기독교 치하의 유대인들에 대한 처우보다 훨씬 나았다.
* 아랍민족과 유대민족간의 인척관계. 함께 셈족인가? 셈족이란 단어는 1781년 한 독일 언어학자가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연구하면서 사용함. 셈 -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중 하나. (창 5:32) 성서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틴에 거주하기 이전부터 가나안족에 의해 사용됨. (고고학적 증거) 성경상 가나안족은 함족으로 묘사되어 있음. 따라서 히브리어는 셈어가 아니라 함어라 하여야 옳다. 셈족은 인류학, 민족의 조상 문제를 떠나서 언어학상의 분류로된 인공적인 것. Goitein (1974: 20-21)은 아랍민족과 유대민족을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같은 자손이라는데 반대한다. 히브리어에서 아랍인들을 도단님 (도드는 아저씨)으로 불렀다. 쿠란 2: 125에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도와서 메카의 카바 신전을 "참종교"의 신전으로 고쳤고 아브라함을 이슬람 신앙의 조상으로 삼음. 유대민족, 아랍 민족에 의해 서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 아라비아가 유대민족과 아랍민족의 고향, 이스라엘도 아랍민족의 일원이라는 주장. James A. Montgomery"s book, Arabia and the Bible (1934)
Goitein은 이스라엘은 사사기 이후 정착 생활을 한 농업민족인 반면, 베두윈족과는 다르다. 이스라엘은 베드윈, 유목민이 아니다. 범아랍주의자들은 아브라함등 족장들의 베델, 헤브론, 브엘세바의 유목생활을 증거로 제시한다. 아브라함이 전형적인 세이크(족장)이라는 것이다. 양과 소를 사육하는 반유목민과 낙타를 사육하는 베두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리브가도 낙타를 탔음을 보여준다. 창 24:61,63, 35:15) "베두(bedou)"라는 아랍어는 "outside"라는 뜻.
* 아랍과 유대민족간의 공통점
- 이집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폐르시아와는 다르게 이스라엘과 아랍민족은 특권계층이 없다. 종에 대해서 관대하다. 엘리에제르(창 15:3, 24:3)는 아브라함의 종이었으나 동생처럼 대우했다. 아랍민족도 노예를 자식처럼 키웠다. 하나님의 종 모세 (민수기 12: 7)
- 여성의 지위: 이스라엘, 아랍 모두 여성 종교 지도자 인정, 드보라. (사사기 5장) 훌다. (느 6:14)
- 민주성, 언론의 자유. 나봇의 포도원. 요시아, 히스기야 왕이 개혁실시전 국민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초기 이슬람 칼리파 시대의 민주적인 제도를 볼수 있다.
* 다른점: 안식일 제도 (유대민족의 인류 문명에 대한 큰 기여), 금식 제도 등의 차이. 일부 다처제. 경전의 언어 사용의 경직성. 유대인은 아이디어, 이슬람은 아랍어에 집착.
2. 아라비아 반도의 상황과 이슬람의 출현
이슬람 발생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는 베두윈(Bedouin, 사막의 유목민)과 오아시스의 정착민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둘 다 부족단위로 공동생활을 영위하였다. 부족에는 부족장(Shaykh 또는 Sayyid), 점술사(Kahin), 전시 지도자(Qa"id) 및 중재자(Hakam)등의 요직이 있었으며, 이들은 부족 구성원 회의(Majlis)에서 선임되었다. 부족장은 특별한 권한을 누렸다기보다 동등한 구성원 가운데 제일인자의 역할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다른 부족과의 교섭에는 부족을 대표할 정도였다. 그는 덕망이 높고, 나이가 많은 구성원 중에서 주로 선출되었다. 민주적인 모습.
점술사는 부족의 제사와 축제 및 장례 등 의식을 관장하였으며, 전시 지도자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 천재 지변 등 위기시에는 연로한 부족장의 지휘보다는 군사적 식견과 활동력이 좋은 중년의 구성원이 더 적격이어서 선임되었다. 중재자는 부족 구성원간의 분규를 조정하여 해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으나, 중요한 문제는 부족 구성원 회의에서 토의하여 최종 결정하였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모두 관행(Sunna)을 중요시한 것이다.
베두윈은 넓은 사막을 배회하면서 초원을 찾아 방목하여 생활을 꾸려 나갔으나, 도시의 정착민은 농경 생활을 영위하거나 상업 활동을 통하여 생계를 이어 나갔다. 오아시스의 도시 가운데는 메카와 메디나(당시는 Yathrib)가 가장 두드러졌다. 메카는 예멘과 시리아, 이라크와 에티오피아를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상업 도시로서 크게 이름이 나 있었고, 또 인근 부족의 부족 신인 우상을 모시는 종교적인 순례지의 역할도 하였다. 즉, 메카는 예멘에서 실어 온 향료를 각처에 공급하였고, 또 보다 개명한 지역의 문물을 가져와 아라비아 반도에 보급하는 기능을 가진 문명의 발생지였다.
한편, 그 주민인 쿠라이쉬(Quraish) 부족은 교역 활동을 통하여 협동력, 조직력 및 자제력을 함양하였으며, 베두윈의 용맹성과 결합하여 후에 이슬람 제국의 창건에 그 원동력이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 570?∼632)는 570년경에 메카의 정주 부족인 쿠라이쉬의 하쉼가(Hashim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40세 때에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우상 숭배의 그릇됨을 설파하고, 유일신 알라(Al1ah)를 믿을 것을 동료 아랍인들에게 포교하였다. 그는 아랍 부족간의 끊임없는 분규는 혈연으로 뭉쳐진 단위 부족의 우상 숭배 사상에 있다고 보고, 그것을 타파하는 길은 혈연을 초월한 종교 사상, 즉 유일신을 믿음으로써 아랍족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10여 년에 걸친 메카에서의 포교 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지 못한 무함마드는, 결국 수백 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622년에 메디나로 이주(Hijrah)하였다. 이 해가 후에 이슬람력의 원년이 된 것이다.
* 이슬람 공동체 움마 (Umma)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는 이슬람 공동체(Umma)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최초로 생성된 이념 공동체이다. 무함마드는 이 공동체를 세움으로써 단위 부족의 요직인 부족장, 점술사, 중재자 및 전시 지도자의 기능을 자신의 한 몸에 집중시켜 이를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즉, 신의 사성(Rasul Allah)으로 계시를 받음으로써 공동체의 우두머리와 점술사, 중재자의 기능을 확대 계승하게 된 것이며, 또한 군 사령관으로서 비신자와의 전쟁 수행을 통하여 자기의 권위를 부족의 전시 지도자보다 한층 더 높이 확립하였다.
622년 무함마드는 고향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했다. 메카의 조그만 신앙 공동체의 카리스마적 리더였던 그가 아랍 주민과 유대인 주민들간 갈등이 존재하던 메디나의 통치자가 되면서 그의 일생은 큰 전환기를 맞는다. 이 기간이 그의 일생과 이슬람에 결정적인 기간이 된다. 메디나에 이주한 후 몇 년간 그는 그의 이슬람 원칙과 정치적인 기반 하에 "움마"라는 이슬람 공동체를 키워나간다.
초기 이 움마라는 공동체는 순수한 이슬람 공동체라고 할 수 없었다. 여기엔 유대교인 非이슬람 아랍 주민이 포함되었었다. 초기 유대인들, 非이슬람 아랍주민과의 정치적인 연대가 허물어지고 나서 유대인들이 숙청 당했다. 알라신을 섬기는 이슬람 신앙공동체로 변화되었으며 무함마드의 종교적, 정치적인 리더쉽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 움마 공동체의 나비(선지자)로서 입법, 행정, 군사권을 행사했으며 계속 신의 계시를 쏟아내었다.
이 공동체는 전통적인 부족장 선출방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했다. 이들을 칼리프(할리프, 신의 사성을 이어받는 계승자의 의미)라 부른다. 물론 그들은 무함마드가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칼리프에게 이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칼리프는 움마의 최고 행정책임자다. 그는 관리들에 대한 임면권이 있었다. 그는 군사전략을 결정했고 이슬람군의 최고 사령관이었다. 정권의 최고 재판관, 재정책임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들은 바로 다른 상급관리들에게 위임되었다. 원칙적으로 칼리프의 이름으로 중요정책이 결정되어야 하나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무함마드와 이들 칼리프와 다른 점은 종교적인 규범의 입법이 무함마드에 의해 종료되었다는 점이다. 계시는 그에 의해서 끝났고 쿠란의 정경화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옛날 부족시대의 관습, 지역적인 전통과 관례에 의해 보완되었다. 칼리프는 종교적,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수장에 불과했다.
움마 공동체에는 이슬람이 추구하는 보편성과 아랍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양자간의 긴장이 존재했다.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편 아랍민족의 선택을 조화하는 어려움이다. 무함마드 역시 부족들간의 갈등문제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의 움마 공동체를 강조하고 인류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이슬람 정신을 앞세웠지만 부족들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죽음으로 움마공동체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분열위기를 초대 칼리브 아부 바크르는 엄격한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갔고 2대 칼리프 오마르에 의해서 전쟁 노획물을 기반으로한 실적에 의한 권력과 경제적인 보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복장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주고 이스람군 요새의 조직을 과거 부족간의 보수, 경제체계가 기초가 되었다.
3. 이슬람의 가르침: 六信과 五行 (Arkanul Islam Khamsa)
그가 세운 종교는 유일신 알라에 절대 순종한다는 뜻으로, 이슬람("Islam")이라 명명되었다. 이 속에서 무함마드는 고대 셈 족의 종교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 쿠란(Quran, 영어의 Koran)은 구약 성서의 예언자 가운데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요셉, 요나, 엘리사 등을 예언자로 받아들였으나, 아모스(Amos)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아브라함은 무함마드의 이상적인 선구자로 보았다. 아브라함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있는 대성원 카바(Kaaba)의 창건자로 쿠란 14장에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또 창세기, 노아의 홍수, 소돔(Sodom)의 파괴 등 히브리족의 이야기도 쿠란에 간단히 번안 소개되고 있다. 신약 성서의 예언자와 사도 가운데서는 스가리아,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 마리아 및 예수 등이 등장하고 있으나, 바울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또 예수는 무함아드의 선구자로 묘사되고 있으나 십자가에서의 못박힌 것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단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그를 잉태한 것은 절대신이 만든 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쿠란 21장 91절).
이슬람의 교의 가운데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교,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더욱 간결하게 표현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 (La ilaha illa-l-Lah)라고 한 것으로, 이 구절은 신자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즉, 애기가 태어날 때 부모의 첫 마디가 바로 이 구절이며, 삶을 이어 가는 동안이나 무덤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이 구절이다. 이 교의는 쿠란 112장에 다음과 같이 부연되어 있다.
"하나님 은 유일 자이시고 영생자임을 증언하라.
그는 낳아지지도 낳지도 않으시며, 또 그에 버금가는 것은 없느니라."
이 첫째 교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둘째 번 교의이다. 즉,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성이다(Muhamadun rasul Allah). 이 두 구절은 이슬람의 핵심 신조로서 샤하다(Shahada, 증언)라고 불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함마드는 오직 신의 전언을 전달하도록 신탁 받은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슬림은 스스로 일신론자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처럼 교조의 이름에 따라 무함마드 교도라고 불리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고, 이의 추종자는 무슬림(Muslim, 신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 라는 사실이 다. 즉, 하나님을 믿지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물론, 민간 신앙에서는 신의 사성에게 신적인 색깔을 칠하고 있으나, 신학 상으로 그는 어디까지 나 인간인 것이다.
셋째 번은 쿠란(Quran, 독경)은 신의 최종적이고, 가장 완벽한 말씀을 수록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무함마드에게 전해진 모든 계시, 즉 태초의 말씀이 빠짐없이 이 성전 속에 복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이며, 쿠란은 최종의 계시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다른 신의 사성보다 그를 더욱 높이는 것이다. 넷째 번은 천사에 대한 믿음이다. 천사는 계시를 전해 주는 가브리엘 대천사를 수장으로 위계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섯째와 여섯째가 각각 내세와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定命에 대한 믿음이다. 물론, 이 정명에 대해서는 각 종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세계 무슬림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순니 파(Sunni,정통파)를 비롯하여 여러 종파가 이를 따르고 있다. 이것을 흔히 六信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집을 뒷 받쳐 주는 기둥이 필요하다. 이슬람은 믿음의 실행을 중요시하여 육신에 추가하여 "신앙의 다섯 기둥"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흔히 五行이라 한다. 이 오행은 신앙의 고백, 예배, 단식, 종교세, 순례이다. 신앙의 고백은 신의 유일성과 무함마드가 使聖(하나님의 심부름꾼)임을, 즉 샤하다를 公言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것을 공언하면 이론상으로는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시간을 알릴 때에도 이슬람 聖院에서는 이 샤하다를 크게 낭송하는 것이다. 예배는 단독으로 올릴 수도 있으나, 성원에서 올리는 것을 장려하고 있으며, 금요일에는 성원에서 집단 예배를 본다.
금식은 음력인 이슬람력 9월(Ramadhan) 한 달 동안, 매일 해가 떠서부터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피우지도 못하는 일체의 금욕 생활을 의미한다. 물론, 기독교의 성경에는 40일간 모세와 예수가 금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셈 족의 신앙에는 금식이 일찍부터 신앙 생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한 것 같다.
종교세(Zakat)는 쿠란에서는 기도와 함께 독실성의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ek. 고대 셈 족에게는 십일조(tithe)가 있었으며, 남부 아라비아족도 그들의 신에게 십일조를 바친 후에 향료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슬림 국가에서는 이것이 개인 자산, 생산물, 상품 등에 부과하는 정규 세금으로 발전하였다. 즉, 소득의 2.5 %에 해당하는 이 종교세는 정부관리들이 징수하여 전쟁 포로 석방, 가난한 사람의 구제, 공공 사업의 추진 등에 사용할 수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무슬림 지역에서 이 종교세는 강제성을 띠지 않고 자발적으로 양심에 따라 성원에 받치게 되어 있다.
순례(Hajj)는 이슬람 발생 이전의 아랍 관습 중에서 가장 많이 수용된 것으로, 이 때문에 일신론적 측면에서 자매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로부터 크게 달라지게 된 것이다. 즉, 카바(Kaaba,예배의 방향을 정하는 직사각형의 검은 돌을 모신 무슬림의 신전)를 일곱 번 돈다든가, 검은 돌에의 입마춤, 잠잠(Zamgam)이란 샘물을 마시고 악마(Satan)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 및 양이나 염소 등의 제물을 바치는 것 등은 그대로 답습되어 이슬람화하였다.
쿠란에는 신체 건장한 남녀 성인 신자 모두에게 적어도 일생에 한번 순례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오 있는데, 이 순례는 매년 이슬람력 12월 10일을 전후하여 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기간에도 메카를 방문하여 순레를 할 수 있으나, 이 지정된 날짜의 순례보다 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순례는 무슬림 사회의 연대 의식을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고, 무슬림 간의 형제애를 고취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거의 그 예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메카의 흙 냄새를 같이 마시며,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무슬림들, 즉 아랍인, 폐르시아인, 터키 인, 파키스탄인, 인도네시아인, 또 흑인, 백인, 황인, 그리고 남녀 노소,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함께 기도하며, 같은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이들 무슬림들은 아랍어에서 유래한 무슬림의 인사말과 규격화된 예배 의식에 공동 참여하여 새로운 종파 교의와 학파 사상을 교류함으로써 신속한 전달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18세기 중엽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생하여 무슬림 세계를 풍미한 와하비(Wahhabi, 초창기의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개혁 운동) 운동이다.
무함마드의 창의성은 혈연 관계에 바탕을 둔 부족 사회를 종교 교의에 사회 조직의 바탕을 두게 하여, 혈연적 형제애를 종교적 형제애로 대체한 데 있는 것이다. 종교적 형제애와 신 앞에서 신자의 평등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상으로는 성직자 계층이나 중앙 집권적 권위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슬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적, 세속적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단 예배시의 인도자는 전시에는 사령관이 될 수 있다. 즉,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합일되는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 자신이 포교의 목적으로 지상에 와서 그의 당대에 국가 원수의 지위에 올랐다. 그가 세운 공동체(Umma)는 바로 지상에서 천국을 건설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개인을 위한 종교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종교인 것이다.
이 공동체의 지도자는 자신의 사후에 영생을 누리는 것도 목적이지만, 모든 구성원을 영생으로 이끌 의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국가 공동체는 지상에서의 천국을 건설함과 동시에, 각 구성원의 사후에도 천국을 보장하는 선교 기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또, 이 국가 공동체의 임무는 비무슬림의 개종을 도모하고, 그들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즉, 모든 무슬림은 聖戰(Jihad)에 참여할 의무가 있으며, 이 때에 희생당하면 곧 천당에 거의 자동적으로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되고, 그 곳에서 특권적 지위를 가진다고 믿는 것이다.
꾸란은 六信의 믿음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신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로서 증인 앞에서 선서를 하는 것이 첫 번째 실천항목이다. 증인은 하나님을 믿는 무슬림이면 되나 선서를 받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신 자신이다. 인간은 타인을 구원할 힘이나 비적을 부여할 권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증인이 없을 때는 신 앞에서 선서하면 된다. 최후의 증인은 인간이 아니고 신이기 때문이다. 신은 안 계신 곳이 없다고 하였으며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곧 신을 발견한 것이어서 신을 보고 있는 상태이며 신의 존재를 느낌으로만 인식하여 신을 보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이 곧 그를 보고 있다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고백) 이러한 선서의 행위를 샤하다(Shahada)라고 하며 선서의 방법은 신의 언어인 꾸란의 언어로, "라 일라하 일랄라" (La iiah ilia Allah)라고 선서하라고 꾸란은 가르치고 있다. 이 표현은 알라 하나님 외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선서를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 묘사하고 있는 신학자가 있는가 하면, "무함마드 라수룰라"(Muhammad Rasullah)까지 선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다. 무함마드는 순수한 인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할 뿐이며 이와 더불어 모세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도 한 인간으로서 알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아부 바크르 제1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인성(A"1돈을 강조하여 그는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필사의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대중연설을 통하여 강조하였다.
(예배의 방향) 여타 종교의 경전들이 예배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반면에 꾸란은 예배의 방향을 규정해 놓고 있다. 예배를 수행하는 사람의 얼굴이 카으바(Kaaba) 신전을 향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예배의 방향을 끼블라(Qibla)라 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온 후 16개월 동안 예루살렘(Bait al. Quds)을 향해서 예배함으로서 예루살렘은 이슬람인들을 위한 최초의 끼블라가 되었다. 그후 예배의 방향을 변경하라는 신의 녜시(Qv. 2 : 144)에 따라 기도의 방향이 예루살렘에서 메카에 있는 카으바 신전으로 변경되면서 전세계 12억 무슬림들의 통일된 끼블라가 되었다. 꾸란에서는 카으바 신전이 아브라함과 그의 장남 이스마엘에 의해 증축된 것이라고 되어 있다. 무함마드 전통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땅에 내려와 신을 경배하기 위해 주춧돌을 놓픈 그 곳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이 증축한 것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도살되는 짐승의 얼굴도 메카를 향한다. 신의 이름으로(Bismillah)로 도살되어야 한다는 것은 꾸란의 계율이지만 고개가 메카 쪽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함마드의 전통이다.
메카는 살아있는 신앙인의 예배방향이기도 하지만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고인(찮A)의 방향이기도 하다. 무함마드의 전통에 따라 고인의 얼굴도 메카를 지향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메카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방향이요 죽은 이들의 영혼이 지향하는 방향이며 죽어가는 짐승의 고개가 향하는 방향이 되면서 전세계 12억 무슬림의 정신적 영적 구심점이 되어 있다.
(하루에 다섯번) 예배는 정하여진 시간에 하루 다섯 차례로 꾸란은 규정하고 있다. 검은 실과 하얀 실이 구별될까 말까하는 새벽시간에 예배를 하라 하였다. 이 새벽 예배를 파즈르(Fajr)라 하였고, 물체의 그림자가 물체의 밑으로 오는 정오에 보는 예배를 주흐르(Zuhr), 그림자의 길이가 실체의 길이 두배가 되는 시각에 행하는 예배를 아스르(Asr), 태양이 서산이나 지평선으로 졌을 때 근행하는 예배를 마그립(Magrib), 그리고 저녁 황혼이 완전히 지고 어둠이 시작되는 시각에 보는 예배를 이샤(Isha)라 하였다.
한편 내적 신앙생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슬람 신비주의에서는 마음의 순화, 정신집중, 예배의 효과 등 정신신앙에 초점을 둔 내적 신앙의 실천이 강조되면서 외적 신앙의 실천이 내적 신앙을 지배할 때 그 모양새는 교양을 갖추지 못한 미남이라 하였고 후자가 전자를 지배할 때 그 모양새는 남루한 옷을 입은 교양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교양을 갖추면서 외모를 갖출 때 교양있는 미남이 되듯이, 내적 신앙이 확립된 상태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외적 신앙이 되어야 교양과 외모를 갖춘 참다운 신앙인이 된다고 하였다.
(교회와 성직자) 꾸란은 알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언자는 단지 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할 뿐이라고 꾸란은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것은 제일차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내린 언어이지 예언자의 인격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언자에게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여러가지 권능이 있다 해도 그는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타인을 구원할 힘이나 비적을 부여할 권능을 갖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신앙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또한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알라 하나님 뿐이며 인간 모두는 똑같은 신의 피조물로 보았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후세의 기독교처럼 비적을 줄 수 있는 권능을 지닌 교회제도나 성직자제도가 없기 마련이다.
신을 경배하는 장소를 마스지드(Masjid)라 한다. 몸과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 신을 경배하는 곳이면 지구촌 어느 장소가 되었건 그곳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터, 인적이 없는 산과 계곡,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갑판,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의 공간, 농촌의 들녘, 가정, 식당, 다방 등 지구 전체가 신을 경배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 아미르 알리는 이슬람의 정신』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한 영국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지구가 가장 큰 신의 경배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의 영광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간의 손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서만 예배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지구와 우주 속 어느 장소에서든지 예배의식이 실천될 수 있다는 그것이다."
지구는 가장 큰 경배지로 묘사되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근행되는 모든 예배의 효용가치는 동일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함마드의 언행록에서는 세 곳을 예외로 하고 있다. 카으바 신전이 있는 하람성원(Mafjid at.Haram)과 무함마드의 묘가 안장되어 있는 예언자 성원(MaEjid at.Nabawi) 그리고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예루살렘에 있는 악사 성원(Maajid al Aqsa)에서 예배를 근행할 경우 예배의 효용가치가 다른 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첫째 성원에서는 10만 배, 둘째 성원에서는 1천 배, 셋째 성원에서는 5백 배에 달하는 예배의 효용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신에게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에게 비적을 줄 수 있는 권능이 없다고 꾸란은 제시하고 있다.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영적 권능이나 특별한 신성이 일부 인간에 의해 독점되어서도 안되지만 인간의 구원은 중재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업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성직자의 중재가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예배를 집전하는 무슬림을 이맘(Imam)이라 한다. 이 말은 "앞에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구교의 신부나 신교의 목사는 어떤 특별한 권능이나 비적을 갖고 있지만 이맘은 예배를 집전하는 것과 설교하는 임무뿐이다. 신부나 목사는 누구나 될 수 없지만 이맘은 무슬림이면 아무나 될 수 있다. 혼자서 예배를 수행할 경우는 곧 자기 자신이 이맘이 되며, 가족이 한곳에 모여 예배를 한다면 가장인 아버지가, 대중집회의 예배라면 꾸란의 지식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 이맘이 된다. 여성도 그와 마찬가지다. 이맘은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 사회의 토든 직분을 가질 수는 있으나 신과의 중재역이나 타인에게 비적을 줄 수 있는 어떤 권능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신을 자신의 유일한 숭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절차에서 의식을 집전하는 특별한 사람도 필요가 없다. 세례라든가 성찬이라는 의식조차도 없으며 승려나 신부같은 종교적 직급은 더더욱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교인은 소속된 사원이 없다. 교인을 관리하는 사원도 없다. 종교는 신자와 성직자 또는 신자와 교회관계로 보지 않고 신과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 Zakat)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이 일정기간 동안 인간에게 위탁해 놓은 신의 위탁재산이라고 꾸란은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모든 재물이 인간이 아니라 신의 재물이기 때문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도 언행록에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곧 인생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영원토록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초로지 한 가지 뿐이라고 하였다. 짐승이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명예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무함마드는 사람이 죽으면 세 가지가 남게 되는데 그중 두 가지는 신에게 귀속되고 인간이 영원토록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자식과 재물 그리고 그의 업적이 남게되는데 그 가운데 자식과 재물은 다시 귀환하고 그가 영원히 가지고 가는 것은 그가 살아 생전에 이루어 놓은 업적 뿐이며 재물은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고 하였다. 비록 노력에 의하여 얻은 재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인간의 것으로 보지 않고 신의 것으로 간주한다. 인간은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결국 신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신은 이 재물을 우선적으로 인간, 즉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과 가문의 친인척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재물의 일정량은 반드시 신을 위해 사용해야 된다고 하였다.
재물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으로 꾸란은 재물의 양이나 시기에 관계없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내는 싸다까(Sadaqa)와 제도적으로 연말정안에 따라 일정량을 내는 자카트(Zakat)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에 내는 헌금이나 절에 바치는 시주를 포함해서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는 자선금, 사회복지 및 공공사업을 위해 내는 기금, 긴급 재해복구 및 구호를 목적으로 내는 구호금 등을 포함하고 있어 필자는 자카트란 용어를 "신이 정한 이슬람 세"라고 하였다. 자카트가 의무조항으로 제정된 시기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읍을 옮긴 후 2년째가 되던 해 이슬람 역 9월 라마단 달이라고 되어 있다.
자카트란 말은 어원적으로 재물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정당하고 합법적인 재산으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신이 정한 일정량을 수혜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재산은 깨끗하지 못하여 정당한 재산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자카트를 내지 않은 재산은 부당한 불법재산으로 간주된다. 세금을 포탈하면 인간이 제정한 국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그가 취득한 재산은 불법으로 간주되어 법의 구속을 받는 것처럼, 자카트는 신이 정한 세금이므로 자카트 미납자는 신법을 위반한 것이 되어 신법의 구속을 받아 결국 지옥이라고 하는 형무소에서 벌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자카트를 지불함으로서 비로소 깨끗하고 합법적인 자기 재산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자카트는 남을 위해 베푸는 자선행위라기보다는 당연히 내야 할 개인의 의무이며 한편으로는 자기의 재산을 정당화하는 한 수단이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물을 자카트로 냈을 경우 신이 수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얻은 이자소득, 훔친 재물, 술을 팔아 얻은 재산, 도박이나 승마 등 꾸란이 금지하고 있는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신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자카트는 연말 정산에서 개인비용, 가족 부양비와 용돈, 필요 경비를 공제하고 부채가 있을 경우 부채를 상환한 후 남은 순수 이익금 잔액이 15불 이상에 상응하는 재산을 소유한 무슬림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최소한 그 금액의 2.5%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식, Saum or Siyam) 구약을 믿었던 유태인들이 금식을 하고 신약을 믿었던 기독교인들이 단식을 했던 것처럼 신ㆍ구약과 꾸란을 믿는 무슬림도 단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꾸란의 계율이다. 단식하는 기간은 이슬람 력 9월 라마단(Ramadan) 달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식의 계율이 계시된 시기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읍을 옳긴 후 18개월 째 되던 이슬람 력 8월 샤으반 달 10일이다. 이 라마단 달은 위대하고 거룩하며 성스러운 달꼬 알려져 있다. 성스러운 꾸란이 최초로 계시된 달이요, 단식을 하며 신을 경배하는 신앙의 달이며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늘의 천사가 땅으로 내려온다는 거룩한 달이며, 예언자의 군대가 바드르(Badr) 전투에서 적군에게 첫 승리를 거둔 위대한 달이며,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선의 달로 묘사되고 있다. 이슬람 력은 태음력이므로 태양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단식을 하는 라마단 달은 1년 중 어느 계절이나 될 수 있다. 따라서 태양이 내려쬐는 삼복더위의 여름철에 라마단의 단식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눈보라가 몰아 치고 살얼음이 어는 혹한의 겨울철에 라마단의 단식을 하게 되는 때도 있다.
단식하는 기간은 라마단 달 30일 동안의 낮 시간이 모두 해당된다. 동트기 직전에 무슬림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나 모스크의 뽀족탑 미나라(Minarah)에서 흘러나오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의 구슬픈 목소리 아잔(Azan)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죽이나 스프 같은 것으로 가벼운 새벽식사를 하는데 이때 먹는 죽을 사후르(Sahur)라 안다. 그런 후 횐 실과 검은 실이 분간될 정도의 새벽 시간부터 해가 서산 혹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음식이나 음료수, 식수 등 일체를 금하고 성생활이나 흡연도 낮 동안에는 피해야 한다. 단식기간 중에도 손을 쉬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예언자의 가르침이다.
라마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슬림에게는 괴로운 달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 받는 기간으로 되어 있다. 예배가 신과 교화하는 매개체라고 한다면 단식은 천사의 속성으로 근접하는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가장 맑고 순수해지는 순간은 배가 부를 때가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한다. 천사의 속성 중에 하나가 바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은 존재로서 선천적인 죄는 물론 후천적인 죄에서 완전 해방된 가장 맑고 순수한 불가시계의 실체라고 되어 있다. 단식을 통해서만이 맑은 정신과 순수성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에서 단식을 통해서 천사의 속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고 또 굶주린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과 다비를 베풀어 줄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해가 서산이나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질 때가 되면 그날의 넷째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각 모스크의 뽀족탑에서 흘러나온다. 이 소리를 들은 무슬림은 소리없는 기쁨의 환호성을 올리며 미리 준비하여 둔 종려나무 열매(Tamr)와 음료수 등으로 먼저 허기를 때운다. 그리고 저녁예배(Magrib)을 보고 군침을 흘리게 하는 라마단의 특별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식탁으로 모든 식구들이 모여든다. 이와 같이 그날의 단식을 마치고 먹는 음식을 이프타르(Iftar)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단식을 깨뜨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날의 아침 식사를 한다는 의미도 노함하고 있어 저녁에 먹는 아침식사란 뜻도 된다. 라마단 달이 아닌 평일 같으면 그날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정으로 귀가하여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라마단 달의 저녁에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날의 일과가 계속되는가 하면 그날의 일과를 시작하는 영업도 많다. 단식을 하는 낮 동안에는 꼭꼭 닫혀져 있던 거리의 모든 식당들이 전등불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영업을 개시한다. 시장이나 크고 작은 가게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회사 사무실에서는 상담이 오가며, 이슬람 성원 모스크에서는 거룩한 라마단 달이 갖는 의미에 대해 학자들의 강의가 있으며 이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토론이 벌어진바. 신의 부름을 받고 나의 소리를 신에게 전하기 위해서 꾸란을 읽고 암송한다. 그날의 다섯째이며 마지막 횟수인 이샤(Isha) 예배가 끝나고 나면 라마단 달에만 실시하는 특별예배가 있다. 이것을 가리켜 따라위(Tarawih)라고 하는데 이 예배를 통하여 한달 동안 꾸란 전체를 암기하고 암송해 간다. 모스크 밖에서도 갖가지 행사가 베풀어진다. 나라에 따라 라마단 달의 행사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마술사는 요술을 부리고 곡예사는 거기에 뒤질세라 공중곡예를 보이며 시인이나 만담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능통한 화술로 라마단 달의 밤을 장식한다.
이러한 진풍경은 라마단 한 달 동안 매일 계속되다가 30일 밤을 끝으로 낮 동안의 단식과 밤거리의 진풍경이 막을 내린다. 그리고 바로 다음달(Shawal) 첫날 대명절을 맞이한다. 잘 익은 오곡으로 추석명절을 맞이하는 우리에 비해 무슬림은 한 달 동안의 단식을 통하여 얻은 정신적 기쁨으로 명절을 맞이하는 것이 차이점이라 하겠다. 이 명절을 가리켜서 이둘 피트르(Eid at.Fitr)라 하는데 단식를 깨뜨리는 축제의 날이란 의미다. 이 명절은 3일 이상 계속되는데 이 기간에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친지를 방문하는 등 이웃과 친구들과 서로 끌어안고, 이두 무바라크(Eid Mubarak)라고 인사를 하면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해 준다. 본 명절을 맞이하여 많은 축복을 받으라는 뜻이다.
(성지순례) 무슬림에게 메카를 향해 여행을 떠날 때와 돌아올 때만큼 감동에 찬 순간은 없을 것이다. 순례에 참가하지 못한 무슬림에게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다. 서구사회의 사람들이 노후를 대비하거나 해외관광을 위해 저금을 한다면 이들은 아담과 이브(하와)를 만나고 아브라함의 전통을 답습하면서 신과의 교화를 위해 돈을 절약하고 저씀을 한다. 속옷까지 벗어버리고 바느질이 되지 않은 두 장의 길고 횐 천을, 한 장은 허리에 둘러 아래를 가리고, 한 장은 어깨에 감고 메카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메카 외곽에서 순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신이여 ! 당신의 부름에 따라 제가 이곳에 왔나이다" (Labbaikallahumma Labbaika)라는 순례낭송을 하면서 메카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카으바 신전주변을 걷고 뛰면서 일곱 바퀴를 돌고 난 후 사파(Safa)와 마르와(Marwa) 두 동산 사이를 걸으면서 뛰면서 일곱 번 보행한다. 그리고 나서 신전에서 14km 떨어진 에덴동산(Arafat)으로 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체류한다. 성지순례는 경제적 능력과 신체적으로 건강한 무슬림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실천해야할 의무 사항으로 꾸란 3장 97절은 언급하고 있다. 성지순례복을 "이흐람(Ihram)"이라 하고 신전 주위를 도는 의식은 "따와프(Tawaf)"라 하며 두 동산 사이의 보행을 "싸이(Sai)", 에덴동산에 체류하는 것을 "우크프 (Wuquf)"라 하는데 이 네 가지 과정을 하나도 빠뜨림이 없이 수행하는 것을 "하지(Haji)", 즉 성지순례라 한다.
(순례의 기원) 순례의 기원은 아브라함의 전통에서 비롯되고 있다. 아담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다스리고 관리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준 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신전을 세웠던 그 자리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재건축을 한 것이 현재 (가장 큰 명절) 이러한 아브라함의 전통에 따라 성지순례달(Dhul Haii) 10일 순례객은 메카에서, 그리고 12억 무슬림은 가정에서 양이나 아른 짐숭을 신의 이름으로 도살한다. 이 날을 이둘 아드하(Eidul at.Adha)라 하는데 허용된 짐숭을 도살하여 신의 제단에 바치는 축제의 날이라는 뜻이다. 고기는 3등분하여 3분의 1은 가족이 이스마엘의 번제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요리하여 먹고, 3분의 1은 이웃과 친지에게, 그리고 3분의 1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분배하여 주곤 한다. 이날은 서구사회의 새해 기분이다. 새옷이나 깨끗한 옷을 입는 모습이나 친지를 방문하고 선물을 교환하며 새해의 복을 기원해주는 모습은 우리의 설날과 다를 것이 없다. "당신에게 매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라는 의미로, "꿀루 암 와 안툼 비카이르(Kulu Am wa Antum hi Khair)"라고 새해인사를 교환한다. 기독교인들이 12월 25일을 가장 큰 축배일로 경축한다면 무슬림은 이슬람 력 12월 10일을 일 년 중 가장 큰 축제 및 명절로 경축한다. 예수 탄생일을 경축한다는 크리스마스가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떠들썩하게 경축한다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신의 제단에 바쳐진 것을 기념하는 이둘 아드하는 아브라함의 모범적 신앙과 부모에 대한 자식의 순종에 관하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검소하고 조용하게 경축한다.
카인이 신에게 바친 곡물보다는 아벨이 바친 양고기가 번제물로 수락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식 대신에 양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신에게 양고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