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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예천부동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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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천권개발소식 스크랩 천년고찰 예천 용문사의 여름 풍경...
예천박사 추천 0 조회 307 13.07.22 21:14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저는 이번 예천 여행을 하면서

전에도 다녀간 적 있었지만 다 돌아보지 못한 곳을 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독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용문사란 절이 세 군데가 있답니다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양평 용문사와 예천 용문사 그리고 남해 용문사가 있는데

양평 용문사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고

예천 용문사는 용의 허리이고

남해 용문사는 용의 꼬리에 속한다고 전해지더군요

저도 이곳 예천 용문사를 오기 전에는 양평 용문사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깊은 예천 용문사를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용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역사가 깊은 예천 용문사를 돌아보고 담아본 풍경입니다.

 

 

 

 

 

예천 용문사

 

용문사는 870년 (신라 경문왕 10년) 두운 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684호)를 비롯 성보문화재 10여점이 현존하며,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탱화(보물 89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문사 홈페이지-

 

 

 

 

소백산에 자리하고 있는 용문사는

많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마당이 반기는데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곳 용문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의 규모가 크고 보물과 문화재가 많이 보관되고 있는 절이더군요

날씨는 더웠지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 절에는 세 가지 이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두운의 창건 때 용이 영접한 일이고,

 둘째는 은병을 캐어 절을 공사비에 충당한 일이며,

셋째는 절의 남쪽에 9층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할 때

 4층탑 위로 오색구름이 탑 둘레를 돈 일이라고 하더군요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정벌 중에 이 절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훗날 천하를 평정하면 이곳에 큰 절을 일으키겠다는 맹세를 하였답니다

그뒤 936년(태조 19)에 칙명으로 이 절을 중건하였고,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하였고,

이후 이 절에는 두운의 법맥이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영련은 이곳에서 30년 동안 수도하다가

 조응에게 법을 전하였고 조응은 제자 자엄과 함께 여러 법당과 승방 등을 건립했답니다.

 

 

 

 

 

 

용문사 근처에는 지금도 소헌왕비의 태실이 있는데요

저는 미처 그곳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1478년(성종 9) 소헌왕비의 태실을 봉안하고

1480년 정희왕후가 중수하여 성불산 용문사라 하였으나,

 1783년(정조 7) 문효 세자의 태실을 봉안하고는 다시 소백산 용문사로 고쳤답니다

1835년(헌종 1) 불이 나서 폐허화된 것을 열파·상민·부열 등의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1840년대에 공사를 마친 절이랍니다.

 

 

 

이곳 용문사는 '공주의 남자'라는 사극 드라마에도 나온 곳으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새로 지은 건물보다

오래된 건물이 더 눈길이 가고

멋스러웠습니다.

 

 

 

 

 

 

 

 

 

용문사 자운루(경북 문화재자료 제169호)

이 건물은 대장전과 대향하고 있는 박공지붕의 이층 누각 집으로

임란 때 승병들의 회담장이었으며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만든 호국의 장소였답니다.

 

 

 

 

 

 

 

 

용문사의 문화재로는

윤장대(보물 684), 용문사 교지(보물 729),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

대장전(보물 145), 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169)가 있으며,

그밖에 현존하는 당우로 진영각, 명부전, 응진전, 회전문,

범종루, 강원, 천불전, 일주문, 요사채, 두운암과 1984년 화재로 모두 불탔다가

 복원된 보광명전, 응향각, 단하각, 해운루 등이 있답니다.

 

 

 

 

 

 

 

 

 

예천 용문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로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아래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보존이 잘 되어있고 8각형 모양의 특이한 구조수법이 돋보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로,

경전의 보관처인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귀한 불교 공예품이다.

대장전을 창건할 당시 함께 제작된 것인지 조선 현종 11년(1670) 대장전을 새단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화재청-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여유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맑은 물 한 바가지 마시고....

 

 

 

용문사에는 성보 박물관이 있습니다

용문사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절을 돌아보고 숲길을 따라 걸어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가을 풍경이 참 예쁘다고 하더군요

여름 풍경도 무척 아름다웠어요..

 

 

 

 

 

 

 

용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있더군요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마라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씀은

난관 속에서 희망을 보고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

많은 생각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예천 용문사를 거닐어보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많이 깨우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상큼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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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02 17:27

    첫댓글 좋은것 감상 잘 했습니다..

  • 13.08.06 14:43

    감동적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 13.08.06 16:50

    한번 다녀 와야겠어요^^

  • 13.08.12 20:44

    궁금했던 용문사, 잘 감상했습니다.

  • 13.08.26 18:03

    지난 봄에 다녀온 용문사를 예천박사님 덕분에 다시한번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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