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권리 / 이관순
몇 주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하리수를 보게 되었다. 트랜스젠더에 별 관심이 없어서 다른 채널로 돌리려다 눈가에 눈물 자욱이 선명한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해 시청하게 되었다. 그녀도 여성으로서 나이를 먹는 것인가. 얼굴선이 예전과 다르게 두툼한 것이 살쪄 보였으며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하리수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성전환 수술로 대단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연예인이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에 더 가까운 자신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여성성에 가까운 생활을 지향하다보니 아버지에게 걱정과 근심을 끼치는 아들이었다고 하였다. 그녀 아버지는 멀쩡한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고 딸처럼 구는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을 문제 삼으며 욕설까지 해대는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워 점차 사이가 멀어졌다고 고백했다.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 일을 사회에서 얼마나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리수의 성전환 수술이 뉴스에 보도되고 월간지에 도배되던 무렵 내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혐오스럽다고 표현했다.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이랬는데 뜨겁게 달군 언론보도와 본인의 입장을 발표하는 내용을 보고 오죽 힘들고 절실했으면 그랬나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하리수와 같이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내 머릿속에서 차츰 잊혀져 갔는데,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응원해 준 단 한 명,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을 찾는다고 티비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이다.
최근에 몰입해서 보고 있는 넷플릭스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절대 왕정 루이 14세의 이야기이다. 현대에서 보기 힘든 귀족들의 화려한 옷과 소품이 볼 만하며, 실제 베르사유 궁전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청하게 되었다. 과연 화려한 궁전과 귀족들의 의상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드라마에서 루이왕의 친 남동생인 필리프 공작이 동성애자로 나온다. 자신의 애인인 슈발리에라는 남성을 버젓이 궁에 들이고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도 여장을 하며 애정행각을 벌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동성애자의 애정행위를 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제작했기에 재미를 위해 내용의 일부는 허구라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건과 배경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했을 것이다.
동성끼리 행위를 버젓이 드러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반응은 동성애가 당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에서도 수도원에서 수도사들 간에 동성애와 성매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지 않던가! 중세시대의 암울한 종교 타락이라는 말이 교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수도사의 적나라한 부정과 부패 때문에 더욱 공감되었다. 이렇게 중세시대 때도 공공연히 동성애가 성행했고 고대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만 보아도 이것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쭉 함께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적인 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그는 알다시피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양성애자가 된 까닭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특유의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0대 후반 젊은 나이로 죽을 때 사망 원인은 에이즈였다.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감동과 환희를 심어주고 홀연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뿐인가! 세계적인 뮤지션과 예술가 중에도 동성애자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데이빗 보위, 조지 마이클, 영화배우로 유명한 키아누리브스 또한 동성애자이다. 동성애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역사적 인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익스피어, 차이코프스키, 소크라테스 등 이루 말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이 젠더 지향이 일반인과 다를 뿐인데, 잘못한 일을 들키기라도 한 양 죄인으로 취급받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고 견딜 이유는 없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홍석천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뒤로 세간에 관심사가 되었지만 아직 드러내 놓고 말할 정도는 못 된다.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끼리 결혼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로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권인 인권이 무시되고 박탈될 때 사람들은 비애감에 빠지고 절망한다. 사람답게 살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접받을 권리가 그들에게도 엄연히 존재한다. 성소수자(LGBT) 중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에 따라 트랜스게이, 트랜스레즈비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전환한 사람이 공식적으로 400여명은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성소수자들은 이미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관련 단체도 제법 된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사람들의 행동은 시대를 따라가는 듯 보이나 의식은 따라가지 못한다. 가부장제 아래 긴 시간동안 학대받고 살던 여성들이 양성평등을 외치는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황혼이혼도 불사한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양성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남존여비사상의 피해자이면서도 아들 사랑에 연연한 가해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여자니까 이래야 해, 남자니까 그래야지’ 말하며 정해진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시각 또한 얼마나 달라졌을까? 부지불식간에 여학생에게는 여성성을 강요하고, 남학생에게는 남성성을 강요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에 어울리는 행동, 적합한 행동을 했을 때 불편해 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유롭기를 원한다. 젠더도 자유로와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내 모습에 맞게, 내 환경에 적합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누리며 살고 싶어한다. 하고 싶다고 안 될 일을 억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하고 싶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소수자들도 세상의 눈을 의식해서 젠더정체성을 억지로 감내하거나 거짓으로 위장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한 삶이 불행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틀렸다고 해서는 안되며 다르다고 인정해 줘야 한다. 타고난 성향이 여성성에 가까운가, 남성성에 가까운가의 문제지 생물학적 성에 지나치게 억매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리수가 재혼을 생각하고 있단다. 결혼 10년 만에 이혼하고 최근에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한다. 행복을 꿈꾸는 그녀의 새로운 삶을 응원한다.
첫댓글 저도 성소자들을 쉽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들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