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잼버리가 안타까운 캠핑족들 "타프 하나도 없이 어떻게…"
성연재입력 2023. 8. 9. 08:00수정 2023. 8. 9. 09:30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가운데 하나는 단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다.
이를 지켜보는 경험 있는 캠핑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상당수 캠핑족은 주최 측이 한여름 폭염 속에서의 캠핑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여름 뙤약볕에 무방비로 노출된 텐트들을 보면서 20년 전 이라크 종군 기자 시절 맞닥뜨렸던 이라크 사막의 주둔지 막사가 떠올랐다.
기자는 2003년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로 파병된 국군 1진과 함께 현지에 도착했다.
섭씨 40도가 넘는 기온과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속에 간신히 막사를 설치했지만, 막사 내부 온도는 50도를 훌쩍 넘겼다.
그런데 그 열악했던 이라크 사막에 세워졌던 군용 막사도 이번 잼버리대회에 설치된 것들보다는 나았다는 생각이다.
두께도 두꺼웠고 2겹으로 돼 있어 자외선 차단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2003년 이라크 나시리야 서희제마부대.
그러나, 잼버리 현장의 텐트들은 햇볕이 거의 100% 가까이 투과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타프(그늘막) 하나 준비되지 않은 캠핑장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의 캠핑은 무엇보다 작렬하는 햇볕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만약 짙은 나무 그늘이 없다면 반드시 인공적으로라도 그늘을 만들어줘야 한다.
똬약볕 피할 곳 없는 잼버리 야영장
국내 캠핑족들 대부분은 요즘 한여름 폭염 캠핑 시 타프를 설치한다.
타프를 텐트 플라이 정도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보통 텐트의 경우 사용하는 천은 75D(데니어·실의 굵기) 정도의 제품이 일반적이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타프의 재료는 이보다 굵어야 한다.
한여름 최소한의 그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10D 이상, 가능하면 150/300D 정도는 돼야 한다.
타프는 값비싼 외국산 브랜드보다 국산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블랙 코팅 타프가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타프를 설치한 전형적인 여름 캠핑 세팅
타프라도 설치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잼버리에 배정된 1천170억 원의 예산 가운데 74%가 운영비로 쓰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반 시설 조성비와 야영장 조성비는 눈곱만큼 썼다는 이야기다.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인식 부족 사례는 또 있다.
전북 진안의 한 노지 캠핑에서도 타프는 필수였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잼버리 대회장에 재래식 화장실이 설치됐다고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전북지역 공무원 노동조합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지문에 "지역 공무원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는데 최신 수세식이 아닌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알고 보면 이 화장실은 '포세식'(泡洗式) 화장실로, '푸세식'으로 불리는 재래식 화장실과는 차이가 있다.
포세식은 물 대신 거품으로 세척하는 방식의 화장실로, 수세식 화장실과 재래식 화장실이 갖고 있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됐다. 용변을 보면 거품이 내려와 씻어내리는 방식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 화장실.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할 수 없는 곳에도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동식 화장실에 주로 쓰이고, 대회장에도 이 포세식 화장실이 보급됐다.
한 캠핑족은 "포세식을 푸세식으로 표기한 것을 보고는 이 사회가 아웃도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험 있는 캠핑족들은 여름 캠핑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국제대회를 치러야 한다면, 적어도 전문가들에게 자문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 태풍까지 올라오고 있다.
조직위도 강한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상륙할 경우 영지 내 숙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결국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준비 부족으로 한국을 널리 알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다소나마 만회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영국 스카우트 "모르는 한국인들 다가와 사과…놀랍도록 친절"
신유리입력 2023. 8. 9. 10:48
새만금 대회에 청소년 자녀 보낸 英부모들 BBC 인터뷰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 청와대 방문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전북 새만금에서 서울로 철수한 영국 스카우트들은 "안전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라고 영국 BBC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잼버리 대회에 15세 딸을 보냈다는 섀넌 스와퍼는 딸이 서울로 이동해 "매우 안전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면서 안도감을 드러냈다.
스와퍼는 이전에는 "재앙 뒤에 또 재앙이 닥친 상황이었다"면서도 "이제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져서 기쁘다"고도 말했다.
그는 앞서 외신을 통해 이번 잼버리 대회에서 "어른과 아이 모두 견딜 수 없는 수준"의 더위가 이어진다고 토로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스와퍼는 이번에는 4천500명 정도인 영국 대원들이 무더위와 열악한 시설을 피해 서울로 온 뒤에는 곳곳에서 환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딸이 말하기로 한국인들이 믿을 수 없도록 친절하다고 한다"면서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사과하고, 와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한 "매장에서는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할인을 해주기도 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케이크를 기부해준 빵집도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세 아들이 이번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는 에이미 홉슨 또한 비슷한 언급을 내놨다.
홉슨은 "차질이 있긴 했지만 모든 대원이 긍정적인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게 모두의 목표"라고 말했다.
18세 딸이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는 폴 포드 또한 딸이 인천의 한 호텔로 이동했으며, 시설이 "훌륭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은 재앙이 닥쳤던 곳에서 떠날 수 있어서 기뻐한다"면서 "다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놓친 것은 안타까워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카우트 조직이) 면밀한 검토를 받아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앞서 영국 스카우트 대원은 이번 대회 참가에 3천500 파운드(588만원) 정도를 썼으며, 다만 모금 활동으로 충당한 게 많다고 맷 하이드 영국 스카우트연맹 대표가 밝혔다.
영국은 4만여명이 참가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최대 참가국이다.
영국은 새만금 현장에서 그늘 부족, 음식 미비, 위생 열악, 의료 서비스 불충분 등을 이유로 4일 야영장 철수를 결정하고 5일부터 서울 호텔로 이동했다.
이어 8일 오전 10시부터는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북상함에 따라 잼버리 참가자 전원이 야영지에서 비상 대피에 나섰다.
한국 언론 매체들은 당국이 오랜 기간을 보내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이번 행사를 '국가적 망신'이라고 묘사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서울 시티투어 하는 영국 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