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공부지어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안다면
거기서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시기를 잘 보아야 한다.(*1)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안다면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으려고 공부지어야 한다.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안다면
거기서 공개적 비판을 할 시기를 잘 보아야 한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공개적 비판을 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11. "➅ '침착하게 말해야 하고 다급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다급하게 말하면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흥분하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목도 쉰다.
다급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불분명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여기 침착하게 말하면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도 흥분하지 않고 목소리도 갈라지지 않고 목도 쉬지 않는다.
침착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분명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침착하게 말해야 하고 다급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12. “➆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비구들이여,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러 다른 지방에서 그들은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하고,(*2)
그릇이라 하고, 사발이라 하고, 받침이라고 하고, 냄비라고 하고,
단지라고 하고, 잔이라 하고, 대야라고 부른다.
각 지방에서 부르던 대로 그것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러 다른 지방에서 그들은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하고 … 대야라고 부른다.
비록 여러 다른 지방에서 그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아마 이 존자들은 이것을 두고 이런 말로 사용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완고하게 고집하지 않고 적절하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방언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표준어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13. "비구들이여, 여기 저급하고 저속하고 범속하고 비열하고 이익 없는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즐거움에 속하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3)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저급하고 저속하고 범속하고 비열하고 이익 없는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즐거움에 속하는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無諍)의 법(*4)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고통스럽고 비열하고 이익 없는,
자기를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고통스럽고 비열하고 이익 없는,
자기를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는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는 중도를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나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칭송을 하거나 비난을 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칭송도 비난도 하지 않고 오직 법을 설하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감각적 즐거움, 불결한 즐거움, 범속한 즐거움, 비열한 즐거움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출리의 즐거움, 떨쳐버림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라도 이익을 줄 수 없는 것이면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면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는 공개적인 비판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는 것이면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공개적인 비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다급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침착하게 말하는 자의 말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방언을 고집하고 표준어를 무시하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고 성가심을 가져오고 절망을 수반하고 열병을 수반하며,
그것은 그릇된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방언을 고집하지 않고 표준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바른 도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의 법이다.
1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우리는 분쟁의 법을 알아야 하고 무쟁(無諍)의 법을 알아야 한다.
분쟁의 법을 알고 무쟁의 법을 알아서 무쟁의 도를 닦으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수부띠 선남자는 무쟁의 도를 닦은 자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1) “‘시기를 잘 보아야 한다(kālaññū assa).’는 것은
아직 시기가 이르거나(asampatte) 시기를 놓쳐버렸을 때는(atikkante)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하고
‘지금 말하면 여러 사람이 알 것이다.’라고 적절한 시기가 도래한 것(yutta-patta-kāla)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MA.ⅴ.31)
(*2) “‘그릇(patta)’이라고 부르는 지방에 가서 ‘그릇을 가져와라, 씻어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리석은 자는 ‘이것은 그릇(patta)이 아니고 접시(pāta)다. 그렇게 불러라.’라고
고집하여 말한다(abhinivissa voharati).”(MA.ⅴ.32)
(*3) “‘분쟁의 법(dhamma saraṇa)’이란
더러움이 함께하고(saraja) 오염원이 함께 하는 것(sakilesa)이다.”(MA.ⅴ.32)
(*4) “‘무쟁(無諍)의 법(dhamma araṇa)’이란
더러움이 없고(araja) 오염원이 없는 것(nikkilesa)이다.”(MA.ⅴ.32)
한편 『앙굿따라니까야 주석서』는
“‘다툼 없이 머무는 자[無諍住, araṇa-vihāri]’란 오염원이 없이 머무는 자이다.
‘다툼(raṇa)’이란 욕망(rāga) 등의 오염원들을 말한다.”(AA.ⅱ.220)로 설명한다.
무쟁[無諍]의 분석 경(M139)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4권 462-4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