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베에서 트빌리시(Tbilisi)로 출발한 시간이 5시 20분으로 구글로 검색해 보니 거리는 110km에 시간은 두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들판과 산기슭을 가로 질러 가는 동안 도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비슷한 경치만을 보면서 가게 되는데 그런 경치를 보면서 가는 것
이 여행의 기쁨이다.
보드베에서 서쪽으로 110km이고 두 시간이 걸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릉과 포도밭...
포도밭만 보인다.
산자락 아래 마을도... 이 산맥은 작은 코카서스 산맥인 둣
츨발한지 30분이 지났는데 계속 포도밭이다.
산 위에는 성채도 보이고....
산꼭대기의 바위의 다르다....이런 것이 신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마을....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필요도 없을 것이고...
모처럼 도시옆을 지나간다.
노란 꽃들이 많이 피어 있는 나무들이 많은데....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 떼...
차창가에 보이는 경치...
트빌리시에 가까워지고...논스톱으로 빨리 오다가 보니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된다.
트빌리시에 들어서고...
해가 아직 지지는 않았지만...
조지아 내무부 건물이라고 되어 있다..관공서를 이렇게 짓다니...놀라운 발상이다.
트빌리시 시내를 관통하는 쿠라강...
하늘에 보이는 풍선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 애드벌룬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유명하다고
식당을 찾아서 강을 끼고 들어간다.
트빌리시에 들어서니 7시가 되어서 곧바로 저녁 식사를 하려 한식당을 들렀는데 거리의 건물들이 낡은 모습들이어서 놀랐는데 이
나라가 일인당 GNP가 8,573달러로 아직 가난한 나라라는 생각이 난다.
트빌리시 시내...
드디어 식당에 도착하고..
주상복합 아파트 1층에 있는 식당이다.
위에는 짓다가 만 철근이 나와 있는 것이 보이고...
된장국...한인 식당이 몇 군데 있다고...집 떠나와서 4일만에 처음먹는 한식이다.
식당 건너편에 있는 커피샵 태이크 아웃만 가능하다.
식당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오늘과 내일 먹을 과일도 사고...
식당 주변의 아파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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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는 우리나라와 5시간의 시차(늦게 감)가 있는 조지아의 수도로 면적은 504㎢ 이고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124만 명이라
고 한다. 트빌리시는 '따뜻하다'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는데 본래 무츠헤타에 동 이베리아의 수도가 있었는데 이곳에 온천이 나오는
바람에 5(6)세기 초에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도시는 계속 침략과 지배를 당해왔었고 조지아의 자주국가로서의 수도역할을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트빌리시로 천도한 지 몇 십 년이 되지 않아 이곳은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전쟁터가 된 후 한 동안 사산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이후에는 하자르 칸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는 737년경 우마이야 왕조가 이 도시를 정복하고 트빌리시는 아랍 무슬림 토후들이 다스리게 되면서 수많은 무슬림 상인
들이 정착하면서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트빌리시
11세기 후반 무렵 도시는 알프 아르슬란이 이끄는 셀주크 투르크족에게 정복당하였다가 12세기 초 조지아인들이 다시 트빌리시
를 탈환하고 조지아 왕국의 수도를 쿠타이시 시에서 다시금 트빌리시로 옮겼다. 중세 조지아 왕국은 트빌리시를 탈환하고 번영을
누리며 황금시대로 기억되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군의 침략으로 인해서 도시가 약탈을 당하였고 14세기 후반(1386년)에 티무르 제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도시
가 또 다시 약탈을 당하게 된다.
16세기에는 이란의 사파비 왕조가 트빌리시를 봉신국으로 삼으면서 도시가 잭건축되고 복구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구시가지는 파
사비 왕조시절에 복구된 것이 기반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자신의 종교에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인 무슬림 구역,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위치한 아르메니아인 구역, 정교회 성당이
있는 조지아인 구역, 유대인 구역에 나뉘어 살았으며 이러한 구역들과 종교 시설들은 오늘날 트빌리시 구시가지에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801년 러시아인들이 카프카스에서 이란의 카자르 왕조를 제압하고 트빌리시는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고 조지아인들처
럼 동방 정교회를 믿었던 러시아인들은 정교회 성당들을 대대적으로 증축, 보수하고 이슬람 사원 상당수가 정교회 성당으로 개조
하였다고 한다.(이슬람세력이 수백 년을 지배하였으나 조지아가 기독교로 남아 있게 되었던 것은 러시아가 지배를 하였기 때문이
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트빌리시는 잠시 러시아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나지만 1921년 소비에트-조
지아 전쟁으로 노농적군에게 장악당하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소련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고 조지아가 독립국이 되면서
온전한 주권국가의 수도가 된 셈이다.
트빌리시에는 놀랍게도 약 100여 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하며 1999년의 조사에서는 조지아인 72%, 아르메니아인 12%, 러시아
인 10%, 오세트인 3%, 쿠르드족 2% 과 그리스인 2%, 기타 민족이라고 한다.
종교는 기독교가 87%이고 이슬람이 10% 정도이며 기독교 안에서 그리스 정교회가 83%이고 아르메니아 정교회 3%이고 로만가
톨릭은 0.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바이오그라피라는 호텔에 도착을 하고 ...이름도 고상한 호텔이다.biography는 전기(傳記) 자서전(自敍傳) 약력(略歷)이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행히 방이 트빌리시 시내가 다 보이는 방향이어서 야경 사진을 찍어 본다....이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트빌리시
이제 완전히 밤이 되었다.
숙소에서는 잠만 자고는 내일 아르메니아로 가게 된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원수지간이 되는 바람에 관광객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