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1호선 전철 이용 지행역 하차.
1호선 전철 이용 가능역 하차, 건너편에서 39-1, 36번 버스 타고 송내상회앞(송내1동) 하차.
우측 고가다리 아래로 등산로 입구가 있다.
교통편 : 전철1호선 덕정역- 덕정역바로앞 78번 마을버스-회암사절터
▼등산지도▼
천보산, 칠봉산
전철1호선 의정부 북부역 육교 옆에서 30번 버스를 타고 회암리에서하차. 또는 수유역이나 전철1호선 의정부 북부역 육교 옆에서 동두천행 버스를 타고 봉양리에서 내려 조휘동으로 가거나 조금 더 가서 송내동 송내상회 앞에서 내린다.
서울 수유리~소요산행 36번 버스를 이용해 경기도 동두천 송내동에서 하차.
칠봉산 506m 천보산 423m
▣ 코스 : 11.8km, 5시간25분(실산행시간 4시간)
☞ 코스 : 덕정역(11:24)-봉양사거리(11:58)-발리봉(12:29)-매봉(13:00-13:40)-깃대봉(14:04)
-석봉(14:12)-투구봉(14:23)-칠봉산(돌봉,14:37-14:53))-솔리봉(15:00)
-장림고개(15:22-15:36)-천보산(16:00:16:20)-회암약수터(16:38)-회암사지(16:48)
☞ 거리 : 덕정역-3.3km-봉양사거리-1.0km-발리봉-1.3km-매봉-0.9km-깃대봉-0.9km
-칠봉산(돌봉)-0.3km-솔리봉-0.8km-장림고개-1.3km-천보산-0.8km-회암약수터
-0.6km-회암사지(장림고개 임도산행 0.6km별도)
☞ : 교통 : 마포역(09:29)-덕정역(11:15)/
회암사지(16:50)-(승용차 도움)-덕정역(17:02-17:20)-마포역(16:48)
▣ 칠봉산(506m)
동두천시 탑동에 소재한 칠봉산은 금병산, 어등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만산홍옆의 단풍이 한폭의 비단병풍과 같다 하여 금병산(錦屛山),
세조가 말년에 이곳을 등산했다 하여 어등산(御登山)이라고도 하는데,
4백년 후의 대동여지도에는 어등산 (於等山)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칠봉산(七峰山)은 일곱 봉우리가 뚜렷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은 9~10월경에는 아름다운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있어 금병산(錦屛山)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어등산(於等山)으로 불렸으며, 어등산의 한자는 ‘어등산(於等山)’ 이외에도 ‘어등산(御登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 많은 신하를 참형에 처한 것을 후회하여 널리 사찰을 찾아다니다가, 탑동에 위치한 상봉(上峰)을 국사봉(國射峰)으로 정하고 이 산을 지나갔기 때문에 어등산(御登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는 세조가 이 산에서 내촌(內村) 마을을 보고 신하들에게 저 마을은 무슨 마을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세조가 “앞에는 산이 있고 회암천(檜岩川)이 흐르는데다가 뒤에 또 산이 있으니 ‘안말’이겠군”이라고 한 후 ‘안골’로 불리다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내촌(內村)으로 불렸다고 한다.
▣ 천보산(423m)
양주시 회천1동에 위치한 천보산은 의정부시에서 포천쪽으로 가는 방향에서 북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이다. 양주와 포천 땅을 가르는 산줄기인데
이 산줄기의 중앙부에 우뚝 솟은 산이 천보산이다. 연이은 바위봉과 소나무 군락이
어울려 산 전체가 수려한 경치를 뽐내고 있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으나,
신하가 난리가 끝난 후라 금은보화를 구하기는 어렵게 되어,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옛날부터 광암동이나 탑동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칠봉산이라 불러 왔다
▣ 회암사지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까지 큰 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옛터이다. 회암사는 인도 승려 지공이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지었다고 하나 보우선사의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에 의하면 회암사 이전에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태조가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물게 하였으며 태조 자신도 왕위를 물려준 후에 이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면, 회암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까지 대가람으로 번창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가 보우로 하여금 절을 지키게 하였으나, 문정왕후가 죽은 후 유생들의 상소로 보우가 처형되고 회암사도 쇠락하였다.
현재 이 절에는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무학대사의 묘탑으로 알려진 회암사지승탑(보물 제388호), 회암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를 비롯하여 지공선사와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