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기와 / 원준연
미인의 눈썹을 가리켜 아미(蛾眉)라고 한다.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 눈썹이 있어야만 미인 축에 드는가 보다. 그런데 아미의 뜻이 ‘나방의 눈썹’이다. 나방의 눈썹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나방을 비롯하여 곤충들의 가늘고 긴 촉각이 초승달처럼 예뻐 보여서 붙여진 것은 아닌가 한다.
사람이 아닌 건축물에도 눈썹이 있을까? 있다면, 사람처럼 아름답게 보일까?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는데 눈썹지붕이라는 예쁜 말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하여 생긴 말인지 궁금하다. 눈썹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쁜 지붕을 머리에 인 한옥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윽고 경남 거창군에 있는 동계 정온 종택(宗宅)을 찾았다.
동계(桐溪)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관찰사, 대사간 등을 지내셨다. 대사간은 왕권을 견제하여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고 관기를 바로잡기 위한 핵심적인 양반의 관료직이었다 하니, 뛰어난 학식을 갖춘 충직한 분으로 생각된다. 종택에 거주하시는 정온(鄭蘊) 선생의 14대 후손을 만나 뵈니, 선대의 강지가 이어져 온 연유인지 후손께서도 강직하면서 온화한 기품을 지니셨다. 비록 뜻은 못 이루셨지만 삼전도의 항복에 항의하여 할복을 시도하셨던 그 강직한 기상이 면면하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사랑채를 살펴보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누마루 위쪽의 지붕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원래의 지붕에 잇대어 설치된 지붕은 누마루로 길게 들어오는 햇살을 막아주는 차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눈썹지붕이니 곧 눈썹차양인 셈이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알지 못하나 참 어여쁜 이름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런 겹지붕의 모습은 몇 번 보아온 터라 특이하기는 하지만 신비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림집은 아니지만, 창덕궁 후원에 있는 반도지(半島池)에 두 앞발을 담그고 있는 존덕정(尊德亭)도 보기 드문 육각형과 아름다운 단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겹지붕을 하고 있어 매우 이채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런데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용마루 밑에 기와가 한 줄 삐죽이 나와 있는 모습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처음 보는 신기한 모습이다. ‘눈썹기와’란다. 내 눈에는 낙타의 긴 눈썹보다도 더 예쁘게 보인다. 용마루 밑에 눈썹기와가 달린 연유를 알아보니, 예로부터 이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용마루 안쪽으로 비가 스며들어 지붕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란다.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염집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겠지만.
한옥의 측면이 비바람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풍판이 있다.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에 있는 응도당(凝道堂)에는 풍판에 잇대서 비바람을 막아주며 누마루의 햇빛도 차단하는 눈썹처마가 있다. 정온 종택의 눈썹기와는 돈암서원의 눈썹처마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눈썹지붕이나 눈썹처마보다 눈썹기와가 있는 정온 종택의 지붕 모습이 더 아름답고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에 대한 조예는 깊지 않지만 가히 백미다.
지붕도 눈썹이 있어야 더 돋보이듯이, 사람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예쁜 눈썹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남자의 눈썹은 진해야 의지가 강하고 좋다고, 어릴 적에 듣곤 하였다. 그런데 나의 눈썹은 그렇지를 못하였다. 어머니는 진하지 못한 막내의 눈썹을 늘 안타깝게 여기셨다. 결국 어머니의 뜻으로 대학생 때 눈썹 문신을 받았다. 그래서 나의 의지대로 교육자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신체 호르몬의 변화 탓인지 요즘은 오히려 눈썹이 잘 자라고 있어서 다행이다.
여성들의 눈썹에 관한 관심은 남성들을 훨씬 능가한다. 눈썹을 예쁘게 가꾸는 것도 모자라서 속눈썹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몹시 불편할 것 같은데도 인공의 긴 속눈썹을 달고 다닌다. 미상불 예뻐 보이기는 한다. 여기에 얼굴 성형도 한다고 하니 미인도 만들어지는 세상인 모양이다.
흔히 회자되는 말이 있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을 때 미인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참다운 아름다움의 미인이 될 것인지 새해를 맞이하여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원준연] 수필가. 중부대학교 교수. 2005년《수필문학》등단.
한국문협, 대전문협, 수필문학추천작가회 부회장, 원종린수필문학상 운영위원장
* 수필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미울 정도로 곱게》 《이순의 경지는 어찌하여》외
* 제24회 수필문학상, 대전문학상 외
중․고교시절 얘기를 다룬 차오원쉬엔의 소설, 《빨간기와》 《까만기와》는 읽어봤어도 ‘눈썹기와’는 처음 들어요. 참 예쁜 말이네요.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요, 유난히 크고 가지런했던 나방의 눈썹을요 . 눈썹이라기보다는 거의 날개에 가깝던데요.
어여쁜 아미, 바비 인형의 속눈썹처럼 길고 가지런한 꽃술 같은 눈썹은 아름다움의 상징, 남녀 모두의 선망이죠.
눈, 비와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눈썹기와는 실용과 아름다움을 겸비하겠네요.
전공이외에 ‘문화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셔서인지 우리 문화재와 한옥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계시구나 느껴집니다.
또한 선친의 출연금으로 시작해 17년 째 전국의 수필가를 대상으로 공모를 시행해서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여하고 계십니다. 요 며칠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20여 년 전부터 성실한 만학도에게 ‘오도 장학금’을 수여해온 일입니다. 문인으로, 교육자로 존경 받으실 만하고 숭고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