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0(수) 요한복음 4장
오늘은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독일말로 예배를 뜻하는 단어는 Gottesdienst고테스딘스트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뜻의 ‘Gott’와 ‘섬기다’라는 뜻의 ‘dienen‘이 결합된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이것이 예배를 뜻하는 독일어입니다.
그런데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님은 ‘하나님을 섬긴다.’라는 말로 예배를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해하는 고테스딘스트 예배는 두 가지의 해석이 맞물려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의 한 축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것
즉 죄 사함의 은총이 예배의 또 한 축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예배는 인간의 일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인간의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죄 사함의 은총을 베푸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의 사건이 만나는 것이 예배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책 ‘대교리문답’에서 개신교 예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개신교적 예배란 은총의 수단인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일하시는 것으로 출발하여, 인간이 그 은총에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반응하는 상호 소통의 과정이다.
우리가 왜 매일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마르틴 루터의 대답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 오늘도 끈임 없이 죄 사함의 은총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그 죄 사함의 은총 아래 있는 우리는 그에 따른 마땅한 기도와 마땅한 찬송과 마땅한 감사로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왜 예배를 날마다 드려야 하는 지 충분한 이해가 되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일을 하나님이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에 따른 마땅한 기도와 마땅한 찬송과 마땅한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묻습니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우리 조상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어디서 드려야 합니까?
어디가 바른 예배의 장소일까요?
그리심 산일까 아니면 예루살렘일까?
그러자 예수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하십니다.
‘장소’를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예배의 ‘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때는 헬라어 호라hora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결정적 시간’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결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결정적인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결정적인 시간
그 때가 언제라고 예수님은 말합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결정적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지금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자와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
여기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약속하셨던 생수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이지요.
이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첫 번째 마음 자세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진정한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가 있는 곳이 어디나 예배 처소가 되겠지요.
따라서 그리심 산일까 아니면 예루살렘일까?
장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진정한 예배 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정교회가 여기에 아멘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