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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습니까?" 하니,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요2:13-22)
13 It was almost time for the Passover Festival, so Jesus went to Jerusalem. 14 There in the Temple he found people selling cattle, sheep, and pigeons, and also the moneychangers sitting at their tables. 15 So he made a whip from cords and drove all the animals out of the Temple, both the sheep and the cattle;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changers and scattered their coins; 16 and he ordered those who sold the pigeons, “Take them out of here! Stop making my Father's house a marketplace!” 17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the scripture says, “My devotion to your house, O God, burns in me like a fire.”
18 The Jewish authorities came back at him with a question, “What miracle can you perform to show us that you have the right to do this?”
19 Jesus answered, “Tear down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build it again.”
20 “Are you going to build it again in three days?” they asked him. “It has taken forty-six years to build this Temple!”
21 But the temple Jesus was speaking about was his body. 22 So when he was raised from death,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he had said this, and they believed the scripture and what Jesus had said.
*세상의 빛과 소금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만 언급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썩어가던 세상에 여러분이 서면 썩어가던 것이 그대로 정지해야 합니다.
그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던 세상에 여러분이 서있으면 그들은 방향을 바꿀 것입니다.
뒤로 돌아 생명의 길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면 거기가 훤히 밝아지고 그들 눈에 죽음의 길이 보여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소금이 되었는지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빛이 되었는지 그 여부를 가지고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정교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정치 행위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정치에 소금이 되고 정치에 빛이 되도록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정치 행위를 하면서 실실 거짓말이나 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이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하고
내란에 동조하고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말장난하고.......
그렇게 경제의 소금도 경제의 빛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
최근 느낀 것입니다.
시국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생각해보니 그것이 북한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라 내부의 친일파가 국가의 위협이었습니다.
뉴라이트가 위협이었습니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교회가 문제였습니다.
더 큰 문제들은 내 내부에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시던 당시에도 이스라엘 나라는 정말 혼란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헤롯은 그 로마에 빌붙어서 왕노릇하고 있었으니 말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지배하는 로마가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가 문제였습니다.
또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성전이 문제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공생애의 시작 때에 성전을 정화하셨고 또 공생애의 마지막에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교회가 바로 되면 이 나라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과 신문
신학자들은 믿는 사람에게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 신문을 들라고 합니다.
실은 성경이라면 박물관에나 보관되어야 할 수천 년 전의 책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Ai를 알고 internet을 압니까?
하지만 기독인들은 당장의 현실 대안을 성경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한 손에 수천 년 전의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들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그 대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천 년 전의 성경책에서 당장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지 못하니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공회전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씀이 이 시대에 주어지는 현실 대안으로 1단 기어부터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퀴가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양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는 유월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조상들은 애급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바로의 독재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께 호소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애급의 종되었던 땅에 10번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마지막 기적으로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적으로 모든 애급의 장자들이 죽었습니다.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려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바로는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바로는 비로소 유대 백성들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 일을 기념해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3 It was almost time for the Passover Festival, so Jesus went to Jerusalem.
그렇게 천여 년이 흘렀는데 예수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신을 읽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그 양으로 읽으셨습니다.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천여 년 전 애급 땅에서 죽임을 당한 양으로 읽었던 것입니다.
35. 다음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요1:35,36)
그 성경의 말씀이 예수님께 적용되더니 인류가 구원 얻게 된 것입니다.
*필요악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4 There in the Temple he found people selling cattle, sheep, and pigeons, and also the moneychangers sitting at their tables.
성전은 대단히 화려 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그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했습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막13:1)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동일시 했습니다.
그 성전은 헤롯이 지은 것입니다.
헤롯은 본래 유다의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는데 로마 식민지 시대의 이완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는 로마에 빌붙어서 왕위를 보장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완고한 유대인들에게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성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가 성전을 이렇게 화려하게 지은 것은 본래의 성전의 동기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성전 건물을 보면서 유대 사람들이 딴생각을 못 하게 한 것입니다.
헤롯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그 건물에 넋을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성전 안을 주님이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소 양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성전에 그들이 없었다면 제사 드리는 일이 대단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먼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명절을 맞으면 짐승을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또 우상이 그려진 이방의 동전을 하나님의 전에 바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덕에 모든 종교 제의는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돌아가는 종교 제의에 막상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셨습니다.
*성전의 개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5 So he made a whip from cords and drove all the animals out of the Temple, both the sheep and the cattle;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changers and scattered their coins;
그런데 문제는 이 상인들과 제사장의 특별한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친척에게 목 좋은 자리를 챙겨주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비싼 자릿세를 요구하고 그런 식이었을 것입니다.
좌우간에 정해진 대로 규율을 따라서 제사만큼은 잘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부조리한 상거래 문제를 개선할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제사장들을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너희들 친척에게만 특혜를 주면 안 되지! 혹은 자릿세를 수익의 10%만 챙겨라!”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제 성전의 유효기간이 끝이 났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성전은 폐기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서당이 사라지고 학교가 선 것과 같습니다.
이 물리적인 성전이 허물어지고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 드러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바벨론을 불러 이 하나님의 성전을 훼파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 이미 하나님의 궤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미련이 남아서 부셔진 것을 다시 지은 것입니다.
로마로 인해 또다시 성전은 훼파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당장에 보이는 것을 세우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보이는 것을 자꾸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나의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데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요4:21,23)
그래야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거둬 치워라.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and he ordered those who sold the pigeons, “Take them out of here! Stop making my Father's house a marketplace!”
주님은 이 장사하는 무리들과 제사장들의 뒷거래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정상적 상거래를 했더라도 문제시하셨을 것입니다.
성전은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장사하는 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 막상 빛과 소금의 내용을 잃었던 것입니다.
성전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
탕자가 그랬는데 이 아들은 아주 못된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술먹지
노름하지
아버지의 말은 안 듣지
그런데 이 아들은 아버지를 정말로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크게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상속해 주실 돈을 미리 챙겨서 아버지를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을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아버지 눈치 보지 않고 노름을 실컷 하고
술먹고
여자와 놀아나고.......
그러다 보니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돼지를 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배가 고파서 돼지 밥을 훔쳐먹다가 주인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인의 발길질에 걷어차이고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섰는데 아버지가 그에게 달려오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아, 아버지는 저런 분이셨구나!
돼지우리에서 돼지 밥을 훔쳐먹고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아버지로 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간 후 마을 입구를 바라보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가 돌아오자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
잔치를 베풀어서 환영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 온 것입니다.
아버지집은 못된 짓을 다했어도 아버지하고 부르면 전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곳입니다.
그는 그대로 아들이었습니다.
성전은 바로 그런 아버지 집입니다.
*장사하는 집
형은 늦도록 밭에서 일을 했습니다.
내일은 논에 가서 모내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음식 냄새가 났습니다.
노랫소리도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동생이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동생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이 놈이 이런 대접을 받을 무슨 일을 했냐고 따졌습니다.
그가 아버지께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내세울 일을 그동안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도 대충 술 퍼먹으며 살았더라면 그는 아버지를 그렇게 대항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형은 그의 선행 때문에 아버지와 도대체 대화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착한 큰 아들로 인해 슬퍼진 것입니다.
성경에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그 포도원의 주인은 이상했습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인부를 불러오는데 주인은 일 마치기 한 시간 전까지 쉬지않고 일꾼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일 끝내고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하루 품삯을 다 주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자신은 이틀치 품삯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하루의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불평을 한 것입니다.
12.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마20:12,13)
그랬더니 주인이 아침부터 더 고생한 일꾼에게 네 것이나 챙겨가라 했습니다.
주인은 아침에 온 일꾼을 보며 ‘너는 늦게 온 사람은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한 줄 알고 있구나. 못된 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한 수고로 인해 무자비해진 것입니다.
주인과 아버지 즉 하나님을 적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행이 하나님의 자비의 여지를 빼앗은 것입니다.
성전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성전의 제의만 초침처럼 째깍째깍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비가 통하지 않은 곳!
하지만 성전은 그런 계산이 통하지 않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선행을 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선행을 가지고 아버지의 말문을 막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윤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동생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가 일한 시간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도 저녁에 식구들과 함께 식사 챙겨 먹어야 되는구나’ 포도밭 주인은 생각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의 아버지였습니다.
탕자의 형은 아직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탕자가 알고 있는 아버지를 형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에게는 돼지우리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 제의
17. 제자들은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7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the scripture says, “My devotion to your house, O God, burns in me like a fire.”
당시의 성전은 일단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목사이니 그저 탈없이 교회 잘 돌아가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괜히 지적했다가 탈 나는 것 아닌가?
그냥 눈감아 주어야지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다 대고 권사님 집사님의 상을 엎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정이 주님을 삼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삼킬 것
주님은 성전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격하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다가 그 열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 열정이 예수님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막14:58)
실제로 공회의 법정에서 주님은 이 성전의 문제로 고발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형통이 아닌 십자가를 지시게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에 진심일 경우 여러분이 당할 일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삼켜버리려 달려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은 그 영생의 나라를 얻기 위해 죽음까지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 영생은 이 땅의 죽음을 치르고 얻을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16:25)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누가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훼방할 엄두나 낼 수 있었을까요?
또 그 일을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 사랑의 행위를 인해 주님은 삼키움을 당하실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신 주님이 이해가 되는가?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행위를 성경에서 기억해 냈다는 것입니다.
17. 제자들은 --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7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the scripture says,
믿는 사람들은 신앙의 일을 이해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고백하시며 죽으셨습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막15:34)
이 예수님의 말씀은 저에게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어찌되었든지 주님은 십자가에서 갈등을 고백하시며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해가 안 되고 감정이 따르지 않아도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실은 겟세마네에서도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을 두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택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동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는 것입니다.
갈등을 호소하면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니 성경의 말씀대로 였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표적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습니까?" 하니,
18 The Jewish authorities came back at him with a question, “What miracle can you perform to show us that you have the right to do this?”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습니다.
왜 표적을 구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려우니 하나님의 뜻을 표적을 통해 알려 달라는 뜻입니다.
또 표징을 구하는 것은 종교적인 겸손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지만 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표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징의 요구는 일생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공생애의 초기 사탄은 예수님께 돌이 떡이 되는 표징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요구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표징이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이 떡이 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렇지 사람은 일단 먹어야 하나님의 말씀도 찾는 것이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또 하나의 표징 더 요구했는데 성전 위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며 예수께서 거부해 버리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불신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죽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표징을 보이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40. 말하기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하였다.(마27:40)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표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표증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구원이 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을 하면서 기독인들이 수시로 표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징에 근거한 신앙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거기서 내려오시는 표징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광화문을 뛰어다니며.......
그래서 지혜와 명철의 기초 위에(on the foundation of wisdom and understanding.)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집은 지혜로 지어지고, 명철로 튼튼해진다.(잠24:3)
3 Homes are built on the foundation of wisdom and understanding.
한국 교회가 왜 드럼치고 소리 지르며 감정과 집단의식 위에 신앙의 집을 짓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을 묵상할 시간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여지없이 사탄에게 속고 말 것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꼭 십자가의 형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의의 문제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의의 문제를 해결해야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의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사랑을 죄인들에게 베푸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의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표징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 행위에 사랑과 정의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 입장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과 의를 제대로 알아보는 명철과 지혜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우시라는 것입니다.
예언하고, 귀신 몰아내고, 기적을 수두룩하게 행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일 수 없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19 Jesus answered, “Tear down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build it again.”
그들의 표징의 요구에 예수님께서 첫째 표징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허물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허무는 주체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그 파괴성을 보이는 것이 첫째 표징입니다.
사람의 죄악을, 그 하나님께 대한 적대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의 어떤 가능성도 사람의 편에는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즉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구원이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탕자의 돼지우리보다 더한 경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 앞에서 망치와 못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그 회복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역사를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봅시다.
유대 나라는 BC 587년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AD 70년 로마에게 망한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힛틀러에게 600만이 학살을 당할 만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47년 독립된 나라를 허락받았습니다.
거의 2,000년 만에 나라가 회복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두서너 세대가 되면 이미 한국말을 못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희브리어를 회복해서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훼파한 성전을 사흘만에 회복하실 것입니다.
*마흔여섯 해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20 “Are you going to build it again in three days?” they asked him. “It has taken forty-six years to build this Temple!”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국왕이 국가 사업으로 46년 동안 온갖 공을 들인 사업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우리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1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물러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14:16)
5,000명의 장정들을 앉혀두고 그들을 먹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주님은 바로 그 일을 그들로 하여금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황량한 벌판에서 5,000명의 장정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유대 백성들에게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곳을 무너뜨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성전이 무너짐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그 유효 기간이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당시의 신앙인들이 동의할 수 없는 불경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경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2,000석 혹은 3,000석 좌석에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놓고.......
하지만 제 생각에 톱밥 난로 연기에 눈이 맵고 맨 땅에 가마니 깔고 예배드린 장소를 하나님은 더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자기 몸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1 But the temple Jesus was speaking about was his body.
성전은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당시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성전이 예수님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전을 통해서 예수님을 읽어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은 완전히 부정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입니다.
그 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육으로 죽으심으로 우리로 영으로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힘입어서 썩을 육체로 죽어서 썩지 않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을 인해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살아나신 뒤
22.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22 So when he was raised from death, his disciples remembered that he had said this, and they believed the scripture and what Jesus had said.
사람들은 지금 엄청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죽이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범죄의 장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그를 살리신 것입니다.
죽음을 택한 인간!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
그 장소에서 그들은 죽음의 권세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처절한 죽으심!
창에 찔리고 못에 막히시고.......
그 예수님께서 삼 일만에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여태껏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에서 유를 보았던 것입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통해서 극복된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여본 후에 그들은 3년 전의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혹은 그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면서 “아! 이사야 53장”했던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
그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보면서 제자들은 성경의 말씀과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은 일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이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다는 그 고백입니다.
목사들의 말씀도 그것이 성경에 일치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사의 설교가 성경과 일치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성경을 펴고 계속 그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성경과 일치하지 않은 말은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