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채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가 수조로 돌아간다 물고기는 잠을 잔다 비가 수면을 두드린다 물살이 물고기를 조금씩 밀어낸다 한 물고기는 뭍에서 헐떡거리다 죽는다 물고기들의 미래에 놓인 것은 얇고 길고 번쩍이는 흰 것
물고기는 꿈을 꾼다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달린다 정해진 낙차를 따르는 플롯 눈이 먼 늙은이는 젊었을 때 괴물이 낸 문제를 풀어 왕이 되었다 비가 끝없이 내렸다 그는 진창이 된 길 위에서 지쳐버렸다 자신을 이끄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쓰러져 숨을 몰아쉬다 죽었다
몸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꾼다 어떤 사람들은 물로 뛰어 내린다 바깥은 있습니까 나는 잠에서 깬다 마적떼는 도착하지 않았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딸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오빠를 땅에 묻고 죽는다 죽은 반역자와 왕좌에 앉은 사람 하나의 트랙을 번갈아 달리는 열차들 비가 무덤의 흙을 다진다 나는 슬프지 않으면 두려워진다 우리가 신의 손등 위에 있는공깃돌이라면 어쩌지? 끝도 없이 떨어지는 꿈을 꾼다
나는 하루에 세 번 약을 먹듯 떠올린다
죽은 늙은이의 볼에 비늘처럼 일어난 피부, 그것을 적셔주는 빗물 같은 것, 가축의 숨통, 물고기의
깊은 잠.
출처 : https://www.hankyung.com ---------------------------------------------------------------------------------------------------------------------------------------------------------------------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죠.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만큼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는 그리스 신화를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시입니다. 바로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오이디푸스가 누군지 아시죠? 왜, 엄마를 좋아하는 아들. 그래서 아빠를 경쟁자로 여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운의 사나이죠. 엄마와 아들 사이에 딸이 태어나는데 그녀의 이름이 '안티고네'입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신화라 기억이 쑥쑥 납니다. 오이디푸스는 그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아침에는 다리가 넷, 점심에는 둘, 저녁에는 셋'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풀죠.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거죠.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신이 될 수는 없어요. 인간은 주어진 운명의 장난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이 시가 주는 의미입니다. 아, 신화도 시(詩)가 되는구나, 하면서 읽었던 시입니다. 자, 그러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뜰채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가 수조로 돌아간다 물고기는 잠을 잔다 비가 수면을 두드린다 물살이 물고기를 조금씩 밀어낸다 한 물고기는 뭍에서 헐떡거리다 죽는다 물고기들의 미래에 놓인 것은 얇고 길고 번쩍이는 흰 것
횟집의 수족관 안에 담긴 물고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수족관안에 담긴 물고기는 살아있지만 죽은 고기나 다름없죠. 비가 수면을 두드리고 물살은 물고기를 밀어내고, 그래서 죽고마는, 인생입니다. 물고기의 미래는 이제 주방장의 '칼'에 운명을 맡겨야 하죠.
물고기는 꿈을 꾼다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달린다 정해진 낙차를 따르는 플롯 눈이 먼 늙은이는 젊었을 때 괴물이 낸 문제를 풀어 왕이 되었다 비가 끝없이 내렸다 그는 진창이 된 길 위에서 지쳐버렸다 자신을 이끄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쓰러져 숨을 몰아쉬다 죽었다
물고기는 전생에 어느 늙은이(오이디푸스)였어요. 롤러코스터가 일정한 트랙을 달리고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은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푸는 오이디푸스. 자신의 어머니와 잠자리를 했다는 죄책감에 그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봉사가 되죠. 자신의 어머니는 자살을 하고요. 어린 딸은 그런 아빠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갑니다.
몸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꾼다 어떤 사람들은 물로 뛰어 내린다 바깥은 있습니까 나는 잠에서 깬다 마적떼는 도착하지 않았다
몸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꿈, 어릴때 끝없이 떨어지는 꿈을 꾸다 깨어나죠. 그러다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직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를 잡으러 온 마적떼는 도착하지 않았나봐요.
비는 그치지 않는다 딸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오빠를 땅에 묻고 죽는다 죽은 반역자와 왕좌에 앉은 사람 하나의 트랙을 번갈아 달리는 열차들 비가 무덤의 흙을 다진다 나는 슬프지 않으면 두려워진다 우리가 신의 손등 위에 있는공깃돌이라면 어쩌지? 끝도 없이 떨어지는 꿈을 꾼다
오이디푸스 왕이 두 눈을 찔러 봉사가 되자, 두 아들은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다가 둘 다 죽게 됩니다. 그러자 오이디푸스왕의 처남이 왕이 됩니다. 그 아들 하이몽은 운명의 장난처럼 안티고네를 무척이나 사랑하죠. 운명의 장난이죠.(다른 어떤 멋진 말을 적고 싶은데, 정말이지 이런 진부한 표현밖에 떠 오르질 않네요.) 신은 이처럼 완벽한 운명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슬프지않으면 두려워집니다.' 우리의 운명도 그와 같을테니까요.
나는 하루에 세 번 약을 먹듯 떠올린다
죽은 늙은이의 볼에 비늘처럼 일어난 피부, 그것을 적셔주는 빗물 같은 것, 가축의 숨통, 물고기의
깊은 잠.
그 죽은 오이디푸스가 다시 태어나 물고기가 되었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정말 예리합니다. 다시 한번 운명의 장난처럼 말이죠.
아, 이런 신화도 정말 한 편의 시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글의 대부분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소재로 했지만, 물고기와 오이디푸스 왕을 은유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발상입니다. 돌고 돌아 빗물을 맞고 흔들리는 인생 말이죠. 윤회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오이디푸스 왕을 소재로 소설을 예전에 한 편 적은 적(저도 믿지 못하지만 자그마치 원고지 80매 분량)이 있습니다. 그냥 소재가 좋아서 이야기로 만들어 몇몇 분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반응이 영 시원찮더군요. 그냥 묵혀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로 나올 수 있다면 소설도 되겠다는 영감도 얻었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신의 손등에 올려진 공깃돌일까요? 신도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그렇다면, 끊임없이 떨어지는 공깃돌이 될 수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