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인다. ‘상남자’의 남자다움은 마초식의 성격파나 보디빌더식의 육체파와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는 남자의 멋스러움이 있는데, 이는 ‘내면’을 동반한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호방한 성격의 잘생기고 옷 잘 입는 남자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 내면이 타인과 만나는 순간 풍겨 나오는 건강한 에티켓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댄디’와 차이가 있다. 그는 신인류가 아니다. 이 풍모의 남성이 실은 복고풍이기 때문이다. 이전 말로 하자면 ‘신사답다’는 말이 뜻의 본질에 근접해 있지 않을까. ‘그 남자는 신사야!’라고 할 때,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그 ‘신사’ 말이다. ‘신사다움’을 가장 닮은 사물은 무엇일까. ‘신사다운 사물’을 찾기 위해 ‘신사의 패션’ 아이콘을 떠올려 보는 것은 유용하다. 신사의 패션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적절한 ‘핏’의 슈트일까. 센스 있는 색깔의 넥타이일까. 이럴 때는 거꾸로 묻는 게 효과적이다. 단 하나가 어그러지면 신사가 되는 일이 통째로 망가지는 패션 아이콘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구두’는 결정적인 아이콘이다. 이 결정력은 구두의 모양새나 색깔에 좌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구두를 ‘신는 스타일’이다. 꺾어 신은 구두, 그래서 꺾인 자리가 보이는 ‘구겨진 뒤태’에서 ‘신사다움’은 무너진다. 그런 점에서 ‘신사의’ 사물은 구두지만, ‘신사다움’을 유지시키는 사물은 ‘구두주걱’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구두주걱은 급해도 신발을 꺾어 신지 않는 여유, 즉 외부 정황을 주관적으로 제어하는 자기 통제력과 관련되는 사물이다. 구두주걱은 상황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구두 본래의 ‘에지’를 유지하는 힘과 관계한다. 구두 뒤축의 모양대로 부드러운 곡선 모양이지만, ‘구두칼’이라는 별칭처럼 정확하게 신발과 발뒤축 사이의 틈을 가르고 들어간다. 구두축과 발뒤축은 거의 붙어 있지만, 신발과 발이 결합할 때는 그 둘 사이에 아주 미세한 간극을 유지하는 거리감각이 ‘신는 스타일’을 유지시킨다. 물론 ‘뒤태’의 폼을 유지시키는 일, 즉 앞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뒤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의 인지는 기본이다. 여유롭지만 스스로 방만하지 않으며, 친절함 속에서도 공사를 구분하며 정확성을 견지하는 태도, 신사다움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슈혼(shoehorn)’이라는 영어명은 재료 때문만이 아니라, 스타일과 태도와 정신의 ‘뼈대’를 유지시키는 게 ‘신사다움’의 핵심이라는 말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