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숲에 둘러싸인 고향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가득했다. 사월이면 사과꽃이 마을을 뒤덮고 시월이면 홍옥이 석류처럼 익어가고 서리가 내리고 싸늘한 북서풍이 골목길을 휘돌아 치면 국광이 사과나무 밑 볏짚 위에 왕사탕처럼 깔려 있었다. 동쪽의 토함산과 동대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연안천은 마을 남쪽을 흘러 서쪽의 동천강 줄기로 흘러 들어간다. 마을 토양이 모래와 자갈이 많은 충적지라 용천이 여러 곳에 있어 물이 흔했다. 경주평야 남쪽에 위치해 들판은 넓고 ‘연지’ 못은 논밭을 기름지게 했다.
초등학교와 교회는 탱자나무 울타리의 사과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손만 뻗으면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었다. 고무공을 차고 놀던 아이들은 탱자나무 가시를 싫어 했고 사과향기의 유혹도 참아야 했다. 공 차는 아이는 사과밭집 소녀에게 장가 들고 싶었다.
사과잎 사이로 볼을 붉히며 살며시 익어가는 사과를 볼 때마다 "공 차는 아이들 사과같은 이들의 꿈은 자라고......"라며 흥얼거린다.
지금은 사과밭이 한 곳도 없다. 그 자리에 비닐하우스와 공장이 옛 풍경을 대신하고 있다. 그 많던 사과밭은 어디로 갔을까?
마을 동쪽은 국도 7호선이 무심히 지나가고 서쪽 끝으로 추억과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고 사라진 동해남부선의 흔적과 북쪽에는 동해고속도로의 남경주 IC가 마을을 뱀처럼 휘감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대구 능금은 어디로 갔을까?
「대구향토문화백과」에 따르면 대구가 사과로 유명하게 된 이유는 온도의 차이가 심한 기후조건과 자갈과 모래가 많은 충적 분지라는 재배 조건 때문이라 한다. 능금나무는 한국에 자생하는 야생 사과나무다. 능금은 사과 또는 능금을 뜻하는 중국어 ‘임금(林檎)’에서 비롯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상품성과 경제성을 갖춘 사과의 재배는 1905년 일본인들이 대구에 들어와 과수원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사과 묘목은 러시아계 사과 품종인 홍괴, 보리 사과로 불리는 축 등을 들여와 심었다. 재배 지역은 신천과 금호강 주변인 동인동, 상동, 중동, 평리동, 방촌, 동촌 등에서 경산, 영천, 달성, 칠곡 등 대구 인근의 경북지역까지 확대되었다.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사과가 ‘대구 능금’이 되었다. 1960년대부터 부르기 시작한 ‘사과’라는 명칭은 1980년대에 이르면서 일반적인 이름이 되었다.
능금 관련 노래인 「건전가요곡집」에 있는 ‘능금 노래’, 배호의 '능금빛 순정', 패티김이 부른 ‘능금꽃 피는 고향’을 들으면 능금과 대구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다.
1950년대는 “한국 명산(名産) 대구 능금, 능금 나라 경북, 품질은 세계 제일”이란 선전문을 만들어 보급했고 생산되는 사과 품종은 홍옥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국광과 축이었다..
1970년대 말에는 인도, 골덴, 후지 등의 새 품종이 중심을 이루었고 후지는 저장성과 단맛이 좋았다.
기후변화, 사과나무의 노후목화, 도시화와 산업화 등에 따라 사과 재배 지역은 경북지역으로 밀려났다. 위기에 빠진 대구 사과를 구하기 위해 술, 통조림, 주스 등 가공식품 개발에 주력하였고 사과의 신품종 보급, 능금아가씨 선발대회, 증산왕 선발대회 등을 비롯하여 사과 먹기, 사과 깎기, 품평회 등의 행사를 열기도 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대구 명품, 대구 특산품, 과일의 왕으로 상징되던 대구 능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과실의 생산성과 품질은 재배지의 환경조건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환경 요인 중 기후는 사과의 생육, 수량 및 과실의 품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과는 연평균 기온이 8~11℃, 생육기 평균기온이 15~18℃의 비교적 서늘한 기온에서 재배되는 온대 과수로 재배지는 생육에 필요한 적정 온도 범위, 재배 온도 한계 및 착색 등 고품질 과실 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기후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연평균기온, 생육기(4~10월) 평균기온, 성숙기(10월) 평균기온, 극최저기온 4가지를 기준으로 전 국토를 사과 재배 적지, 재배가능 하지, 저위생산지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0년당 0.2℃ 비율로 상승하여 기존 재배 적합 지역이 부적합으로, 부적합 지역이 적합으로 바뀌면서 사과 재배 지역이 이동하고 있다.
사과는 1990년대 이후로 재배지가 전국에서 경북지역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는 경북 북부지역,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 예산과 서산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지역으로 집중되었다. 반면 재배면적이 많았던 대구 인근지역의 면적은 많이 감소했다. 2020년에는 2010년과 대비하여 경북과 충북지역의 재배면적이 감소하고 강원도 전지역에 걸쳐 재배면적이 증가했으며 철원, 양구, 화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과 재배 지역이 북상하고 있으며 그 원인이 기후변화인 것을 알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에서 ''1인당 평균 인간 영향의 세 가지 요소(인구수, 자원소비량, 폐기물 생산량)가 꾸준히 증가하여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를 가져온다''라고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 후손은 결국 살기에 부적합한 세상을 만나게 될까?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는 주로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 인간 활동을 줄이면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다. 인간 활동을 줄이자는 것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개인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자는 것이다.
2024.11.23. 김주희
첫댓글 대구 능금이 이제 사라지고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날의 추억이 됩니다.
대구는사과의 고장인데
이제는 사과를 볼수없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