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기마병을 제압하는 기술
임흥주는 호통을 내질렀다.
[등패수들은 대원수를 보호하라! 이리 다가오라!]
이백육십 명의 등패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옛!]
그들은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위소보와 대신들 앞에 섰다. 위소보는 신발 목에서 비수를 뽑아들며 생각했다. (만약 나찰귀들이 정말 손을 쓰고자 한다면 모두들 한바탕 싸울 수밖에 없다.) 그는 서둘러 색액도 앞에 서며 부르짖었다.
[색형,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지켜 드리리다.]
색액도는 문관이라 이미 혼이 나갈 정도로 놀라서 말했다.
[모두······형제만 믿겠소.]
이때 십여 줄의 카자흐 기병들이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청나라 군사와 의 거리가 오 장쯤 되는 곳에 밀어닥쳤을 때 앞장을 선 대장이 기다란 칼로 허공을 내리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러자 기마병들은 가슴을 내 밀고 말을 세웠다. 이백육십 필의 말들이 동시에 그자리에 멈춰 섰다. 그 대장이 다시 호통을 내지르자 기마병들은 가운데서부터 두 패로 나 누어지더니 백삼십 필의 말을 탄 기마병들은 꺾어져 북쪽으로 향하였고 백삼십 명의 다른 기마병들은 남쪽을 향해 수십 장 달려가더니 원을 그 리면서 다시 천막과 이백여 장쯤 떨어진 곳에 말을 세웠는데 그 대열이 전혀 흩어지지 않았다. 이백육십 필의 인마는 그야말로 한 사람이 한 필의 말을 탄 듯해서 평소에 훈련을 잘 받은 정규병임을 알 수 있었다. 비요다라는 껄껄 웃으며 소리 높여 외쳤다.
[공작 대인, 그대가 보기에 우리 나찰 군사가 어떻습니까?]
위소보는 그가 기마병들을 내세워 시위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노기가 치솟아 크게 부르짖었다.
[말 잔등에서 잔나비를 갖고 노는 짓과 다름이 없군요. 진짜 싸우게 되 었을 때는 아무런 소용도 없겠는걸?]
비요다라는 노해 부르짖었다.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너의 코앞까지 달려들겠다. 그때 네가 도망치지 않나 보 자.) 그는 외쳤다.
[중국 군사의 모자를 다 베어 떨어뜨리도록 해라!]
카자흐 기마병의 대장은 즉시 명령을 내렸고 이백육십 명의 병마는 다 시 질풍같이 달려들었다. 위소보도 부르짖었다.
[말의 다리를 베어라!]
임흥주는 부르짖었다.
[명을 받겠습니다. 말의 다리는 베되 사람은 해치지 마라.]
그런데 말발굽소리가 우뢰와 같이 일어나는 가운데 이백육십 필이나 되 는 말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카자흐 기마병들의 커다란 칼은 태양 아래 번쩍번쩍 빛을 발했고 곧이어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는데 여 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임흥주는 부르짖었다.
[곤당도(滾堂刀) 진격!]
이백육십 명의 등패수들은 앞으로 달려나가 땅바닥에서 몸을 데구르르 굴렸다. 이들은 모두 다 임흥주가 친히 가르쳐 길러낸 지당도(地堂刀) 의 고수들이었으며 신법이나 도법에 있어서 모두 다 익숙해 적 앞으로 데구루루 굴러갈 때 등패로 몸을 보호했으며 조금도 칼을 드러 내지 않 았다. 카자흐 기마병들은 갑자기 청나라 군사가 땅바닥을 데구르르 굴 러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아극살 성을 지키던 군사들은 등패수에게 고통을 당한 적이 있지만 그들 군사들은 죽은 사람은 죽고 포로가 된 사람은 포로가 되어 이미 전군이 멸망한 터였다. 이 일대의 카자흐 기병들은 모스크바에서 비요다라를 호송하여 동쪽으로 온 터라 등패수들이 싸우는 방법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 같이 땅바닥을 뒹군다는 것은 너무나 우둔한 노릇이며 말발굽에 짓밟혀 도 남을 탓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삽시간에 첫번째 줄의 기마병들이 등패수들과 부딪치게 되었다. 별안간 말들이 일제히 울부짖는 가운데 다투어 쓰러졌다. 등패수들은 예리한 무기를 휘둘러 단번에 한두 필 말의 발을 잘라 버리고 등패로 몸을 보 호한 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른 말들의 발을 베어 갔다. 나찰병들 이 고함을 질렀고 말들은 울부짖었는데 그 가운데 등패수들은 이미 열 줄의 기마병들 밑으로 굴러 나갔고 백팔십여 개나 되는 말의 다리를 자 른 이후 카자흐 기마병들의 진 뒤에서 대오를 지었다. 임흥주는 등패수 들을 이끌고 재빨리 돌아와 위소보 앞에 줄을 세웠다. 이백육십 명 가 운데 십여 명이 말발굽에 밟히거나 쓰러지는 바람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 상처는 모두 가벼운 경상이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억지 로 아픔을 참고 여전히 대오를 짓고 서 있었다. 이백육십 명이나 되는 카자흐 기병들은 태반이 말에서 떨어졌고 어떤 사람들은 쓰러져서 땅바 닥에 타고 있던 말에 눌려 신음소리와 고함을 내질렀다. 오로지 수십 명만이 말을 몰아 멀리 피했고 대부분은 땅바닥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 랐다. 이들 기마병들은 한평생 말 등에서만 자라 왔고 말 등에 탔을 때 만 용감무쌍하게 싸웠으므로 두 발이 땅에 닿기만 하면 그야말로 물고 기가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의지할 데가 없어지고 마는 셈이었다. 위 소보는 부르짖었다.
[군사의 반을 나누어 나찰의 대관들을 둘러싸게!]
임흥주는 즉시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백 명의 등패수 들이 비요다라를 비롯 십여 명의 관원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백 자루나 되는 커다란 칼들이 하나의 칼로 이루어진 듯 테두리를 만들어서 칼날 이 안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만약 명령이 떨어지면 이 백 자루의 커다 란 칼은 일제히 밀고 들어갈 것이고 비요다라 등은 나찰의 피떡이 되고 말 것이다. 카자흐 기병의 정부대장은 이 모양을 보고 나는 듯 달려오 며 부르짖었다.
[사람을 찌르면 안 되오!]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친위병 복장을 하고 있는 쌍아에게 말했다.
[달려가서 그들의 혈도를 짚으시오!]
쌍아는 몸을 날려 달려나갔으며 나찰국 기병대 대장의 등뒤로 다가가서 손가락을 뻗쳐 그의 뒷허리의 혈도를 짚고 또다시 부대장의 혈도를 짚 었다. 그러자 한 명의 소대장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한 자루의 단 총을 꺼내 부르짖었다.
[꼼짝 마라!]
쌍아는 옆에 있는 한 명의 나찰병을 잡아서 앞에 세우고 그를 앞으로 밀며 나아갔다. 그 소대장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부르짖었다.
[꼼짝 마라!]
쌍아는 그 나찰병을 그에게 던졌다. 그 소대장은 놀라 몸을 날려 피하 려고 했다. 쌍아는 어느새 달려가서 그의 가슴팍과 허리에 있는 혈도를 짚고 손을 뻗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단총을 낚아채서 두 손으로 쥐고 하늘을 향해 꽝, 하고 한 방을 쏘았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잘한다. 쌍방에서 화기를 갖지 않기로 해놓고서 너희들 나찰귀들은 단 총을 지니고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다.]
그는 몇 걸음 다가서며 비요다라에게 말했다.
[이것 보시오! 그대는 수하인들에게 칼과 검을 던지고 모두 말에서 내 려 대오를 짓도록 하시오! 그리고 몸에 화기를 지닌 사람은 모두 꺼내 도록 하시오!]
비요다라는 항거할 수 없음을 알자 즉시 명령을 내렸다. 카자흐의 기마 병들은 칼과 검을 던지게 되었고 말에서 내려 대오를 지었다. 위소보는 이백육십 명의 등패수들로 하여금 사방에서 에워싸고 나찰병들의 몸을 수색하도록 했다. 이백육십 명의 몸에서 이백팔십여 자루나 되는 단총 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두 자루 씩 지니고 있었던 것이 다. 니포초 성 아래의 나찰병들은 이 같은 형세가 빚어지는 것을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동쪽의 청나라 군사들도 역시 원위치에서 앞으로 나 왔다. 두 나라 군사가 수백 걸음을 두고 진을 쳐 대립하게 되었다. 나 찰병들은 그들의 원수가 포위된 것을 보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을 뿐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위소보는 비요다라에게 물었다.
[후작 대인, 그대는 어째서 이 화기들을 가지고 왔소?]
비요다라는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매우 미안하게 되었소. 호위병들이 명령을 듣지 않고 암암리에 화기롤 가지고 왔구려. 돌아가면 무거운 벌을 내리도록 하겠소.]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등패수, 스스로 옷을 들추어 그대들이 화기를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 보여 주도록 해라!]
이백육십 명의 등패수들은 일제히 등패를 내려놓고 왼손으로 옷을 들췄 다. 그러나 오른손은 여전히 기다란 칼을 높이 쳐들어 상대편에서 이상 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여러 사람들은 옷자락을 풀어헤치 고 가슴을 드러낸 채 몇 번 뛰어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화기를 지닌 자 는 한 사람도 없었다. 비요다라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아무 소리도 하 지 못했다. 위소보는 나찰말로 고함을 질렀다.
[나찰 사람들은 매우 뻔뻔스럽구려. 그들의 옷과 바지도 벗겨 화기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보자꾸나!]
비요다라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공작 대인, 은혜를 베푸시오. 그대……그대가 만약 나의 바지를 벗긴 다면 나는……나는 자살할 수밖에 없소.] [바지는 반드시 벗겨야 하오.] [아무쪼록 한 번만 용서하시오. 다른 일은 모두 그대의 분부를 따르리 다.] [조금 전 그대의 기마병들이 달려들 때 나는 깜짝 놀라 탁자 밑으로 기 어들어가 공작 대인의 체면을 깡그리 잃게 되었소. 이 일을 어떻게 한 단 말이오?]
비요다라는 생각했다. (네 자신이 겁쟁이기 때문인데 내게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의 옆에 청나라 군사들이 날이 번쩍번쩍 빛나는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부득이 말했다.
[폐인이 기꺼이 손실을 배상해 드리리다.]
위소보는 흐뭇해져서 생각했다. (나를 뜯어잡수시오 하고 스스로 내미는 격이로구나!) 그러나 일시에 그에게 무엇으로 배상을 하라고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명령을 내렸다.
[나찰 대관과 병졸들의 허리띠를 모조리 자르게.]
등패수들은 크게 부르짖었다.
[영을 받들겠습니다.]
일제히 칼을 들어 나찰인의 허리에 끼우고 칼날을 바깥으로 해서 잡아 당기자 허리띠가 즉시 잘라졌다. 비요다라 이하 모든 나찰 사람들은 모 두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 두 손으로 바지를 꼭 잡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영을 내렸다.
[나찰 사람들을 압송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세.]
이때 나찰의 관병들이 모두 걱정하는 것은 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청나라 군사들이 미는 대로 조금도 저항 하지 않고 청나라 군사들을 따라 대오를 지어 동쪽으로 따라갔다. 동국 강은 웃었다.
[위 대원수의 묘기에 정말 탄복했소이다. 허리띠를 자른 것이 그야말로 삽시간에 이백육십 명이나 되는 나찰 관병들의 두 손을 모조리 뒤로 결 박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구려.]
위소보는 웃었다.
[나찰의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지를 벗기는 것입니다. 그러 나 나찰의 여인들은 정반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노릇이 아닙니 까?]
동국강 등은 씩 웃었다. 위소보 일행과 청나라 대군은 회합하게 되었고, 청나라 군중에서는 사 백여 포의 대포를 밀어 내어 위에 덮어두었던 베 조각을 제거한 후 대 포 입구가 나찰군 쪽을 향하도록 했다. 나찰국의 화기는 예리했으나 동 쪽으로 오자 이번에 싸울 것에 대비해서 준비를 한 강희의 청나라 군사 에 미칠 수가 없었다. 강희는 전국을 통틀어 모든 대포의 반수를 니포 초 전선에 배치했기 때문에 병력이나 화력에 있어서 청나라 군사가 몇 배 더 강했다. 나찰군은 갑자기 많은 수의 대포를 보자 모두 서로의 얼 굴을 쳐다보며 두려운 빛을 드러냈다. 나찰군을 거느리는 장관은 급히 영을 내려 나찰 군사를 성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성문을 닫았다. 청 나라 군사 역시 성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때 카자흐 기병의 대장, 부대장과 한 명의 소대장이 쌍아에게 혈도를 짚혀 여전히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나무로 깎은 듯이 빈 터에 서 있었다. 나찰의 여러 병사들은 니포초 성으로 들어갈 때는 서 둘렀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는데 성 위에서 이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하나같이 놀람과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 감히 나서서 구하려고 하지는 못했다. 반 시진이 흘러도 세 사람이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대대의 카자흐 기병들이 성을 나와 구 원하려고 했으나 십여 장 달려나왔을 때 청나라 군사 측에서 몇 발의 대포를 쏘아 대는 것이 아닌가? 성을 지키는 대장은 재빨리 호각수들에게 명하여 후퇴의 신호를 정하도 록 하여 그 한 떼의 기마병들을 불러 가고 말았다. 청나라 군사가 우르 르 성문으로 몰려온다면 성을 나온 구원병마저도 청나라 군사에게 잡힐 까 두려웠던 것이다. 성 위와 성 아래에서 두 나라 군사들은 멀찍이 서서 세 사람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기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청나라 군사들은 손뼉을 치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으며 나찰병들은 모두 다 아연해 했다. 위소보는 비요다라 일행을 중군장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손님과 주인으 로 나누어 앉게 했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비요다라는 노해 말했다.
[공작 대인, 그대는 나를 놀리려고 하지 마시오. 죽일 테면 어서 죽이 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나는 그대와 친구인데 어째서 그대를 죽인단 말이오? 우리는 국경선을 정하는 조건이나 담판합시다.]
그는 이때 상대방의 국경선을 의논하는 대신들이 이미 자기의 손아귀 안에 들어왔으니 자기가 어떤 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상대방은 거절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비요다라는 군인 출신으로 성격이 매우 굳건해서 가슴을 편 채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포로이지 국경선을 담판하려는 사절은 아니오. 내가 그대 의 위협 하에 놓여 있으니 어떠한 조건도 논할 수 없소. 설사 논하게 되고 수결을 쓴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효럭이 없소?] [모든 조건은 그대가 정할 것이니 무엇을 더 논하겠소? 그대는 나에게 그대와 담판하라고 핍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외다.] [어째서 그대를 핍박하여 담판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오?]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칼을 휘둘러 나를 죽이든가 충을 쏘아 나를 죽이고 싶으면 얼마든지 손을 쓰도록 하시오.] [만약에 내가 사람을 시켜 그대의 바지를 벗긴다면?]
비요다라는 크게 노해 벌떡 일어서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런데 그대라는 한 마디를 하였을 때 바지가 갑자기 아래로 내려가 급 히 손을 써서 잡아야 했다. 그의 허리띠가 이미 잘려 있었는데 의자에 앉자 손으로 잡을 필요가 없었고 그만 왈칵 화가 난 끝에 몸을 일으키 느라고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늦지 않게 손 을 썼기 때문에 추악한 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중군 장의 청나라 대관들과 시종들은 모두 다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비요다 라는 화가 나서 안색이 창백해졌으며 두 손으로 허리춤을 잡고 서 있었 는데 그 표정이 난감했다. 비요다라는 한차례 강개하고도 격앙된 말을 하고 싶었으나 두 손을 마구 휘둘러 상황을 도을 수 없는 고충이 있었 다. 아무리 강개하고 격앙된 말을 하더라도 그 기세에는 반드시 한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침을 뱉고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나찰국 사황 폐하의 흠차이니 그대들은 나를 모욕할 수 없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안심하시오. 나는 그대를 모욕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역시 국경선 정하는 것을 논하기로 합시다.]
비요다라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자기의 입을 막고 양쪽 끝을 머리 뒤쪽으로 돌려서 매듭을 지었다. 그 뜻은 아무리 말을 시켜도 담 판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친위병들에게 맛좋은 술과 안주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고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게 한 후 웃었다.
[자자, 드시오. 겸손해 할 것 없소!]
비요다라는 술과 안주의 향긋하고도 구수한 냄새를 맡자 손수건을 풀고 술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웃었다.
[후작께서는 또 입을 사용하시게 되었소?]
비요다라는 술과 안주만 먹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의 입은 그저 먹고 마시는 데 쓸 뿐 다른 데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 었다. 위소보는 끊임없이 술을 권했다. 그를 취하게 하면 굴복시킬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요다라는 십여 잔의 술을 마시고 몇 조각의 쇠고기를 집어먹더니 다시 수건으로 자기의 입을 싸맸다. 위 소보는 이와 같은 광경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친위병에게 명령하여 그 를 뒤에 있는 장막으로 안내하여 휴식하도록 하되 엄밀히 지켜보도록 지시했다. 위소보는 색액도, 동국강 등과 대책을 상의했다. 동국강은 말했다.
[그 사람이 그토록 굳건하니 결코 우리의 군중에서 평화희담을 하려고 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놓아준다는 것은 실로 아쉬운 감 이 없지 않소이다.]
색액도는 말했다.
[그를 여드레고 열흘이고 감금하여 매일같이 그의 앞에서 나찰귀들을 때려잡는다면 그가 버티겠소?]
동국강은 말했다.
[만약 그를 다그치다 죽이게 된다면 이번 일을 크게 그르치게 하는 것 이외다. 우리가 무력으로 상대방의 국경선을 정하고 평화회담을 위해서 보낸 대신들을 포로로 했다면 황상께서는 반드시 죄를 물으실 것이오.]
색액도도 찬성했다.
[동공 나리의 말씀도 옳습니다. 그를 상대로 강경한 수단을 쓴다는 것 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대신들은 한참 동안 상의했으나 별다른 뾰족한 방책이 없었다. 오늘은 비요다라를 잡아와 비록 승전을 거두었다고는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결코 화친을 하자는 황상의 본뜻이 아니니, 그야말로 이미 조정의 커다 란 계책을 어긴 셈이라 잘못 처리했다가는 성지를 어겼다는 중한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다. 나중에 이르러서 대신들은 하나같이 위소보에게 비요다라를 석방하도록 권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우리는 그를 하룻밤 억류했다가 내일 아침 놔주도록 합시다.]
그는 자기 침실인 장막으로 되돌아와 서성거리며 방책을 강구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먼젓번엔 제갈양이 불로 반사곡을 태우는 방법으로 아극살에서 대승리 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에 나는 다시 주유가 군영희에서 장간(莊幹)을 우롱하던 방법을 씨보자.)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위소보는 어느 정도 계책을 세울 수 있었다. 중 군장으로 돌아와 통역을 맡은 하란 선교사를 불러 한동안 그와 은밀히 계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이십여 마디의 나찰말을 가르쳐 정확하고 틀림없이 외우도록 했다. 그리고 난 후 네명의 장수와 친위병 의 대장을 불러와서 이러이러하라고 분부했다. 사람들은 명을 받고 나 갔다. 비요다라는 뒤쪽 장막에서 잠을 청하였는데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며, 한편 으로는 후회되기도 했고 한스럽기도 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야밤이 되었을 때 갑자기 장막 입구 쪽에서 우뢰 와 같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감시하던 세 명의 친위병이 놀랍게도 잠이 든 것이었다. 비요다라는 생각했다. (만약에 중국 오랑캐의 조건에 응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내일 그 꼬마가 성질을 부려 나를 죽이도록 만 든다면 그야말로 억울한 죽음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이 친위병들이 잠 들었으니 이때 도망치는 모험을 하지 않고 무얼 하겠는가?) 그는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침대 위에서 일어나 비스듬히 등에 걸치고 있던 혁대를 풀어서 허리에 감아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 후 가만 가만 장막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보니 친위병들은 장막의 기둥에 기 댄 채 매우 곤하게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손을 뻗쳐 한 명의 친위병 허리를 더듬어 그가 차고 있던 칼을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친위병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비요다라는 깜짝 놀라 급히 손을 멈추 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동정이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다른 한 명의 친위병이 차고 있는 칼을 뽑으려고 했다. 그때 그 친위병 역시 갑 자기 기지개를 켜며 잠꼬대를 해대는 것이 아닌가? 비요다라는 더 지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그머니 휘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장막 밖으로 나가자 그늘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이러저리 살펴보니 밖에 친위병들이 손에 등롱을 들고 칼을 든 채 순라를 돌고 있는데 북 쪽과 동쪽, 남쪽에는 순라를 도는 병졸이 있었으나 서쪽만은 어둠침침 한 것이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한걸음 두걸음 서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순라를 도는 병 졸이 가까이 다가오면 장막 뒤에 몸을 숨기곤 했다. 다행히 줄곧 서쪽 으로 나가는데 아무런 일도 없었다. 막 한 채의 커다란 장막을 지나게 되었을 때 갑자기 서쪽에서 한 떼의 순라병들이 걸어왔다. 비요다라는 재빨리 장막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이때 장막 안에서 소리가 들렸 는데 바로 나찰말이 아닌가! 그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작대인께서 모스크바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면 공격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길이 너무 멀어서 매우 위험합니다.]
비요다라는 깜짝 놀라 즉시 몸을 엎드려서 장막의 아래를 젖히고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만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장 막 안에는 등불이 대낮처럼 휘황하게 밝혀져 있었으며 위소보는 전신에 대원수의 옷차림을 한 채 한복판에 앉아 있었고 양쪽에는 십여 명이나 되는 대장수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장막의 아래 쪽에 수십 명의 친위 병이 손에 큰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위소보의 탁자 옆에는 바로 통역을 하던 그 하란의 선교사가 서서 위소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위소 보는 나찰말로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비요다라와 술을 마시며 한두 달 지껄이는 것은 모두 가 가짜요. 그 동안 대군은 몰래 서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오. 나찰 공주는 수시로 비요다라의 엉터리 보고를 접하게 될 것이고 물론 그 내 용은 우리와 담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오. 그러면 그녀는 아무것도 두 려워하지 않고 매일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고 잠을 잘 것이오. 이때 중국의 대군이 별안간 모스크바 성 아래에 도달하여 공격을 해서 두 사황과 소비아 공주를 잡아 버린단 말이오. 그러면 나찰 사람은 엎 드려서 울부짖으며 우리에게 투항할 것이오.]
그 하란의 선교사는 말했다.
[저는 군을 통솔하여 전쟁하는 일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나찰사람들과 한편으로 평화회담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사를 내보내 그들의 경성을 암습한다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천주님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소이다.] [하하하! 나찰 사람들이 먼저 사람을 속었소. 쌍방의 호위병들이 화기 를 지니지 않도록 하자고 해놓고 그들이 먼저 총을 감추었소. 그들이 속였으니 우리도 속이는 것이오. 그가 나를 한 번 물면 나는 그를 두 번 물 것이오.]
선교사는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바라옵건대 공작대인께서는 역시 싸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나 라가 싸움을 일으킨다면 죽는 것은 모두 천주님의 아들로······]
위소보는 손을 내저었다.
[더 말하지 마시오. 나는 보살을 믿지, 천주님은 믿지 않소. 그 비요다 라가 만약 공평하게 담판을 하고 중국이 좀더 넓은 땅을 차지하도록 한 다면 평화회담을 할 수가 있소. 그러나 그는 한 마장의 땅도 양보하려 고 하지 않소. 우리가 모스크바를 공격하여 점령한다면 나찰의 남자들 은 천당에 오르게 될 것이고 여자들은 중국 사람의 마누라가 될 것이 오.]
비요다라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말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중국의 오랑캐는 정말 대담하구나.) 이때 위소보가 다시 말했다.
[나는 오늘 한 명의 친위병을 보내 세 명의 카자흐 기병 대장의 몸을 손가락으로 몇 번 찌르도록 했소. 이 세 명의 대장은 꼼짝하지 못했는 데 그대는 보았소?] [저는 보았습니다. 그건 어떤 마술인데 그토록 이상야릇합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중국 마술이오. 징기스칸이 전수한 것이오. 징기스칸이 이 방법으로 나찰 사람을 공격하여 땅에 엎드려 투항토록 했소. 나는 이 방법을 사 용해서 그들을 치겠소. 나찰국은 다시 죽게 될 것이오.]
비요다라는 생각했다. (과거 몽고인은 이만 명의 인마로 흉아리까지 공격했으며 천하에서 그 들을 당할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아무래도 그들은 반드시 마술을 지니고 있었을 것 같다. 동방의 사람들은 이상야릇하기 짝이 없 고 그들은 또한 마술을 쓸 줄 아니 이걸······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때 그 선교사가 말했다.
[나찰 사람들이 멀리서 총을 쏜다면 그대들의 마술은 쓸모가 없게 되 오.]
위소보는 웃었다.
[그렇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반드시 이곳에서 담판을 하는 듯 가 장하고 군대는 모스크바를 치는데 그들은 도적들처럼 몰래 성으로 들어 가는 것이오. 나는 모스크바에 가보았는데 그곳에는 타타르 사람들이 무척 많았소. 우리의 군대는 타타르의 양떼를 치는 사람들처럼 가장해 서 성 안으로 숨어 들어가면 나찰의 수비군은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것 이오.]
비요다라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생각 했다. (이 중국 꼬마가 만들어 낸 계책은 정말 무섭기 짝이 없다. 중국의 군 사들이 타타르의 양치기로 가장하고 우리 경성으로 숨어 들어가 마술을 펼친다면 우리 나찰인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는 쌍아의 점혈수법이 일문의 고심한 무공으로써 반드시 내공이 상승 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청나라 군사들이 수만 명이 되었으나 점혈수법을 아는 사람은 그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비요다라는 이 마술을 모든 사람들이 쓸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이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한다면 상대방은 꼼짝할 수 없게 될 것인즉 수만이나 되는 중국 군사들이 이 방법으로 모스크바를 함락한다면 나찰은 아무래도 멸 망하고 멸종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때 그 선교사가 말했다.
[공작대인이 만약 이만의 중국군을 모스크바로 잠입시켜 징기스칸이 전 해 준 마술로 나찰군을 제압한다면 두 사황과 섭정 여왕을 포로로 잡는 것은 정말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비밀에 붙 여야 하며 대군이 서쪽으로 나갈 때 나찰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아야 합니다. 공작대인, 오늘 나찰군은 매우 강대하여 과거 징기스칸과 싸움 을 벌이던 나찰 사람들과는 크게 다르답니다.] [나는 모스크바에 가본 적이 있어 나찰국의 사정을 똑똑히 알고 있소. 내일 아침 일찍 비요다라를 놓아 보낸 다음 그와 담판을 할 것인데 모 두 가짜라서 그는 응낙하려 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이 곳에서 하루 더 담판을 하게 된다면 중국 대군은 하루의 노정만큼 모스크바와 더 가 까워지는 것이오.] [예, 예. 대인께서는 모든 점에서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이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알았소. 그대는 말을 내지 않도록 하시오. 비요다라 등에게 의심을 일 으켜서는 안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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