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기다리다
설현숙
장마 끝의 이른 새벽
바람이 오라는 대로 뜰로 나갔다
습기가 가득한 돌담 밑에 끝이 뾰족한 어린 호박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들거리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파란 잎들과 줄기 사이에 올라온 꽃봉오리, 꿈만 같았다
진짜 호박꽃봉오리 맞네! 맞아
얼마 전 할머니와 호박잎을 따고 빈 넝쿨을 버린 자리
그날은 햇볕이 무척 따가워서 말라 죽은 줄 알았는데
하야 뿌리가 하늘을 향한 채 꽃까지 피웠다
안타깝고 반가운 마음에 땅을 파고 뿌리를 묻어 주었다
자장가를 섞어 토닥토닥 다독여 주었다
꽃봉오리와 친구가 돈 뒤 날마다 뒤뜰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꽃봉오리가 노란 입속을 보이며 속삭였다
나비가 보고 싶어
(김포문학39호, 225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설현숙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예대학 수료.
[시향]
몇 해 전 일이다. 꽃모종을 사며 얻은 토마토 한 포기를 화단에 심었다. 그늘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던 토마토에 폭우가 쏟아지자 가차 없이 줄기가 부러졌다 그 때 토마토 줄기에서 나던 그 상큼한 향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부러진 가지를 땅에 내버려 두었는데 스스로 뿌리를 내려 토마토까지 맺는 걸 본 적 있다
여름철 찐 호박잎에 강된장 쌈을 싸 먹으면 어떤 반찬 못지않게 입맛이 살아난다장마가 끝날 무렵, 화자가 할머니와 함께 호박잎을 따낸 빈 넝쿨을 축축한 담벼락 아래 던져두었다 뙤약볕에 말라 죽었거니 생각했는데 파란 잎과 줄기 사이에 끝이 뾰족한 어린 호박꽃이 맺혔다 더구나 줄기 끝에는 하얀 뿌리까지 돋아나 있었다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화자는 뿌리 부분을 땅에 심어 주었다 그날부터 날마다 뒤뜰로 나가보았다. 어느 날 드디어 꽃봉오리가 입을 열었다 호박꽃에게도 사춘기가 왔을까? 꽃은 ‘나비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듯 노란 입을 벌리고 있다
글 : 박정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