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만들기
이번 산행에는 많은 회원들의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회장님, 그린랜드선배님, 알대장님, 댕기형, 애덥 등 총 5명의 회원이 참가했다. 산행후기를 누가 써야할지 자~암시 고민해본다. 보통 산행 후 상경할 때 회장님께서 특정회원을 지목해서 ‘이번 산행기는 네가 써라’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언급이 없으셔서 혼란이 생기는 게 아닐지... 그래서 산행후기 작성의 핑계를 만들어본다.
일단 회장님과 알대장은 회장단이다. 이 그룹에서 산행기를 쓰는 건 이례적인 케이스다. 요즘 들어 뉴스거리 제공자(이전에는 대부분 왕눈이형이 담당했던 역할^^)가 되신 알대장이 구구절절이 사고 경위를 설명해야 하는 지난번 산행기처럼 말이다. 또 그린랜드형님은 거의 고문급 이시고, 댕기형은 전날 잠을 많이 자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스타렉스차량을 운전하고 와서 고생 많았다. 그러면 의당 참가자 중 막내인 본인이 써야 하겠으나 이건 너무 밋밋해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향후에도 최연소자가 써야한다는 논란이 있을 것 같아서 핑계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다시 상고해보니 우리 산악회에서는 신참회원이 들어오면 산행기를 쓰게 하는 -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관례가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애덥이라는 회원이 산행에 참가한지 너무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다시 참가한 이번 산행에 신참의 경우에 준해서 산행기를 쓰도록 하자. 신참들은 통상 산행에 열심히 참가하니 그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많이 못 나왔었는데 향후 참석율을 높이겠다는 각오도 될 수 있으므로 이 핑계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가요?
멀어도 너~~무 먼 산행지
아침 7시 조금 지나 양재역 서초구민회관 근처에 다섯명이 모여 댕기형의 애마로 출발했다. ‘어디로 네비를 찍을까요?’라고 알형에게 물어서 내소사 주차장으로 잡으니 4시간 후 도착이란다. 경부를 타고 가다가 천안쯤에서 다른 고속도로를 탔고, 9시 20분경에 부여백제휴게소(운전하던 댕기형이 휴게소 네임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 ‘부여면 부여고 백제면 백제지...’)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댕기형에게 운전교대를 신청했으나 올라올 때 하라면서 계속 달려 내소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다. 알대장이 산행지도를 보더니 몇가지 코스를 얘기하다가 세봉-관음봉-내소사의 3각 코스로 일정을 잡고 직소폭포는 차를 타고 후면에서 다시 올라가는 방안을 말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근처 매점에 들러 물과 막걸리 두통을 사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눈이 호강하는 산행
내소사 입구 매표소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오른쪽으로 느티나무 식당도 있다. 식당과 산 사이로 길을 조금 지나 마을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어 회장님이 서너컷 촬영을 하신다. 일행은 느티나무 앞을 지나 80m 쯤 진행해서 좌측 탐방로로 산행을 시작했다. 들머리에 다시 단풍이 있어 나도 한 장 찍고 오르는데 처음 오르는 지점에 약간 경사가 있고 무엇보다도 워낙 오랜만에 산행에 참가하다보니 벌써 호흡이 가쁘다. 헉헉대면서 올라가는 중에 휴대폰이 울리는데 장인어른이다. 가끔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내게 전화하시는데 또 집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나보다. 오랜만에 산악회 등산에 참가했고, 내소사 뒷산이라고 했더니 어라! 너무 잘 아신다. 왼쪽인가 마당바위가 있고 너무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전에 다니던 산악회에서 여러번 다녀 가셨나보다. 하여간 조심해서 산행하라는 노인네의 당부를 약 5분간 들으며 일행을 따라갔다.
약 30분 정도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팀과 마주 쳤다. 앞에서 올라가던 선배들과 인사하면서 내려오던 사람들이 자기네는 천안에서 왔다면서 남은 막걸리 반병을 건네줘서 감사히 받아들고 계속 올라가 세봉삼거리 약간 못 미친 바위에서 자리를 잡고 모시송편과 은행알을 안주로 막걸리 두병을 비우는데 빗방울이 조금 떨어진다. 오늘 날씨는 변화무상한데 비가 계속 내리는게 아니어서 산행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듯하다.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내소사와 아직 단풍의 흔적이 많이 남은 관음봉 쪽의 내소사 뒷산, 앞쪽으로 멀리 보이는 곰소만의 갯벌 등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기가 막히게 좋다.
다시 좀 더 걸어 세봉에 오르니 410m로 그다지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조망이 꽤 좋다. 앞쪽은 곰소만이고 왼쪽으로 저수지와 겹쳐진 산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관음봉, 그리고 뒤쪽으로 새만금까지 보인다. 일행은 올라오느라 가쁜 숨을 잠시 고르고 세봉삼거리 이정표 앞에서 다른 여자등산객에게 부탁해서 단체사진을 찍고 관음봉 쪽으로 출발했다.
이산은 흙이 별로 없는 바위산이고 그 바위도 크거나 작거나 모두 시루떡을 세로로 세워 놓은 것처럼 켜켜이 층이 져서 갈라져있다. 이 바위를 보고 속리산의 박석티를 생각해본다.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꿈에 문종비가 나타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서 생겼다는 피부병이 상당기간 지속된 세조가 요양차 속리산에 행차할 때 어가 행렬이 편안히 갈 수 있도록 깔았다는 포장재-박석. 이런 종류의 돌이었으면 작업하기 수월하지 않았겠냐는 도무지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어쨌든 이곳 산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돌들이 갈라지고 조각난 것이 많아 걷기에 편한 길을 아닌듯하고, 봉우리나 능선을 넘으면서 긴장감을 주는 곳도 조금 있었는데 위험한 곳은 로프나 철봉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제일 높은 해발 424m의 관음봉에 도착하니 벤치가 설치되어 쉬어가기 좋은 환경이다. 옆의 팀에서 복분자주를 돌리는 걸 보고 군침을 흘리다가 남은 막걸리 반병을 마실까 생각했으나 바람에 금새 땀이 식어 단념하고 내소사 방향으로 내려가려는데 알대장께서 날씨가 개이고 있으니 5분만 있다가 내려가잔다. 과연 맑아지던 날씨가 더 좋아져서 양사방의 전망이 너무 좋다. 그린랜드형님과 회장님이 ‘오늘 눈이 호강하는구만’이라고 찬탄하신다. 해안절경과 내륙비경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변산이라더니 산은 산대로 앞으로 보이는 곰소만, 뒤로 멀리 보이는 새만금방조제까지 바다는 바다대로 일류의 풍광을 선사한다.
천년사찰 내소사
관음봉에서 내소사로 내려오는 길은 세봉으로 오르는 길보다 험한듯하다. 철봉을 잡고 두사람이 겨우 비켜서 지나가는 길이 몇 군데 있는데 한참을 더 가서 돌아보면 절벽과 그 아래 절벽 사이에 난 길임을 볼 수 있다. 내려오면서 보니 이쪽으로 올라가서 세봉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도 좋을 듯하다. 오르락내리락 하산을 재촉하여 내소사로 들어서니 먼저 반기는 것이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둘레가 7~8m가 되는 거목이다. 그 앞에서 사진(아주 잠시 행방불명된 댕기 제외) 촬영을 하고 대웅전을 올려다본다. 절을 설명하는 현판에 백제 무슨 왕 때 창건된 절이라고 쓰여 있어 따져보니 약 1,500년쯤 된 것 같다. 절의 명칭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와서 소래사(蘇來寺)라고 했다가 래소사(來蘇寺)로 바꿨다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건지 모르겠당... 또 하나 이 절의 특색은 사찰의 건물마다 하는 화려한 단청을 거의 하지 않아 고풍스런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관음봉에서 절의 옆구리로 바로 내려와서 절의 입구 매표소에서 받는 입장료를 낼 수 없었기에 일행은 짧은 관람을 하고 입구로 나가는데 양옆의 전나무 길이 또한 환상이다. 전나무 향이 그윽한 꽤 긴 진입로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려와 출발지인 주차장에 원대복귀하는데 좌우 식당가에서 호객행위가 많다. 아침식사로 라면을 먹었고 산위에서 송편과 막걸리를 마시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시장했던 일행은 양쪽에서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댕기형의 애마에 올랐다.
입이 행복한 시간
어디로 갈지 알형에게 물으니 모항이라고 대답한다. 네비를 찍으니 약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모항으로 가면서 도로 왼쪽에 조개구이 등을 파는 식당들이 몇군데 있었는데 일단 모항에 가서 찾아보자고 해서 모항으로 갔으나 먹을 데가 별로 마땅하지 않다. 다시 차를 돌려 조금 전에 봤던 곳으로 되돌아가서 은자네 식당에 자리 잡고 멍게, 조개찜(사진 참조) 등을 주문했다. 메인 메뉴는 조개찜인데 조개구이와는 다른 맛이 있다. 조개찜에 포함되는 홍합에 관한 강의를 그린랜드형님께 들었고(우리 조개찜에는 홍합 제외) 올라가는 운전을 내가 하기로 했기에 네 분이 소주와 막걸리를 드셨고, 마지막에는 조개찜 국물에 칼국수도 넣어 먹고 바지락죽도 맛있게, 또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이 저녁식사는 그린랜드형님께서 내셨다.)
덧붙임
개인적으로 오랜만의 산행인데(그린랜드형님께서 6개월만에 나오셨다고 미안해 하셨는데 1년반 만에 나온 난 정체를 숨기고 가만히 있었다.^^) 다소 아담한 인원이 산행을 했다.
전날 P/T(이 말이 뜻하는 바를 한참동안 서로 얘기했었다)를 심하게 하셔서 컨디션이 별로였던 회장님,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 아침부터 아스피린 구입을 위해 노력하셨는데 결국 구입하지 못해 고통스러우셨을 그린랜드형님, 최근 두어번의 산행에서 일으킨 사고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알대장님, 부족한 잠에도 차를 몰고 와서 운전까지 한 댕기형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그리고 제 아호를 바꿀까합니다. 2006년 카페에 가입하면서 닉네임을 쓰라는데 별생각 없이 그 당시 다니던 회사명(AD-UP)을 쓴 것인데 현재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닉네임인 ‘노들강’으로 바꿀까합니다. ‘쟤는 또 누구야?’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립니다.
첫댓글 수고했다.. 노들강^^
그래,수고많았다.노들강아~~이름을 바꾸면 자꾸 불러줘야 해.^^
노들강의 필력도 역시 역시 만만치 않구먼. 재미있게 산행기 읽었고 특히 오랜만에 산행 참가해서 산행기를 쓰는,본인 스스로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었을 법한 글의 첫머리를 센스있게 풀어나가 좋았다.
수고했다.노들강아~~~
헌데...
지난 달 미천골 산행사진과 이번달 산행 사진은 우째 안 올린다냐.
멍게야 산행앨범에 미천골 사진 좀 올려라. 형님은 그쪽만 쳐다보신다. ㅋㅋ
산행기 쓴 노들강과 이 글 읽으신 분들에게 선물 하나.
http://cafe.daum.net/truepicture/Qt7/958296?svc=live_story&q=%C0%AF%B3%D7%BD%BA%C4%DA+%BE%C6%C7%C1%B8%AE%C4%AB
노들강이라고, 그건 유명한 술집 이름인데...ㅋㅋ 암튼 산행기를 알아서 올리는자세, 아주 바람직하네...그리고 그날 올라올 때 운전하느라고 수고했다. 술 한잔 더 했어야 하는데, 다들 쌀쌀한 바람에 휑하니 각자 집으로 해버려서 미안타~~. 그리고 어려운 시험 합격 축하하고, 미래를 위한 여러 준비 중 한 가지를 마련했다는 점은 기록할 만. 내변산 산행 예상외로 좋아서 다행이야. 몸이 말을 안들어서(이전에도 잘 들은 적은 별로 없지만) 나름 고생했지만 풍광이 주는 상쾌함이 무거움을 다 날렸지. 근데 미천골 사진은 올라갔지 않나...
노들강 가고 싶다. 먹고 싶다.
논현동에 있는 민어회 잘하는 술집 이름입니다. 거기도 자주 갔었고, 저희 집에서 동쪽으로 가려면 88이나 노들길을 많이 이용하기에 붙인겁니다.
다른 사진은 안 들어오고, 조개찜 사진만...^^
노들강, 산행기 잘 읽었다요.^^
노들강아. 내가 왜 노들강을 모르겠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민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