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쿠바를 처음 갔다.
멕시코 칸쿤에서 아바나행 비행기를 탔다.
사금이 콩닥거렸다.
그쪽 작가예술인동맹(UNEAC) 초청으로 우리 작가 다섯과 동행 취재 길이었다.
혁명고아장에서 봤던 체 게바라 얼굴 그림이 아직 생생하다.
내무부 외벽에 체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목탄으로 굵게 특징을 잡아 그린 듯 실루엣이 붕 떠 있었다.
밑에는 스페인어로 '아스타 라 빅토리아 시엠프레'라고 휘갈겼다.
이튿날 쿠바 작가들과 무릎을 맞댔다.
소설가 이청준이 먼저 입을 뗐다.
"쿠바와 한국은 먼 나라였다. 이 자리가 문화적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기념비가 됐으면 한다."
작가 페르난데스가 맞받았다.
"이 선생은 두 나라가 멀다고 했는데 안 그렇다."
그는 "한국 작품을 읽어보니 역시 사람은 똑같았다"고 했다.
쿠바는 경제가 안 좋았다.
우리가 좀 우쭐했던가 싶다.
지금은 한 해 한국인 5000명이 들르는 곳이다.
그떈 가기 어려운 곳이라 '기념비'라도 된 기분이었다.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를 넘는 適對를 끝내고 관계를 트기로 했다.
우선 정치범부터 서로 풀어줬다.
테러 지원국 해제, 이민 협상이 다음 순서다.
새해엔 대사관도 열고 정상들이 오갈 모양이다.
학창 때 배운 쿠바는 케네디가 1962년 미사일 위기로 맞짱을 뜬 소련의 교두보였다.
김일성을 "내 둘도 없는 벗"이라고 했다던 턱수염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때문에 신음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결국 영원한 적은 없나 보다.
쿠바 문학에는 스페인풍 사실주의에 인디오와 흑인의 세계가 녹아들었다.
그렇게 섞인 상상력이 마술적 기법으로 발전했다.
피카소 그림을 닮았다.
유럽 주인공이 중남미 얼굴을 한 느낌이었다.
그떄도 아바나는 평양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작가 로드리게스가 했던 농담이 떠오른다.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다.
거리에서 카스트로에게 욕을 실컷 퍼붓고 끝에 가서 투덜댄다.
'빌어먹을 나라, 말할 자유가 있어야 살지'."
헤밍웨이는 아바나에 7년을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럼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러 카페 라보데기타에 자주 들렀다.
한국 여행객이 그 자취를 더듬는다.
쿠바 노익장 밴드 부에 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한국 팬이 더 열광한다.
그쪽 한류 열풍도 뜨겁다.
우리 드라마 시청률이 70%를 넘긴다.
교역은 3억달러를 웃돈 해도 있다.
"수교를 안 맺은 게 외려 비정상 같다"고들 한다.
체가 살아있다면 누가 '영원한 승리'를 거뒀다고 할지 궁금하다.
김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