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5:22~27
<‘왜’가 아닌 ‘어떻게’로 변하는 추수감사>
한 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엘림을 차지하는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추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늘의 양식이 내게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 추수감사 예배드리는 그 시간까지 여러분의 모든 영역에 하늘 양식이 충만히 내려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나올 때 어린아이를 제외한 장정만 60만이었고 그의 가족들이 평균 3.5명으로 치면 대략 210만명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들이 애굽을 나와 홍해 바다 앞에 진을 칠 때는 애굽을 나온 지 이틀째고,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그들 뒤에 다다랐을 때는 이틀째 저녁입니다.
이처럼 밤낮으로 홍해 바다를 향해 사막 길을 걸어 이튿날 오후쯤 바다와 믹돌 사이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바로의 군대를 보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모세에게 원망합니다.“애굽이 장지가 없어서 우리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였느냐?”<아닌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해 ‘왜’가 아닌 ‘어떻게’ 라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리고 홍해를 체험한 이들이 3일 사막 길을 걸어 마라에 도착했을 때도 ‘왜’가 아닌 ‘어떻게’ 라는 생각이 앞섰다면, 이들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들은 언제나 ‘왜’가 앞섰습니다. “왜 이곳으로 인도하여, 왜 이곳에 장막을 쳐서”. 우리는 이들처럼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만 외치던 이들은 현재 상황의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 경험을 잊어버리고 위기 앞에서,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원하던 것이 아닐 때, 사람들을 선동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핍박하고, 자신들의 지도자의 자리에서 쫓아내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참 실망적인 모습이죠. 이들 안에는 레위기의 ‘나는 너희에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하신 그 하나님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감사는 사라진 채, 원망만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감사가 사라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려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럴 때 어떤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문제에 부딪히게 하시는 분도, 해결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이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부터 오늘 본문의 마라까지 6일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건넌 후 3일 만에 감사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지속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비하고 도전했던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바라던 일이 정반대로 되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데 다른 이들(불신자, 신앙인인 동료, 친구)의 일들은 매우 잘 풀리고 잘될 때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여전히 나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고, 지난 모든 순간과 앞으로 겪게 될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해주시고, 내게 지극히 큰 상급으로 채우시고, 아나파우오(쉼)를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할 때, 감사가 되고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나의 주님이 되시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면 이런 고백은 예수로 사는 사람 누구나 가능합니다.
이 정도 했으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 같을 때:
빈손, 있던 것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때, 희망이 무너질 때 그러나 이때도 주시는 이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 빈 곳을 만드시는 이도, 비어있는 곳을 채워 주시는 이도 하나님, 풍족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목자입니다.’ 라고 믿고 고백할 때, 감사가 되고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대대로 잘 되다가 모든 것이 한 순간 사라질 때:
한 달 동안 열심을 다해 믿음으로 살았는데 결과는 돈도 부족하고, 이곳저곳에 채우다 보니 생활할 돈이 없을 때, 이제 좀 나아질 것 같았는데 결과는 더 최악일 때(실망해서 ‘왜 이러시나요? 하나님’ 하며 감사가 아닌 원망만 나오게 됨) 그러나 이때도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며, 항상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는 나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믿어지고, 고백 될 때 감사가 되고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 사역에서 눈의 시력을 잃어갈 때 경험}
선의로,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대했는데 칼과 창과 총으로 나를 후벼 팔 때:
<배신감으로 미움이 가득할 때 이때는 도저히 사랑이 자리 잡을 수 없기에 감사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이때도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이 내 이름 불러 주실 것을 알고 믿어지기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되면 감사가 되고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감사를 길게 지속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어떤 일의 실망과 좌절에도, 성공에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위기의 순간마다 일이 잘 풀려나가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상황일 때,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된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마음에 두 가지가 변하지 않고, 기초가 되고, 출발점이 되고, 과정과 결과가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며 아버지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목자라는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 75명이었습니다. 이 숫자가 대략 210만 명으로 불어나기까지 이들은 애굽에서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등극할 때부터 노예로 살았지만, 그 전에 이들은 애굽 왕의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부를 축척했을 것이고, 고센 땅이라는 목초지에서 풍요롭게 살며 애굽이라는 나라가 두려워할 만큼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400년의 종살이 후, 애굽을 나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는 그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홍해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애급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몸소 보고, 느끼고, 체험한지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나안을 꿈꾸는 것은 자다가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감사도 잠깐이었습니다. 바로 왕이 전차 600대를 소집해 쫓아 온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행복한 땅에서 살아가는 꿈과 희망은 한순간 무너지고 감사도 흔적 없이 사라졌죠! 출애굽 후에 처음으로 겪게 되는 위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지 못하고 원망합니다.
홍해를 메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의 환의에 찬 감사가 물이 없는 3일간의 걸음과 심한 갈증으로 인해, 마라의 쓴물 앞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그들의 감사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 마라 앞에 엘림의 풍요를 준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알았다면 마라의 쓴물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감사가 되었겠죠!
우리들이 성경을 보며 깨달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 안에는 항상 하나님의 풍요의 축복인 엘림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힘든 고난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원망을 반복할 때가 많이 있죠. 이런 마음을 이제 고난의 힘든 일들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편에 서있어야 할까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지를 찾는 마음으로 자리 잡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계시는 엘림에 도착하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에서 엘림까지의 거리가 20킬로미터입니다. 2시간이면 갈 거리이죠. 늦어도 210만명 정도가 반나절을 더 걸으면 도착할 거리에 하나님은 물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3일의 고단함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나절 앞에 있는 엘림을 보지 못하고 원망만 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왜 쓴 물이라 할지라도 마라에서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한 걸까요? 이런 행동의 모습이 우리들의 기도에, 신앙생활에 묻어 있지는 않습니까?
고난에 빠져 있을 때 감사가 아닌 원망이 나오는 것은 내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고, 눈에 보이는 것과, 지금 처해있는 환경이 전부라고 여기는 무지함 때문입니다. 항상 고난과 어려움 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엘림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감사로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도 감사하면, 살기 위해 도망자, 정신병자 연기를 해야 했던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 되시고,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실 분이심을 믿고 확신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고난 중에도 견딜 수 있는 물과 떡과 고기를 공급하셔서 그 시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심을 믿고, 느끼고 알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언제나 나를 엘림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023년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는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처해있는 형편은 다 다르지만 동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주향기교회 성도님들에게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엘림과 같은 좋은 것으로 준비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의 시간이 1시간, 하루, 한 주, 한 달, 6개월, 1년, 5년, 10년일 수도 있고, 각자가 엘림에 가는 길의 거리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성도님들이 엘림에 도착하여 풍요를 누리는 아나파우오(쉼)을 주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엘림에 도착하려면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응답해 주신 것도 감사, 거절하신 것도 감사, 건강을 주신 것도 감사, 건강이 무너져 느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진 것도 감사, 돈을 주신 것도 감사, 돈이 부족한 것도 감사, 좋든, 나쁘든 항상 결론은 하나님 품으로 끝나는 속삭임이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되고, 슬픔과 원망의 소리와 좌절의 소리로 시작했어도 끝은 언제나 ‘여전히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며, 나의 목자이심을 감사드립니다.’ 라는 믿음의 소리가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입으로 고백되어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향기로 물든 채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로 사는 인생’ 찬양하심으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항상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나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하는 속삭임의 마음으로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