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동터오기전의 회식..새벽녘의 종로를 보신분 계신지..
정말 우리 팀장님 말마따나 '종로'같지가 않더군요..
사람 하나 뵈지않고 그나마 몇몇 무리들은 밤새워 술과 싸우신 분들인지라 초췌하기 그지없고 밤새 일하고 간 우리들 역시 꾀죄죄..
거리엔 전단지들 쓰레기들만 날리우는것이 어릴적 본 제목이 생각안나 한동안 절 애태우던 공포영화의 전염병 돌아 폐허가된 마을의 풍경처럼 을씨년스런것이..그 화려하고 젊음이 넘친다는 사람 역시 넘치다 못해 밟힐 지경인 오후이후 밤풍경과는 매우 다르더군요..
자리잡기 무섭게 가방들고 화장실가 세수하고 화장하고..술 마실 준비마치고 구석자리로 스며들어 맥주로 시작..배만 부르고 밍밍한 것이 안되겠다 싶어 연장자 언니를 은근히 꼬득여 비싼 매취순을 시키기 시작하더니만 한병더! 두병더! 를 외치고..2차로 노래방까지 가서는 역시나 그 이름도 제조사도 확실치 않은 알콜은 대체 들어있기나 한건지 싶은 노래방표 맥주를 서너 아니 일고여덟캔 마시고..그러고도 말짱한 빌어먹을 내 정신..그리곤 그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결근을 했습니다..
내 인생의 첫 결근 아니 결석은 내 인생의 모든 불행이 다 그렇듯 역시 그사람으로 인해 시작됐었죠..
그사람 처음 만난 구십사년팔월 이후 어느날..그사람 내게 준 첫선물 신경숙님의 '풍금이 있던 자리' 그 책을 국사시간에 읽다가 선생에게 빼앗기고 종일 울다 친구의 바다보러가잔 말에 바로 가방 싸들고 기차타고선..그날 결석했지요..구십사년팔월 이후의 모든 불행과 방황과 절망들은 다 그사람 때문..그사람이 내겐 나쁜놈인데..
오늘 출근하기 무섭게 사유서 제출하고 당분간 내게 쉬는날이란 없게됐습니다..먹구산다는게 뭐인지..그사람 결혼한다는데 이렇게 회사 짤릴까 걱정하고 밥먹고 잠자고 웃고 얘기하고 이런 내가 참 참 치욕스럽네요..
몇년전 유행한 멸치만한 물고기 한마리 넣은 손바닥만한 어항을 컴퓨터모니터나 텔레비젼 위에 올려놓았었죠..우리집에도 있었는데 어느날 밤 문득 항상 그렇듯 문득 그 물고기를 보는데 참 불쌍타 싶다가는 눈물 똑 똑 떨어지더니 '치욕스럽다'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저 좁은 세상에 갇혀서는 저게 전부인줄 알고는 거기서 제 모든걸 다 바치는..고 안에서 빙 빙 도는것이 유일하게 주어진 운명..저렇게도 죽지 않고 사는구나..죽음에의 마지막 의욕조차 상실한채..그저 빙 빙 돌면서..
그사람이 날 치욕스럽게 만들었죠..그사람이 내겐 차마 잔인하게스리 죽이지도 않는 독약인것을..
두번째 내 쓰잘떼기없는얘기에 지유선님(?기억력이 별로라서 맞는가..)이 팩소주 하자 글 남겨주신거 보구선 정말 위로됐어요..그저 술 마시자면 다 좋은사람같고 내편같고 동지같고 좋아라 하죠..술 얘길하니..또..
그사람때문에 열여덟에 알콜중독 폐인으로 불려졌는데 결국 그사람 나 술마셔서 버린게 아닌가 싶고..
마지막날..우리동네 파전집서 만났죠..비가 오는데 그사람 우산이 없었고..배고프다길래 김밥 먹이고 슬슬 눈치보며 술 마시자 꼬셨는데..그날 그 파전집엔 아저씨들만 수두룩..모두가 한쪽벽면 꼭대기에 매달린 15인치텔레비젼을 보고있었죠..왕초란 드라마였는데 그사람도 역시 나에게서 고갤 돌린채 왕초를 열심히 보는..난 그사람의 뒷모습만 보는..얼마나 마셨던가 시계를보니 12시..내가 12까지 집에 보내주겠다 약속했으니 가라고..그사람 아주 약간의 망설이는 몸짓하다가 일어나는데 난 겨우 한다는말이 우산가져가라고 난 집 가까우니 괜찮다고..그사람 내 우산들고 나가는데..설마 문밖에 몇분 서있다 데릴러 들어오겠지 나 기다리고 있겠지 했는데..결국 만취해 울고 울다가 술값도 모자라 주인아줌마께 애원하다 나와보니 그사람 흔적도 없고 비만 주룩주룩..그날 길을 잃어버리고 새벽녘 비에 젖고 눈물에 범벅이 되어..그리곤..못봤어요..구십구년 봄이었는데..
정말 내 일기장이네요..아무도 못볼거란 믿음하에 주절주절..
일하다 끄적 또 일하다 끄적 화장실갔다와 끄적 담배 피고와 끄적..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내려왔네요..'오기'로 여기까지 오셨다면 죄송..
아직도 밖은 어둠이 갈 생각 않고 있지만 퇴근시간 다가오니 다시 이성이란걸 찾긴 하는지 내가 주절댄 말들 어쩌나 걱정스럽네요..
정류장 언제가나..올해안에 꼭 갑니다..아 투표도 꼭 할겁니다..
비록 누가 누군지 아직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