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정치: 그리스도인을 위한 한국정치사 읽기>>는 재미정치학자인 박문규 전 캘리포니아인터내셔널대학(CIU)학장이 올해 4월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인 <<뜻으로 본 한국정치>>는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한헌사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함석헌 선생이 저자에게 미친 기독교적 정치/역사관의 영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이책은 저자가 1999년에 출간한 <<민족의 상처, 민족의 소망>>과 2008년에 출간한 <<뜻으로 본 한국정치>>의 개정증보판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약 70여 년의 시기를 한국근현대사라는 씨줄과 정치, 경제, 사회, 기독교적 해석이라는 날줄로 엮었다. 이러한 작업은 어느 특정 학문분야나 시대에만 정통해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데 이 작업을 뛰어난통찰력과 더불어 (저자는 주관적 해석이라고 강조하지만) 객관적으로 훌륭하게 분석해 낸 것만 봐도 정치학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저자의 수 십년에 걸친 실천적 고민과 학문적 성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적 시각에서 쓰여진 많은 편향된 한국정치사에 대한 저서들과 달리) 남북한 정권이나 역대 한국정부에 대한 분석에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최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해방 정국 당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등 남한 정치지도자들의 성과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함과 동시에, 김일성, 박헌영을 비롯한 당시 북한지도자들의 성과와 한계도 같은 잣대로 서술한다. 해방 정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분기점으로 작용했던 친일파 숙청, 토지개혁, 신탁통치 등에 대한 객관적 서술과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 남긴 상흔과 이 상흔이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남긴 영향력에 대한 분석도 매우 객관적이며 탁월하다.
이후 이승만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비판은 필자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매우 논리적이며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주장과 비판들이었다. 먼저 저자는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정권의 실패 원인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면서 전혀 민주주의적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78쪽), 이승만이 기독교인이면서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웠다고 자처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민주주의를 수립해야겠다는 의지도, 민주적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마음 가짐도 전혀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지킨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 (87쪽)”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 근대사의 꽃’이자 ‘민의와 함께 폭발한 공의’인 1960년 4월 혁명이 시대적 상황에 따른 여러 한계와 민주당 정권의무능과 분열로 인해 좌절되고 결국 5.16 군사쿠테타로 이어진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한다. 특히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왜곡된경제성장 정책을 채택한 박정희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매우 엄정해서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될 수 없다 (140쪽)”고 주장한다.
저자는 “박정희의 사망으로 민주화가 되리라고 믿었던 국민들의 기대는 1979년 12.12 쿠데타로 부도 직전에 이르렀(으며)… 완전히 부도가 난 것은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일당이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김대중을 내란 혐의로, 김종필을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한 때(였고)… 1979년 12월 12일 이후 1980년 5.18 광주 시민전쟁 때까지의 기간은 전두환 집단에게는 정권찬탈의 명분을 쌓고 기회를 포착하는 시기였고, 국민들에게는 민주화의 헛된 꿈을 꾸던 허망의 시기였다 (187쪽)”고 주장한다.
야만과 폭압의 전두환 정권은 6월항쟁으로 무너지고 노태우 정권이 등장한다. 저자는 노태우 정권을 ‘사기정권’이라고 정의한다. 노태우 정권은 6.29 선언이라는 속임수를 통해 등장했으며, 직선제 헌법과 3당합당 모두 정치적 속임수였다는 것이다. 더나아가 “노태우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전두환의 제5공화국과 자신의 정부를 차별화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애초부터 속임수였고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224쪽)”고 주장한다. 한편, 저자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 공산권, 대 북한 화해정책이 가장 큰 업적이었으며 이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균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뜻으로 본 한국 정치"
김영상 정부에 대해서 저자는 김영삼이 노태우와 야합한 것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였지만 최초의 문민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영삼은 집권 초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숙청 등 많은 개혁을이루어내기도 했으나 집권 말기에는 개인적 자질의 한계와 정권의 도덕성 부재로 인해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된다. 저자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탄생한 정부이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화해와 평화로운 한반도를위한 최선의 정책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한편 오랜 야당 정치생활로 인한 관료와 가신 정치의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IMF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이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처했으며, 김대중 정부 말기의 지지율 하락은 그가 제대로 된 개혁정치를 펼치지 못했고 이로 인한 민심이반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에 오른 최초의 한국 정치인이었으며 노무현의 승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노무현 정권을 유사좌파 정권이라고 지칭한다. 노무현 정부가 출발과 더불어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추진 등 좌파성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4대 개혁입법을 통한 자유주의적 개혁마저 제대로 완수해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개신교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저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온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정치보복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4대강 사업 등 낭비성 토건사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무리하게 진행시켰으며, 대북강경노선으로 남북간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책적 이슈의 내용을 이해할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최고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무능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극우멘탈리티가 세월호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고 국정농단의 빌미롤 제공하면서 한국정치사 최초로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종국을 맞이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기독교적 시각에서 한국정치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기독교인 대통령이라고 무조건 지지하거나 비기독교인 대통령이라고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위해 독재정권과 야합하거나 그들의 폭정을 묵인했던 교회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한다. 이 책은 무엇이 기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둔 바람직한 정치적 태도인가에 대한 끊임 없는신앙적 고민과 진지한 학문적 성찰 끝에 얻은 하나의 소중한 결실이다. 특히 기독교인이면서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