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의 경계가 지나는 곳에 ‘식장산(食藏山)’이 있고, 이 경계를 남북으로 이어가는 산줄기를 ‘식장지맥’이라 한다.
이 식장산 동쪽 옥천군 군서면에 도토리키재기하듯 바글바글 난쟁이봉들이 흩어져 있다.
우리는 이 키작은 봉들 중에서 우선 여덟 봉을 꿰찬 뒤 차례로 오르기로 하였다.
등정 순서대로 나열하면 ‘말동산·성치산·향골산·두루봉산·노적봉·서성봉·앞산·마곡앞산’이다.
출처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지형도에는 ‘말동산’과 ‘성치산’만이 보이고, 나머지 봉들은 ‘카카오맵’에서 그 자취를 드러내고 있었다.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이곳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을 하기 위해선 성(城)을 쌓아야 했고, 또 말(馬)을 길러야 했다.
말동산에서 37번 국도 남쪽으로 20여km쯤 이동하면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가 있다.
여기가 옛날부터 말을 사고팔던 장터가 있었던 동네라서 ‘마전(馬田)’이라 불리었고, 계곡사이 널따란 평지엔 말을 기르기엔 최적지였다.
☞ 기자 趙甲濟의 세계: 백제 성왕의 마지막 이동경로
‘말동산(342m)’은 ‘성치산(城峙山 285.1m)’과 함께 ‘성치산성’이 있는 산이다.
잦은 전쟁으로 온 산이 말똥으로 덮혀있어 ‘말똥산’으로 불렸던지, 또는 산의 형세가 말똥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가 발음이 순화되어 ‘말동산’이 되었고, 한자화 하면 ‘마분산(馬糞山)’이 되는 셈.
따라서 ‘마곡앞산’은 ‘삼밭이 있는 골짜기(麻谷)’가 아니라 ‘말을 길렀던 골짜기(馬谷)’임이 명확해진다.
그곳엔 말을 길렀던 들판이라는 ‘마리들’과 ‘마고실’, 또 ‘마랑골’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향골산(250.7m)’은 은행리(銀杏里)와 관련한 이름인 ‘행곡산(杏谷山)’이 변한 듯하다.
카카오맵에 ‘서성골’ 위에 ‘형골’도 보이고 있으니 은행나무가 있는 골짜기 ‘행골(杏谷)’이 ‘향골’, 또는 형골‘이 된 듯하다.
‘두루봉산(258.1)’은 산세가 두루뭉술 ‘주봉(周峰)’으로도 불린 듯하나 등로도 마땅찮고 가파른 데다 산불까지 난 곳이어서 생략하였다.
‘노적봉(露積峰)’은 ‘노적가리’를 쌓은 듯하여 불리는 이름으로 ‘사양리’마을 앞에 있는 산이다.
‘서성봉(△235.9)’은 성(城) 서쪽에 있어 ‘西城峰’이라고 하였고, 그 골짜기를 ‘서성골’이라 부르고 있었다.
‘앞산(210.5)’은 ‘상중리(上中里)’ 앞에 있는 산이고, ‘마곡앞산(191.7)’은 하동리 마곡 앞에 있는 산이다.
산행코스: 은행리 상은마을회관-말동산-성치산-다람쥐고개-향골산-두루봉산(생략)-도로걷기-노적봉-석조각집-서성봉-임도고개-앞산-마곡앞산-하동리마을회관(약 10km,5시간)
궤적.
고도표.
8봉 중에서 '두루봉산'은 생략하였고, '麻谷앞산'이라 쓴 표지기를 걸었으나 '馬谷앞산'으로 정정해야 했다.
네비엔 '은행리 상은마을회관', 또는 '상은경로당'을 입력하여야 한다. <충북 옥천군 군서면 은행리 450-5>
대형버스가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음에도 우리 버스는 마을 입구에서 우리들을 풀어 놓았다.
◇ 원문보기 ☞ 김복현의 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