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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지는 약, 먹어볼래? | |
최하나 최하나 | |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R의 제안을 거절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집중력을 향상시켜 준다며 한창 유행을 타던 MC스퀘어 마저, 기계에 뇌파를 “조작” 당한다는 생각에 왠지 등골이 서늘해져 거부했던 나에겐 두뇌의 신경을 어떻게 자극하는 약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무시무시한 일이었기에. 하지만 궁금함은 계속 남았다. 그게 대체 무슨 약이기에?
미대학 캠퍼스 중심으로 불법 유통 일반화돼 스마트 드러그(Smart Drug). 미국에서 이른바 머리가 잘 돌아가게 해준다는 약들의 총칭이다. 이 중에서도 시험 기간에 대학생들의 손을 타는 약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데랄(Adderall)과 리탈린(Ritalin). 둘 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를 위해 처방되는 약으로,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집중력과 기억력 등 두뇌 활동 능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물론 두 약 모두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편법을 이용해 구하기란 어렵지 않은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보통 처방전이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약을 친구들에게 공짜로 베풀거나(?) 아니면 Craigslist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렇게 약을 구하지 못한 아이들이 ADHD 진단이 환자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취약점을 이용해, 증상을 거짓으로 꾸며내어 처방전을 받아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체 스마트 드러그라 불리는 이 약들의 효과란 어떤 것일까? 정말로 아데랄과 리탈린을 복용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것일까? 앞서 말한 친구 R의 열정적인 증언에 따르자면, 아데랄은 집중력을 기적처럼 높여준단다. 이전까지는 블랙베리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목적 없는 웹서핑에 시간을 흘려보내던 그녀가 아데랄을 먹으면서부터는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 앉아 “레이저 빔”처럼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고. R의 열변이 회의심 가득한 친구를 꼬드기기 위한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아데랄의 입소문을 하도 들어 호기심이 충천한 미국 한 기자가 자신의 체험기를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는 약을 먹기 이전의 상태를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아데랄을 먹으면서 그 안개가 말끔히 걷혔다는 이야기다. 그 효과가 얼마나 놀라웠던지, 몇 번이고 읽어도 끝을 내지 못했던 난해한 책을 앉은 자리에서 독파하고, 이전에는 아리송하기만 했던 퍼즐을 단박에 풀어냈다고 한다. 정말 효과가 이 정도라면,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약을 구하고 싶어 하는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변 아이들이 전부 아무렇지 않게 약을 털어 넣고 있다면 특히나 더.
집중력, 기억력 높여주는 효과 탁월하다지만… 물론 알려진 부작용도 적지 않다. 처방전 없이 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흔히 언급하는 것은 이른바 “jittery”한 느낌이라고 하는데, 설명하자면 빈속에 커피를 연거푸 마셨을 때처럼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고 심장이 들썩인다는 이야기다. 또 스마트 드러그는 입맛을 죽이고 불면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알려진 부분 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있다. 이 약들이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만큼, 장기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어떤 해답을 던져줄 만큼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파민 생성을 촉진하는 이 약들이 중독을 유발한다는 우려 또한 작지 않은데다가, 몇 년 전에는 아데랄을 복용한 사람들이 돌연사를 하는 경우가 발생해 캐나다 보건 당국에서 약의 판매를 일제 정지시키기도 했다. 처방전 없이 스마트 드러그를 먹는 이들은 그러니까 자신의 머리 뿐 아니라 생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스마트 드러그의 인기는 갈수록 치솟는 모양새다. 아데랄과 리탈린은 학점에 전전긍긍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감 스트레스에 밤낮으로 쪼이는 기자들의 세계에서도, 혹은 로펌을 위시해 Billable Hour(출근해 보내는 시간 가운데 직접적으로 업무에 사용되어 청구가 가능한 시간)의 압박이 심한 회사들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프로 체스나 포커 등 고도의 두뇌활동을 요구하는 경기 무대에서도 아데랄을 복용하는 선수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 이제는 아예 약물 검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미국에서 스마트 드러그의 촉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드물어 보인다.
어쩌면 스마트 드러그는 멀티태스킹 시대의 두뇌용 스테로이드다. 스마트 폰과 노트북으로 무장한 채 분초간격으로 이메일, 트위터 등을 체크하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는, 한 번에 인터넷 창 수개와 메신저를 띄워놓고 이리저리 널을 뛰는 것이 일상적인 지금의 디지털 세대에게 주의를 분산하지 않고 하나의 일에 오롯이 집중하는 능력만큼 부족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아데랄과 리탈린과 같은 약이 점점 통용되고 있는 것은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또 사실 그건 주의력뿐만이 아니라 인내심 또한 바닥난 속도의 시대에 안성맞춤인 해결책이다. 굳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집중력을 붙잡아 매느라 골치를 앓을 필요 없이, 물 한 모금과 약 한 알을 꼴딱 삼켜버리는 것. 성공 강박 부채질하는 스마트 드러그 <뉴요커>는 스마트 드러그를 주제로 한 특집 기사에서 아데랄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한 하버드대 학생의 일상을 사례로 들었다. 주중에는 수업과 밀물 같은 과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모임 운영에 온 정신을 쏟고 주말에는 파티에 제대로 열을 올린다는 그는,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또 재미는 포기하기 싫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을 다 해낸다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아데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자연스레 R을 떠올렸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자 학생으로, 집과 일터와 학교에서 주어지는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전형적인 오버 어치버(over-achiever)다. 뭐하나 모자람 없이 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 앞에서, 마법처럼 자신의 능력을 높여주는 약을 먹는다는 건 그녀에게 뿌리치기 힘든 선택이었을 거다. 그렇게 보면, 스마트 드러그란 집중력 부재의 세대가 갈구하는 치료제라기보다는 경쟁사회가 탄생시킨 가장 유혹적인 채찍인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어서라도 더 오래, 더 잘, 더 효율적으로 일할 것.
과거 미국의 젊은이들이 정신을 흐리기 위해 약을 먹었다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약을 먹는다. 과거의 약이 일탈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약은 경쟁을 위한 것이다. 과거의 약이 현실의 무게를 무화해보려는 낙오자들의 유흥이었다면, 지금의 약은 성공의 무대에 한시 바삐 올라서기 위한 야심가들의 사다리다. 밀거래로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르거나, 거짓말로 증상을 꾸며내서라도 약을 타내는 사람들. 밥을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해도 매일 그 약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람들. 이들이 정작 중독된 것은 약이 아니라 성공의 짜릿함이다. 파티를 밤 새 하더라도 학점은 A를 받아야 한다는 그 어떤 태만한 야심, 혹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든 것을 전부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맹목적 강박. 그러니까 스마트 드러그는 그 강박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것에 박자를 맞춰 달려갈 수 있도록 그들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 같은 것이다.
아데랄이나 리탈린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유혹은 나에게도 강했다. 특히 지치고 집중력이 바닥나 읽고 또 읽어도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때, 내가 페이퍼 마감을 과연 할 수 있을지 감히 확신조차 가지 않을 때면, 모든 면에서 완벽해보이던 R의 당당한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약을 먹지 않는 내가 결국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억울함과 초조함. 하지만 그렇게 해서 약을 먹는다면? 그렇게 해서 이 페이퍼를 잘 마친다면? 그렇다면 그 다음 페이퍼는? 또 그 다음은? 과연 언제까지 약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종내 나는 갈등하던 마음을 접고, 부엌으로 너털너털 걸어가 나의 약 상자를 가동 시켰다. 발자크가 평생 글쓰기의 벗을 삼았다는 그 불후의 명약, 커피. 한 방울 두 방울 차오르는 향긋한 그 명약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초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좀 더뎌도 괜찮아. 밤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내일이 지나면 낮잠도 실컷 잘 수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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