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서 나온 쥐가 천적 고양이와 맞닥뜨렸다. 당황한 쥐는 정신없이 도망가다 막다른 벽에 막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쥐는 최후의 힘을 다하여 고양이를 물고 늘어진다. 이 경우가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다. 강을 등지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서지 못하고 최후의 힘을 다하여 싸우도록 한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 앞에서는 무적의 군대라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捨量沈船(사량침선), 濟河焚舟(제하분주), 破釜沈舟(파부침주) 등 유사한 성어도 많다. 험준한 산모퉁이를 뒤로 하고(負隅) 끝까지 싸운다(頑抗)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孟子(맹자)’의 盡心下(진심하) 편에 비유로 사용됐다. 제자인 陳臻(진진, 臻은 이를 진)이 기근이 든 齊(제)나라 백성들을 위해 왕에게 비축한 곡식을 풀도록 건의할 것인지 물었다. 맹자는 이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왕은 마지못해 찔끔 시행한 적이 있어 왕도정치와는 거리가 있다고 돌아선 참이었다. 맹자가 晉(진)나라의 호랑이를 때려잡은 장사 馮婦(풍부)의 예를 들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부는 너무 많은 호랑이를 죽여 이제 살생을 않기로 결심하고 덕을 쌓아 선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풍부가 들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범을 쫓고 있었다. ‘호랑이는 산모퉁이를 등지고 버티고 있어 감히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虎負嵎 莫之敢攖/ 호부우 막지감영).‘ 嵎는 산굽이 우, 攖은 다가설 영. 사람들이 풍부를 보고 쫓아주기를 원했다. 호랑이 맨손 사냥을 그만두기로 한 풍부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도망도 못가고 노려보는 호랑이를 보고 풍부는 할 수 없이 다가가 합심하여 잡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모두 환성을 질렀지만 살생을 그만 두기로 했다가 다시 손을 댔다고 선비들은 풍부를 비웃었다. 再作馮婦(재작풍부) 또는 重作馮婦(중작풍부)의 유래다. 맹자도 다시 하면 풍부와 같이 된다고 한 것이다.
나쁜 일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위험을 구한 일인데도 약속을 어긴 사람을 비난한다는 것은 심할 수 있다. 그만큼 신의와 명분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보다 비유로 쓴 산모퉁이까지 호랑이를 몰아붙여 죽기 살기로 덤벼들게 한 위험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고양이 앞에 쥐’라 해도 빠져나갈 틈은 두고 쫓으라는 窮寇勿迫(궁구물박)의 병법과도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