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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상문(慶弔相問)
경사와 흉사에 서로 묻는다는 뜻으로, 서로 경사(慶事)에 축하(祝賀)하고 흉사(凶事)에 위문(慰問)한다는 의미이다.
慶 : 경사 경
弔 : 조상할 조
相 : 서로 상
問 : 물을 문
경조상문(慶弔相問)이란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미덕(美德)이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의 경사(慶事)와 흉사(凶事)에 위로(慰勞)를 하며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道理)입니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 되어 오고 있다.
그런데 애경사(哀慶事)에 서로 오고 가는 일을 흔히 거래(去來)가 있다 없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래는 돈이나 물건을 빌려 주고 갚고 물건을 매매(買賣)하는 상행위(商行爲), 혹은 영리(營利)를 위한 경제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없다. 여기에 적합한 용어로는 왕래(往來)가 어떨까?
예(禮)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칙(儀則)’으로 나와 있고 의칙(儀則)은 몸가짐의 규칙이라 해석 할 수 있다. 정리를 하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몸가짐 또는 사무 처리의 표준으로 정한 준칙’이라고 이해된다.
요즘 청첩장이 그야말로 노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청첩이 이어진다. 경사(慶事)만 있는 게 아니라 조사(弔事)까지 자주 생긴다.
자녀를 시집 장가 보내는 나이는 곧 부모가 돌아가시는 나이이다. 부모를 여의고 자녀를 내보내는 게 같은 시기라는 점이 삶의 오묘함이지만, 불행하게도 본인 사망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경조사는 당연히 진심으로 축하하고 정성을 다해 위로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많다 보니 참된 경조상문(慶弔相問)을 행하기 어렵다.
경조사(慶弔事) 예절(禮節)
경사(慶事) 예절(禮節)
친구 아버님의 고희연(古稀宴)에 참석한 박 대리 축하드리는 마음으로 친구 아버님께 큰 절을 하고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축하의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친구 아버님은 껄껄 웃으며, “여보게 내가 죽은 사람인가?”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영문을 잘 모르는 박 대리는 무안해진 마음으로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박 대리가 어떤 잘못을 했을까? 박 대리는 절을 할 때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서 절을 했다. 남자의 경우 경사(慶事)와 평상(平床)시에 절을 할 때는 왼손이 오른손 위로 가게 해야 한다. 다만 흉사(凶事)시에만 그와 반대로 오른손이 왼손 위에 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 절이다.
수연(壽宴), 환갑(還甲) 및 칠순(七旬) 잔치
흔히 수연 의식을 맞이한 집에서 고지서 돌리듯이 초대장을 보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예를 볼 수 있다. 수연 범절을 맞이 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인간의 도리를 아름답게 완수하고 가정의 만복과 가족의 만덕을 갖춰 준 어르신으로서 장수했다는 의미이므로, 자손들이 축하의 만찬을 해 드릴 때 그 의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연을 맞이한 가정과 자손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해서 부담을 지우는 부모님이나 그러한 부모님에 불만을 갖는 자손들이 화목하지 못하게 수연 의식을 행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수연은 수연 의식을 맞이한 어르신들께서는 긴 세월을 살면서 후손에게 바르게 살 수 있는 삶을 정립시켜 주는 기회인 동시에, 후손들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효도정신에 의해 행해 드리는 축하 의식의 장이다.
초대인의 범위는 가까운 친구, 친척, 직장동료 정도가 적당하다. 잘 알지도 못하고 자신이 속한 명단에 있는 이름과 주소로 고지서 처럼 보내는 행위는 삼가야 할 것이다. 정성스러운 마음가짐과 존경하는 의미로 축하하러 올 수 있도록 초대인의 적절한 범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접수처를 준비해 두고 축하객들로 부터 접수 받는 행위도 보기에 좋지 않다. 인적 조건 때문에 할 수 없이 와서 고지서에 대한 세금 내듯 접수하고 가는 행위도 삼가야 할 것이다. 가능하면 가정에서 검소하게 지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복장은 직계가족이나 친척들은 큰절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복 차림을 하고 축하객들도 단정한 정장 차림을 갖추도록 한다. 축하 인사는 ‘만복을 기원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등을 할 수 있다.
수연을 맞이한 어르신께 올리는 잔의 경우, 직장 동료들과 같이 여러 명이 갔을 때에는 대표 한 사람만 올리면 된다. 절은 전체가 서서 한꺼번에 하는 것이 좋다.
혼례(婚禮)
우리의 전통 혼례 예절 중에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폐백(幣帛)이다. 폐백례 때 시아버지가 대추를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극히 잘못된 것이다. 신부의 절을 거들어 주는 수모(手母)가 한삼(절수건)을 시아버지 앞에 놓으면 시아버지는 대추를 한삼 끝에 정성스럽게 놓아 주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엉덩이를 들고 엉거주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라’하고 던져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시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들도 대추를 던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대추는 오직 시아버지 한 분만이 종족(種族) 보존의 의미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폐백례 때 신부가 신랑가족에게 인사할 때 폐백돈이 우리의 풍속인양 모두들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시어머니께서 염낭에 문중의 상징적인 황금 쌍가락지, 백금 쌍가락지, 삼작노리개, 향낭, 수식 등을 문중의 광영으로 생각하고 대물림의 의미로 하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대물림의 유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신부가 평소 때 많이 활용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목걸이, 귀고리, 혹은 브로치 등의 장식품을 염낭에 담아서 하사(下賜)하거나, 시어머니가 만든 조각보, 가구용 덮개 등을 예쁘게 포장해서 하사품으로 내리는 것이 폐백례의 의미상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상사(喪事) 예절(禮節)
문상객은 복장을 무채색으로 단정하게 입고, 빈소에 들어서면서 공손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향로에 향이 켜져 있을 때는 하나나 두 개 정도 향을 꽂는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같이 갔을 때는 문상을 간사람 모두가 향을 꽂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대표로 향을 꽂는다. 잔을 올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화를 올릴 때는 개인별로 다 올려도 상관없다.
전통 배례법은 남자는 오른손이 위로, 여자는 왼손이 위로 가게 하고, 여자는 네 번 절을 하고, 남자는 두 번 절을 하지만, 오늘날 장례 예식장에서는 전통 의식대로 다 할 수는 없기에 상황에 따라, 남자 여자 모두 절을 두 번만 해도 괜찮다.
빈소 참배가 끝났으면 상주에게 서서 목례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상주와 맞절로 한 번 절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이다. 상주와 유가족들에게 되도록 이면 말을 안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겠다.
인사말은 쓸데없는 말은 삼가고, 말을 해야 할 때는 ‘망극합니다’,‘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정도가 적당한 인사말이다. 지나친 수다는 극히 삼가야 한다.
덧붙여 유가족 여자들이 상복을 입을 때에는 속옷을 갖춰 입어야 하며, 청바지에다 흰 치마만 둘러 입거나 운동화를 신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가 조문에 관한 절차와 예의
[1] 복장
남자(男子)일 경우 검정색 양복과 하얀 Y셔스에 검정 넥타이가 원칙으로 짙은 색 양복도 무난하다. 화려한 양복과 넥타이 등의 착용은 피해야 한다.
여자(女子)일 경우 검은 색 상의가 무난하나 검정 스카프를 둘러 애도의 뜻 전달하면 좋다. 그리고 짙은 화장이나 화려한 액세서리 부착은 절대 금물이다.
[2] 조문 순서
호상소(護喪所)에 조객록(弔客錄)에 서명하고, 빈소(殯所)에 들어가 상주(喪主)에게 목례 후 영정 앞으로 나아가 영정(影幀), 즉 영위(靈位)에 분양과 헌화 후 절을 한다. 절을 할 때 남자는 재배(再拜), 여자의 경우 음양의 원리에 따라 4배가 원칙이나 최근은 재배도 무방하다.
상주에게 조문한다. 이때는 단배(單拜)이다. 상주가 남자면 동쪽, 여자면 서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부의금(賻儀金)을 전달한다.
[3] 격식과 문상 예절
경사(慶事)와 달리 애사(哀事)는 최대한 예절과 격식을 지켜야 한다. 빈소에 막 들어서면 상주와 목례만 한다.
조문에서는 상주의 문상 예절을 따르는 것이 예의이다. 종교가 서로 달라도 상가의 종교 예법에 따라야 한다. 예컨데, 영정 앞에 향 대신 흰 국화가 놓여 있다면 꽃을 제단 위에 놓고 묵념이나 기도를 하면 된다. 꽃을 놓을 때 방향은 받는 자(고인)가 편하게 받는 방향(꽃의 줄기가 고인 쪽으로)으로 놓으면 된다.
문상을 여럿이 할 경우 대표 한 사람 만 분양하는 것이 좋다. 향불은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불을 끌 때 손바닥 바람으로 끄고 향로에 꽂는다. 간혹 입으로 불을 끈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법이 아니다.
향불은 3개를 피우는 것이 원칙이다. 즉 천신, 지신, 조상신 등을 뜻한다. 현실적으로 문상객마다 실내에서 3개씩 피우면 연기 공해가 될 수 있어 최근에는 1개만 피워도 무방 하다고 한다. 다만 홀수가 길한 숫자를 뜻하기 때문에 반드시 1개나 3개 등 홀수로 해야 한다.
영정 앞에서 절을 할 때는 공수(拱手)는 남자는 오른손이, 여자는 왼손이 위로 하여야 한다. 절을 한 다음 한 걸음 물러서 머리를 45도 이상 깊숙히 숙히고 7초 정도 머무른다. 영정 앞에 첫번째는 천신에게 잘 받아 달라는 의미(환영)이고, 두번째는 지신에게 잘 떠나게 해 달라는(송별) 의미이다.
상주와 맞절을 한 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또는 ‘얼마나 애통 하십니까’라고 애도의 뜻을 전한다. 이때의 공수(拱手)는 남자는 왼손이,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해야 한다.
상주와 하는 맞절은 상주의 조상들에게 상주를 잘 보살펴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한편 고인이 편하게 떠났거나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호상(好喪)이라 다행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상객의 자세가 아니다. 어쩌면 호상이란 있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피곤한 상주에게 고인에 대해 이것 저것 묻거나 말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은 예의와 배려가 아니다.
여럿이 한꺼번에 절을 할 때 고개를 언제 들어야 할지 몰라 눈치 보거나 고개를 들었다가 다른 사람이 아직 들지 않은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경우를 보는데, 통일에 신경쓰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단, 상주를 위해 상주보다 먼저 고개를 들어 주는 것이 좋다.
조의금(弔意金) 봉투 겉에는 부의(賻儀)가 일반적이며, 근조(謹弔), 조의(弔儀), 향촉대(香燭代), 전의(奠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도 무난하다.
조의금 봉투 안에는 단자(單子; 부조 물목, 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적는 것이 좋다. 다만, 흰 종이에 쓴 단자를 접을 때 아래는 가로 1Cm정도 접고 세로로 3번 정도 접는데 문구나 이름 등 글자가 접히지 않아야 한다.
문상(問喪)과 조상(弔喪)
우리는 지인(知人)이 상(喪)을 당했을 때에 위문(慰問)을 하러 가는데 이를 통털어 상문(喪問)이라 말한다. 예서(禮書)에는 조상(弔喪)과 문상(問喪)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조상(弔喪)이란 망령(亡靈; 죽은 사람)은 아는데 상주(喪主)를 모를 경우인데 이때에는 영전(靈前)에 곡(哭)하고 재배(再拜)하고 물러난다.
문상(問喪)은 망령은 모르는데 상주는 알 경우 또 상주가 여럿이더라도 아는 상주에게만 마주 곡하고 맞절로 인사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물러 난다로 구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망령에게 하면 조상이 되고 상주에게 하면 문상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예서(禮書)의 기준데로라면 누군가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을 때에 상문하러 간다 또는 조문하러 간다 함이 맞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현대에는 조상과 문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예서(禮書)의 기록이다.
弔哭拜之節(조곡배지절)
조문하고 곡하고 절하는 예의범절
曲禮(곡례)
知生而不知死 弔而不傷 知死而不知生 傷而不弔.
지생이불지사 조이불상 지사이불지생 상이불조.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의 가르침이다. 산사람을 알고 죽은 이를 모를 때는 상주(喪主)에게는 조문을 하고 영좌(靈座)에는 곡을 하지 않으며, 죽은 이는 알고 산사람을 모를 때는 영좌에는 곡 재배하고 산사람에게는 조문치 않는다.
檀弓(단궁)
死而不弔者三 畏壓溺行弔之日 不飮酒食肉不樂.
사이불조자삼 외압익행조지일 불음주식육불락.
단궁편(檀弓篇)의 가르침이다. 조문(弔問)치 않는 세가지 상이 있다. 전장에서 도망치다 놀라 죽은 외사자(外死者), 위험한 돌담 밑을 조심치 않다 깔려 죽은 압사자, 배 타고 가다 빠져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익사한자는 조상치 않는다. 조문할 때에는 술을 마시지 말며 고기를 먹지 말며 춤추지 않는다.
有殯(三年之喪) 聞遠兄弟之喪 雖緦必往 非兄弟(異姓) 雖鄰不往.
유빈(삼년지상) 문원형제지상 수시필왕 비형제(이성) 수린불왕.
친상(親喪) 중에 먼 형제의 상 소식을 들으면 비록 시마(緦麻) 복(服)일지라도 반드시 가야하고 형제가 아닌 이성(異姓)이면 아무리 가깝다 하여도 가지 않는다.
雜記(잡기)
三年之喪不弔 有服而將往哭之則服其服而往.
삼년지상불조 유복이장왕곡지즉복기복이왕.
잡기의 가르침이다. 친상 중에는 조문하지 않는다. 복(服)이 있으면 가서 곡할 때 그 복을 입고 곡하고 온다.
廣記(광기)
凡死者 是敵以上則拜 少者則不拜.
범사자 시적이상즉배 소자즉불배.
광기의 가르침이다. 대체로 죽은 이가 대등 이상이면 절을 하고 수하(手下)이면 절을 하지 않는다.
喪者二人以上 只弔其識者.
상자이인이상 지조기식자.
친상의 형제가 두 사람 이상이면 다만 그 중에서 아는 이에게만 조문을 한다.
현대인의 문상
현대에는 조상이나 문상을 구분하지 않고 빈소에 가면 당연히 망령과 상주에게 동시에 문상함이 상예(常例)로 되어 있다. 세속의 변화에 따라 옛날 가정에서 치르던 상례를 대부분 전문장례식장에서 치른다. 따라서 빈소에서 행례하는 절차도 시대 변화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서 난감할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리라 생각된다. 예서(禮書)에도 구체적인 행동 요령은 없고 입곡전흘내조이퇴(入哭奠訖乃弔而退), 즉 들어가서 (빈소에) 곡을 하고 전을 마치면 이에 조상을 하고 물러 나온다로 쓰여 있고 방법은 어떻게 하라는 내용은 없다.
(1) 조상(弔喪)이란, 돌아가신 이를 위하여 예(禮)를 드리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친소(親疏)에 따라 분향(焚香), 헌주(獻酒) 등의 예를 행할 수 있습니다. 조상(弔喪)은 고인(故人)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 문상(問喪)이란, 산 사람(유가족)을 위문하는 절차입니다. 죽은 이가 이성(異姓)이면 원칙적으로 조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가에는 조상을 할 경우와 문상을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조상과 문상을 동시에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조문객들의 조문 절차는 천태만상이라서 어느 것이 예(禮)에 맞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것을 정리 해보면,
* 영좌(靈座) 앞에서 곡(哭)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영좌 앞에 서자마자 재배(再拜)한다.(약 70%)
* 영좌 앞에서 분향(焚香)을 하고 재배한다.
* 영좌 앞에서 분향을 하고 향을 두 손으로 머리 위까지 올린후 향로에 꽂은 다음 재배한다.
* 영좌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 영좌 앞에서 분향하고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 절하듯이 양손을 펴 올린다.
* 그리고 대부분 상주에게 아무 말없이 맞절을 한 후 부의(賻儀)를 하고 조객실(弔客室)로 간다.
이것이 오늘의 상문예절(喪問禮節)이다. 문제는 이것이 예절의 적합 여부를 따지기에는 시속(時俗)의 변화가 너무 커서 논하기 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옛것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시대 변화에 맞는 어떤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시속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빈소에서 호곡(號哭)을 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라 여겨지며 조문(弔問)시에 곡이 사라진 연유는 대부분의 망자(亡者) 즉 고인(故人)이 옛날과 달리 나이든 사람이다 보니 망자에 대한 비탄감(悲嘆感)이 반감(半減)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가지는 조상(弔喪)과 문상(問喪)의 구분이 없어지고 조문(弔問)을 동시에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준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사료된다.
우리는 가가례(家家禮) 또는 가가예문(家家禮門)이란 말을 가끔 듣는데 이 말은 옛부터 행례(行禮)를 함에 있어서 주자가례(朱子家禮)나 수많은 예서(禮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어떤 집이나 가문이 어떤 절목(節目)을 나름 데로 해석하여 행례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임기응변식이 아닌 기준을 정해 놓고 항상 그렇게 하는 경우라 하겠다. 다만 절차나 방법이 내 집 또는 내 가문(家門)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 집이 아닌 내 문중(門中)이란 뜻이 강하니 혼동 없기 바란다.
조선의 예학(禮學)
17세기는 예학(禮學)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예학이 발달하였으며 두 차례의 예송(禮訟)을 비롯해 많은 전례(典禮) 논쟁이 벌어졌다. 예학이란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두고 상장제례(喪葬祭禮)를 중심으로 한 전례(典禮)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15세기 말부터 사림에 의해 예에 의한 교화가 강조되기 시작하고, 16세기 중반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예학이 발달하였다. 16세기 후반에 가면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 거의 대부분이 예에 관심을 가졌으며 예(禮)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에 들어와서도 예(禮)는 양난(兩亂; 병자, 정묘호란)으로 인해 해이해진 예적 질서의 회복이 강조되면서 더욱 중시되었다. 나아가 예(禮)로 나라를 다스리면 다스려지고, 가르침도 예교(禮敎)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며, 학문도 예학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예(禮)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방도로서 부각되었던 것이니 예치(禮治)가 바로 그것이다. 예치는 예교(禮敎; 예의 가르침)와 예학(禮學; 예의 배움)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학은 이미 16세기 중반부터 그 자체내의 독자적인 과정을 통해 발달해오다 17세기 성리학 이해의 심화와 양 난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한 단계 더욱 발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禮)가 치국의 방도로 대두하면서 예학 연구는 심화되고 각 학파의 예학의 차이는 전례 논쟁을 통해 표출되었으니 예송(禮訟)은 그 대립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서(禮書; 예절에 관한 책)
우리는 예절이라 하면 주자가례(朱子家禮)이며 주문공(朱文公) 즉 주자(朱子)가 쓴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행례 절차와 방법에 대한 지침서(指針書)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주자(朱子)는 1,400년 전의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주자가례를 만들면서 예(禮)란 시속에 따라 만들어 쓴다고 옛것이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禮不泥古 因時制宜)라 하며 나름데로 자기의 의견을 추가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자의 이러한 논리에 따라 구준(丘濬)이 지은 가례의절(家禮儀節)을 바탕으로 그 후 조선의 수많은 예학자(禮學者)의 예서(禮書)와 문인들의 문집(文集)등에서 시대 흐름에 따른 인시제의(시속에 따라 만들어 쓴다)를 볼 수가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예서의 내용들을 취합 정리하여 고례(古禮)의 근간을 기초로 현대인 즉 시속에 적합한 상문의 행동 요령을 정리해 본다.
* 조상과 문상을 구분하지 않고 동시에 하되 곡은 하지 않는다.
* 고인(故人)이 대체로 대등 이상이면 절을 하고 수하(手下)이면 절을 하지 않는다.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분향이나 헌작은 하지 않는다. 단 특별한 경우란 고인과 연령차가 10년 이상 많은 근친(8촌 이내) 또는 스승을 말한다.
빈소(殯所) 즉 현대용어로 분향실은 고인의 혼백함(魂帛函)과 영정 사진이 놓여있고 제상에 과일과 술잔이 올려져 있으며 그 앞에 소탁(小卓) 위에 촛불을 양쪽에 켜 놓고 향로와 만수향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초석(草席)이 깔려 있다.
참고로 혼백함 속에는 삼배나 두꺼운 종이를 지방 크기로 접어서 넣어 둔다, 여기에 혼령(魂靈)이 깃들어 계신다는 의미이며 조객의 조문 대상이 된다. 현대에는 사진과 함께 올려 놓는다. 고례(古禮)를 따지면 둘 중 하나만 있어야 하지만 오늘의 추세가 그러니 탓할 것은 못 된다 보여 진다.
행례(行禮)는 이렇게 하자.
* 조문객은 소탁 앞 약 30cm까지 다가가서 선채로 공수(拱手)를 하고 약 5∼6초간 고개를 약간 숙이고 곡(哭) 대신 묵념(默念)을 한다.
* 약 2발짝 정도 뒷걸음으로 물러나서 두 번 절한다.
* 약 한 발짝 정도 앞으로 나아가서 선체로 반절을 한다.
* 고인이 수하(손아래)일 경우에는 묵념만 하고 절은 하지 않는다.
* 오른쪽(우향우)으로 상주와 맞절을 하면서 ‘상사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또는 ‘얼마나 애통(哀痛)하십니까’로 상주를 위로한다. 상주는 ‘고맙습니다’ 또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로 답례한다.
* 뒤 돌아서 여(女) 상주와 백관과 맞절로 인사한다.
* 부의(賻儀)를 하고 물러난다.
대체로 의식(儀式)에서는 큰절로서 남자는 계수배(稽首拜), 여자는 숙배(肅拜)로 한다. 계수배나 숙배는 기제사시에 하는 절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고례에는 상주가 여럿일 경우 아는 상주에게만 문상한다 했지만 현대에는 그렇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느 회사 직원이 사장을 대신해서 조문하는 경우 고인도 상주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4인 이상 단체 상문인 경우 어느 한 사람이 향을 피운 후 행례하는 것도 무방(無妨) 해 보이나 헌작을 하는 것은 고례에도 없다고 생각된다. 고례에서는 목향(木香)을 삼상향 즉 세 번 향로에 넣는다 했으나 만수향의 경우 세 개를 분향해야 하나 제단에 켜 있는 촛불에 향불을 붙이는 것은 고인을 무시하는 행위로 금기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라이터나 다른 점향 수단을 씀이 예에 맞다고 사료된다. 제상에 술잔이 올려져 있으면 조객이 헌주하지 않는다 했다.
이상과 같이 정리 해 보았다. 사고나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급변한 시속(時俗)으로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조상행례(弔喪行禮)에는 별 무리가 없다고 사료된다.
傳統喪禮의 喪主와 弔客 禮節 事例 대한 小考
전통상례의 상주와 조객 예절 사례 대한 소고
Ⅰ. 머리말
인간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수명을 다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철칙이며 태어나서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갖가지 큰 고비를 넘기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생(生)의 마지막 단계 인 죽음은 일생동안 가족, 친척, 친지 등 모든 반려자와 영원히 작별을 고(告; 알림)하게 되는 것이므로 참으로 슬프고 엄숙한 일이다.
이 슬픈 심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면서 마지막 이별은 엄숙하고 절차 있게 행하는 것은 오늘날 어느 의전(儀典) 행사보다 엄숙하게 진행 된 것은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는 생업에 쫒기다 보니 상례범절(喪禮凡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참여해 볼 기회가 적어져 전통예절은 점차 사라져 가고 의식이 변질 되가는 현실 속에서 명문가에서 행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조문(弔問) 예절에 대한 상주(喪主)와 조문객(弔問客) 예절에 대하여 평소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현대 생활과 연계한 부족한 생각을 추가하여 간략히 전개 해보고자 한다.
Ⅱ. 상주 및 조문객의 예절
1. 상문(喪門) 시 구분하는 주요 곡(哭)
조문객이 들을 수 있는 곡(哭)은 주로 성복(成服) 이후 부터이나 구분해야 할 것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애곡(哀哭)으로 ‘아이고’를 하고 출가한 딸은 남편이 살아 있으며 친정 부모상(父母喪)에도 강(降; 낮추어)해서 졸곡(卒哭; 곡을 끊음)을 하나, 단 남편이 죽고 없으면 친정 부모상에는 강(降)없이 애곡으로 ‘아이고’를 한다.
자기 부모가 생존해 계시지 아니하면 형제, 남매, 삼촌, 숙모, 상(喪)에도 애곡 ‘아이고’를 하고 승중상(承重喪; 조부상)일 때도 애곡 ‘아이고’를 한다.
여자는 딸이든 며느리든 남편의 생존여부에 따라 곡(哭)이 다른데 그 기준은 망인(亡人)보다 자기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 생존해 있으면 애곡 ‘아이고’곡을 할 수 없으며 출가하지 않은 딸은 부모상에 애곡 ‘아이고’ 곡을 그 외는 전부 ‘어이고’ 곡을 한다. 안동지방의 예로 타지방은 상주 외에는 정확히 들은 적이 없다.
2. 설전(設奠)
장례식 전에 영좌(靈座)에 주(酒), 과(果), 포(鮑)를 진설(陳設)함
제상을 차려 혼백을 놓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요즈음은 혼백과 사진을 병설(竝設)하는 경우가 보편화 돼 있으나 사진보다는 혼백(魂魄; 혼을 상징 하는 삼베 리본)을 더 중요시 한다.
그러나 일부 지역은 지방(紙榜)을 쓰는 경우가 상당수 있으며, 제상에는 술과 포를 진설하며 조석전(朝夕奠)에는 주(酒), 과(果), 포(鮑), 혜(醯)를 진설하고 사진을 혼백과 같이 병설(竝設)하는 경우는 사진을 덮어 두는데 이는 조문객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예우적 차원과 망인에 대한 예우도 된다고 한다. 안동지방의 예이다.
일부 지방은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 구분없이 주(酒), 과(果), 포(鮑), 혜(醯)를 진설하여 두는 경우, 밥과 국을 다음 상식(上食)때 까지 진설 해두는 경우 대부분 사진은 덮어 두지 않고 있는 것이 약간 달랐으나 오히려 보편화 된 것 같기도 하다.
3. 부의(賻儀)
부고(訃告)를 받으면 주로 한지(韓紙) 1동에 단자(單子; 품목, 성명 등)를 써서 부고 전달자를 통하여 먼저 전하고 장사날 별도의 물품이나 부의금(賻儀金)을 지참한 후 문상(問喪)을 하는데(안동) 요즈음은 부고 자체를 전달할 시간, 인력 부족으로 대부분 불가능 하므로 상가(喪家)에 필요한 부의금을 봉투에 넣어 전달 하는 것이 상례화로 부의(賻儀) 및 조화(弔花) 표기에 관한 주요 문구는 다음과 같다(안동).
초상(初喪) : 賻儀(부의), 謹弔(근조), 弔意(조의), 香燭代(향촉대), 勤慰(근위)
소상(小喪)이나 대상(大祥) : 香奠(향전), 奠儀(전의)
위 예시 문구 중 구분해야 할 사항은 부모상(父母喪)과 승중상(承重喪)에만 근조(謹弔)라 쓰고 그 밖의 상(喪)은 근위(勤慰)라 쓰고 상사(喪事)가 수하(手下; 손아래) 인 경우는 상변(喪變)이라고 쓴다. 부모상과 승중상에 있는 사람에게만 애전(哀前)이라 쓰고 그 밖의 상(喪)에는 복좌전(服座前)이라고 쓴다.
4. 성복전(成服前) 조문(弔問)
성복전(成服前)에는 친척을 제외한 조문은 하지 않으며 친척도 곡(哭)은 하되 절하지 않는다(유곡무배; 有哭無拜).(안동)
현대는 짧은 장례일에 원거리 문상으로 시간 관계 등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성복전이라도 상문을 해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영위(靈位)를 설치하여 조문이 이루어 지도록 함이 불가피 하다고 생각되며 시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 이유는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절하지 안하듯이 시신(屍身)을 보고 절하지 않는 것으로 영좌(靈座)를 모셔놓은 곳에서 조문(弔問)함이 바람직하므로 빠른 시간내에 수조(受弔)를 설치함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는 노제(路祭)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로 상여(喪輿)를 보고 절하지 않도록 하고 장지(葬地)에 운구(運柩)가 도착 되었을 때도 마찬 가지다.(안동)
5. 조문객과 상주의 인사
(1) 빈소(殯所)의 일상적 문상(問喪)
상가에 도착하면 먼저 장례를 지휘하는 호상(護喪)께 성명을 밝히고 빈소(殯所)로 들어서면 상주는 일어나 제자리에서 곡(哭)을 하고 문상객은 영좌(靈座)에 2분 정도 (친분에 따라 다름) 곡(哭)하고 빈소에 재배(再拜)한 후 상주와 마주 엎드려 사향곡(相向哭; 마주 곡)을 한 후 일어나 상주에게 절을 하고 ‘상고에 들릴 말씀이 없습니다. 상사란 웬 말입니까?’, ‘얼마나 망극하시겠습니까?’ 등으로 묻고 친분에 따라 장지(葬地)등을 묻기도 한다.(안동)
그러나 주거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곡(哭)은 생략이 보편화 되었고, 사향곡은 근친(近親;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생략이 보편화 된데 대하여는 시대적 흐름으로 무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상향곡(相向哭); 성복례에는 상향곡(相向哭)이라고 하며 복인 상주와 친척들이 처음 마주앉아 곡하고 절하는 교배례(交拜禮)는 정확히 말하나 사향곡은 글자 그대로 읽는다고 한다.(안동)
당하곡(堂下哭); 성복례 때 상주가 마당에서 방에 살아 계시는 부모를 향하여 곡하고 남(男) 상주 복인과 여(女) 상주 복인들과 마주 향하여 곡을 하는데 의미는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함에 사죄의 뜻이다.(안동)
(2) 내간상(內艱喪; 망인이 여자) 일때 문상(問喪)
동성(同姓; 일가) 족친상(族親喪)이나 인척 관계의 상가 조문일 때는 내외간상(內外艱喪; 남자, 여자 상가) 구분없이 영위에 다녀 곡하고 배례한다.
타성(他姓)의 내간상을 조문할 때는 영위(靈位) 앞을 다니지 않고 상주를 향하여 곡(哭)하다가 조의표명(弔意表明; 상주 위로) 배례(拜禮; 엎드려 절함)한다.
간혹 이웃 등 생존 시 교분(交分)이 있는 친구의 모친상 등은 영위(靈位)에 다녀 배례(拜禮)할 경우 심하게 고민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러나 망인과 면식(面識)이 없다든지 망인이 심히 수하(受下)이거나 연령차가 별로 없는 여자인 경우는 빈소에 절하지 않고 곡(哭)만 한다.(안동)
옛부터 스승의 부인 빈소는 다녀도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요즈음 남여 유별의 옛 사상과 달리 남여 동등 관계인지, 문화의 변천인지 모르는 것이 상례화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외(內外=남여) 구분 없이 영위(靈位)를 다니는 예가 많다.
친구 모친상의 영위를 다니는 문제는 타 문상객등이 볼 때 상주와의 혈육이 아닌 줄 알고 나며 혹시 예(禮)에 어긋나다 할까봐 하는 염려로 생각되며 상주 또한 다른 형제 상주에게 친구임을 강조하는 경우를 본적이 있다.(안동)
(3) 친 인척간 여상주(女喪主) 문상(問喪)
안 상주(여자 상주)가 수하(手下) 일지라도 절을 하고 일어섰다가 다시앉아 조문 인사한다. 단, 안 상주가 딸, 질녀, 질부, 며느리일 경우는 절을 하지 아니하며 안 상주는 문상을 받을 때 평절(보통절)을 하며 상주를 모르는 경우는 사향곡(相向哭)을 하지 않으며, 상주를 알고 망인(亡人)을 모르는 경우도 곡을 하지 않는다.(안동)
(4) 그 밖의 문상(問喪)
원거리로 빈소를 찾을 수 없을 경우는 편지로 위문하는데 복인과 인사말은 ‘복제 말씀 드릴 말이 없습니다’로 하며 노상에서 친구인 상주를 만났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상반신을 굽혀 인사하고 위문의 말을 하고, 다중집합 장소에서 상주를 만났을 경우 정중하게 인사를 하나 방안(앉는 곳)인 경우는 배례(拜禮)를 하며 그 외 입석(立席)인 경우는 배례를 하지 않으며 또, 절친한 친구 일지라도 빈소 외 다른 장소에서 만났을 때 악수(握手) 인사는 하지 않으며 상주와 대화 시에도 상주가 근신하므로 상주에게는 경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안동)
그러나 생활의 변화로 편지가 생활 속에서 멀어지는 단계에 전화 등 다양한 상문 방안도 그리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나 일련의 부의금 전달로 마무리 하는 것은 부족한 소인의 생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6. 상주(喪主)의 마음과 행동
상주는 상복차림으로 빈객(賓客) 전송(餞送; 배웅)을 별도로 하지 않으며 곡(哭)으로 대하고 영위(靈位)나 상여 뒤편이 아닌 다른 장소 이동시 상장(喪杖; 지팡이)를 짚지 아니하며 들고서 이동한다.(안동)
타인(他人)의 조문은 부고(訃告)가 없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으며 타인의 길사(吉事)와 유림(儒林) 행사는 참여하지 않고 상주인 줄 모르고 임사(任司; 헌관 및 집사자)등에 선임(選任) 되었거나 망 (望; 헌관 및 집사자 위촉)을 받을 경우 즉시 서찰(書札)을 보내 즉시 사임한다.
상복을 입고 제사(忌祭)나 묘제(墓祭)는 주제(主祭)를 피하여 상주가 아닌 가까운 근친(近親)이 주제하며 헌관(獻官; 잔드림)이 분향(焚香; 잔 올림)을 마친 후 나중에 절하며 부득이 주제를 할 경우는 무축단헌(無祝單獻; 축문없이 초헌만)을 한다.(안동)
특히 처(妻)의 빈소는 남편이 주제함이 마땅한데 아들을 주제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나 그 경우 아들이 관자(冠者)인 경우는 예외적으로 주제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며 동(童; 아이)인 경우는 반드시 남편이 주제한다.(안동)
Ⅲ. 맺는말
이상 조문(弔問) 전통예절 사례를 중심으로 시대변천에 대한 생각을 전개하였으나 가문 및 지역에 따라 많은 사례가 다른 것들도 많을 것이지만 3 백년 이상 세거(世居; 대대로 살아옴)해 온 사례에 불과하여 실례 되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근거도 없는 가가례(家家禮)를 빙자하여 자신이 하는 행신(行身)이 정석(定石; 원칙)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가문(家門)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제 식민지 정책과 경제 개발의 논리에 밀려 시행한 가정의례 준칙이 허례허식 예방 및 간소화에는 다소 기여 하였으나 민족의 정통성인 예절에는 크게 반(反) 하였고 본다.
비록 복잡하고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시대에 맞게 적절한 예의범절을 바탕으로 조문(弔問)을 하거나 상주로서 심신을 다듬으면 평소 일상생활에서 상대를 깊이 알지는 못하였다 할 경우라도 그리 어긋난 평가는 받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며 인간 생활이 진일보하여 첨단 과학 시대지만 복고형(復古型)추구에 대한 욕구도 증가 추세에 있어 전통예절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웰빙(참살이)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慶(경사 경, 발어사 강)은 회의문자로 庆(경)의 본자(本字)이다. 남의 좋은 일에 사슴(鹿의 생략형)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夂; 머뭇거림, 뒤져 옴) 축하한다는(心) 데서 경사를 뜻한다. 옛날 경사스러운 일에 녹비(鹿皮)를 바친 데서 鹿(록)자를 더하여 경사스러운 일의 뜻을 나타낸다. 전(轉)하여 좋다, 기뻐하다, 복지(福祉)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慶(경)은 경사(慶事), 선행(善行), 상, 상으로 내리는 것, 복, 다행한 일, 하례하다, 경사스럽다, 축하하다, 기뻐하다, 발어사(發語辭), 아!(강)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축(祝), 복 복(福), 하례할 하(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조상할 조(弔)이다. 용례로는 축하할 만한 즐겁고 기쁜 일을 경사(慶事), 경사스러울 때 베푼 잔치를 경연(慶宴), 경사를 축하하는 의식을 경전(慶典), 기쁜일이 있을 조짐을 경조(慶兆), 경사스럽게 여겨 기뻐함을 경희(慶喜), 경사로운 일을 축하함을 경축(慶祝), 기쁜 일과 궂은 일을 경조(慶弔), 기쁘고 즐거운 일에 대하여 축하의 뜻을 표함을 경하(慶賀), 경사스러운 날을 경일(慶日), 경사스럽고 다행한 일을 경행(慶幸), 궁중에서 큰 잔치를 일컫던 말을 경술대경(慶術大慶), 서로 경사를 축하하고 흉사에 위문하여 줌을 경조상문(慶弔相問) 등에 쓰인다.
▶ 弔(조상할 조, 이를 적)는 회의문자로 吊(조)는 통자(通字)이다. 弓(궁)과 사람인(人=亻; 사람)部의 합자(合字)이다. 옛날 조상(弔喪)할 때에는 짐승을 막기 위하여 사람이 활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상한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서 弔(조, 적)는 조상하다, 조문하다, 문안하다, 위문하다, 안부를 묻다, 불러들여 조사하다, 불쌍히 여기다, 마음을 아파하다, 매달다, 매어달다, 좋다고 하다, 훌륭하다고 하다, 조상(弔喪), 위문,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적), 도달하다(적), 다다르다(적), 와서 닿다(적)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경사 경(慶)이다. 용례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를 조가(弔歌), 조상하는 사람을 조객(弔客), 조문가서 조상하여 우는 울음을 조곡(弔哭), 조의를 표하며 다는 기를 조기(弔旗), 조문하고 추도함을 조도(弔悼), 상주된 사람을 조상하여 위문함을 조문(弔問), 조문을 하러 가는 사자를 조사(弔使), 조문의 뜻을 적은 편지를 조서(弔書), 조문과 위문을 조위(弔慰), 장례식이나 위령제에서 켜는 초를 조촉(弔燭), 조상하며 불쌍히 여겨 위로함을 조휼(弔恤), 조상하는 예절을 조례(弔禮), 상제집에 대한 조문과 부의를 조부(弔賻), 죽은 이를 슬퍼하여 조상의 뜻을 나타낸 글을 조사(弔詞), 조상하거나 조의를 표한 때 입는 옷을 조의(弔衣), 조상의 뜻을 표시하는 전보를 조전(弔電), 조상의 뜻으로 바치는 꽃을 조화(弔花), 불쌍한 백성은 돕고 죄지은 백성은 벌주었음을 조민벌죄(弔民伐罪), 조문하는 의식을 조의(弔儀), 조의를 나타내기 위한 돈을 조의금(弔意金) 등에 쓰인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相(상, 양)은 ①얼굴의 생김새 ②각 종류의 모양과 태도 ③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④옛적 중국의 악기의 한 가지 ⑤물리적이나 화학적으로 균질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⑥명사 뒤에 붙어서 그 직위가 각료임을 나타내는 말 ⑦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서로, 바탕, 도움, 보조자, 시중드는 사람, 접대원, 담당자, 정승, 모양, 형상, 방아타령, 악기의 이름, 자세히 보다, 돕다, 다스리다, 가리다, 고르다, 따르다, 이끌다, 점치다, 생각하다, 빌다(양),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상호존중(相互尊重),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상사불망(相思不忘),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상즉불리(相卽不離) 등에 쓰인다.
▶ 問(물을 문)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출입구)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나는 곳, 남의 안부를 묻거나 죄인에게 따져 묻는 일을 뜻한다. 그래서 問(문)은 물음, 질문, 옛날 경서의 뜻 따위를 구술 시험으로 묻는 문제를 뜻하여 묻다, 문초하다, 방문하다, 찾다, 알리다, 부르다, 소식, 물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을 자(咨), 물을 신(訊), 물을 순(詢), 물을 추(諏), 물을 자(諮)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대답 답(畣), 대답 답(答)이다. 용례로는 남의 상사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냄을 문상(問喪),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남에게서 글자를 배움을 문자(問字),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음을 문구(問求), 서로 묻고 대답하고 함을 문답(問答)예절을 물음을 문례(問禮), 앓는 사람을 찾아보고 위로함을 문병(問病),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사실을 진술하도록 하는 심문을 문초(問招), 물어서 의논함을 문의(問議), 대답이나 해답 따위를 얻으려고 낸 물음을 문제(問題), 잘못을 캐묻고 꾸짖음을 문책(問責), 묻는 항목을 문항(問項),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문동답서(問東答西), 병든 데를 찔러 보는 침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험으로 미리 검사하여 봄을 문안침(問安鍼), 정의 경중을 묻는다는 뜻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나 남의 실력을 의심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말을 문정경중(問鼎輕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