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다시 읽어보는 명품시조 36
「모든 길이 꽃길이었네」외
석야 신웅순 (시인․ 평론가․ 중부대 명예교수)
스쳐온 굽이굽이 사연이야 많았지만
지나온 모든 길은 아름다운 꽃길이었네
꽃 피고 새 우는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왔네
-김호길의「모든 길이 꽃길이었네」
서양화 같기도 하고 한국화 같기도 하다.
님의 긴 생애를 ‘꽃길’이라는 두 글자로 낙관을 찍었다. 화제는 꽃 피고 새 우는 마을이다. 굽이굽이는 사연이요 지나온 길은 아름다운 꽃길이다. 님에게 ‘꽃길’은 훗날 묘비명에 새길만도 한 명구이다. 만년에 와 깨달은 님의 철학이다. 긴 생애를 이렇게 단 석 줄로 요약했다. 인생을 달관한 사람만이 감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경전이 별거더냐 살아온 세월이면 그것이 바로 경전이다.
율독이 자연스럽고 이미지가 아름답다. 율독과 이미지가 어우러진 이것이 바로 시조이다. 소박한 명품이다.
가까이 보면 예쁘고 멀리서도 예쁘고
보면 볼수록 예쁘고 눈 감으면 더 예쁘고
만리쯤 거리 밖에는 동백으로 피는 너
- 김호길의 「동백꽃」전문
깨어보니 만리 밖에 그대는 동백으로 피고 있다.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보면 볼수록 눈감으면 더 예쁜 그런 동백이다. 그것이 바로 만리 밖에서 동백으로 피는 너인 줄은 몰랐다. 네가 절구이고 절구가 인생인 줄 이제야 깨달았다. 꽃엔 나비가, 산엔 샘이, 돌엔 이끼가, 물엔 물풀이, 님에겐 동백 같은 붉은 단심이 있다.
‘너’는 무엇인가. 님일까 조국일까. 하느님일까 부처님일까. 아무려면 어떠랴.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이것이면 되지 더 찾을 필요가 있을까. 만리쯤 거리 밖에서 피는 동백, 이 ‘죽비 소리’ 하나면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하게 묻어나는 봄날 같은 시이다.
밤새 시가 되지 않아
끙끙 앓는 나에게
시는 이렇게 푸는 거란다
펼쳐 보이는 아침놀
노을 시 곱기도해라
거 참 부럽기도해라
- 김호길의 「아침놀」
시가 되지 않아 끙끙 앓았다. 시는 이렇게 쓰는 거라며 자연은 아침놀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그것을 노을 시라고 했다. 참 부럽기도 하고 참 곱기도 하다 했다.
자연보다도 더 아름다운 시는 없고 자연보다 더 잘 쓰는 시인은 없다. 누가 감히 자연의 놀을 넘보랴.
유몽영에 이런 말이 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 구경 하는 것과 같다.
연륜에 따라 이렇게 뷰가 달라진다.
어디에서 보는 놀일까. 창가일까, 뜨락일까, 누각일까. 누각에서 보아야 멀리 볼 수 있고 전체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저녁놀은 보이지만 아침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늘그막 아니면 볼 수 없는 아침놀이다. 꽃피는 젊은 시절이니 곱기도 하고 부럽기도 할 것이다. 이제금 멀리 보이고 전체가 보이는 아득한 시인. 왠지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디 필자뿐만일까.
님의 시는 화중시요 시중화이다. 노을이 그려준 그림이요 노을이 써준 시이다. 시조 미학의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신웅순, 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36,모든 길이 꽃길이었네,주간한국문학신문,2022.5.11.
첫댓글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 구경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답니다.감사합니다.
꽃길.
이제부터 꽃길만 걸으세요.
덕담으로 주고 받는 말이지만 실제로 꽃길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꽃길과 가시밭길을 번갈아가며 걷다가 짧았던 꽃길만을 간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침놀은 본적이 없습니다. 게을러서이겠지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새우는...
새 우는~~^^
지난 날은 꽃길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길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으니 그래도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꽃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모르지만
꽃이 핀 길일 것이니 꽃길만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