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을 기다리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2천만명 추종자들이 세계를 극단으로 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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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프전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기독교 근본주의의 눈으로 보면 후세인은 ‘사탄의 세력’일 뿐이다. (사진/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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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필자는 러시아에서 선교하러 온 한 한국인 성직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국적으로는 한국 성직자였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목회를 가져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 구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성직자와 이야기하면서 놀랐는데, 그는 그때 막 끝난 걸프 전쟁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살아 있는 사탄’이고 미국의 전쟁을 ‘악에 대한 징벌’로 보면서, 후세인을 완전히 타도하지 못한 것을 미국의 ‘신앙 결핍과 도덕적 실패’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구심점 제공한 ‘원숭이 재판’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무엇보다 철저한 반(反)개인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 논리였다. 후세인이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미군의 폭탄 밑에 죽은 20여만명의 이라크 군인들과 희생된 양민들 개개인의 고통과 폭사(暴死)를 어떻게 악에 대한 선의 승리로 볼 수 있는지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그 성직자는 나에게 걸프 전쟁의 ‘신앙적 해석’에 대한 자신의 한글 저서도 주었는데 그 책의 골자는, 후세인을 ‘예비 적그리스도’로 보고 그와의 전쟁을 ‘아마겟돈의 시연(試演)’으로 본 것이었다. 그걸 읽은 뒤 필자는 과연 그러한 괴설(怪說)들이 한국 개신교의 주류에 속하는지에 대해 사뭇 궁금했다. 그러나 미국의 복음주의적 근본주의에 관해 공부한 뒤, 그 성직자의 사고가 한국 기독교보다 오히려 미국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와 연결됐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과격한 전체주의나 아랍인에 대한 극히 편협된 사고는 미국의 기독교적 근본주의를 따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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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보장제도를 점차 축소시킨 레이건 정권은 기층민중의 불만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본주의의 세력 확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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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독교적 근본주의와 같은 광신적 운동을 다룰 만한 가치라도 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스라엘의 침략을 반대하는 아랍인들을 ‘사탄의 군대’로 보는 해석이나 유엔을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준비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의견 자체는 본인들의 맹신에 의거하는 한 반박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세상을 이와 같은 ‘색안경’을 통해서 보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약 2천만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그들이 현재 집권 여당인 공화당 안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개월 전 한국에서 소란을 일으킨 부시의 ‘악의 축’ 망언도, 추종자 상당수의 근본주의적인 배경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악의 리비아와 선의 이스라엘의 갈등이 이미 구약에 예언돼 있었다”고 말한 뒤 리비아에 무자비한 폭격을 지시한 미국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극우들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기독교적 근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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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요 비판자인 노암 촘스키 교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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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독특한 경향으로서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탄생 시기는, 보통 1910∼20년대로 잡을 수 있다. 진보적 성향의 ‘사회적 복음’ 운동의 성장과 사회주의·진화론 등의 인기 상승에 대해 경악하던 우파적 성향의 기독교인들은 ‘원숭이 재판’의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일련의 송사를 일으킨다. 진화론을 ‘감히’ 가르친 교사들을 법정에 세운 것이었다. ‘원숭이 재판’들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지만, 기독교 우파에게는 하나의 구심점을 제공해주었다. 근본주의란 그들에게 근대적인 비판적 사고의 부정(否定)과 성경의 ‘문자 그대로’의 매우 보수적인 해석, 미국 중심주의적 세계관, 군사주의 찬양 등을 뜻했다.
최후 순간엔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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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의 ‘원숭이 재판’에서 맞섰던 두 주역이었던 기독교적 근본주의자 브라언(오른쪽)과 회의론의 지지자 대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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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부터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학교와 신학대학, 목회 등을 대량으로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본격적인 정치화 시점은 60년대 후반부터였다. 정치세력화를 도모한 근본주의 지도자들(팔웰 목사, 빌링스 목사 등)은 그때 한창 벌어지던 반전운동·흑인차별철폐운동·환경운동 등을 ‘미국 고유 가치의 전복’으로 여겨 대대적인 정치·사회적인 우경화를 외쳤다. 추종자들의 상당수는 차별철폐 이후 유색인종과의 취직 경쟁을 우려한 백인의 하류층·중산층 하부의 출신들이었다. 80년대의 레이건 정부는 각층의 차원에서 기득권의 보존을 열망한 여러 사회 세력의 종교적 연합인 근본주의 운동을 십분 활용했다.
대기업들에게 세금 삭감 등의 특혜를 마구 주면서 사회보장제도를 점차 축소시킨 레이건 정권은 기층민중의 불만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본주의의 세력 확장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레이건 자신의 근본주의적인 발언들을 비롯해 주요 방송사의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설교 시간이 많아졌다. 근본주의적 교회에 대한 기업의 후원도 늘어났다. 결국 근본주의는 80∼90년대 가장 빨리 세력을 넓혀 큰 사회세력으로 평가를 받았다. 민중의 불만에 의한 대대적 좌경화를 막기 위해 기독교적 근본주의 같은 가장 퇴영적·퇴보적인 세력을 이용한 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지닌 이념적 위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해 민생이 파탄에 빠지고 더 이상의 세뇌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종교라는 ‘최후의 카드’를 이용한 셈이다.
그러면 근본주의는 어떻게 퇴영적인가? 그들은 일리 있는 주장이라 해도 단순성과 몰개성으로 극단으로 몰고감으로써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종교적 논리상 낙태수술을 무조건 죄악시해 덮어놓고 금지를 요구하거나 일부는 낙태를 시행하는 의사들을 죽이는 등 폭력적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또한 동성연애를 거부하는 그들의 동성연애자에 대한 극단적이고 차별적인 주장은 민주사회의 다원주의 원칙과 전면적으로 상충된다. 그러한 극단적 논리와 횡포가 사회적 조치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묵시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미국 사회의 병리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특히 아랍·이스라엘 관계에 대한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의견은 가히 ‘신화적 사고방식’이라 할 만하다. 아랍인들을 ‘사탄의 군대’라고 믿는 그들은, 이스라엘의 침략을 ‘성전’(聖戰)으로 여겨 서안 점령지대에서의 유태인 불법정착촌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들은 유대교도 일단은 ‘이교도’이기 때문에 본인의 선행·악행과 상관없이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아마겟돈이라는 ‘선과 악의 최후의 전투’의 순간이 다가오면 유대인들도 기독교로 당장 집단 개종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이다.
“온실효과, 성경에 없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심리적 배경 가운데 하나는 모범적인 ‘군사주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의 동경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예수의 군인’이라 부르고, 군대의 ‘규율’과 ‘자기 희생의 정신’을 숭상하게 여긴다. 비록 그들이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주장들과 사고방식, 그리고 윤리는 민주적 다양성·다원주의·포용주의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들이 지배층의 도움을 받아 급격히 세를 확장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주의의 큰 위기 징후로 보인다. 근본주의에 기대를 거는 지배층이 민주주의를 더 이상 ‘최고의 가치’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전쟁에의 만반의 준비를 요구하면서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온실효과’를 믿지 않아 교토협정의 파기를 주장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의 곳곳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들을 비판하기는커녕 제대로 분석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제1의 적’으로 보는 미국의 보수적 지배층이, 이슬람 근본주의보다 어떤 면에서 더 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를 ‘우군’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사이 교회 교류와 선교 등을 통해 기독교적 근본주의의 메시지는 점차 세계화되어 간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성직자처럼,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활동해본 외국 성직자들은 근본주의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전 세계에 퍼지는 근본주의의 독은 종교 본연의 가치를 모독하는 한편, 집단 히스테리의 분위기를 조작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에 대한 미제의 침략과 학살을 더 수월하게 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망동은, 역사상 포용력으로 유명한 이슬람 교도들을 크게 자극해 현재의 파키스탄에서처럼 무고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의 근거를 제공한다.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는 기독교인들은, 무엇보다 근본주의의 반민주적·퇴영적·어용적 실체를 파헤쳐 일상의 신앙에서부터 근본주의적 요소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