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당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잘 아시겠지만 레일건은 꿈의 무기입니다.
미사일의 사정거리, 요격이 불가능한 속도, 곡사 및 직사, 빠른 연사속도, 정밀성, 강력한 파괴력에 저렴한 발사비용까지
장거리 공격무기에 필요한 모든 플러스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개발 및 생산의 기술장벽이 높고, 전력 공급(특히 대용량 캐패시터)이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해군성이 군함에 장착할 레일건의 프로토타입을 내놓으면서 실용화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이 물건이죠.
그런데 작년 말부터 분위기가 바뀌더니 급기야 올해 프로젝트 폐기에 관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말까지 실험선에 탑재될 예정이던 레일건 프로토타입은 현재 내륙으로 옮겨져 방치되고있는 상태이고,
결정적으로 올해 하반기 예산에 레일건 부문 예산이 삭감되면서
사실상 프로젝트를 접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일건을 둘러싼 우여곡절을 이해하려면 현재 미군이 직면한 더 큰 고민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레일건의 도입이 추진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비싼 미사일 가격
두번째는 해상 전면전 가능성이 사라짐.
걸프전을 전후해서 미국은 장거리 스탠드 오프 무기의 편리함에 중독됐습니다.
토마호크를 필두로 한 순항미사일은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놀라운 편의성을 제공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수백킬로미터 밖의 주요 표적이 사라지는 마법이었죠.
하지만 거기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사일은 비쌉니다. 제 아무리 돈 많은 미군이라도 눈 돌아가는 가격이죠.
거기에 냉전 붕괴 이후 전쟁 양상이 대테러전으로 바뀌자 개별 표적의 가치가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표적이 당나위 등에 실린 박격포탄 따위라면 아무래도 미사일을 쓰기에 아깝습니다.
두번째, 역시 냉전 붕괴가 문제인데 소련이 해체되자 열린 바다에서 미국과 맞붙을 적이 사라졌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해상에서 미 해군과 정면대결을 벌일 해상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마무시한 예산을 빨아들이는 미 해군은 왜 존재하는 걸까? 당연한 의문이죠.
존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해군은 스스로 존재의의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렴한 비용으로 내륙을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지상에 병력을 투입할 필요 없이 바다에서 테러리스트들의 거점을 까부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줌왈트 순양함이었습니다.
최신기술을 집약,걸프만과 같은 위험한 해역에 잠입,
내륙의 표적에게 신속한 포격을 가해 제거할 수 있는새로운 시대의 모니터함이죠.
레일건은 바로 그 줌왈트함의 주포로 탑재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줌왈트 프로젝트는 실패합니다.
너무 많은 신기술을 한꺼번에 투입,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사실 이 대목은 냉전 종료 이후 계속 반복되는 레퍼토리입니다.)
대안이 없었던 F-35와 달리 줌왈트는 기존의 장비와 인력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했습니다.
국제 정세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석유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중동은 더이상 미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석유가 필요하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들과 흙투성이 싸움을 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거기에 더해 중국이 성정하면서 실질적인 위협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중미 대결에 있어 최전선은 서태평양이므로 이 신흥강자의 콧대를 찍어누르는 것이 해군의 새로운 사명이 되었습니다.
강대강의 전면전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완성에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신기술에 목을 매고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레일건 프로젝트는 이런 주변 상황의 변화로 인해
점차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의 시야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줌왈트는 이런저런 재미난 것들을 실험하는 테스트함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고,
레일건 대신 장착한 AGS(Advanced Gun System)라는 주포는 포탄이 없어서 무용지물 상태입니다.
원래 AGS에 사용할 예정이던 LRLAP라는 장거리 유도포탄은 예산부족 이유로 취소,
대체물로 원래 자주포용으로 개발중이던 M982 Excalibur를 AGS에 맞게 개량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역시 확정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줌왈트는 실전에 투입되더라도 포를 쏘지 못합니다-!! 줌왈트 2척이면 최신항모 1척인데 역대급 비싼 똥.)
그래도 아직 HVP라는 프로젝트는 살아있기 때문에 장거리 포탄에 대한 해군의 로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HVP는 Hyper Velocity Projectile의 약자로, 원래 레일건용 탄환으로 개발하던 탄두입니다.
개념을 쉽게 설명하자면,
전차포에 쓰는 날탄(APFSDS)을 해군용 함포에서 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포탄은 단단한 금속으로 된 쇳덩어리이고, 얇은 송곳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꼬리 부분에 날개가 있어 제한적인 자세제어를 할 수 있습니다.
포탄이 가늘기 떄문에 포의 구경에 맞춰 껍데기를 씌워두고 포가 발사되면
포신을 벗어나면서 껍데기가 벗겨져 떨어져나갑니다. (날개안정철갑탄이 바로 그런 방식이죠.)
기존 포탄과 차별화되는 점은
1) 순수 운동에너지탄
2) 비행속도가 빠름. 그 결과 사거리가 기존 함포의 약 2배에 달함.
3) 껍데기 크기만 조절하면 되므로 어떤 구경의 함포에도 모두 적용 가능.
이렇게 세가지입니다.
장약을 사용하는 건 기존 포탄과 마찬가지이지만 탄두 전체가 단단한 쇳덩어리인 것이죠.
이 탄두를 개발한 BAE는 이 포탄이 레일건을 대체할 수 있는 신무기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도 여기에 적지않은 관심을 갖고있어서 2018년 림팩 훈련 중에 이 포탄으로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스팩상으로는 상당히 쓸만해보입니다.
HVP는 2020 올해 기준 1발당 $86,000으로 레일건이나 미사일에 비해서는 확실히 저렴합니다.
마하3-4로 비행하는 탄체이므로 요격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연사속도도 훌륭합니다. (미해군 MK45기준 분당 20발)
사거리는 80km로 레일건(200km)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25km에 불과한 현용 함포탄에 비하면 월등히 긴 사거리입니다.
기존 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므로 미국이 백척 넘게 보유한 이지스함을 한꺼번에 무장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HVP역시 레일건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문제를 갖고있습니다.
바로 사용처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해상전에서 운동에너지탄은 일종의 계륵입니다.
특히 전투함의 장갑이 얇은 요즘 트렌드에서는 고속 철갑탄은 실질적인 피해를 주기 전에 관통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HVP탄두에 장약을 넣으면 그나마 조금 낫겠지만 속도를 위해서 용적을 희생한 까닭에 위력이 기존 고폭탄에 비해 현저히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형 전투함을 무력화시키려면 연발로 Salvo를 날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적함 1척을 무력화 하기 위해 HVP 20발의 유효타가 필요하다면 비용이 2백만불에 육박해서 미사일과 별반 다를바가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지상 표적에 운용하자니 사거리와 위력이 애매합니다.
운동에너지탄이므로 지하벙커와 같은 보호된 표적을 뚫고 들어가기는 좋지만 피해가 한정되어있고,
단 1미터라도 표적을 빗나가면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합니다.
차라리 멀리서 비행기를 띄워 구형 토마호크를 한발이라도 더 날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 편이 더 안전하기도 하구요.
.... 참 할말이 많은 연안전투함. 얘도 결국 미해군의 내놓은 자식이 됐습니다.
아뭏튼 시울프에서 연안전투함, 줌활트에 이르기까지
근 30년을 끌어온 미 해군의 거한 삽질의 끝을 슬슬 보게 될 전망인데
마침 올해는 미 해군의 차세대 순양함에 대한 공고가 발표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나이들어 골골대는 타이콘데로가를 대체할 미 해군의 새로운 기둥서방이죠.
Covid-19 사태와 대통령 선거로 인해 사업이 예정되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좀와트는 최신 기술 실증 신형함이라는 이유라도 있는데 연안전투함 사업은 완전 망한 프로젝트죠. 싸게 만들어 쓸려고 했는데 결과는 돈먹는 하마
연안전투함은 참... 할많하않이죠.
소식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매스드라이버 상용화 보고싶었는데 ㅋㅋㅋ
러시아가 우주용으로 개발하고 있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우리 생전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