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요~ 동미아재 오셨심다~"
문간에 들어선 고향 아재를 맞으며 큰방을 향해 큰 소리로 알리면, 탕! 초칠 안 해 뻑뻑한 안방 문이 끝까지 밀렸다가 다시 퉁겨져 나올 정도로 세게 열리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신 아버지, 급히 달려 나오신다.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시려고...?
"아이구~ 자네 왔는가? 이게 얼마 만이고?"
마당에서 오신 분의 손을 반갑게 잡는 아버지는 그럴 경우 대개 맨발이셨다.
뒤이어 대청마루에서 내려와 손님을 맞는 어머니 또한 얼굴에 웃음 가득하긴 마찬가지, 남녀 간의 예법이 달라 손잡진 않으셔도 오신 분이 그 웃음만으로도 편안해질 그런 웃음으로 손님을 맞으셨다.
손님께 절을 드리고 큰방을 물러난 우리 남매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소리 죽여 웃는다.
"아부지도 참... 그렇게 가깝거나 반가운 친척도 아닌데, 저렇게 맞으시면 오신 손님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부지 넘어지실까 봐 내가 다 조마조마하더라. 오늘도 맨발로 뛰어 내려가시데."
"손님 두 번만 더 왔다간 큰방 문 다 부서지겠다~"
누나와 형과 나는 그런 소리하며 혹시 큰방으로 소리 넘어갈까 조심하며 킥킥 웃었다.
아버지는 뜸하게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을 그렇게 맞으셨다.
소식이 없다가 뜸하게 찾는 그 고향손님들은 도시에 나와 공직 생활을 하는 아버지나 대학병원에 의사로 있는 큰형에게 뭔가 부탁을 하러 찾아오곤 하셨는데, 혹시 부담스럽게 맞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찾은 그 고향사람들에게 아버지의 환대는 그런 부담을 봄눈 녹이듯 녹여버리는 묘한 힘이 있었다.
상갓집을 찾으실 때도 그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 번은 아버지를 따라 먼 친척 어른의 문상을 간 적이 있었다.
상갓집으로 들어가는 시골길 입구에서부터 아버지의 곡은 시작되었다.
"아이고~~ 우째 이런 일이... 아이고~~!!"
시골집 담장을 짚으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비틀거리며 절절하게 우러나오는 아버지의 곡소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나선 어린 나조차 비통한 마음이 들 정도로, 상을 당한 사람들보다 더 비통하고 애통하게 흘러나왔다. 어느새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고, 상갓집 마당을 들어서자마자 허둥지둥 빈소를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도 분명 가신 분을 급작스럽게 잃게 되어 황망하고 비통해하는 마음이 누가 보아도 잘 드러나는 그런 몸짓이셨다.
빈소 앞에 엎드려 한참을 곡하시다가 절을 하고 유족들에게 전하는 문상의 말씀도 극진하셨다. 간신히 슬픔을 억누르고 있던 유족들도 그즈음이면 새로 눈물바다를 이룰 수밖에...
문상을 마치고 돌아 나올 때, 어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의 눈물도 처음 보았거니와 아버지가 저리 슬퍼하시니 장차 이일을 어찌할꼬... 아버지를 어찌 달래 드리나... 그런 고민으로 아버지 눈치만 살살 살피는데, 문상을 마친 아버지는 어느새 평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계셨다. 대신 돌아가신 어른이 살아 계실 적에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떤 품성을 가지신 분이었던 지를 알려주셨는데 그 얼굴에 좀 전의 비통함과 애통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돌변한 모습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손님을 맞지 않아도, 그렇게 비통하게 문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버지는 왜 저렇게 과잉행동을 하실까...?
유난히 숫기가 부족하던 내 어린 시절, 내 입장에서는 쑥스럽기만 할 것 같은 아버지의 그 과례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며, 어릴 적엔 유난해 보이던 아버지의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일들이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해가 된다고 해서 내가 따라 하기엔 쑥스럽고 부자연스러워 행하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들에 담긴 심중을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어려운 부탁을 하러 다소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찾은 친척집, 그 친척이 아버지처럼 그렇게 달려 나와 반겨준다면 그 찾은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질지...
애통한 상을 당한 상갓집, 가족보다 더 슬퍼해 주는 문상객이 있다면 그 상을 당한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질지...
아버지의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그 몸짓과 행동에는 체면이나 쑥스러움 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이전 시대를 사셨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것이 올바른 예법이라 믿으며 사셨던 것 같다.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떠나와 생활터전을 잡고 사는 요즘에는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없지만, 드문드문 예전 한 번씩 고향집에 들리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화들짝 현관문을 열며 달려 나와 반갑게 맞아주시던 환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왔구나~ 오는 길에 고생은 안 했나~"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울려 나온다.
오늘 밤엔 아버지가 꿈길따라 찾아오시려나 보다.
첫댓글
ㅎㅎ 맘자리님은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선수이십니다.
아마도 제가 태어나서는 처음 보는,
촌수도 알 수 없는 시골 아재, 아지매들이
찾아 오셔서 며칠 씩 묵고 가십니다.
항렬이 저보다 낮다는 이유로,
저를 아지매라고 할 적에는 하이고 마~^^
그런 것 뿐이겠습니까?
제게 6촌 올캐언니는, 제 당숙님(자신에게는 시아버지)이 돌아가셔서,
마을 어귀에서 부터 신발을 두 손에 들고, 곡을 하면서 들어 오셨다고
말씀하셨거던요. 제대로 교육받은 집 자제라나 뭐라나~^^
그 올캐 언니는 당시, 부산의 어느학교 교사였는데,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 못할 것 같았거던요.^^
우리들의 세상살이가 한세대에 얼마나 바뀌었는지요.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남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자식 자랑하지 않고, 친척을 먼저 챙기는 그런 시대였지요.
한 번 씩, 다니러 왔다고도 합니다.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고요.^^
맘자리님 덕분에, 저도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막내셨고 저도 막내라
항렬 따져 저도 곤란을 겪은 경우가
많습니다. 명절에 시골에 가면 제 눈에는
분명 할밴데 형님이라 하고
아저씬 조카라 하니... ㅎㅎ
<콩꽃>님도 그러셨군요.
고교 시절, 아버지 따라 종가에 들렀을 때 할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저를 보고는 <서울 아재 오셨니껴.>하는데 이거야 원~~~
막내의 막내의 막내의 막내의~~ 맏아들이라 동년배는 대부분이 손자뻘이지요.
ㅎㅎㅎㅎㅎ
그 시절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손님을 과대하게 반갑게 맞이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 가족에게는 늘 아끼고 절약해라고 하시면서
손님에게도 후한 밥상을 차리라고 하셨지요?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없었던 커다란 배도 이웃 할머니에게 사다 드리고....
유교가 예를 지켜 군자에 이른다고
가르쳤으니, 그 예가 과례로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례들이 그 속뜻을 살펴보면
다 좋지않은 것만은 아니란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순박하셔 그러신가보다
하면서 읽다가
아.아닌가? 했습니다.
아버님에 대해
재미있게 쓰셔서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그 모두가 배려심이셨다고요.
아버지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아버지 떠나시는 길에
찾아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아버지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요.
길에는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많은 것들도 있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언변에서 그리고 또 행동에서 좋은 점을 많이 배웁니다. 실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은 저렇게 해야 합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습니다.
아버지의 시대에는 그런 예절이
당연했던가 봅니다. 저에게도
알려주고 싶어하셨는데, 제가
쑥스러움이 많아서 도저히 따라하진
못 하겠더군요. 행동을 따라하진 못 해도 그 마음은 최대한 따라하려고
노력하며 살지요.
아버님이 그런 분이었군요.
늙어가는 형을 보니 아버지가 보입니다.
고든님도 형님이 계셨군요.
제 큰형과 작은형에게서도
아버지가 보였는데 요즘은
저에게서도 아버지가 보입니다.
장대비 맞으며 형과 감 줍고 따던
이야기가 가슴 따뜻했습니다.
과례 - 유교의 폐해라고들 말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어린 시절, 어른들의 행동거지를 오늘 되살려 이웃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야겠습니다.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까지 담아갑니다.
^(^
네.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법은
시대따라 그 방식은 달라져도
담긴 마음은 달라지면 안 되겠지요.
속을 찾아 시대에 맞게 바꾸어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