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The Hunt for Red October by Basil Poledouris - Hymm to Red October(붉은 10월 OST)
출처: 피키캐스트 "Curious_Park"님
어느덧, 미국 역사 시리즈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 미국 건국 이전의 식민지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내용을 총 17편에 걸쳐 포스팅하고 있는데요~
이 시리즈를 계속 보신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1940년대부터는 이전 시기보다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940년대부터 미국은 단순히 신흥 강대국이 아니라 명실상부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 여파가 전 세계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역사가 곧 세계사의 흐름으로 직결되죠.
그래서 조금 더 분량을 할애하여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오늘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냉전 시대'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흔히, 냉전(Cold war)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소련이 붕괴되는 시점인 1991년까지의 시기를 말하는데요.
약 45년 정도 지속되었으므로 반 세기 가량, 전 세계는 냉전을 겪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냉전이 시작되었을까요?"
오늘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Let's Go~!
문자 그대로 보면 '차가운 전쟁'인데요. 그렇다면 추운 지방에서 일어난 전쟁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걸까요?
아니라능~! 냉전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어요. 한 여자를 동시에 마음에 두고 있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들의 최종 목표는 그녀의 마음을 획득하는 것이죠.
물론, 그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매우 험난합니다. 두 남자는 그녀에게 매력 어필을 하기 위하여 자신을 꾸며야 하며,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치밀한 전략도 필요하겠죠.
즉, 두 남자는 직접적으로 치고 받고 싸우지는 않지만 명백히 '경쟁자' 관계입니다. 둘은 절대 파트너가 될 수 없죠. 상대보다 어느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 있어야 이 승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남자는 바로 '미국'과 '소련'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곧 '세계 최강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서로 무기를 들고 직접 전쟁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이데올로기, 국방력, 경제, 기술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며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기를 '냉전'이라 부릅니다. 두 남자(미국, 소련)는 그녀의 마음(세계 최강국)을 놓고 무려 46년이나 피 말리는 싸움을 하죠.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냉전은 왜 일어났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2차 세계대전에서 서로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왜?" 나빠졌는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끝이 났습니다. 상식적으로 전쟁이 끝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땅'이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추축국(독일, 일본 등)은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 전쟁에서 졌어요. 그렇다면, 승전국인 소련과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한 가지 명백히 해둘 것이 있었겠죠.
바로 점령국들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즉, '누가', '얼만큼' 점령국들의 땅을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죠.
전쟁 기간 내내 동지였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영토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된 '동유럽 국가'들을 모두 점령하고, 공산주의를 심으려 합니다. 그는 왜 동유럽에 욕심을 품고 있었던 걸까요?
스탈린 왈
: "서유럽 애들 진짜 위험한 놈들이야.. 영국이나 프랑스가 독일처럼 힘을 키워서 또 우리 영토를 넘볼지도 몰라!!!"
스탈린은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권 나라들의 힘이 세지면, 언젠가 또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하나의 안전한 '바리케이드!!!'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 바리케이드란, 바로 서유럽과 소련 사이에 위치한 '동유럽'을 지배, 통제하는 것을 뜻했어요. 서유럽의 힘이 아무리 커져도, 동유럽만 잘 컨트롤하고 지배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스탈린은 동유럽에 '공산주의'를 심으려 노력합니다. 공산주의를 퍼뜨려, 자신(소련)의 손바닥에서 이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한 것이죠.
그러나 미국의 루즈벨트가 스탈린의 계획에 딴지를 걸지 않을리가 없었죠. 루즈벨트는 스탈린의 공산화 계획에 반대하며, 점령국에 자유 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새 정부를 세우려는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루즈벨트 왈
: "너네(소련)가 유럽 중/동부를 완전히 공산화할 생각을 갖고 있나본데, 그게 가능할 것 같니? 스탈린아~"
루즈벨트는 전 세계 국가들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개방된 나라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그래야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큰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즉 두 나라의 결정적인 차이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재편되는 세계에 대한 너무도 다른 '비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이어 '냉전'으로 발전하게 되죠.
루즈벨트와 처칠,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2월에 소련의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에서 스탈린은 태평양 전쟁에 소련이 참전할 것을 약속했고, 그 대가로 러일전쟁 때 잃었던 일부 영토를 되찾기 위한 '공격 동의'를 약속받았죠.
또한 스탈린은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 동쪽 지방의 땅을 떼어줄 것을 미국과 영국에게 요구했습니다.
스탈린 왈
: "폴란드 동쪽은 원래 우리 땅이라능~ 그러니, 우리가 차지하겠어. 대신, 폴란드에게는 독일 동쪽 땅을 내어주자고!!"
즉, 스탈린은 폴란드의 일부 지역을 소련의 영토로 병합하고, 독일 영토의 일부를 폴란드에게 주자고 한 것이죠. 폴란드로써는 말 그대로 '좌측으로 3보 가!"나 마찬가지였죠.
양측의 의견이 갈린 부분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의 장래'에 대한 문제였어요.
루즈벨트 왈
: "독일을 다시 절망 속으로 몰아가선 안돼. 그럼 언젠가 또 전쟁을 일으킬 거야"
스탈린 왈
: "뭐? 그럼 독일을 재건하자는 얘기? 님하! 장난하셈? 얘네들은 아예 국제사회에서 매장시켜야 돼"
즉, 루즈벨트는 독일이 다시 재건되길 바랬지만, 스탈린은 독일이 영구적으로 분단되기를 희망했죠.
결국, 이 회담은 굉장히 애매한 결론과 함께 끝이 납니다. 승전국들은 각자가 점령한 지역을 지배하기로 하고,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4개의 구역으로 나눠 각국이 점령하기로 한 것이죠.
즉, 얄타협정은 진정으로 전후 문제를 '해결'본 것이 아니라, 대충 수습한 정도로 끝납니다. 루즈벨트는 시간이 지나면 소련과 입장 차이가 좁혀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회담장을 떠났어요.
그런데 얄타회담이 끝난 직후, 루즈벨트는 갑작스럽게 뇌졸중을 일으켜 사망합니다. 그리고 소련과의 애매한 입장 차이 문제는, 고스란히 후임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에게 넘어가죠.
평화의 붕괴와 독일의 분단
: 해리 트루먼의 등장
트루먼은 기본적으로 루즈벨트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일단, 소련을 싫어했으며 특히 스탈린을 거의 혐오하는 수준으로 바라보았죠.
트루먼은 집권하자마자 소련에게 강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945년 7월에 독일의 '포츠담'에서 스탈린과 처칠을 만나죠.
스탈린 왈
: "루즈벨트 죽었다는 소식 들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그는 최고의 지도자였어. 근데, 폴란드 땅 우리가 가져도 돼?"
트루먼 왈
: "그래 뭐.. 맘대로 해. 근데, 독일을 붕괴시키겠다는 너 생각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 못함"
스탈린은 1차 세계대전 직후와 마찬가지로,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 요구를 무시해버리죠.
당시, 베를린은 4개 구역으로 나눠서 분할 점령되고 있었는데요. 트루먼이 스탈린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베를린 분할 점령은 지속되었고, 독일이 분단 상태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해졌죠.
그리고 트루먼은 공산주의 자체를 아예 '봉쇄'시키려고 했습니다. 1945년 말이 되자, 유럽의 반 이상이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었습니다.
트루먼은 소련이 더 이상 공산화된 세력을 팽창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산정부 자체를 '국제 왕따'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죠.
소위 이 '공산권 왕따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다름 아닌 '원조'였습니다. 즉, 공산주의에 위협받는 나라가 있으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죠.
트루먼 왈
: "공산주의가 싫다는 말만 해. 그럼 우리가 바로 돈을 빌려줄게. 참 쉽지?"
트루먼의 타겟은 서유럽이었습니다. 서유럽을 재건하지 못하면, 언젠가 소련에 의해 서유럽이 '공산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소련에 필패인 것이죠.
1947년 3월, 트루먼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를 변화시킬 연설을 합니다.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이라 불리는 선언을 한 것인데요.
트루먼 왈
: "앞으로 미국은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세우려는 나라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것이다!!"
이러한 트루먼의 선언에 영국도 좋아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도 재건이 시급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처칠은 역사에 남을 만한 연설을 하죠.
윈스턴 처칠 왈
: " 오늘날 발트 해의 수데텐란트(폴란드 북부)에서부터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이 내려져 있습니다.”
이 '철의 장막'이란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1년에 냉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을 상징적•사상적•물리적으로 나누던 경계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트루먼 독트린이 현실화된 것은 '그리스와 터키' 사례였어요. 당시, 스탈린은 터키와 그리스를 공산화시키려 했습니다.
트루먼은 터키와 그리스가 공산화되면, 서유럽과 아시아 전체가 결국 소련의 손아귀에 넘어갈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무려 4억 달러를 터키와 그리스에게 지원하죠. 결국, 스탈린은 이들 국가의 공산화를 현실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주의 봉쇄 정책'과 '트루먼 독트린'은, 냉전 시대가 시작된 이래 30년 이상 지속되는 미국 외교정책의 기초를 확립하게 되죠.
< 19편 예고>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세계가 어떤 흐름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쁨도 잠시,
두 명의 남자는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쟁과 긴장감은 '냉전'의 형태로 나타났죠.
다음 19편에서는, 냉전 초기에 세계는 어떤 흐름으로 변화하였으며 한국 전쟁 전까지의 미국 역사를 포스팅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연재 시리즈
1편 미국은 왜 천조국인가? : 한 눈에 보는 미국역사
2편 한 큐에 읽는 미국역사: 신대륙 개척의 승리자는?
3편 천조국 탄생 스토리: 미국의 건국 과정
4편 미국이 11년동안 대통령이 없었던 이유
5편 미국땅이 하룻밤 사이에 2배로 늘어난 이유는?
6편 텍사스 사람들이 유독 자부심이 쎈 이유
7편 아메리칸 드림의 진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8편 그 전쟁이 알고싶다: 미국 '남북전쟁'의 진실
9편 남북 전쟁 그리고 그후, 우리는 노예가 아니에요.
10편 미국, 세계 최강이 되다: 거대 자본의 탄생
11편 천조국의 1900년대 역사: 다 비켜! 세계는 내꺼야
12편 미국 시리즈 전쟁으로 인해 돈방석에 앉은 나라
13편 미국 역사상 가장다이나믹했던 10년
14편 천조국에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
15편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늦게 참전한 진짜 이유
16편 미국이 천조국으로 레벨업하게 된 이유
17편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꼭 투하해야 했을까?|
위에 출처에서 가져온 자료 입니다.
제가 작성한줄 아시는 분들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