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려니까 영감이 옆에 와서 앉더니
웃옷을 훌떡 걷어 부치고 돌아 앉으며 "여보! 등좀 긁어 줘요!"하는 거였다.
읽던 신문을 내려 놓고 손톱을 내세워 아프지 않게 벅벅 긁어 줬더니
"어~! 시원하다. 어~!시원하다!"를 연발하더니 "이젠 우리 마누라가 등글개가 됐구나."
하는거였다. 그러니까 마누라의 용도가 오직 등글개가 되었다는 소리로 들려서
기분이 나빠지면서 샐쭉해졌다.
등글개~ 등을 긁는데 쓰는 도구
그래서 대뜸 "당신은 뭐 딴데 소용있는 줄알아요? 당신도 간잽이란 말예요."
하고 톡 내 쏘았다.
간잽이~ 생선을 절이거나 간고등어에 소금을 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간을 보는 사람이란 뜻으로도 쓴다.
영감이 "허허허~~! "웃었다. 나도 기분이 풀려서 함께 웃었다.
젊었을적엔 안 그러던 영감이 나이 드니까 피부가 건조해지는지 요즘은 자주 등을
들이대며 등을 긁어 달란다. 옛날에는 늙은이가 등 긁어 주는 첩을 데리고
살았는데 그런 첩을 등글개妾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드니 맛을 보는 혀까지 늙었는지 음식이 자꾸 짜진다.
그래서 찌게를 끓이다가도 숟갈에다가 국물을 떠서 영감한테 짠지 싱거운지 간을
보라고 한다. 김치 버무리다가 맛보라고 하고 나물을 무치다가도 간을 보라고
한다. 그러니 간잽이가 아닌가!ㅎㅎㅎ
두 아들 결혼해서 제각각 나가서 살고, 시어머님까지 돌아 가시니 두 늙은이가
단촐하게 살아간다. 그야말로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요."로 시작되던 옛날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간단한 소찬으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나면 각각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함께 텔레비젼을 보기도 하는데 그럴적마다 등을 들이대는 영감이다.
전엔 그럴적마다 귀찮은 생각이 들더니 이젠 늙어가는 영감이 측은해서 엄마가 된 마음으로
여기저기 정성들여 골고루 긁어준다. 요즘들어 부적 늙어 보이는 영감이 안됐어서 톡톡 쏘는
말버릇과 벌컥증도 고치려고 노력중이다.
어제는 방송국에 다녀 오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차 한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가 내가 무슨 말끝에 "요즘은 마음도 무겁고 마음이 허전하다."고
했더니 "아이구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세요? 알짜배기 신선생님(우리 영감)이 계신데..
뭘 더 바라세요?" 하는거였다. 그래, 맞다! 이 세상에 영감만큼 나를 생각해 주는 이가
또 있나! 이해성 많은 든든한 영감이 있으니 여기서 뭘 더 바라랴 싶다.
영감이 건강하게 오래 오래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끔은 열불 나는 소릴 해서 내 벌컥증이 도지게 하지만 말이다.ㅋㅋㅋ)
초저녁 잠이 많은 영감은 8시 뉴스를 보고 나면 곧장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올삐미형이어서
새벽 두 세시까지 잠을 안자는게 보통이다. 일찍 잠을 잔 영감은 꼭두새벽인 새벽 4시쯤에
일어난다. 그러니 우리집엔 24시간 불침번을 서게되는셈이니 도둑이 들 새가 없다.ㅎㅎ
간잽이는 지금 꿈나라로 갔는데 등글개는 자정이 넘은 이시각에 이딴 수다나 떨고 앉아 있다.
첫댓글 나도 안나님 처럼 살고 싶어요 !~~~~등글게 간잽이 하면서 ~
사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세요.가슴이 뭉클해 지네요.
등글개妾 두느니 항상 책상 한켠에 등글개 愛妾으로 필수품으로 올해는 작은것 큰것 몇개 더 구입 예정ㅎㅎㅎ 어쩐지 나보러 국 간을 보라고 자주그러니 내가 간잽이가 되었다니... 두분 걷는 모습 같이 살런지....
등글개.. 옥수수 알맹이 떼어 먹고 마른것을 나무젓가락에 끼워서 등을 긁으면 그게 제일 시원한데... 요즘은 중국산 대나무 효자손이 그일을 대신해줍디다.
간잽이와 등글게....천생연분이십니다.
간치고 등 긁어주고
북치고 장구치고를 적당히 나누어서 사시는 모습
언제나 고운 모습입니다요^^
아름다운 동행이십니다...
안나님의 웃음짓는 모습은 만점입니당.
제목이 좀 야릇해서 들어왔더니
간잽이와 등들개가 그런뜻이였군요?
두분이 알콩달콩 사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이세요.
잡지 표지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정말 아름답네요. 부럽구요. 제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은 <아들아, 너는 절대로 네 아버지를 닮지 마라> 인데........
둥글개 첩이 돼셨네요 .안나님 ㅎㅎㅎ
정말 멋지게 사시는 우리 안나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