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으로 보고 그리다
- 그림책 작가 이세 히데코 원화전
김문홍 동화작가
요즈음 아동문학계에선 그림책 동화의 열풍이 거세다. 이사를 갈 때 다 읽은 일반 동화책은 버리거나 기증하기도 하지만, 글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그림동화책은 이사 목록에 넣어갈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림책의 소장 가치를 짐작할 만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화적 서사의 분량은 고작해야 두 쪽 정도에 두어 줄에 불과한데, 서사에 비어 있는 상상력을 채색해서 그려넣은 원색 그림이 페이지를 가득 채워 어린 독자들로 하여금 문장 너머에 오글거리는 판타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부산도서관의 건물 디자인 역시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책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디자인으로 벽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다. 그 유리창으로 이세 히데코의 그림책 '천 개의 바람'처럼 말갛고 투명한 햇살이 들어와 소장 도서에 온기를 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인 <이세 히데코 원화전>(2023. 4.11〜5.28)이 열리는 부산도서관 2층 전시장은 그녀의 해맑은 웃음처럼 환하고 정갈했다.
청바지를 입고 획일화를 거부하는 듯한 헤어스타일에 천진난만한 아이같이 활짝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 속의 그림책 작가 이세 히데코(1949~)의 모습이, 자유로운 영혼과 취재를 위해 훌쩍 떠나는 방랑,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그녀의 결기를 느끼게 해 준다.
약력을 일별하니 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예술혼이 절로 그려진다. 일본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디자인 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에, 그녀는 지금까지 그려 놓았던 자신의 모든 그림을 불태우고 일러스트레이션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과거의 그림 이력을 죄다 부정한 채 새로운 그림 작업에 몰두하겠다는 그녀의 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또한 오른쪽 눈이 실명하여 볼 수 없게 되자 "보이지 않는 것은 마음으로 그리겠다"는 말은, 곧 예술에의 새로운 개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 그런 결기와 의지, 그리고 미래에의 새로운 도약이 그녀에게 오늘의 명성믈 선물했을 것이다.
이세 히데코는 다른 시인이나 작가의 글에 자신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이 아주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다. 유화나 크레파스나 파스텔이 아닌 수채화풍의 그림이다. 아주 맑고 투명한 그림 너머로, 글의 이면에 고여 있는 판타지를 독자들이 읽어낼 수 있게 여백을 마련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면 동양적 여백의 단순함으로 글과 그림을 훑어나가는 독자들에게 순백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고나 할까.
전시해 놓은 그녀의 그림과 글을 훑어나가다 일본의 국민시인 오사다 히로시의 시에 그림을 새겨넣은 <첫번째 질문>, <아이는 웃는다> 등 두 권의 그림동화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오사다 히로시의 시 '기적' 속에 들어있는 <아기는 웃는다>가 보는 나의 감성을 크게 뒤흔들었다. 마치 그림책 서사의 전형을 보는 듯해서이다.
<아이는 웃는다>는 어쩌면 웃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촌철살인의 우화에 가깝고, 행복을 잊고 사는 어른들에 대한 냉철한 은유적 상징으로 읽혀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아직 말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웃는 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을 보고,
아이는 웃는다.
그림동화 속에 들어있는 위 인용문처럼 현대의 어른들은 아이 같은 직관적 감수성과 웃음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또 이 그림동화 속에는 '아이들은 말을 배우면서 행복을 잃는다'는 성장에 대한 역설적인 풍자도 들어있다. 계산과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한 때 묻은 어른들의 말을 배우면서 아이들은 기성 세계에 편입되고, 그러면서 점차 행복을 잃어간다는 무섭고 잔인한 역설적 냉소와 풍자도 예리한 송곳날처럼 숨어있다.
전시된 원화 중에서도 수채화 풍을 변주해 이전의 자신의 그림과는 달리 강인한 원색의 힘이 들어있는 이세 히데코의 그림은 <고흐, 나의 형>이다. 이 작품은 내 안의 고흐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를 상상력의 연금술로 빚은 작품이다. 이세 히데코의 강인한 예술혼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오늘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세계로의 진입을 열망하면서, 그녀처럼 지금까지 그려 왔던 자신의 원고나 그림을 파기할 수 있는 예술적 광기가 있는지 자못 의심스럽다.
이세 히데코는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 "나는 경험주의자이면서 현장주의자이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것은 그릴 수 없다"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수정하기까지 했는데, 변화된 자신의 그림 철학에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그녀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의 눈으로 그린다"라고 말하면서,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는 것은 그릴 수 없다는 이전의 자신의 신념을 다독이며 위로했을지 상상하니 다시 한번 마음의 아릿한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처럼 이세 히데코는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예술에 대한 집념과 선한 예술에의 광기를 시사해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지신의 작품을 모두 무화시킨 채 새로운 예술에의 결기를 어떻게 그리 단단하게 다짐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신체적 결핍을 강인한 열정으로 극복한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궁금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와 작가들, 그리고 일상에 안주한 채 동화를 끄적거리며 살아온 내 자신에게 묻고 싶다.
<아이는 웃는다>의 그림동화책을 꼭 한 권 구입해,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철학과 인생에의 은유를 어떻게 형상화해야 하는지 한 수 배우고 싶다. 두고두고 독자나 어른들에게도 회자되는 그림동화책 한 권을 쓰는 것이 이제 내 간절한 꿈이 되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이세 히데코에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이세 히데코 선생!
당신의 예술적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을 많이 배우고 갑니다." (2023년 4월 20일)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나이가 들어도 소녀처럼 웃는
작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유명인의 대단함을 한 번 더 느끼고 갑니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웃고 사는 일이 아닐까!합니다^^
이세 히데코의 그림책을 보고 싶네요. 나이가 드니 어린아이처럼 그림책이 좋아졌어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