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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4일 출시예정■■
【디스크 유니온·오리지널 특전】
『【토게스】/종이【쟈케】CD 5타이틀 정리구입 세트』를 매상의 손님에게 선착으로, 종이【쟈케】수납 『스튜디오』박스를 드립니다.
“북유럽(北歐)의 비틀즈”이라고 불리는 전설의 밴드TAGES
많은 팬이 애타게 기다린 「【토게스】」환상의 명반 5타이틀이 종이【쟈케】로 복각!!
1960년대 초두에 흥한, 비틀즈를 중심으로 하는 팝·【무보멘토】는, 영국에서 미국에 건너고, 미국의 차트를 석권하는 것에 이르고, 영국의 침략-British·【인붸이죤】라고 말하게 했다. 소위 밴드·붐의 도래다. 그러한 흐름은, 곧 세계적인 것이 되고, 일본에서도 그룹사운드(group sounds)라고 말해지는 【무보멘토】가 되어서 많은 팬을 매료한 것이다. 물론 유럽의 비영어권의 각국도 예외가 아니고. 각국의 수많은 그룹을 배출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토게스】도 그러한 밴드의 하나로, 60년대의 【스웨딧슈】·팝·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TAGES 【토게스】·퍼스트
·2【토게스】·세컨드
·EXTRA EXTRA 엑스트라·엑스트라
·CONTRAST 콘트라스트
·STUDIO 스튜디오
각2800엔 (세금 포함)
【토게스】의 데뷔는 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꼭)정확히 그 전년의 63년에 비틀즈가 스웨덴 상륙을 다하고, 【이에테보리】로 콘서트를 행하고, 또 텔레비전 출연도 행했다. 그런 비틀즈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 토미·【볼무】(VO), 안드레·【토펠】(G, VO), 단이네요 ·【라손】(VO, G, K), 쇼랜(shoran)·【라게베리】(B), 【후레디】·【스칸쯔】(DR)의 5명 로 이루어지는 밴드, 【토게】·【스킷훌】·그룹이었다. 그들은, 비틀즈의 노래 연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음악 콘테스트“비틀즈·오브·더 웨스트”에 응모. 거기에서 훌륭하게 우승하면, 곧 바로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고, 싱글 「sleeve·리틀·걸」을 레코딩했다. 동(同)곡은, 64년10월에 스웨덴의 플라티나(platina)·라벨로부터 릴리즈되었다. 스웨덴의 비틀즈의 부르는 소리가 높았던 그들의 곡은 데뷔·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차트의 1위를 획득. 그들의 존재는, 순시로 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곳이 되었다. 그 후 【토게스】는 플라티나(platina)·라벨에 10장의 싱글과 3장의 앨범을 남기지만, 67년에는 라벨을 스웨덴EMI에 옮기고, 새로운 스타트를 끊는다.
덧붙이자면 2장째의 「아이·【슛도】·B·【구랏도】」 (65년 2월), 3장째의 「【돈토】·턴·유어·백」 (65년 5월)そ 해서 4장째가 되는 「더 원·포·유」 (65년 8월)의 3장의 싱글은 모두 차트의 2위를 획득하고, 8장째의 「인·마이 ·【도림스】」 (66년 7월)이 다시 넘버 원·히트가 되었다. 이 곡으로 드러머의 【후레디】·【스칸쯔】가 그룹을 탈퇴, 대신 토미·【토시스】가 【토게스】에 합류했지만, 일년 가지지 않고, 라벨을 EMI/【파로폰】에 옮기는 67년 초두에는, 【도람스】는, 【랏세】·【스벤손】에 스위치하고 있다. 【토구스】는 플라티나(platina)·라벨로부터 싱글뿐만 아니라, 앨범도 3장 릴리즈하고 있다. 순서대로 소개하면, 퍼스트·앨범은 「TAGES」에서, 발표는 65년1월. 세컨드는 66년7월에 릴리즈된 「2」,그리고 플라티나(platina)·라벨 최후의 작품이 되는 서드·앨범 「엑스트라·엑스트라」는 66년11월에 발매가 되고 있다. 플라티나(platina)·라벨 시대의 싱글 히트의 다수가 이야기하게, 앨범도 팝에서 캐치―な노래로 넘치고, 동(同)시기에 활약한 밴드와 비교해도 어느 작품도 머리 하나 뽑아 나온 마무리를 자랑하고 있다. 당시의 스웨덴에는 뒤에 【아바】를 결성하는 베니·앤더슨이 재적한 【헷푸】·【스타즈】, 이미 한사람의 【아바】, 【볼은】·【봐루봐스】가 있었던 더【후테나니】·【신가즈】라고 하는 인기 그룹이 있었지만, 【토게스】는, 그들에게 뛰어난다고도 뒤떨어질 일은 없는 활약을 보여준 그룹이었다.
【토게스】가 EMI에 이적한 것은, 그들이 스웨덴이외의 나라에서도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쿠리에이티뷔티】는, 그러한 그들의 욕구가 정당적인 것인 것 같이, 작품을 릴리즈하는 때마다 높아져 가, 이적을 기대하게 될 때에는, 먼저도 접촉한 것 같이 퍼스트로부터 서드에 이르는 3장의 앨범과 싱글은, 어느 것도 팝한 멜로디로 색칠되어, 그들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었다. 그러나, EMI에 이적해서 발표된 통산에서 4장째에 맞는 앨범 「CONTRAST」에는, 그것까지의 그들 작품이상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었다. 비틀즈에서 초기의 비트·팝을 경과해서 사이키델릭·사운드에 이행하는 65∼66년당의 분위기와 동등한 것을 느끼게 하는 그 마무리는, 많은 평론가, 팬을 놀라게 했다. EMI이적후 발표한 통산으로 11장째의 싱글 「【에보리】·【레인도롯푸스】·【민즈】·【아】·로트」 (67년 2월)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새로운 시대의 테이스트(taste)가 떠돌고 있었다. 그들이 참신한 수법은 많은 음악 팬에게 받아들여져서 차트·액션도 자주(잘), 최고위 2위를 획득.
계속해서 발표된 「【아임】·고잉·아웃」 (67년 4월)도 같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적후의 3장째의 싱글이 되는 「시즈·【하뷘구】·베이비·나우」 (67년 6월)은, 자숙의 괴로운 일을 당 차트·인은 달성할 수 없었지만, 「【토리토】·【하】·【라이쿠】·레이 디」 (67년 9월)은 베스트3에 먹어 들어가는 히트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시즈·【하뷘구】·베이비·나우」는 틴·ager의 임신을 테마로 한 가사의 내용이 일부로 문제가 되고, 라디오 등으로 그다지 온·에어 되지 않았기 때문, 차트·인이야말로 하지 않았지만, 노래 바로 그것은 퀄리티가 높은 싱글 곡이다.
【토게스】는 그 후도 「【제아】·【아】·블라인드·맨·플레잉·【후레디】·인·더 스트리트」 (68년 5월), 「아이·리드·유·【라이쿠】·앤·오픈·북」 (68년 11월)과 콘스턴트에 싱글을 릴리즈해 간다. 그러나, EMI에 이적하고나서 의【토게스】는, 싱글보다도 앨범 제작에 중점을 두게 되고, 그룹은 싱글 히트로부터 앨범·아티스트에게 변모해 간다. 그것은, 정말로 당시의 첨예적인 그룹이 그랬던 것 같이, 【토게스】도 또 비틀즈가 67년6월에 발표한 「사전트·【페파즈】·론리(lonely)·【하쯔】·클럽·밴드」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67년? 68년에 걸쳐서 현지 영국에서도, 스몰·【페이세스】 「【오구덴】·넛츠(nuts)·곤·【후레이쿠】」, 【호리즈】 「버터플라이」, 롤링 스톤즈 「【제아】·【사타닛쿠】·【마졔스티즈】·리퀘스트」, 【킨쿠스】 「빌리지·그린·소사이어티」, 맨프레드·맨 「마이 T·【가붸이】」, 【푸리티】·【신구스】 「SF【소로】」등등, “사전트·【페파즈】·신드롬”라고 말해야 할 앨범을 중심으로 한, 【콘세푸츄알】한 토탈·앨범이 많이 제작 발표되어, 뮤직·씬은 「사전트·【페파즈】」에서 내세워진, 환각적인 요소를 전면으로 한 것에 급변하고 있었다. 먼저도 접촉한 것 같이, 【토게스】는 그 흐름을 재빨리 이해, 「사전트·【페파즈】」에의 회답 모두 말할 수 있어야 할 앨범을 제작한다. 그것이 67년11월에 발표된 통산으로 5장째가 되는 앨범 「스튜디오」다.
이 앨범은, 전작 「콘트라스트」에서도 시도할 수 있었던 음악이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인 작품으로, 전작에서 보여진 컨셉의 윤곽을 더욱 확실하게 시킨 것이었다. 원래 【토게스】는 【킨쿠스】나 더【후】등의 음악성의 영향 아래로 있어, 소위 미국의 R&B에 대한 유럽의 R&B그룹을 목표로 삼고 있었지만, 거기에 환각적인 요소가 가해져, 뒤(후)의 【푸로구렛시보】·록에 연결되는 혁신적인 사운드·메이킹을 갔기 때문, 앨범 「스튜디오」는, 저절로 영미의 그룹과 같은 테이스트(taste)를 가지는 인터내셔널 마무리가 되었다. 【토게스】의 노래는, 원래 비틀즈나 【호리즈】등에 통하는 팝한 멜로디가 특징으로, 거기에 사운드·이펙트나 반대회전이 설비되어, 그들의 출신지 스웨덴의 민족음악이 배합되어서 마무리된 것이 「스튜디오」이었다.
발매의 시기를 생각하니, 그들의 사전트적 어프로치에 의한 앨범 제작 시기는 상당히 빠르다. 「리볼버(revolver)」적인 전작 「콘트라스트」로부터 7개월, 비틀즈의 「사전트·【페파즈】」로부터 약5개월에서의 「스튜디오」의 발표는, 다른 어느 나라의 아티스트와 비교해도, 아무리(어떻게) 【토게스】의 음악적 감각이 진행하고 있었는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앨범 「스튜디오」에 있어서의 음악적 어프로치나 그 완성도를 보면, 그들의 【쿠리에이티뷔티】는 이 시기가 절정기이었던 것을 안다. 그들은 「스튜디오」를 릴리즈함으로써, 아이돌로부터 아티스트에의 탈피를 헤아린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게, 앨범·릴리즈 직후의 68연말에, 그룹의 【보칼】이며 프론트·맨으로서 인기가 있었던 토미·【볼무】가 【토게스】를 탈퇴해버렸다.
남은 멤버는 그룹의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결의하고, 새로운 작품의 레코딩에 들어간다. 그러나, 프론트·맨을 결한 채로의 【토게스】로서의 활동은 어렵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룹명을 블론드(blond)(BLOND)과 개명. 뉴·앨범 「더 라일락·【아이즈】」를 이 블론드(blond)의 이름 밑에 스웨덴과 미국에서 릴리즈했다. 이 「더 라일락·【아이즈】」는 지금이야 말로 60년대 막내 유럽에서 개화한 【사이케데리아】의 걸작이라고 말해지고 있지만, 당시는 큰 세일즈에게는 연결되지 않고, 블론드(blond)는 몇장의 싱글을 릴리즈한 뒤, 70년이 되어서 그들은 그 활동에 막을 내렸다. 한발 먼저 그룹을 빠져나간 토미·【볼무】는, 솔로로서 활동하고, 싱글도 발표했지만, 【토게스】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다. 덧붙이자면, 【토게스】? 블론드(blond)를 경과한 쇼랜(shoran)·【라게베리】는 그 후 【푸로구렛시보】한 록·밴드, 【케부네카이제】의 멤버로서, 70년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의 뮤직·씬에 자진해서 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