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동산. 작성산
산행일 : 2005년 9월 06일 화요일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흐리고 센바람)
누구랑 : 초록잎새와 함께 산악회 버스를 따라서...
어떻게 : 성내리(11:10)~성봉-중식(12:57)~중봉(13:35)~동산(13:47)~새목재(14:20)~까치산
~작성산(14:52)~부도탑(15:28)~무암사(15:32)~남근석(15:52)~성내리(16:30)
( 산행 개념도 )
동산. 작성산은 금수산 북단의 충북 제천시 한수면과 금성면 성내리와
포전리에 있는 암릉과 육산이 어우러진 아담한 산으로 충주 호반의 조망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금수산 일대의 모든 산들이 아름다워 한번씩은 모두 가본곳인데 동산 작성산의 산행기억이 아련하다.
얼마전 우연히 보게된 인터넷 산행카페의 동산 작성산 산행기에 그곳의 명물 남근석을 보자 다시 가야겠단
생각이 불현듯 들었는데 마침 그곳을 가는 산악회가 있어 전날 좌석이 남았는지 문의를 하니
어서 옵셔~란 반가운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대전을 벗어난지 3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버스에 갇혔다 풀려난 곳은 성내리 산행입구다.
답답하고 지루한 버스안의 해방감에 산을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운데 마을을 통과하는
소로길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바람에 살랑이며 초가을 추억의 산행에 나선 우릴 반겨준다.
예전 마을엔 없던 각종 상호를 단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뒤로하고 무암 저수지를 올라서니
1987년도 가을녁에 처음 이곳을 찾았던 풍광이 기억속에 아련하게 떠오른다.
(산행 들머리 성내리....진짜 성낼겨 ? 에이 !! 성내지 마~~ )
(무암 저수지)
(옛 사진첩에서 찾아낸 무암제에서.. 87년 산행모습이라우~)
무암 저수지를 지나 무암골로 향한 소로길을 얼마 들어서자
드라마 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관리를 안해선가 ? 초가지붕엔 풀이 무성하고
목조의 건물은 금방 쓰러질것 처럼 낡았다.
무암사로 향하는 정다운 소로길을 오르다 길 오른편 애기바위 이정표 방향에 무수히 붙은
시그널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면 초반 오름이 만만치 않으나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태양은 구름이 가리고
바람은 시원함에 힘들이지 않고 능선으로 올라 붙을수가 있었는데 어느순간 앞이 트이며
충주호반을 넘어 저멀리 월악산까지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에 순간 눈이 황홀해 진다.
(저그 보이는 것은 촛대바위...)
(저멀리 호반넘어 월악산도 보이고...)
(청풍 리조트 넘어 뵈는건 비봉산이래유~)
(금방 밟고 올라온 성내리와 무암 저수지가 발아래에...호반 넘어는 대덕산줄기)
(장군바위 능선뒤로 천년고찰 무암사가 살짝 모습을....)
오후 한차레 소낙비를 예고한 날씨는 언제고 쏟아질듯
하늘엔 먹장구름을 잔뜩 풀어놓곤 가끔 한방울씩 떨어트릴뿐 우리의 안전산행을 위해선가 ?
참을성 있게 햇살만 가려놓고 얼굴에 땀방울이 흐를새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늘 산행하긴 정말 기막힌 날씨다.
동산 성봉까지 오름엔 암릉이 연이어 이어지고 빼어난 조망까지 확보됨에
힘든줄 모르고 산행이 이어진다.
저멀리 월악산과 금수산 그리고 호반이 어울어진 풍광은 한폭의 그림이다.
날은 흐리나 태풍나비의 거센 바람때문인지 가시거리는 아주멀리 깨끗하고 선명하다.
성봉의 오름을 앞두고 남근석으로 향한 이정표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지도를 보니 남근석은 무암사에서 가까운게 분명함으로 하산시 무암사에서 오르기로 하고
동산 성봉의 정상에 올랐다.
이른 아침식사로 아우성인 주린배를 달래려 자리를 펴니
차린찬이야 집에서 항상 먹는 그밥에 그나물뿐이나 맛은 임금 황제 수라상이 따라올수없다.
모처럼 오늘은 보온병에 커피도 타왔다.
식후에 그것도 초가을의 날씨 또한 꾸물꾸물한 산정에서 사랑하는 이와 단둘이 마시는
커피의 맛과 향은 커피 전문점에 몇만원하는 커피와 어찌 그 맛을 비교할수 있으랴 !!!
그러나 예전 87년도 산행시는 찌게와 밥을 직접 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초창기 산행시절엔 그 맛으로 산을 다니게 되어 산을 타는 맛을 알게 됐는데
그 시절 작성산 산행시 사진을 찾아보았다.
성봉에서 맛난 점심과 커피를 마신후
자리를 정리하고 쉴틈없이 일어나 산행에 나서는데는
땀에 젖은 옷 속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으로 살떨리는 추위가 몰려온 때문이다.
중봉을 향하는 등로는 암릉과 소나무의 어우러짐과 멀리 월악산과 금수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서는 풍광이 발목을 잡아 산행이 더디다.
(중봉 정상)
돌탑과 베니아판에 중봉임을 표시한 나무가지에 메달린 알림판을 등지고
동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완전 육산이다.
활엽수림으로 이뤄진 등로는 하늘을 볼수없을 만큼 빽빽한 원시림이다.
이젠 제법 태풍의 위력을 느낄만큼 세기를 더한 바람에
온산이 부르르 떠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동산 정상을 찍고 뒤돌아 나온 삼거리에서 새목재로 향하는 등로는 급경사다.
한없이 길게 이어지는 새목재로 향하는 등로의 수목은 태풍에 울고 풀잎은 누었다.
새목재에 도착하니 무암사 작성산 동산으로 향하는 방향을 가느키는 스테인레스 이정표엔
칡이 감아 올라갔는데 예전의 새목재 모습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나를 맞는다.
(예전의 새목재 모습)
(현재의 새목재 모습)
새목재에서 작성산으로 향하는 오름이 다시 시작되고...
내려선 만큼 다시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을 견딘후 평탄한 육산의 능선을 걸을쯤
태풍 나비는 가끔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간혹 불어 당황스럽게 만드나
걷는 발걸음을 멈출수는 없다.
작성산을 앞두고 제천시내가 훤히 보이는 조망이 좋은곳에 빗돌이 있는데
까치산이라 세겨있다.
작성산의 원래 이름이 까치성산인데 그래서 이곳에 따로 까치산이란 빗돌을 세웠나 ?
까지성산의 이름을 얻은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왕이 이 산에 신하들을 데리고 들어와 궁궐을 짓고 살았다.
어느날 아침 왕이 신하들에게 동쪽 바위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 위에 까치가 앉을 것이니
무조건 활을 쏘아 까치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신하들이 마침 바위 봉우리에 앉은 까치를 쏘아 죽이니 그 까치는 다름 아닌 일본의 왕이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매포역과 가까운 한일 시멘트 채석장이 깍아먹은 야산이 허연게 드러낸
모습이 한눈에 들어서는 이곳의 풍광은 그간 육산의 활엽수림에 갇혀 걷던 답답함을
일시에 걷어버린다.
까치산 정상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작성산의 정상빗돌이 이곳이 830m 정상임을 알린다.
정상기념 증명사진을 남기곤 무암사를 향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무암사로 향하다 보면 진행방향 좌측의 화강암 대슬랩의 절벽위에
거북이 한마리가 작성산을 향해 오르는 모습이 보이고
앞을 보면 오늘 걸어온 동산의 암릉과 작성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사이로
충주호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암사에 다가올쯤 느닷없이 나타나는 기암괴석은
집에와 무슨 바위인가 찾아보니 쇠뿔 바위라는데 소부도와 함께 무암사 창건의 전설이
함께 한다.
(쇠뿔 바위)
(소 부도)
소부도를 만나면 무암사의 절이 다가오는데
무암사의 창건에 대한 전설이 다음과 같다.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무림사를 세우려고, 아름드리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牛)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해 준 덕에 손쉽게 절을 세우게 되어,
이 소를 극진히 위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소가 죽어서 화장을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소의 불심에 감동한 대사는
소를 위해 사리탑을 세워 주었고, 사람들은 무림사를 우암사라 불렀다고 한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산사태로 절이 무너져서 새로이 절을 세웠는데, 맞은편 산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맑을 때는 두 개로 흐리게 보이지만, 안개가 짙게 끼이는 날이면 두 개의 바위가 한개로 겹쳐져 뚜렷이 보여 안개바위 또는 무암이라 부르고, 새로 지은 절도 무암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무암사 들어서기전 괴목)
(무암사 전경)
무암사 경내를 둘러본후
이곳 최대의 명물 남근석을 향한 등로를 찾아 나섰다.
가기 싫다는 아내에게 나의 베낭을 주며 먼저 내려가라 해놓고 남근석을 향한 오름을 향해
숨가쁜 질주끝에 당도하니 어쩜 그리 똑같은지 내는 그저 할말이 없다....
그림으로....
아래 그림중 내것도 있는데 어떤게 내거 ? ㅋㅋㅋㅋㅋㅋ
(장군바위 전경)
남근석을 몽땅 디카에 쓸어담고
성내리에 도착후 후미를 기다렸다 대전을 향해 출발하는데 농협에서 홍보차 나온 아가씨의
청으로 흑삼의 전시장을 잠시 들렸다.
농협의 관계자가 나와 백삼 홍삼 다음으로 흑삼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구매할것을 청해보나 일행중 아무도 응하는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우린 흑삼보다 더 좋은 숲속의 피톤치드를 듬뿍마시고 왔는데
뭣이 더 필요하리오...
우리나라 남성들은 정력보강제에 죽고 여성은 미인이 될수 있다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으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해당사항 없는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은 마음이라는 정신작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대뇌가 성장해 나간다.
이 대뇌는 등골을 경유하여 대퇴부의 근육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이 쇠약해저 발을 쓰지 않으면 뇌도 늙는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다리를 활발히 움직이면 뇌는 결코 노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리를 많이 움직이는것은 뇌를 활성화 시키는데 좋은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발을 사용하는 산책이나 조깅은 베타 엔돌핀의 생성을 왕성하게 함으로
뇌를 활성화 시킨다.
우리가 산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전을 향한 귀로에
태풍 나비는 정말로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선사하여
(너무 이쁘면 난 왠지 서러워진다 왜일까 ? 참말로 내맘 나도 몰러~)
우리눈을 황홀하게 만드는데 그 색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나의 구식 디카가
원망스러울뿐....
그림으로
산에서 건강을...... 산찾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