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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스승 4
코스타스가 싱글거렸다.
“이봐요. 안토니.
나는 이 지구상에서
원하는 곳은 어디나 갈 수 있어요.”
“당신은 2분 안에
아포스톨로스 안드레아스에
가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안토니스가 다시 물었다.
철저한 합리주의자이며 아직
에레브나의 신입회원에 불과한
그가 코스타스의 이야기를
소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분씩이나?”
코스타스가
안토니스를 놀렸다.
“당신이 방법을 알게 되면,
일순간에 그곳에 가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데
시간은 필요 없어요.”
“당신은 파마구스타의
고향집에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은
들지 않았나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유감스럽게도 가봤어요.”
“왜 유감스럽다는 거죠?”
내가 파고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죠.
봉사를
하기 위해 갈 수는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와
호기심으로 가서는 안 되지요.”
“그것은
그냥 거친 물질적 존재로서
파마구스타의
고향집을 방문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죠?”
내가 다시 물었다.
코스타스가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
“이봐요. 키리아코.
사람들은
주로 3차원인 이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는데,
진리탐구자로서 우리는,
남을 돕는 봉사를 하든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차원계의
법칙에 따라서 일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높은 차원에 통달하여
거기서 얻어낸 힘을
정당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치유와 봉사의 목적을
위해서 쓸 때뿐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그건 힘의 남용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경우에는,
유체이탈
여행이 제2의 본성이 돼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동적으로 일어나잖아요.
그런 경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보지 못하는 고향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열망을 풀기 위해
파마구스타를 방문하는 것이
누구에게 해가 되는 것인지……
좋아요.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궁금증을
만족시키는 것일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궁금증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그런 행동이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지요.
하지만
우리는 사실상 우리의 것이 아닌
에테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어요.”
코스타스가 말했다.
“이 에테르
생명력은 로고스에 속해 있고,
로고스는
‘세상의 죄악을 짊어진 짐꾼’
입니다.
그런데
내
궁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로고스로부터
그 에테르
생명력을 빌려와야겠어요?
나는
내가 그런 짓을 했던 것을
인정하고, 후회합니다.
그것이
내 인간적 약점이에요.
그러나
좀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은
지금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나는 자석처럼
파마구스타에 이끌렸었고,
점령지역
전체를 돌아다니곤 했지요.
초기 몇 년 동안
내가 저질렀던 또 다른 잘못을
당신들에게 고백해야겠군요.
나는 파마구스타 상공에서
매우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무슨 의미죠?”
“나는 유체이탈 상태에서
여러 차례 그 도시 위로 가서,
내 마음으로
강력한 방어 우산을 만들었어요.
그 도시에
아무도 정착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에너지로 염체를 투사했어요.”
“아. 확실히 큰일을 하셨네요.”
내가 그를 놀렸다.
(터키 점령지역 중에서
파마구스타의 일부 지역은 비교적
원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다른 모든 도시와 마을들에는
터키계 키프로스인이나
아나톨리아 터키인들을
버려진 그리스인들의 집에
마구 정착시킨 반면,
파마구스타는
유령의 도시로 남겨놓았다.
그곳에는 거주민은 없고,
터키군 정찰병과
키프로스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군 파견단을
가끔씩 볼 수 있을 뿐이다.
외교가에서는
만일
키프로스 문제가 해결되면
파마구스타는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주민들에게
반환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터키 정부가 한편으로는
계속적인 위협을 가하면서도
이 빈 도시에
이주민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국제사회의
이러한 이목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코스타스를 비롯하여
모든 파마구스타 피난민들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큰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코스타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혼란에
관심이 없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 신비가가 아니었다.
코스타스나 다스칼로스나 모두
소시민들의 관심사나
열망 같은 것으로부터
초연한 그런 류의
은둔 수도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은 둘 다
민족주의의 격랑 속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위치와 의식의 수준에
맞게 일하고 있었다.
사실
1960년에 섬이 독립한 후.
영국에서 공학 공부를
막 끝마치고 돌아온 코스타스는
국민군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터키군의
공격 위협을 받고 있던 시기에
카르파시아 반도 내
마을들의 민방위 조직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터키군 침공 시에
탱크가 이 도시로 밀고 들어올 때
코스타스는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난 무리에 끼어있었다.
그 비극적인 시간 동안
코스타스는 자신에게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한 가지 경험을 했다.
그것은
터키군
비행기가 이 도시를 폭격하여
해변에 있는 호텔 몇 군데를
폭파시키던 때의 일이었다.
“나는
해변가의 장벽 옆에 있었어요.
비행기 한 대가
탄환을 빗발처럼 쏘아대면서
바다 저쪽으로부터
날아오고 있었지요.
만일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확실히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장벽의 뒤쪽을 제외하고는
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린데
그 장벽은 너무 높아서
그걸 뛰어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어요.
나는 절망 상태에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해봤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코스타스는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어떤 힘이
나를 밀어서 넘겨주었고,
나는 총알이 도처에
빗발처럼 쏟아지는 그 순간
장벽 뒤편에 안전하게
몸을 피할 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한 사람의 스승으로 깨어나기
몇 년 전에
있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기적적인 구출에 대해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날 높은 힘에 의해
구조된 게 틀림없어요.”
그러면서 코스타스는
생애 내내 자신과 함께 해온
여러 스승들과
안내자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스타스는
자신이 스승으로서
깨어나던 초기 시절에,
자신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와
가르침들의 진위를
스스로 검증해보기 위해
다양한 심령이지적 실험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빛의 에너지로 직접
내 몸에 영양을 공급했지요.”
코스타스는 파마구스타에서
피난 나온 직후에
이런 실험을 행했다고 주장했다.
“그 기간 동안
의사인 장인어른이
우리와 함께 살았어요.
장인은
내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도
계속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정말 믿지 않았지요.
나는 거의 먹지 않았고
이따금 수박을 약간 먹었어요.
장인어른의
의학적 견해에 따르면,
나는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답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장인에게 말했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나는
다스칼로스와 에레브나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어요.
오직 아내만이
그걸 알고 있었지요.
장인어른은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단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고,
내가
어떤 어리석은 단체에 가입해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며,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몰래 뭔가를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스타스는 천연덕스럽게,
인간이 특별한 명상으로
자신의 에테르 복체에
에너지를 주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덧붙이자면,
오랫동안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던 그 기간 동안
1그램의
몸무게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갔지요.”
코스타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요기나 그리스도교 수도자,
신비가들이
그런 행동을 해왔으며,
이는
심령이지적 훈련과
수양,그리고 물질을 극복하는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코스타스의 이야기는
인류 진화의 흐름이 결국
채식으로 귀결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일전에 다스칼로스에게
제기했던 의문을 떠오르게 했다.
“아닐세.”
다스칼로스가 대답했었다.
“우리의 진화적 운명은
‘빛을 먹는 존재’가 되는 거야.
채소나, 그보다 더 우회해서
동물의 고기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빛을 흡수하는 대신,
인간은 결국 생명력을 주는
에테르 에너지를 직접 흡수해서
육체를 지탱하게 될 걸세.”
“무엇 때문에 금식을 중단했나요?”
안토니스가 물었다.
“나는 금식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코스타스가 대답했다.
“첫째로
그런 행동은
함께 사는 내 장인 같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불필요한 문제와 의심을 일으켜요.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에레브나를 통해서
심령능력은 반드시
치유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호기심이나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되는 거죠.
둘째로,
일상생활을 하는 내 존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육체 안에
머물기가 어려워진 거죠.
“무슨 뜻이죠?”
안토니스가 물었다.
“나는 정말 너무나 자주
육체를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어요.
예컨대, 하루는
니코시아에서 리마솔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차 위에 떠 있는 거예요.
내 육체는 여전히 로봇처럼
차 안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지요.
나는
그 상황을 통제할 수가 없었고,
결국 사고를 냈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 실험을 중단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식의
삶의 방식이나 경험들은
외딴 은둔처에 사는
수행자와 요기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들은 차를 운전하고
강력한 도구들을 다루어야 하는
현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날부터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요.
나는 속으로 ‘이 정도면 됐어.
그만 끝내자’ 고 말했지요.”
그러면서 코스타스는,
그때부터는 정기적으로
먹었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문제를
일으켰던 몸의 과잉 에너지를
좀 태워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파이프 담배를
피웠노라고
넌지시 농담조로 말했다.
어떤 수준에 도달한 후로
과잉된 에테르 에너지가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그를
몸 밖에 머물게 했던 것이다.
“흡연은 사람의
생명 에너지를 태워버리기 때문에
나쁜 습관이에요.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이 나 자신을
육체에 안착시키는 하나의
방법이었어요.
나는 스스로 유체이탈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까지
주기적으로
파이프 담배를 피웠지요.”
하지만 다스칼로스는
이것을 다르게 설명했다.
그는
코스타스가 주기적으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코스타스의 전생에서
비롯된 습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저 사람 얼굴 좀 보게.”
그는
언젠가 코스타스 앞에서
쾌활하게 말했다.
“아파치 족처럼 보이지 않나?”
나는
코스타스가 한두 달 동안은
파이프를 노상 피워대다가
또 한두 해 동안은 딱 끊고는
파이프에 손도
대지 않곤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도 그는
다시 짧은 기간
동안 담배를 피우다가
다시
이전처럼 쉽게 끊어버렸다.
그는 그것은 중독이 아니라
이 물질계에 잘 안착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물론 그는 흡연을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았고,
자신의 학생들에게는 만일
에테르 생명력의 달인이 되고자
한다면
담배는
피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내부 모임이 시작되기 전.
코스타스가 아침 일찍
니코시아에
있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는 전날,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을 뒤흔들만한 한 가지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부엌에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차원으로 가버렸어요.
내가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육체로 돌아오는 데
무척 고생을 했거든요.
나는 아내와 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옆방으로
로봇처럼 움직여 가서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면서
앉았지요.
사실
나는 몸으로 돌아오기 위해
혼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고,
결국 성공했어요.”
본의 아니게 일어난 유체이탈이
코스타스를 몹시 괴롭힌 것이었다.
내가 그 경험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자,
그는 아마도
자신의 세 가지 몸이
피곤하고 과로해서
서로 정합되지 않은 것 같으며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날
코스타스는 만일 이런 일이
비전 수행이나 비전 철학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았고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아, 가엾은 우리 장인어른.”
코스타스는 자신이
초기에 수행을 할 때
해봤던 실험들 중의
하나를 회상하면서 싱글거렸다.
“한번은 우리 장인이
환자들의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고가의 장비를 샀어요.
장인은 내게
그 기계로 맨 처음
검사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어요.
나는 좋다고 했지요.
장인은 내 몸에 전선을 연결하고
그 기계를 작동시켰어요.
그때
나는 장난기를 발동시켜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게 만들었어요.
한 순간
심장 박동을 완전히 멈췄다가,
다시 아주 빨리 뛰게 하고,
그 다음엔 느리게 뛰게 했어요.
가엾은 우리 장인은 판매자가
결함 제품을 보낸 것이 아닌가
매우 걱정하며
여기저기 살펴 보았어요.”
코스타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장인은
기계를 두드려보기도 하고,
기계 속의 모든 전선들이
제자리에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 다음
고민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숨을 쉬었어요.
그 순간 나는 내가
너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장난을 그만두기로 했지요.
나는 심장을 정상적으로
뛰게 해서 장인을 안심시켰어요.
기계는 아주 잘 작동했고
장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물론 나는
그게 내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밝히지 않았지요.”
코스타스는 연습 삼아 하는
이런 식의
장난이나 심령이지적 실험 등은
모두 옛날 얘기이며,
자신의
의식이 깨어난 이후부터는
심령적 능력을 오직
치유를 위해서만 사용해왔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우리가
다스칼로스 내부 모임의 회원
두 사람을 방문하기 위해
라르나카에 잠시 들렀을 때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그 회원들은 오랫동안
다스칼로스와 가깝게 지내온
마로 수녀와
내부 모임에 새로 합류한
차리클리아 수녀였다.
우리는
성 라자로스(나사로) 교회
가까이에 있는
차리클리아의 집에서
융숭한 다과 대접을 받고,
라마솔로 떠나기 전에
교회에 들러 촛불을 켰다.
저녁 기도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
몇 명이 예배를 보고 있었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19세기경
러시아 공작이 라자로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웠다는
이 성당의
건축적, 예술적 장엄함을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냈다는 라자로스는
예수의 기적적 힘의 증거를
모두 파괴하려 했던
바리새인들에게
박해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키프로스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라자로스는
키프로스에 사는 동안
매우 진지하고 엄숙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그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신의 운명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라자로스는
항아리를 훔치는 한 남자를
보았을 때 딱 한 번 웃었다.
왜 웃는가 물었더니,
그는 흙을 훔치는 흙을 보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라자로스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라르나카에 묻혔고,
이 러시아 귀족은
그 지점 위에 그를
기리기 위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우리가
나들이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차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고전음악 애호가인 안토니스는
우리가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비발디와
모짜르트의 곡들을 틀었다.
우리는 음악과
해질녘의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들면서 곧 잠잠해졌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등 뒤 시트에 편안하게 기댔다.
하지만
마음은 한가롭지 않았다.
스승으로 깨어나던
풋내기
시절의 코스타스의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코스타스의 개인적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 세월 그를 알고 지내왔기에
그의 진실성을 믿었다.
나는 또
그의 에너지가 지닌 힘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의 능력을
여러 해 동안 지켜봐 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코스타스가 우리 머리를
가볍게 만질 때마다
온 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에너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판에 박힌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논의로는
그러한
경험과 다른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코스타스가 자기도 모르게
초이성적 의식 상태를
얼핏 엿봄으로써
자신만의 영적 여정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유추했다.
나는
그의 초기 경험이
에이브러햄 매슬로우가
극치 체험이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코스타스는,
스스로 주장하듯이
다스칼로스와
보이지 않는 안내자들의 도움으로
이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제는 그 경지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그가 스승이 될 수 있고
다스칼로스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유이다.
초이성적 영역의 지식이라는
개념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현자들,
특히 인도인들과 티베트인들은
아주 정확하고도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명상 수련을 통해 발견한
각성의 여러 단계들을 구분했다.
이런 각성상태는
비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데,
그들의
실재에 대한 지식의 지각 폭은
이성적 상태에서의 자각보다
훨씬 월등하고 방대하다.
같은 논리로, 이성적인 자각 상태는
몰이성적인 자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캐나다 출신 의사
리처드 모리스 버크는,
과학적 유물론이 휩쓸던 시기인
1901년 <우주의식>이라는
대담한 책을 펴내
혁명적이면서도
매우 오래된 이 개념을
서구의
지적 전통의 주류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주류 심리학과
일반 사회과학,
그리고 특히
내가 전공한 사회학에서는
실재에 대한
기계론적 관념에 빠져서
버크와 같은 사상가의 통찰을
무시하고 비하해버렸다.
위대한
사회학자들 가운데 오직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의 설립자인
피티림 소로킨만이
그가
‘초의식수준' 의 인식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창조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면서,
소로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격의 잠재의식적(혹은 무의식적)
수준과 의식적 수준과 병행하여
제3의 의식층 - 초의식적 수준 - 이
점점 더 널리 인정받고 있다.
과학, 철학. 법, 윤리, 미술. 기술,
정치. 경제 등 모든 문화 분야에
인간이 이뤄낸 위대한 창조와
발견의 진정한 원천으로
간주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이 아니라
초의식의 에너지이다.
위대한 신비가들의
초의식적 종교적 체험이나 예지,
또는 이른바 ‘수학적 천재’,
요기의 삼매경, 선불교의 깨달음,
인식적, 창조적 직관,
초감각적 지각(ESP)이나
염력 현상들 역시 잠재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초의식이다.
그러한 현상들을 단순히
낮은 형태의
생명 에너지나 정신 에너지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다.」
- 히먼과 라인골드의
《고도의 창조성》에서-
버크나 소로킨, 테야르 드 샤르댕,
그리고 켄 윌버 같은
현대 사상가들은,
모든 인간은 결국
신비가들이나 아바타[化身]들이
수세기에 걸쳐 가르쳐온
고도의 인식이나 깨달음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윌버가 그의 저서
친근한 에서 말했듯이,
처음에 사람들은
코스타스처럼
고도의 초의식적 상태를 살짝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은
높은 의식 수준의 깨달음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인간을 다그치기 위한
‘천국 맛보기’ 같은 것이다.
만약 이러한 논의가 타당하다면,
나는 코스타스와 다스칼로스는
앞서 말한 극치 체험이
일상적 의식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상태에 이미 확실하게
도달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역시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생각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우리가
리마솔 교외의 해안 도로에
이미 도착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나는 등을 펴고 좌석에
꼿꼿이 앉아서 창문을 반쯤 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런 다음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코스타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초이성적 상태에
무지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우리에게 얘기해준
초이성적 경험을
정신병이나 ‘비이성적인 것’ 과
혼동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러한
초이성적 의식 상태에 도달해도,
이성을 버리게 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로,
이성적 능력의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을 넘어서기 전에 먼저
이성을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심각한 위험이 따르게 되지요.”
이것이 코스타스가
비전 지식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히 조심해온 이유 중 하나다.
한번은 그에게
열여덟 살 난 아들에게도
에레브나의 지혜를 가르쳤는지
물어봤는데,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대답했다.
“우선 그 애가
살아가야 하는 이 3차원 세계에
제대로 자리 잡게 해야지요.
그렇게 되면 그 애는
자신의 현재 인격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고도
고도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같은 논리로, 코스타스는
약간의 투시력과
다소의 초월적 능력을 보이는
열두 살짜리 아이를 가진
서클의 한 회원에게
아이로 하여금 그런 능력을
재미삼아 연습하도록
부추기지 말라면서,
그 아이는 먼저
이 세상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만약
심령 문제에 너무 일찍 몰두하면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부 모임의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듯이
신비주의와
비전의 지식 추구가
정신이상의 자격증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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