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기적, 큰 희망
부드러운 오르골 소리와 함께 텐더니스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당신.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대의 점원이 묘한 기운을 내뿜는다. “양쪽 크기가 다른 쌍꺼풀 속 눈동자와 지나치게 육감적인 입술이 언밸런스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절묘한 위화감과 여인의 춤처럼 부드럽게 변하는 표정이 다소 섬뜩할 정도의 섹시함을 풍기며, 누르기만 하면 페로몬의 샘물이 솟구칠 것만 같은 남자”(28~29p), 바로 점장 시바 미쓰히코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서 나오는 당신의 귓가에 “또 찾아 주세요”라는 달콤한 목소리가 울리고 그의 미소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어느새 텐더니스 편의점의 매력과 시바 점장의 마성에 사로잡힌 것. 그리고 그렇다면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건 시간문제다.
장별로 다른 테마와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는 문장 사이사이 감성을 진하게 건드리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각 에피소드의 중심인물이 다른 에피소드의 주변 인물로 등장해 인물들을 연결시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이는 한편 에피소드마다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편의점 음식을 만나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더불어 편의점이라는 장소의 장점을 살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지하되 심각하지는 않게 다루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홀해지기 쉬운 꿈과 가족애, 우정, 사랑 등 소중한 주제를 되새기게 한다.
“곤란한 일은 뭐든 처리해 드립니다”
있을 것 같지만 없는, 없을 것 같지만 있는
친숙한 장소와 친근한 사람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다. 마치다 소노코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탄생시키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작가로, 그 놀라운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거침없이 발휘된다. 꽃미남 시바 점장은 가장 핵심인 인물로 다분히 만화적인 캐릭터긴 하지만 제대로 알고 나면 외모로만 그를 평하는 게 미안할 만큼 성실하고 올바른 태도를 지녔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무뚝뚝한 인상의 ‘무엇이든 맨’ 쓰기는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 파트타임 직원인 미쓰리 역시 편의점 근무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평범한 주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페로몬 점장의 발칙한 하루’라는 제목의 만화를 몰래 연재 중인 만화가로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포용력이 넓은 인물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여동생 역시 엄청난 외모의 미소녀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지극히 일상적인 편의점을 배경으로 삼았음에도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는 요소이며, 독자들이 저마다 이상적인 모습의 인간상을 그리며 작품을 읽도록 상상력을 부추긴다.
이밖에도 편의점을 드나드는 단골손님, 부녀회 회원들, 편의점 건물의 위층에 사는 입주민들, 아르바이트생들과 그들의 친구까지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감추고 있는데, 마치다 소노코 작가는 누구 하나 소홀하지 않은 방식으로 모두에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대단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전해지는 작가만의 따뜻한 휴머니즘은 우리가 세상을 좀 더 온화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럼으로써 다소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도 누군가의 상냥한 인사 한마디에 반짝 힘이 나기도 하고, 나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운을 전달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곳을 찾아 준 당신에게, 가장 큰 사랑을 담아”
마치다 소노코가 전하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삶의 가치
〈꼰대 할아버지와 부드러운 달걀죽〉 에피소드에서는 편의점을 썩 달가워하지 않던 은퇴한 노인 다키지가 급하게 간병 용품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필요한 것을 모두 편의점에서 발견한 다키지는 계산하면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제가 항상 여기에 있을 테니까요”라고 말하는 점장의 상냥한 말에 위안을 얻는다. 언제든 불을 밝히고 누구든 가리지 않고 손님을 받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기댈 곳 없는 사람에게 얼마나 든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렇듯 텐더니스 편의점과 이곳 사람들은 아픈 아버지를 돌보다 잠깐 머리를 식히러 오는 여중생의 ‘한숨 돌리기’ 장소와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제3화 멜랑콜리 딸기 파르페), 사랑과 연애에 냉소적인 남자 고등학생이 학교 친구이자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묘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며(제5화 사랑과 연애, 그리고 어드벤트 캘린더 쿠키), 시바 점장과 쓰기의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면서 직원 미쓰리의 더더욱 풍성한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주기도 한다(제6화 크리스마스 광상곡). 플롯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관계’를 키워드로 펼쳐지는 여섯 에피소드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감, 타인을 가만히 살피고 옆에 머물러주는 배려심과 조용한 응원 같은 긍정적인 교류의 중요성을 전한다.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한밤중에 반짝반짝 불빛이 빛나는 편의점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되는 그 아늑함과 친근함을 닮은 작품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은 올해 우리를 위로할 가장 따뜻한 소설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