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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서 ‘도시와 바다’를 품다
문화일보 기사 등록일 : 2009.08.28.
글·사진 = 엄주엽기자
부천 ‘성주산’∼ 시흥 ‘소래산’
제2경인고속도로 신천IC나 서울외곽순환도로 소래터널 부근을 지나다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산이 소래산(蘇萊山·299.4m)이다. 봉우리 하나만 비쭉하니 볼품 없어 각별히 마음을 내서 가볼 정도는 아니었다. 장마가 걷힌 뒤 새털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리며 초가을 냄새가 나던 지난 25일 소래산을 찾았다. 경기 부천시의 남쪽 끝에 동서로 길게 뻗은 성주산(聖柱山·217m)에서 시작해 시흥의 소래산까지 종주를 했다. 겉보기보다 소래산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정상의 전망이 서울과 인천 앞바다까지 시원하게 트인 좋은 산이었다.
부천 성주산의 들입목은 전철 1호선으로 부천역이나 소사역에서 내린 뒤 10분 정도 걸어서 서울신학대 옆으로 오르면 된다. 이날은 부천남부역 건너편에서 시흥교통 31번 버스를 타고 네댓 정류장쯤 가다가 ‘어머니도시락’ 앞에서 내려 올라갔다. 정류장에서 가던 방향으로 100m 정도 더 가면 눈앞에 여우고개의 구름다리가 보일 즈음 오른쪽으로 관음사라는 작은 사찰 입구로 난 등산로가 들입목이다. 완만한 길을 20여분 오르면 바로 여우고개에서 하우고개로 향하는 널찍한 등산로를 만난다.
여우고개는 ‘여우(狐)’가 아니라 ‘소같이 생겼다’는 뜻의 ‘여우(如牛)’다. 하지만 이곳이 옛적엔 수풀이 우거진 외진 지역이어서 여우가 많아 ‘여스고개(狐峴)’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여기서 서쪽으로 ‘하우고개’와 ‘와우고개’가 잇따라 이어지는데 모두 소(牛)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성주산은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렸고 동네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하우고개란 지명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옛적에 이 고개가 소래와 김포의 장돌뱅이들이 많이 다녔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다 보니 산적들이 들끓었는데, 장사꾼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 밑 주막에서 떼지어 고개를 넘었다. 언제 어디서 도둑떼가 기습할지 몰라 사람과 소는 가파른 길을 숨이 턱에 차게 넘었고 이때 나오는 ‘하우~, 하우~’하는 숨소리를 따서 하우고개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이름과 관련해서 ‘성주산’이란 이름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예로부터 와우산 또는 계곡마을의 지명을 따서 댓골산으로 불렸던 이 산은 북쪽 자락인 지금의 부천시립도서관 심곡동 분관 터에 1938년 일왕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神社)가 지어지면서 산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일제에 의해 성주산(聖主山)으로 개명된 것이 지금의 성주산(聖柱山)으로 정착됐다(디지털부천문화대전, ‘성주산’목록). 그렇다면 ‘일제 잔재’가 분명해 보여 개명을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지금도 부천시 청사나 멀리 고층건물에서 보면 소가 앉아 있는 모양인 이 산의 본래 이름을 찾아줘야 하지 않겠나.
성주산은 산벚나무와 낙엽송 등 다양한 식생이 잘 보존돼 있고 등산로와 이정표, 중간 중간의 쉼터도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 부천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여우고개 구름다리는 동물의 생태이동통로로 만들어진 것이고 하우고개 구름다리는 사람이 지나는 길이다. 구름다리에서 소래산 정상까지는 3㎞. 다리 주변은 벤치와 탁자 등 쉼터로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성주산 정상까지는 500m도 안될 듯하다.
성주산은 정상 전체가 철책으로 둘러싸인 군보호시설이다. 여기서 오른쪽(서쪽)으로 철책을 따라가면 와우고개를 지나 인천광역시에 속하는 거마산(巨馬山·209m)과 연결된다. 이 산은 다시 남쪽 외곽순환도로 너머 인천대공원의 관모산(180m)으로 이어지는데 비록 도로를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소래산, 성주산, 거마산, 관모산을 이어 10㎞는 족히 넘을 이 환상(環狀) 종주코스가 큰 산이 없는 인천과 부천, 시흥 시민들에게 요즘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성주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철책을 따라가면 소래산으로 연결된다. 철책 옆길은 햇살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 아래 능선 사면에 난 등산로로 가는 게 좋다. 1㎞ 정도 짙은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걷다 보면 철탑이 하나 나오고 여기부터 소래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거의 나무계단으로 연결해 놓아 편하다. 요사이 많은 근교 산들에 나무계단이 설치되는데, 워낙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등산로 훼손을 막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사람 발길만큼 산을 훼손하는 게 없다. 그런데 나무계단을 놔두고 옆에 샛길을 만들며 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솔직히 무슨 심보인지 묻고 싶다. 나무계단을 설치한 정성과 세금을 생각해서라도 쓸데없이 샛길을 내지 말았으면 한다.
소래산 정상은 한마디로 탁 트여있다. 멀리 서해 방면으로 송도신도시에 건설중인 고층빌딩과 문학경기장, 소래포구까지 선명하게 바라다보인다. 서울쪽으로는 한강과 북한산,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만한 전망이 없다. 휴일이면 인천을 비롯해 주변 도시민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알려진 대로 소래산은 660년경 당나라 소정방이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공략하고자 중국 산둥(山東)성의 라이저우(萊州)를 출발해 이곳으로 왔다 하여 소정방의 ‘소(蘇)’ 자와 라이저우의 ‘내(萊)’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그런데 기록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고 좀 작위적인 냄새도 난다. 그보다는 소라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솔숲과 내가 어우러졌다 하여 ‘솔내’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더 친근감이 든다.
소래산은 시흥과 인천 방면으로 상당히 가파른데, 이 같은 지형으로 인해 행글라이더 마니아들에게 서울 근교에서 가장 좋은 장소로 통한다. 정상에서는 시흥시 대야동 산림욕장 입구로 내려오거나 내원사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어디로 내려오든 버스편으로 부천이나 인천 방향으로 나올 수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하산길에 고려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병풍바위에 선각된 국내 최대 마애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천년의 풍파' 바래진 미소, 멈추니 비로소… 모든 중생 품는 소래산 천년 마애불
중부일보 기사 등록일 : 2021.05.10.
글·사진 유승혜 여행작가
◇수도권 사람들 사랑 듬뿍 받는 산
소래산에 비수기는 없다. 사계절 내내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사람들이 놀러간다. 아침은 물론 저녁에도 일몰 구경하러, 야간 산행하러 간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을 하러 가는 느낌이 강하다. 주로 시흥, 인천, 부천 사람들이다. 산은 인천과 시흥의 경계에 걸쳐져 있어 정상에는 인천광역시와 시흥시 깃발이 나란히 계양되어 있고 서로 다른 시(市)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해발은 299m로 야트막하고 어느 코스로 올라도 정상까지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정상에 거의 다 가서는 나름 숨이 찬 깔딱고개와 짧은 암릉 구간이 있어 적절하게 땀 흘리며 운동하기에 좋다. 산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다.
그러나 소래산은 단순한 마을 야산이 아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도 ‘관아의 동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예부터 현재까지 경기 인천을 대표하는 산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역사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수도권 시민들에게 두루 사랑 받는 산이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진산에 고찰(古刹)이 없다는 것이다. 소래산을 벗어나 시흥시로 범위를 확장해도 오래되거나 이름난 사찰이 없다. 소래산 안의 유일한 사찰인 내원사는 1973년에 창건된 작은 절이다. 다행히 소래산에는 산의 위신을 세워줄 만한 불교유산이 하나 있다. 소래산의 상징이라 봐도 무방한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다.
◇꽃 진 철쭉 동산, 뒹구는 와편 보며 무상(無常) 느껴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인데 가는 길에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등산로가 ‘시흥산림욕장-청룡약수터-마애보살입상-정상’ 코스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이기도 하다. 산림욕장에서 마애보살입상까지는 700m, 마애보살입상에서 정상까지는 400m 정도로 총 1.1km 구간이다. 신체 건강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 등산 초보자에게도 추천할만한 하다. 산림욕장에서 청룡약수터까지 300m는 다소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고, 약수터에서 마애불까지 400m는 완만한 산길이다. 이 구간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보다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어른을 따라온 어린이들도 많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산림욕장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망중한을 즐기거나 약수터까지 올라가 스트레칭을 하고 약수를 병에 담아 하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까지 소래산 산림욕장의 철쭉 군락은 매년 봄 그러했듯 진분홍색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올해는 벚꽃, 개나리 할 것 없이 봄꽃들이 빨리 피고 빨리 졌는데 철쭉도 예외는 아니었다. 5월 첫째주 소래산 철쭉 동산은 이미 짙은 초록으로 변했고 응달의 철쭉만이 뒤늦게 개화했다가 막 지는 참이었다. 철쭉 동산에서 무상(無常)을 보면서도 이 변화무쌍한 생명들을 품고도 아득한 세월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산이 새삼 경이롭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약수터 맞은 편 배드민턴장은 휴장 중인데 산만큼은 등산로를 폐쇄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코로나19 덕분에 산을 드나드는 손님은 더 많아졌다. 여행도 모임도 금지된 바이러스의 시대,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지막 해방구는 산이 아닐까.
문득 지난 5월 3일자 본지에 실린 박영민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의 기고 중 ‘배드민턴장 근처에 기와편이 많다’는 내용이 떠올라 땅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돌멩이가 아닌 검은색 와편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저 가벼운 여행으로 산과 산사를 찾는 필자는 ‘이 산에는 사찰이 없구나’하고 말지만 학자들은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달고 옛 흔적을 기민하게 좇는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길을 걸어도 사실 같은 길이 아님을, 그저 돌멩이로 치부할 뻔했던 와편을 보며 깨닫는다.
◇천 년간 이어져온 간절한 발원
소래산의 절터는 2004년에 마애보살상 동쪽 50m 아래쪽에서 한 곳이 발견되었고 이곳 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현재로선 어디가 절터였는지 알기 어렵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에게 절터의 유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상을 봉안해야만 불심이 발하는 것이 아니라 산 전체를 부처님의 정토로 삼고 신성시 여기기 때문이다. 하여 전각에 모시지 않은 부처는 어디에 계시냐고 묻는다면 불자들이야 천지사방이 부처라 하겠지만 가시적인 대답은 단 하나, 바로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다.
병풍바위 혹은 장군바위로 불리는 넓고 평평한 암벽 앞에 널찍한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난간에는 여러 개의 매트가 걸려 있는데 개인 소유인지 공공재인지는 몰라도 필자가 머문 1시간 동안 여럿의 보살들과 거사들이 매트를 깔고 삼보를 올렸다. 지난 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을까.
암벽을 언뜻 바라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시선이 차분하게 머물러야 비로소 보인다. 멀리서 보거나 대충 보면 한낱 바위이나, 가까이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면 부처다.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수행’처럼 느껴지는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다.
◇소래산 마애불, 그림인가 조각인가
고려시대의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산재하지만 그 많은 마애불 중에서도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높이 14m의 거대한 크기와 우수한 조각기법으로 일찌감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은 보물 제1324호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 시절 수준급 장인의 솜씨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단단한 화강암을 캔버스 삼아 마치 붓칠 하듯 선각(線刻)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년 동안 일어난 풍화로 형상은 다소 흐릿하지만 머리 보관부터 발끝 연꽃대좌까지 화려하고 섬세한 선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에 마애불을 탁본해 서울올림픽 성화가 통과되는 시내 길목에 전시했다는데, 탁본을 보지 못한 필자는 마애불을 종이로 옮겼을 때 모습이 문득 궁금해진다.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머리에 화사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은 위가 좁은 원통형이며 당초문(唐草紋, 덩굴풀 무늬)으로 장식되어 있다. 원통형 보관을 쓴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당초문으로 장식한 예는 소래상 마애불이 유일하다고 한다. 둥근 얼굴 속 눈, 코, 입은 부리부리하고 양쪽 귀는 눈에 띄게 늘어나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 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가 둘러져 있고 옷자락은 단순하지만 부드러운 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손발의 모양도 무척 섬세하다. 전체적으로 근엄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이다. 거불임에도 호방함 없이 세밀하고 유려하다. 제멋대로 상상하건대 이런 용모라면 굉장히 사려 깊은 성격의 부처님이 아닐까. 그래서 소래산이 아닌 마애불을 찾는 이들의 간절한 발원을 천년 넘게 들어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석불 앞에서, 정상 위에서 세상 근심 사라지고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은 시흥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8할을 차지하는, 조금은 삭막한 풍경이다. 마애불이 내려다보는 속세는 천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근 20~30년간의 변화는 대단히 역동적이고 강렬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풍경이 달라져도 아랫녘에서 마애불을 찾아 산을 오른 이들의 마음이야 편차 없이 간절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소래산이 있어서, 변치 않는 마애불이 있어서 삶의 위안을 얻는 이들이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마애보살입상에서 15분 정도만 더 걸어 오르면 소래산 정상이다. 산 아래에서 마애불에 이르기까지는 풀숲이 우거지고 발에 닿는 땅의 느낌도 적당히 탄력이 돌아 육산(肉山)인가 싶은데, 막상 정상에 가까워지니 암석과 큰 바위들이 많아 골산(骨山)인가도 싶다. 흔히 흙이 많은 산은 육산, 암석이 많은 산은 골산이라 해서 화가 나거나 외로움에 사무치면 육산으로, 기운이 빠지거나 정신수양이 필요하면 골산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소래산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이 복합적인 성질을 지닌 듯하다. 그러니 친근한 동네 뒷산처럼 두루두루 모두를 품어주는 산이 아닐까 싶다. 마치 마애불처럼 말이다.
마애불 앞에서 시흥과 부천, 서울 일부만 보였던 전경은 정상에서 인천 시내와 소래포구 바다까지 확장된다. 동서남북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다. 해발이 낮고 등산이 비교적 쉬운 편인데 비해 여느 산 부럽지 않게 광활하고 근사한 전망을 선물해주니, 역시 아량이 넓은 산이다.
△소래산은 시흥과 인천 경계 지역의 바위산이다. 이 산 늠내길 3코스인 옛길은 부천역 1번 출구에서 성주산을 넘어 소내골을 지나 소래산 정상, 거마산, 송내역까지 가는 약 15km의 거리로 5시간이 걸린다. 날씨가 좋으면 인천 앞바다와 소래포구를 볼 수 있다. 산행 중간 쯤 장수동에 서있는 800년 된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그 옆 은행나무골에서 산채보리밥 먹는 맛은 으뜸이다.
[부천 성주산 & 인천 소래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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