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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ㅈ
🍎 주보 呪寶 說話
(神奇한 힘을 發揮하는 異常한 寶物에 關한 說話)
★ 全北民譚 (崔萊沃, 螢雪出版社, 1979)
韓國口碑文學大系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이 呪寶 說話는 그 寶物이 어떻게 世上에 나타나는가? 主人公이 어떻게 求得하는가? 實際로 어떠한 寶物이나 奇跡이 나타나는가? 그 結果는 어떠하며 現在 傳하여 오고 있는가? 이 說話가 담고 있는 敎訓과 興味와 補償의 機能은 어떤 것인가? 等으로 硏究될 수 있다. 呪寶 說話는 內容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① 화수분(河水盆) 얻기 : 어떤 神奇한 그릇(盆·盒·절구桶)을 착한 일을 한 對價나 偶然으로 求하였더니 飮食이나 돈이나, 무엇이든지 所願하는 것이 꺼내도 꺼내도 繼續 나온다는 內容이다. 이것에만 依支하고 일을 하지 아니하면 한낱 돌멩이로 變하고 만다는 歸決이나 兄弟間에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운 나머지 그 效果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소금이 나오는 맷돌'도 河水盆의 一種으로, ‘왜 바닷물이 짠가?’의 由來譚이다. 酒泉石이라 하여 물에 담그기만 하면 맹물이 술이 되었다는 異常한 돌, 도깨비 집에 가서 얻어 온 ‘金 나와라 뚝딱 銀 나와라 뚝딱’이라는 富者방망이, 또는 도깨비방망이도 河水盆의 一種이다.
② 如意珠 얻기 : 어떤 일로 因하여 구한 구슬을 도둑맞아서 개와 고양이가 먼 곳에 가서 그 구슬을 도로 찾아오다가 失手로 구슬을 江물에 빠뜨린 뒤에 다시 찾는다. 이 때문에 개와 고양이의 사이가 나빠져 고양이는 안房에, 개는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는 由來譚.
여우나 구렁이가 山 고개 호젓한 곳에서 書堂 아이나 總角에게 구슬을 입속에 넣어 주었다가 다시 自己 입에 넣는 方式으로 사람의 魂을 빼앗아 가는 異常한 구슬 이야기로, 하루는 書堂 아이가 그 구슬을 꿀꺽 삼켜 버려서 여우는 죽고 이 사람은 天文 地理(또는 地理만)에 能通해져서 風水나 學者가 되는 來歷譚.
西天 西域國에 福을 타러 간 救福旅行者가 龍이 못 된 이무기를 만나 登天하는 方法을 부처에게서 알아다 준 對價로 如意珠를 얻어서 出世하는 救福路程記 이야기. 여기서 如意珠는 財物·婚姻·벼슬 얻기 等의 富·貴·色을 獲得하는 呪寶로 많이 나타난다.
③ 구슬의 形態는 아니지만 奇跡을 보이는 어떤 事物 얻기 : 젊어지는 샘물이 있어서 착한 사람은 젊어졌는데 慾心쟁이는 그 샘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어린아이가 되고 만 이야기.
하루에 한 사람만 먹을 만큼의 쌀이 恒常 바위窟 속에서 나오는데, 慾心사납게 그 窟속을 쑤셔 본 結果 쌀이 나오지 아니한 米穴說話.
마시기만 하면 힘이 센 將帥가 되는데 異常한 샘물이 있는데 이 샘물을 마신 사람(總角이나 僧侶)이 힘을 나쁘게 쓴 結果 말라 버리거나, 賤民이 마셔서 不淨을 타는 바람에 말랐거나 사라져 버렸다는 將軍水 이야기,
'周易'冊을 보기만 하면 遁甲을 할 수 있는데, 孝子이며 大學者인 黃八道라는 사람이 이 冊을 보고 호랑이로 遁甲하여 남의 집 개를 잡아 와서 病든 어머니를 구완하다가 끝내 二重性이 드러나서 冊은 불태워지고 黃八道는 호랑이로 죽고 말았다는 孝子 호랑이 說話.
이들 呪寶는 使用者가 알맞게 善用하지 아니하고 濫用을 하거나, 人間 本來의 善한 마음을 抛棄하거나 不淨을 타거나 兄弟間에 葛藤을 일으키거나, 쓰는 方法을 모르는 일 等으로 因하여 只今까지 傳해 오지 아니한다.
이 呪寶 說話는 人間의 所願을 뚜렷하게 提示하는 面과 過分한 財物은 그리 利롭지 아니하다는 것과 오늘날은 傳하지 않는다는 敎訓을 담고 있다. 이런 呪寶가 繼續 傳해 온다면 虛荒한 欲望에 醉한 人間은 그 勤勉性·誠實性·因果 意識, 感謝하는 마음, 創造하고 生産하는 姿勢를 喪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呪寶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希願을 暫時나마 成就하였다는 快感을 주는 效果, 곧 說話 傳承의 힘을 認定할 수 있다.
🍎 朱子先生의 苦憫
宋나라 時代에 有名한 朱字先生이 官僚로 있을 때의 일이다.
朱子先生은 阿諂과 阿附, 放蕩 等으로 天子의 눈과 귀를 가리고 갖가지 非行을 일삼고 있는 姦臣들의 무리가 百姓들의 怨聲을 사고 있어 이들을 쫓아내고 바른 政治를 하려고 오래 前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오래된 惡의 무리들이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格으로 惡의 무리를 쫓아내기는 커녕 오히려 惡의 힘에 依해서 陋名을 쓰고 죽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썩어 쓰러져 가는 나라를 보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라, 죽음도 不辭할 決然한 覺悟로 彈劾上疎를 올려 惡의 무리들을 剔抉하기로 決心했다.
그리고는 '亡國之臣 追際必興 (나라를 亡하게 하는 姦臣들의 무리를 쫓아내므로 반드시 나라가 興旺 할 것이라)는 기나긴 內容의 彈劾上疎文을 써 놓았다.
뒤늦게 이런 事實을 알게 된 先生의 數많은 弟子들은 先生 앞에 엎드려 上疎不可論을 主張하고 나섰다. 왜냐하면 姦臣들의 무리가 한두 名도 아니고 얽히고 설킨 數百, 數千 名에 이르는데, 上疎를 한다는 것은 火藥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自殺 行爲나 다름이 없음을 主張해 끝내 挽留했다.
며칠을 두고 그러한 狀況이 繼續되고 區區한 混亂과 말썽만 이어질 뿐 結論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弟子들과 함께 周易八卦에 依해 最終 結論을 짓기로 妥協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彈劾上疎를 올려도 無事할는지 아니면 彈劾을 抛棄하고 官職에서 물러나야 할는지 等을 易卦에 依해 알아보도록 한 것이었다.
朱子先生은 너무도 크나큰 重大事였기에 며칠 동안 出入을 삼가고, 沐浴 齋戒를 한 後 鄭重한 마음으로 作卦를 해보았다.
作卦하는 날짜가 戌日이고, 時間이 새벽 3時에서 5時 사이였으므로 天山遯卦를 얻었다. 이 卦는 亂中卦로써 대단히 凶卦에 該當하는 것으로 그 當時의 時代相을 잘 나타내주는 卦였다.
本來, 周易 原文은 卦의 모든 뜻을 含縮하여 글자는 바로, '每事를 積極的인 것보다는 謙讓하고 讓步해야 한다는 물러갈 退字로 나타나 있었고 또한, '遯亨小利貞 遯尾勵 勿用有收往 嘉遯貞吉 肥遯無不利 (隱遯生活을 하게 되면 通하는 것이 있을 것이요. 小人은 마음이 곧고 올바라야 되며 最初의 隱遯生活은 危殆롭고 걱정이 많겠지만 그 以上의 것을 追求하면 不吉하다. 그러나 훌륭한 隱遯生活은 將次 좋은 일이 있어 외롭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周易 原文의 極히 一部 內容이지만, 全體的인 뜻은 結局 隱遯生活을 해야만 되는 것으로 풀이가 되어 朱子先生과 弟子들은 卦에 나타난 대로 先生이 隱遯生活을 하는 쪽으로 結論을 내였다.
그리하여, 先生은 깊은 山골짜기에 隱居하면서 學文을 할 수 있었던 바, 後日에 宋나라는 勿論이고 온 中國大陸까지 傳播되어 數百 年 동안을 綿綿히 傳해내려 온 朱子學을 傳承시켰다. 萬若 先生께서 그 當時 上疎를 올렸더라면 목숨을 扶支하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朱子學이 盛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惡의 무리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安逸한 마음으로 나라의 祿을 마냥 먹을 수만도 없는 葛藤에 處해 있을 때. 周易八卦를 따라 決定했다는 것이 얼마나 多幸하고 神秘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亦是 朱子先生은 周易 卦의, '隱遯生活을 하게되면 後日에 크게 利롭다.'는 指摘처럼 大學者가 되었고 後學에도 業積을 남긴 것이다.
🍎 主酒客飯
옛말에 ‘主酒客飯’이라는 말이 있었다. 卽 술은 主人이 먼저 먹고 밥은 손님이 먼저 먹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디를 가든 술은 主人이 먼저 그 맛을 보고 난뒤에 손님에게 勸해야 한다는 것이다.
朝鮮 中期에 南師古(1509∼1571. 本貫은 英陽. 號는 格庵. 易學·讖緯·堪輿·天文·觀相·卜筮 等 모든 學問에 두루 通達하였다. 自身의 生死問題까지 豫言하였던 그는 風水地理에 많은 逸話를 남겨 그의 이름으로 된 圖讖書인 南師古祕訣과 南格庵十勝地論이 鄭鑑錄에 傳한다)라는 名風水가 있었다.
그는 當代의 大豫言家이자 名地官이었다. 南師古는 우리나라 風水의 鼻祖로 불리는 道詵大師를 비롯하여 朴尙義, 李懿信, 肅宗大王, 性智大師, 無學大師, 學祖大師, 御史 朴文秀, 土亭 李之菡 等의 人物들과 함께 傑出한 名風水로서 興味津津하고 奇想天外한 이야기를 많이 남긴 人物이다.
어느 날 어떻게 所聞이 났던지 임금이 南師古를 불러들였다.
“南公, 子孫萬代로 國勢가 이대로 내려가겠는가? 우리 國勢興亡이 어찌 되겠는가?”하고 임금이 물으니,
南師古가 말하기를,
“主酒客飯이어늘, 主酒客飯이어늘”하였다. 놀란 임금이,
“아니 왜 엉뚱한 딴 말만 하는가”라고 묻자 南師古는
“아! 主酒客飯이어늘”하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를 지켜보던 臣下들이 憤慨하며
“아니, 上監媽媽께서 불러드려 直接 下問하시는데 저 저런 形便없는 사람이 엉뚱한 말만 하고 있다니... 當場 下獄시켜야 합니다”라고 上奏하여 結局 그를 獄에 가두어 버렸다. 그 일로 南師古는 오랫동안 獄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그는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내가 萬若 죽고 난 後에 御殿에서 나를 찾거든 이걸 내놓게”하며 獄司에게 自己 遺書를 하나 맡겼다.
歲月이 흘러 領議政이 世上을 바꿀 野心을 품었다.
그는 임금을 죽일 計劃을 세우고 自己 生日에 모셨다. 그리고 미리 毒藥을 탄 盞을 準備해 두었다. 임금이 오시자 술을 따르는데 그때 임금이 獄中에 있던 南師古의 ‘主酒客飯이어늘’이란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임금이 “主酒客飯이어늘”하자 그는 몹시 唐慌하며 어쩔 수 없이 毒藥 탄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신 그가 바로 임금 앞에 쓰러져 죽자 임금은,
“내가 이렇게 훌륭한 慧眼을 가진 南師古를 獄死시켰구나”라며 大聲痛哭하였다. 그리고는 獄에 가서 獄司들에게 或是 南公이 生前에 遺書 같은 것 남긴 것 없느냐 하자, 한 獄司가 南師古의 遺書를 찾아 올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主酒客飯’.
🍎 住持스님의 목을 매달다 (繫頸住持)
全羅北道 金堤에 있는 金山寺에는 한 때, 女僧(比丘尼)들이 修道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中에서도 姻花라고 하는 女僧은 陰蕩하고도 巧妙하기 짝이 없어서 여러 차례 男僧 (比丘)을 비롯하여 男子 信徒들을 魅惑시켰었다.
그러자, 住持 慧能은 이에 크게 憤慨하여 모든 僧侶를 모아 놓고,
"우리는 宜當히 戒律을 嚴格히 지켜야 할 것인데, 어찌 한 比丘尼 因하여 더럽힘을 當해서 되겠는가?." 하고 姻花를 쫓아내도록 하고, 다만 男僧으로 하여금 飮食과 衣服을 맡게 하여 비로소 道場이 맑고 貞淑하게 되었다.
어느 날, 慧能이 절 門을 나서서, 마침 姻花의 집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이 모습을 담 울타리 틈 사이로 엿 본 姻花는,
'"이 중놈을 내가 반드시 낚고 말겠다." 하고는 壯談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여있던 중들은 姻花의 말을 듣고서,
"네가 萬一에 住持 慧能 스님을 낚는다면, 이 절의 全土 一切를 너에게 주겠노라." 고 하며 내기를 하였던 것이다. 이 말은 들은 姻花는,
"그러지. 내 마땅히 저 중놈의 목을 來日 아침 절 앞에 있는 커다란 古木나무 밑에 매달 것이니, 그대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시오." 하고는 곧장 머리를 땋고 孝經을 옆에 끼고 住持 慧能을 찾아갔었다.
慧能은 그의 얼굴이 너무 예쁜 姿態를 보고서,
"넌 누구 집 아들이냐?" 하고 묻자.
姻花는,
"저는 아무 곳에 살고 있는 선비 집 아들이 온대, 前任 住持께 글을 배웠으나, 閉文한 지 벌써 오래 되었으므로 敢히 찾아와서 뵙는 것이랍니다." 하고 對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慧能은 姻花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글을 읽게 하였는데, 經文의 句讀 떼는 것이 몹시 分明하고, 목청이 淸亮하였으므로 慧能은,
"可히 가르칠 만 하겠구나." 하며 크게 기뻐하고는 이내 留宿을 시켰었다. 그랬더니, 姻花는 잠이 들어서 거짓으로 譫語(잠꼬대)를 짓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慧能은 姻花를 불러 自己의 잠자리로 끌어들이고 보니, 이는 男子가 아니고 곧 아리따운 한 女人이었으니, 慧能은,
"아이고 이게 어찌 된 일이야." 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姻花는,
"스님! 저는 곧 姻花입니다. 사내와 계집사이의 커다란 情慾은 곧 天地가 物件을 점지하신 참된 마음이었으므로, 옛날에 阿難은 摩登迦女란 淫女에게 昏迷하였고, 羅漢은 雲間에 떨어졌거늘, 하물며 스님께서 그 두 분에게 미치지 못하겠습니까." 하며 慧能을 誘惑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慧能은,
"아! 哀惜하구나. 이제 나도 法戒로 이룩된 몸을 헐게 되었구나." 하고는 곧 서로 情을 通하게 되었는데, 그 瞬間 姻花는 거짓으로 배가 아픈 시늉을 하며, 그 소리가 門 밖으로 들리도록 하자, 慧能은 남들이 알까 보아 두려워하여 엉겁결에 自己의 입으로 姻花의 입을 막아 소리나는 것을 防止하였다. 그러자 姻花는 더욱 아픈 表情을 지으며,
"스님! 저의 病이 매우 急하오니, 날이 밝기 始作하거든 저를 업어서 절 門 밖 古木나무 밑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저 혼자서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렴니다." 하고 哀願하는 것이었다.
慧能은 그의 말에 하는 수 없이 姻花를 등에 업고 姻花로 하여금 두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껴안게 하고 절 門을 나서려는 그 刹那였다. 姻花는 짐짓 두 손의 힘이 풀어진 듯이 하여 몸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는,
"아이고, 배는 아프고 스님의 등은 높아서 아무리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허리띠를 풀어서 스님 목덜미에 두르고 두 손으로써 잡는다면 떨어지지 아니할 듯합니다." 하고 痛聲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慧能은 또, 그가 願하는 대로하고서 古木나무 밑에 이르자. 여러 중들이 이미 나와 앉아서 待期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본 慧能은 蒼黃罔措하는 表情을 짓는 瞬間, 姻花는 벌떡 일어나서 허리띠를 잡아당겨 慧能의 목을 졸라매어 이끌고는 중들이 모여있는 앞으로 다가서면서,
"이것이 이 중놈의 목을 매단 것이 아니고 뭐더냐."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이에 중들은 이 光景을 보고서 크게 놀라고 結局에는 그들의 全土를 姻花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 酒泉 說話 (술 나오는 샘)
★ 韓國口碑文學大系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술 나온 우물’, ‘酒泉 說話’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몇 군데에 이 說話의 證據物이 實話처럼 傳해 오고 있다. 술은 嗜好品으로 空짜 술이 생기기를 바라거나,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아니하는 술이 나오는 奇跡의 샘물을 所願하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이 所願대로 前에는 술 나오는 샘이 있었으나 只今은 말랐거나 맹물만 나온다는 이야기로, 그 사라진 動機는 過慾 · 不淨, 身分 秩序의 無視 等 非道德的인 사람 때문이라고 說明되고 있다. ‘술 나오는 샘’에 關한 說話.
① 慶尙北道 淸道郡 淸道邑 安仁里에서 略 6㎞ 떨어진 고개에 酒泉이 있다. 이 고개를 左右로 하는 두 마을 사람들이 고개 近處의 큰 탱자나무 아래에 있는 酒泉에서 솟아나는 술을 퍼 마셨다. 그런데 限없이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대추 한 個, 술 한 盞씩을 마셔야 하며 한 盞 以上 먹어서는 안 되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중이 너무 목이 말라서 自身의 身分을 잊고 酒泉의 술을 여러 盞 마셨더니 그 뒤로는 酒泉이 不淨을 타서 말라 버렸다고 한다. 只今도 고갯마루 큰 대추나무 近處 靑石이 깔려 있는 데에 술샘의 痕跡이 있다.
② 京畿道 漣川에 ‘녹로주전’이라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8㎞ 길을 가면, 목이 마른 어느 고개에 막걸리가 나오는 酒泉이 있었다. 꼭 한 사람이 한 바가지만 마셔야 되는데 어느 술꾼이 慾心 사납게 두 바가지를 마신 뒤로 술이 나오지 않았다.
③ 忠淸北道 丹陽郡 大崗面 黃庭里에는 圓通庵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近處에 七星巖이라는 바위 옆에 酒泉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샘은 慾心 많은 중 때문에 부처가 怒하여 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과 工夫하던 선비가 그곳에 말뚝을 박았는데 成判書가 鬱陵島에서 가져온 香으로 그곳에 불을 피우니 술 代身 물이 나와 食水로 썼다 한다.
④ 江原道 寧越郡 酒泉面 酒泉里에 酒泉이 있었다. 身分에 따라서 兩班이 가면 藥酒가 나오고 常놈이 가면 막걸리가 나왔다. 한 番은 常놈이 兩班인 척하면서 衣冠을 整齊하고 갔는데 如前히 막걸리가 나오는지라 “이놈의 물조차 사람을 알아본다.”고 하며 때렸다 한다. 그 後로 땡쳤다.
⑤ 慶尙北道 어느 곳에 酒泉이라는 곳이 있다. 兩班이 가면 淸酒가 나오고 常놈이 가면 濁酒가 나왔는데, 어떤 衙前이 工夫하여 官長이 되어 갔는데도 如前히 濁酒가 나오는지라 火가 나서 酒泉을 막아 버렸다 한다.
⑥ 民譚으로, 술을 즐기는 아버지를 爲하려는 孝子가 奇跡的으로 異常한 돌을 얻어서 샘에 넣었더니 酒泉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傳해진다.
酒泉은 自然이 人間에게 준 큰 膳物이므로 所重하게 여기고 感謝한 마음으로 節制를 하며 마셔야 되는데, 이런 敬虔한 姿勢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價値가 있는 寶物이나, 寶物같이 人間에게 所重한 여러 가지(學問·藝術·制度·社會·國家·家庭 等)를 人間이 함부로 對할 때 그 價値를 喪失하여 오히려 害를 입힐 수 있다는, 人間의 俗性에 對한 衝告의 機能이 있다. 술은 나오지 아니하나 젊어지는 샘물, 마르지 아니하는 洞네 우물, 먹으면 힘이 세지는 將軍水 같은 所重한 물이 나오는 샘물說話도 많은데, 只今 사라진 것도 酒泉과 같이 貴重한 것을 賤待한 自業自得의 結果라고 話衆은 말한다.
酒泉說話의 骨格은 사람의 純粹한 所願, 그 所願 達成이라는 神이나 自然이 베푸는 奇跡, 이 奇跡을 感謝할 줄 모르고 誤用하는 人間의 處身, 그 結果 酒泉이 사라졌다는 敎訓의 이야기로, 暗示하는 바가 많다.
🍎 죽은 체하는 토끼
(토끼가 꾀를 써서 죽을 危機를 벗어난다는 內容의 說話)
★ 韓國口碑文學大系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動物譚이면서 智略譚에 屬한다. 토끼가 山에서 팔딱팔딱 뛰다가 덤불에 다리가 걸려서 엎어졌다. 어떻게 하면 다리를 풀까 窮理를 하다가 지나가는 똥파리를 불러서,
“똥파리야, 네 子孫이 興盛하다니 내 털끝마다 쉬를 좀 실어다오.”하고 請하였다.
그래서 파리가 쉬를 하얗게 실어주었다. 그러자 토끼는 죽은 체하고 누워 있었다. 그 때 마침 나무를 하러 나무꾼들이 노래를 부르며 山을 올라오다가, 덤불에 누워 있는 토끼를 發見하고는 잡아서 구워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구더기가 들끌었다. 그래서 잡아먹겠다던 생각을 抛棄하고 작대기를 획 던지니, 토끼가 그 바람에 덤불에서 다리를 풀고 빠져나와 깡충깡충 逃亡을 치면서 “용할시고, 용할시고, 이 내 재주 용할시고, 龍宮에서 살아와서 世上에 나와 죽게 된 몸을 살렸으니 날 같이도 용할까.” 하더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獨立되어 傳承되기도 하고, 거북의 꾀에 속아 龍宮에 갔다가 살아나온 이야기 뒤에 連結되어 傳하기도 한다. 토끼의 꾀에 얽힌 여러 가지 逸話 中 하나이다.
🍎 竹筒美女 說話
(대나무 筒 속에 美女를 넣고 다니는 사람을 金庾信이 만났다는 內容의 說話)
○ 續齋諧記, 大東韻府群玉에.
神異譚 中 超人譚에 屬한다. 只今은 傳하지 않는 殊異傳에 들어 있었다 하며, 朝鮮 宣祖 때 權文海가 엮은 大東韻府群玉 卷9에도 실려 있다.
金庾信이 西州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가 머리 위에 非常한 氣運이 감도는 나그네를 만났다. 그 나그네가 나무 밑에 쉬고 있기에 金庾信도 쉬면서 자는 척하고 살펴보았다. 나그네는 行人이 없음을 確認하고 품속에서 竹筒을 꺼내어 흔들었다. 그러자 그 竹筒 속에서 美女 두 名이 나와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筒 속으로 들어갔다.
暫時 後 行人은 다시 길을 떠났다. 金庾信이 쫓아가 말을 하여 보니 말이 溫和하였다. 함께 同行하여 서울에 들어온 뒤에 金庾信이 나그네를 南山 소나무 아래에 데려와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두 美女도 나와서 參席하였다. 나그네가 自己는 西海에 사는데 東海로 丈家들어 父母를 뵈러 가는 길이라 하였다. 곧 風雲이 일어나 天地가 캄캄해지더니 나그네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 說話는 六朝 때 梁나라 吳均이 엮은 續齋諧記의 ‘입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이야기’와 類似하다. 또한, 三國遺事 卷 2 眞聖女大王 居陀知條에 居陀知가 龍女를 꽃으로 變하게 하여 가슴에 품고 다녔다는 內容, 같은 冊 卷 2 元聖大王條에 龍을 물고기로 바꾸어 桶 속에 담았다는 이야기 等 新羅時代 文獻說話에도 비슷한 內容이 자주 나타난다. 따라서 사람을 變하게 한다거나, 桶 속에서 사람이 나온다는 것들은 當時에 널리 퍼졌던 說話로 보인다.
이 說話는 神秘스러운 이야기를 歷史的 人物인 金庾信과 結付시켜 傳說的 證據力에 依한 信憑性을 갖추려 하였는데, 이러한 點은 大東韻府群玉 卷12에 실려 있는 老翁化狗說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說話는 이름 없는 百姓이 잘 알려진 人物마저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內容으로, 下層의 潛在力을 肯定하면서 支配的인 價値觀을 否定하려는 意圖를 엿볼 수 있다.
(竹筒美女)
金庾信自西州還京 路有異客先行 頭上有非常氣 憩于樹下 庾信亦憩佯寢 客伺絶行人 探懷間出一竹筒 拂之 二美女從竹筒出 共坐語 還入筒中 藏懷間 起行 庾信追訊之 言語溫雅 同行入京 庾信與客携至南山松下 設宴 二美女亦出參 客曰 “我在西海 娶女於東海 與妻歸寧父母” 已而風雲冥暗 忽失不見
*金庾信이 西州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奇異한 길손이 앞서 가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非常한 氣運이 감돌았고 그가 나무 아래에서 쉬자 庾信도 같이 쉬면서 잠자는 척 하였다. 客이 行人이 끊어진것을 살피고는 품속을 더듬어 竹筒 하나를 꺼내서 툭툭 털자 두 美女가 竹筒에서 나왔고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다시 竹筒 속으로 들어가자 품속으로 집어 넣고는 다시 일어나 길을 떠났다. 庾信이 그를 좇아 붙잡고 물었더니 그의 말투가 溫和했다.함께 서울로 들어와서 庾信이 客을 데리고 南山 소나무 아래로 가서 잔치를 베풀었다. 竹筒속의 美女도 나와서 參席했다. 客이 말하기를 "나는 西海에 사는데 東海에서 配匹을 取해 아내와 함께 父母님께 問安드리러 가는 길입니다" 얼마 뒤에 바람과 구름으로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吾君驢耳
新羅第四十八代 景文大王 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 皆未知 唯幞頭匠一人 知之 然 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倉云 吾君耳 如驢耳 其後風吹則竹聲云 吾君耳 如驢耳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則但聲云 吾君耳長
新羅 第48代 景文大王이 王位에 오르니 王의 귀가 갑자기 자라나 당나귀 귀와 같았다. 王后와 宮人들은 모두 알지 못했지만 오직 頭巾을 만드는 匠人 한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平生 동안 사람들을 向해 말하지 못하다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道林寺 대나무숲속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向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소리가 나기를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하였다. 王이 이것을 싫어하여 대나무를 베어내고 山茱萸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다만 소리가 나기를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고 하였다
🍎 志鬼 說話
新羅 善德女王 때에 志鬼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志鬼는 活里驛 사람인데, 하루는 徐羅伐에 나왔다가 지나가는 善德女王을 보았다. 그런데 女王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單番에 女王을 思慕하게 되었다.
善德女王은 眞平王의 맏딸로, 그 性品이 仁慈하고 智慧로울 뿐만 아니라 容貌가 아름다워서 모든 百姓들로부터 稱頌과 讚辭를 받았다. 그래서 女王이 한 番 行次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女王을 보려고 거리를 온통 메웠다. 志鬼도 그러한 사람들 틈에서 女王을 한 番 본 뒤에는 女王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女王을 思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精神이 나간 사람처럼 善德女王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女王이여, 나의 사랑하는 善德女王이여!"
志鬼는 거리로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쳐댔다. 이를 본 官吏들은 志鬼가 지껄이는 소리를 女王이 들을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官吏들은 志鬼를 붙잡아다가 매질을 하며 야단을 쳤지만 아무 所用이 없었다.
어느 날 女王이 行次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어느 골목에서 志鬼가 善德女王을 부르면서 나오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始作했고 떠들썩했다. 이를 본 女王은 뒤에 있는 官吏에게 물었다.
"都大體 무슨 일이냐?"
"미친 사람이 女王님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그럽니다."
"나한테 온다는데 왜 붙잡았느냐?"
"아뢰옵기 惶悚합니다만, 저 사람은 志鬼라고 하는 미친 사람인데, 女王님을 思慕하고 있다고 합니다."
官吏는 큰 罪나 진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운 일이로구나!"
女王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하고는, 志鬼에게 自己를 따라오도록 官吏에게 말한 다음, 절을 向하여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便, 女王의 命令을 傳해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志鬼는 너무도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女王의 行列을 뒤따랐다.
善德女王은 절에 이르러 부처에게 祈禱를 올리었다. 그러는 동안 志鬼는 절 앞의 塔 아래에 앉아서 女王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女王은 좀체로 나오지 않았다. 志鬼는 지루했다. 그리고 時間이 흐를수록 안타깝고 焦燥했다. 그러다가 心身이 衰弱해질 대로 衰弱해진 志鬼는 그 자리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女王은 祈禱를 마치고 나오다가 塔 아래에 잠들어 있는 志鬼를 보았다. 女王은 그가 가엾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팔목에 감았던 金팔찌를 뽑아서 志鬼틔 가슴 위에 놓은 다음 발길을 옮기었다.
女王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잠이 깬 志鬼는 가슴 위에 놓인 女王의 金팔찌를 보고는 놀랐다. 그는 女王의 金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기쁨은 다시 불씨가 되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는가 싶더니, 이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가슴 속에 있는 불길은 몸 밖으로 터져 나와 志鬼를 어느 새 새빨간 불덩어리로 만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슴이 타더니 다음에는 머리와 팔다리로 옮아져서 마치 기름이 묻은 솜뭉치처럼 활활 타올랐다. 志鬼는 있는 힘을 다하여 塔을 잡고 일어서는데, 불길은 塔으로 옮겨져서 이내 塔도 불기둥에 휩싸였다. 志鬼는 꺼져 가는 숨을 내쉬며 멀리 사라지고 있는 女王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며 따르는데, 志鬼 몸에 있는 불 氣運은 거리에까지 퍼져서 온 거리가 불바다를 이루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志鬼는 불鬼神으로 變하여 온 世上을 떠돌아디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불鬼神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이 때 善德女王은 불鬼神을 쫓는 呪文을 지어 百姓들에게 내놓았다.
志鬼心中火 ~ 志鬼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燒身變火神 ~ 몸을 태우고 火神이 되었네.
流移滄海外 ~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不見不相親 ~ 보지도 말고 親하지도 말지어다.
百姓들은 善德女王이 지어 준 呪文을 써서 大門에 붙이었다. 그랬더니 비로소 火災를 免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불鬼神을 물리치는 呪文을 쓰게 되었는데, 이는 불鬼神이 된 志鬼는 善德女王의 뜻만 좇기 때문이라고 한다.
🍎 지네場터說話 (蜈蚣場터說話)
(두꺼비가 恩惠를 갚기 爲하여 지네에게 죽게된 少女를 살리고 代身 죽는다는 內容의 說話)
★ 韓國口碑文學大系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動物報恩譚 中의 하나로 ‘지네場터說話’ 또는 ‘蜈蚣場터 說話’라고도 한다.
代表的인 것은 忠北 淸州의 지네場터에 根據한 由來譚이며, 京畿道 開城 西北쪽의 지네山(蜈蚣山)에도 이 說話가 있다. 그 밖에도 地名에 關係없이 널리 分布되어 있고 童話로도 普給되어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한 가난한 少女가 부엌에 나타난 두꺼비에게 먹을 것을 주며 보살폈다. 잘 먹은 두꺼비는 크게 자랐다. 그 마을에는 해마다 處女를 지네에게 바치는 風習이 있는데, 이番에는 그 少女가 祭物로 決定되어 두꺼비에게 作別을 하고 지네터(堂집이나 堀속)에 들어갔다.
밤中에 두꺼비가 그곳에 찾아와서 같이 있는데, 지네가 나타났다. 붉은 불을 뿜는 지네와 파란 불을 뿜는 두꺼비가 熾烈하게 싸우자 少女는 氣絶하였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가서 보니 두꺼비는 지네와 함께 죽고 少女는 살아 있었다.
그 뒤 지네의 憂患은 사라졌다.
處女를 祭祀 지내서 平安을 바라는 人身供犧說話는 濟州道의 金寧蛇窟에도 있다.
處女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두꺼비를 키워 준 慈悲心 때문인데, 平素 自己를 사랑하는 少女를 爲하여 죽음으로 報答한 두꺼비의 報恩은, 바로 두꺼비와 같이 背恩忘德하지 말고 恒常 報恩하여야 한다는 當爲를 提示한다.
지네는 數많은 발과 무서운 毒을 지닌 點에서 人間을 不斷히 괴롭히는 存在, 卽 自然의 攻擊·災難 및 百姓을 괴롭히는 貪官汚吏나 도둑 같은 不良輩로 比喩될 수 있다.
두꺼비가 파란 불을 地上에서 위로 쏘고, 지네가 붉은 불을 위에서 아래로 쏘는 對決 場所가 穀食을 貯藏한 倉庫(淸州 近處 蜈蚣倉의 境遇)라는 點에서는 물과 불, 또는 豊年과 凶年(가뭄)의 自然 對立으로 比喩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說話는 自然과 人間, 加害者와 協助者, 사랑과 報答 等의 人間 問題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至毒한 거짓말
어느 날, 스님이 시골길을 걷다보니 저 건너便에 세 사람의 農夫가 밭둑에 앉아서 무어라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에 스님은 異常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같다.
한 사람이 스님께 말을 건넸다.
"스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事實은 只今 이 길에서 돈 百 兩을 주웠는데, 第一 至毒한 거짓말을 하는 者에게 이 돈을 몽땅 주려고 하던 참입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審判官이 좀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威嚴을 갖추며 對답3하기를 "南無阿彌陀佛, 그건 좋지 못한 일입니다. 거짓말을 하다니 될 말인가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世上에 태어나 아직까지 單 한 番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소."
스님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입 모아 "어이구, 스님, 이 돈은 모두 스님 것
입니다." 하며 돈 자루를 내밀자. 이를 받아든 스님은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을 외며 悠悠히 사라졌다.
🍎 智略 說話
(異人이 아닌 平凡한 人物이 꾀를 써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오히려 反對로 남에게 속기도 하는 이야기를 다룬 說話)
★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肅宗大王, 御史 朴文秀, 金笠, 鳳伊 金先達 型, 꾀보 下人 等이 자주 主人公으로 登場하고, 이 밖에 鰲城 李恒福과 漢陰 李德馨, 푸대접을 받는 사위, 衙前, 學童, 上座 等도 나온다.
肅宗大王과 御史 朴文秀 等 지체가 높은 사람은 自己 正體를 숨기고 自己보다 地位나 能力에서 劣勢인 相對方을 꾀를 써서 도와주기도 하고, 마음씨가 나쁜 者, 惡行을 저지르는 者의 所行을 밝혀서 處斷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나 꾀로써 이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뜻밖에 自己들보다 한 數 위인 相對, 卽 異人이나 智慧로운 아이를 만나 오히려 智略에서 눌리기도 한다.
智略譚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主人公은 鳳伊 金先達 型 人物이다. 그들은 남다른 機智로 困窮한 處地를 謀免하려고 남들을 속이지만 그 對價가 한 끼의 食事, 하룻밤 잠자리이니 惡行이라도 큰 罪는 아니다. 自己 能力에 닿지도 않는 일을 맡고 나서거나, 相對方의 物件을 슬쩍하여 도리어 맡겨 놓고 그 代身 飮食을 먹는다.
모르는 사람을 아는 체하거나 親戚을 假裝하기도 하고, 假짜 訃告를 내어 賻儀金을 거두고, 빚쟁이에게 빚은 저승에서 갚았노라고 둘러댄다. 大同江 · 醋친 팥粥 · 밀 반대기 等 엉뚱한 物件을 팔아먹고, 어리석은 체하면서 남의 飮食을 먹어 치운다. 自身이 무엇인가를 훔치고는 점잖은 사람에게 陋名을 씌우고, 飮食을 公平히 나눈다면서 혼자 먹어 치운다. 콧대 높은 妓生·處女·寡婦를 허술한 主人公이 뜻밖의 術手로 차지한다.
이런 金先達 型 人物은 地方마다 特色이 있으며, 방학중·鄭萬瑞·鄭壽銅·태학중 等 여러 人物들이 있다. 金先達 型 人物도 언제나 成功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안査頓이나 말 잘하는 아낙네 等에게 한 數 지기도 한다. 그리고 金先達 型 人物은 아니지만 平素에 푸대접을 받던 사위가 丈人(丈母)에게, 或은 꾀보 下人이 上典을 어떤 機會에 꾀를 써서 平素의 鬱憤을 雪辱하기도 한다.
智略譚은 자주 競爭談의 形態를 띠기도 하고 笑談으로 連結되기도 한다. 호랑이·여우 等 힘이 强한 相對를 토끼·두꺼비·게 等의 弱한 쪽이 꾀로써 물리치는 動物譚도 智略譚에 屬한다.
🍎 地名 傳說
(特定 地名의 地理的 特徵, 名稱의 由來, 習慣의 起源 等에 關한 傳說)
어떤 傳說이 場所를 잡고 證據物을 固着시켜 題目처럼 單純化시킨 것과, 그 反對로 本디부터 있는 地名이 合理的인 說明을 하는 傳說을 퍼뜨리는 것을 말한다.
地名傳說의 發生 要因은 人間에게는 歷史的으로 空間과 時間이 結合한 言語 傳承物을 만들려는 心理가 있다는 데에 起因한다.
現在 地名으로 傳하는 證據物을 根據로 過去를 遡及하여 說明하는 境遇가 있는데, 例를 들면 “여기가 往十里라는 곳으로, 그 由來를 말하면 以前에 無學大師가 서울 터를 잘못 잡아 十 里를 더 갔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過去의 이야기를 다 한 뒤에 現在 남아 있는 痕跡을 證據로 提示함으로써 그 傳說에 信聘性을 더하는 구실을 하는 境遇가 있다.
例컨대, “以前에 富者 長子가 중을 虐待한 罰로 그 집이 가라앉아서 못이 되었다. 그래서 이 못을 長子가 살던 곳이라 하여 長子못이라 한다. 只今도 못 속에서는 놋그릇이 나오고 穀食이 變한 조개가 많이 산다.”는 것이다.
이곳의 由來는 ‘그래서’와 ‘只今도’가 들어가는 것을 注目한다면 一般 說話와 다른 構造임을 알 수 있다.
그 發生하는 樣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歷史的인 大事件의 痕跡이다. 扶餘 白馬江에 있는 釣龍臺 傳說은 百濟 滅亡 事件, 金剛山에 있는 斷髮嶺은 新羅 마지막 太子인 麻衣太子가 金剛山에 들어간 事件, 壬辰倭亂 때 李舜臣이 倭軍을 물리친 全南 珍島의 울돌목(鳴梁) 等은 모두 歷史的인 事件으로 생긴 地名傳說이다.
이러한 歷史的인 事件은 地名으로 因하여 文獻보다 더 오랫동안, 또는 뚜렷하게 살아남게 되며, 때로는 그 地方民의 觀點에서 새롭게 解釋된 채로 定着 傳承하기도 한다.
一般 歷史冊에는 全혀 드러나지 않은 事件이 地方의 地名傳說에서 드러나는 境遇가 許多하다. 例를 들면, 忠南 論山市의 숙향이堀은 百濟王이 숙향이라는 시골 處女를 後宮으로 부르자 가지 않고 숨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全南 長興郡 大興面 蓮池臺는 高麗 때 許蓮池라는 處女가 元나라의 後宮으로 뽑혔는데 갑자기 病이 들어 죽으니 그 怨魂을 慰勞하던 곳이라 한다. 이들 女性의 歷史는 地名傳說이 아니면 全혀 알 수 없던 것들이다.
둘째로, 倫理的인 事件을 地名傳說로 定着시켜서 ‘이런 훌륭한 일을 後世 사람이 本받아야 하느니라.’ 라는 敎訓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곳곳마다 있는 孝子里·烈女閣·개 무덤 같은 것이다.
忠南 天安市 竝川面 개목고개(狗項嶺)는 술 醉한 主人을 개가 제 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서 살렸다는 義犬說話의 根據地이며, 忠南 瑞山市 浮石面 大頭里의 말 무덤은 戰爭에서 죽은 主人의 옷을 말이 물고 와서 죽은 곳이라는 來歷이 있는데, 이들 動物의 倫理的인 行動을 萬物의 靈長인 人間이 마땅히 本받으라는 뜻을 內包하고 있다.
또한, 동냥 온 중을 薄待하여 亡하게 되었다는 內容의 여러 地名傳說도 非倫理的이며 反道德的인 이야기를 通하여 民衆들로 하여금 倫理的인 人間이 되라는 敎訓을 表出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風水地理說에 따라 어떤 地形을 合理的으로 說明하려는 것이다. 大體로 길이가 짧고 說明이 單調로운 傾向이 있으나 이 地方에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를 가장 合理的으로 說明하는 境遇이다.
例컨대, 梅花里는 이곳이 梅花落地形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든지, 서울의 臥牛山은 소가 일을 마치고 누워서 쉬는 臥牛 形局이고, 서울 阿峴洞의 굴레방다리는 이 소가 굴레를 풀던(放) 다리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넷째로, 그 地方에 實際로 있었던 여러 動物·植物·도깨비·鬼神·山神의 獨特한 行動들이 特定 人物들에 얽힌 由來와 그에 對한 說明이 地名에 定着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地方 사람은 쉽게 알기 어려운 一回的인 特殊한 것으로, 어떤 것은 그 地方에만 있는 것 같으나 事實은 다른 地方에도 흔한 것이 있다. 도깨비가 쌓았다는 ‘도깨비湺’가 그 特殊하면서도 普遍的인 地名傳說이다.
地名傳說은 一般的·客觀的인 評價가 어떠하든지 그 地方의 人物을 肯定的으로 또는 否定的으로 收容하는 것이다. 例컨대, 全北 南原의 春香이는 그 고장에서 天下 美人으로만 나타난다.
또, 朝鮮 燕山君 時節의 柳子光에 對해서는 그가 태어난 곳은 山川 精氣가 서려 있는 곳이어서 대나무가 말라 누름대 (枯竹里)라는 洞네가 생겼다고 할 程度로 柳子光의 出生을 큰 人物의 出生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民間語源說 現象이 일어나서 全혀 關聯이 없는 이야기가 結付되는 것이 있다. 卽, 서울을 설울 (雪城) 곧 눈이 내린 城터 자리라고 한다든가, 本來 德壽宮의 닫힌 後門(塞門)인 光化門의 새門을 새로운 門(新門)으로 訛傳하는 것이 그 例이다.
하나하나의 地名傳說을 地圖 위에 表示하면 分布點으로 나타나고, 이들 傳說의 類似性과 同一性이 分布圖로 提示되어서 傳說의 樣相을 全國的으로 또는 어느 特定 地域의 文化 現象으로 表現할 수 있다. 오뉘힘내기傳說이 主로 南韓에 分布된 것이 그 例가 된다.
地名傳說은 自己 고장의 歷史, 곧 地方史 硏究가 되며, 나아가 民族과 國家의 歷史 硏究가 될 수 있고, 鄕土를 사랑하는 契機가 되므로 結局 自身에 對한 肯定的인 硏究 態度로 歸着된다. 우리 나라는 歷史가 깊고 그 地名傳說의 資料가 많으므로 사라지기 前에 積極的으로 硏究되어야 한다.
🍎 至誠과 感天 說話
(가난하고 依支할 데 없는 ‘至誠’과‘ 感天’의 友情에 하늘이 感動하여 福을 주었다는 說話)
★ 韓國口碑文學大系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지하국 ∼1988)에.
全國 各地에 流布되어 있으며, ‘至誠이면 感天이다.’라는 俗談의 由來譚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일찍 父母를 여의고 거지 노릇을 하던 장님 感天이와 앉은뱅이 至誠이가 서로 돕기로 하고, 그 날부터 至誠이가 感天이를 업고 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山 밑의 옹달샘에서 물을 먹다가 커다란 金덩이를 發見하였다.
두 사람은 그것을 꺼내어 그 앞을 지나가는 도붓장수에게 둘로 나눠 달라고 하였다. 도붓장수의 눈에는 金덩이가 큰 구렁이로 보였으므로, 놀라 달아나 버렸다. 다시 砲手에게 둘로 나눠 달라고 하니, 砲手의 눈에는 平凡한 돌멩이로 보였으므로, 둘로 쪼개 주었다.
두 사람은 그것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얼마 後, 절에 간 두 사람은 스님의 勸誘로 金덩이를 부처님께 바치고, 100日 祈禱를 하였다. 祈禱를 마치는 날, 感天이는 눈을 뜨고, 至誠이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이 說話는 各 篇에 따라 內容이 다르게 傳해 온다. 障碍者가 아닌 親兄弟 至誠과 感天이 빌어먹다가 金을 얻자, 兄이 同生 몫까지 다 차지하려고 同生의 눈을 멀게 하였는데, 同生이 도깨비·호랑이·스님 또는 童子 等 神異者의 도움으로 눈도 뜨고, 富者가 되어 兄을 容恕하고 받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慾心쟁이 兄이 懲罰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說話에서 至誠과 感天이 障碍者인 境遇에는 두 사람 사이에 對立이나 葛藤 없이 모두 부처님의 도움으로 病이 나아 穩全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障碍者가 아닌 境遇에는 두 사람 사이에 對立과 葛藤이 나타난다. 그래서 착한 同生이 앞을 못 보게 되기까지 하지만, 神異者의 도움으로 모든 問題가 解決된다.
이 때 慾心쟁이 兄에 對한 懲罰이 있고 없음에 따라 두 사람 다 幸福하게 되기도 하고, 同生만 幸福을 누리기도 한다. 善의 勝利를 믿는 說話 傳承 集團의 意識이 惡한 者에 對한 懲罰이 나타나는 變異型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 池沼 說話
(蓮못·방죽·못·湖水·貯水池 等을 素材로한 說話)
★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에.
內容은 생긴 由來, 살고 있는 龍, 그 물의 活用, 둑쌓기 等이다. 蓮못의 由來說話로는 于先, 懲罰로 因하여 저절로 陷沒하거나 人工으로 파서 못이 생겼다는 類型이 있다.
우리 나라의 옛 法에 따르면 逆賊이나 큰 罪人의 집은 허물고 그 자리는 다시 사람이 살지 않으며, 다시금 惡人이 나오지 않도록 파서 못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沼 판다.’는 俗談이 생겼다.
다음으로, 이러한 沼 파기 外에 神佛이 노엽게 여겨 惡을 恣行한 者의 居住地를 蓮못으로 만들어 버린 類型이 있다. 慶尙北道 英陽郡 立岩面 新泗里의 울릉못은 修道하는 중들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까 부처가 震怒하여 절을 없애고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널리 分布한 長子못傳說 系統의 長子못은 施主僧에게 富者가 쇠똥을 퍼 주자, 부처(또는 하느님)가 震怒하여 갑자기 물벼락을 내려 瞬息間에 그 富者가 사는 집을 蓮못으로 만들어서 생겨난 境遇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陷沒傳說이라고 한다. 前부터 있던 蓮못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慶州 黃龍寺 緣起說話型의 이야기, 곧 逐龍建寺型說話가 우리 나라에 많이 있다.
이 境遇, 蓮못은 절을 짓는 데 合當한 蓮못 터이며, 그 蓮못 속에 사는 龍은 佛敎를 反對하는 勢力이다. 그런데 龍이 쫓겨나는 것도 있고, 그 龍이 屈服하여 절을 지키는 守護神이 되는 것도 있다(浮石寺 緣起說話).
蓮못에 사는 것으로는 이무기나 龍이 第一 많은데, 이무기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고 갖은 努力을 다한다. 咸鏡道 斗滿江가(慶源)의 赤池에서처럼 두 龍이 살면서 雌雄 對決을 하면서 활 잘 쏘는 靑年에게 도와 달라고 懇請하기도 한다(赤池傳說). 이때 昇天하려는 이무기나 勝利하려는 龍은 바로 政權을 잡으려는 出世 意志를 象徵한다.
百濟 武王은 蓮못에 살던 池龍의 아들인데, 밤中에 찾아와서 處女를 만나고 간 總角, 곧 夜來者를 실로 追跡하여 가 보니 蓮못 속에 살던 지렁이(池龍 : 地龍과 發音이 비슷하다)였다는 夜來者說話에서 蓮못 속의 龍은 王을 誕生시켜 주는 아버지 구실을 한다. 또한, 蓮못(또는 바다) 속에 들어간 아기將帥가 修練하고 軍士를 길러 世上에 나와 王이 되려다가 官軍에게 들켜 失敗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아기將帥 우투리 이야기 : 慶北 義城郡 舍谷面 神主못傳說)와 아기將帥가 죽자마자 龍馬에서 나와 슬피 울다가 蓮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農業國이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물이 所重하였으므로 自然히 蓮못과 그 속에 사는 龍은 出世나 權力으로 象徵되었다.
蓮못 속에는 鬚髥이 길게 난 슬기로운 白髮 老人이 살고 있어서, 平素에는 몸을 나타내지 아니하지만 王이 危險하거나(書出池), 靑年이 가난에 못 이겨 自殺하려 한다거나(全北民譚), 나무꾼의 良心을 試驗한다거나(銀도끼와 金도끼 說話) 하는 일이 蓮못가에서 생길 때에 忽然히 나타나서 智慧를 提供하기도 한다.
金剛山 仙女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蓮못은 仙女의 沐浴 場所가 되어 가장 깨끗한 女性의 場所가 되며, 또 하늘에 먹을 물을 提供한 點에서는 하늘로 通하는 場所가 된다. 朴赫居世神話에서의 蓮못, 곧 縮小된 우물(蘿井)에서는 하늘의 女人이 地上으로 나오는 場所가 된다.
한便, 江陵의 蓮못에 便紙를 넣었더니 물고기가 서울로 傳達하여 준 이야기와 高麗 建國神話에서 王建의 할머니인 龍女가 龍宮으로 가 버린 것을 通하여 보면, 蓮못은 하늘과 땅과 龍宮으로 通하는 出入口 구실을 한다. 開城 朴淵瀑布에 빠져 죽은 朴生은 바로 龍宮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밖에 池沼傳說은 蓮못마다 多樣한 說話를 지니고 있어 簡單히 分類하기는 어려우나, ‘못 속의 龍 또는 이무기가 둑에 매어 둔 황소를 잡아먹었다.’, ‘抑鬱하게 죽은 사람의 屍體가 잠겨 있다.’, ‘明紬실 세 꾸리가 들어가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 ‘거울처럼 願하는 것이 보인다.’는 等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 智哲老王 說話
說話의 世界에는 禁忌가 없다. 現代판으로 고치면 이 說話는 大物王 강쇠와 大物王妃 雍女의 이야기이다. 無嚴하게도 王의 陰莖 길이를 記錄하고 王妃의 똥자루 크기를 記錄하다니. 그것도 智證王이라면 王 4年 10月에 '王'이라는 王號를 最初로 使用하고, 나라이름도 國際標準語를 使用하여‘新羅’로 고치고 諡號도 처음으로 쓴 國際化, 世界化를 標榜한 新羅의 偉大한 王인데...
諡號 智證은 “지절로” 내지 "지대로"의 漢字 表記로 推定된다. 漢字로 表記한 "智哲老"도 亦是 固有語
"지절로"의 音詞로 보인다.
現代語로는 副詞 "저절로 " 또는 “제대로”이다.
普通 사람들의 陰莖은 海綿體에 血液이 充血되어 있어야 發起하지만 이 지절로王은 한 자 다섯 치 되는
大物이 언제나 그 貌樣이 그 貌樣인 貌樣이다.
이 說話 敍述者의 偉大性 表現方法 또한 奇異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性器崇拜가 오로지 多産과 豊饒를 祈願하는 信仰이니, 性器라면 오로지 快樂만을 聯想하는 偏狹한 思考를 强要하는 現代人의 眼目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嚴密한 意味에서 이 敍述者의 態度에는 驚歎과 讚辭와 喜悅과 眞摯함이 가득하다.
(智哲老王)
第二十二智哲老王, 姓金氏 ~ 第 22代 智哲老王의 姓은 金氏이며
名智大路, 又智度路 ~ 이름은 智大路 또는 智度路라 하였다.
諡曰智證, 諡號始于此 ~ 諡號는 智證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諡號를 쓰는 法은 이 때부터 始作하였다.
又鄕稱王爲麻立干者, 自此王始 ~ 우리말로 王을 麻立干이라고 한 것은 이 王 때부터 始作하였다.
王以永元二年庚辰卽位.(或云辛巳則三年也.) ~ 王은 永元 2年(500年)에 王位에 올랐다.
王陰長一尺五寸, 難於嘉耦 ~ 王은 陰莖의 길이가 한 자 다섯 치가 되어 配匹을 求하기가 힘들었다.
發使三道求之, 使至牟梁部 冬老樹下 ~ 그래서 使者를 三道에 보내어 配匹을 求하였는데, 使者가 牟梁部 冬老樹 아래에 이르니
見二狗嚙一屎塊如鼓大, 爭嚙其兩端 ~ 개 두 마리가 북만큼 큰 똥 한덩어리 하나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개들은 兩끝을 물고 싸웠다.
訪於里人, 有一小女告云 ~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少女가 말했다.
"此部相公之女子洗澣于此, 隱林而所遺也" ~ "이것은 牟梁部 相公의 딸이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누고 간것입니다."
尋其家檢之, 身長七尺五寸 ~ 使者가 그 집을 찾아가보니 그女의 身長이 일곱자 다섯치나 되었다.
具事奏聞, 王遣車邀入宮中 ~ 이 事實을 王께 아뢰었더니 王은 수레를 보내어 그女를 宮中으로 불러들여
封爲皇后, 群臣皆賀 ~ 冊封하여 皇后로 하니 여러 臣下들이 모두 敬賀했다.
又阿瑟羅州(今溟州)東海中, 便風二日程有于陵島(今作羽陵) ~ 또 阿瑟羅州 東쪽 바다에 順風으로 이틀 걸리는 거리에 于陵島가 있었다.
周廻二萬六千七百三十步 ~ 이 섬은 둘레가 2萬6千7百30堡였다.
島夷恃其水深, 驕傲不臣 ~ 섬에 사는 오랑캐들은 그 바닷물이 깊은 것을 믿고 驕慢하여 朝貢하지 아니했다.
王命伊喰朴伊宗將兵討之 ~ 王은 伊喰 朴伊宗에게 命하여 兵士를 거느리고 가서 討伐하게 하였다.
宗作木偶師子, 載於大艦之上, 威之云 ~ 朴伊宗(新羅將軍 異斯夫)은 나무로 獅子를 만들어서 그들을 威脅했다.
"不降則放此獸" ~ "너희가 降伏을 하지 않으면 이 獅子를 놓아 버리겠다."
島夷畏降. 賞伊宗爲州伯 ~ 섬의 오랑캐는 두려워서 降伏을 하였다. 이에 王은 朴伊宗에게 賞을 내리고 그 州의 長官인 州伯으로 삼았다.
🍎 地下國의 盜賊 說話
(地下國大賊退治 說話)
出典 : 韓國民族說話의 硏究.
옛날 한 사람의 閑良이 科擧를 보려고 서울로 向하였다. 中途에서 그는 ‘大賊에게 딸을 잃었는데 萬若 딸을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財産의 半을 내어주고 願한다면 사위로도 삼겠다'는 榜을 보았다. 瞬間 閑良은 그 女子를 救하여 보리라고 決心하였다.
行方도 모르는 盜賊을 잡겠다며 길을가다 偶然히 세 사람의 草笠童을 만났다. 그들은 對話 끝에 함께 딸을 救하기로 하고 結義兄弟를 맺었다.
이렇게 뭉쳐진 네 사람은 搜所聞을 하며 길을 떠났다.
이들이 어느곳을 지나치다 말고 다리가 부러진 까치 한 마리를 發見하고선 이를 불쌍히 여겨 헝겊으로 부러진 다리를 감싸 주었다.
그 까치는 독수리에게 집과 알을 잃어버리고 다리까지 부러진 것이었다. 까치는 목숨을 救해준 이들에게 고개를 몇차례 꾸벅이며 感謝를 表하고 나서, 마치 이들의 計劃을 알고나 있는듯이 자꾸만 따라 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렇게 山을 넘고 큰 바위가 있는 곳에 當到하자 까치가 바위 아래 놓인 하얀 조개껍질 하나를 치우며 또 다시 파 보라는 몸짓을 하였다.
이들은 까치가 이 狀況을 모두 알고 있는 靈物이라고 믿게되었으며 異常히 여겨 그 곳을 살펴보니 아주 작은 구멍으로 밝은 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하여 까치는 떠나고, 그들은 그 구멍을 조금씩 파기 始作했다.
얼마지 않아 구멍은 더욱 넓어졌으며 그 아랜 通行人은 보이지 않았으나 또 다른 別天地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이 地下世界를 探索하기로 하고 칡넝쿨을 가져다 튼튼하고 긴 동아줄을 엮었다.
먼져 第一 나이 젊은 草笠童을 내려 보내며 途中에 危險이 있을 땐 줄을 흔들면 바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는 조금 내려가다가 무서운 생각이 나서 줄을 흔들었다. 다음 사람은 半쯤 내려갔을 때에 줄을 흔들었고, 또 다음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내려가다 줄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第一 兄 되는 閑良이 내려가게 되었다. 그는 同生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나이 어려서 안 되겠다. 내가 내려가서 盜賊을 잡고 富者집 딸을 救해 반드시 돌아올 터이니 줄이 흔들릴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라.” 그는 다시 한 番 決意를 보이며 구멍이 끝나는 곳까지 내려갔다. 넓은 地下國엔 훌륭한 집도 많이 있었다. 그는 大賊의 집인 듯한 아주 큰 집에 이르러 우물가에서 선 버드나무 위에 몸을 감추고 살펴보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 한 예쁜 處女가 물동이를 이고 와 우물 물을 길어 머리에 이는 것이었다. 이 때 閑良은 버들닢을 한 줌 훑어 물동이 위로 뿌렸다.
處女는 바람 탓을하며 다시 물을 길어 머리에 이는 瞬間에도 閑良은 똑 같은 行動을 했다. 이런 行動이 세番째로 이어지자, 處女는 "참 고약한 바람이구나"라며 버드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이 世上 사람'을 發見하자 놀라면서 물었다.
“當身은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들어왔습니까?”
閑良은 그가 온 理由를 말하였다. 處女는 다시 크게 놀라며,
“當身이 찾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하오나 大賊은 무서운 將士이오니 함부로 對敵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저와 智慧를 모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計策을 說明했다.
計劃대로 閑良은 處女를 따라가 그 집의 컴컴한 도장房 한 구석에 숨게 되었다.
處女는 閑良의 힘을 키워주기 爲해 盜賊의 집에 있는 童蔘水를 며칠間 가져다 주었다. 그 結果 閑良의 몸엔 큰 힘이 솟구쳤다. 大鐵槌 둘을 兩 손에 쥐고도 自由로이 휘둘렀다.
어느날 處女는 大賊이 쓰는것이라며 大刀를 가져와 閑良에게 건네며,
“大賊은 100日은 盜賊질을 하고, 100日은 먹기만 하며, 100日은 잠만 자는데 오늘이 잠든지 열흘째 입니다. 그러니 이 칼로 就寢中인 그의 목을 베십시요."라는 것이다.
閑良은 處女를 따라 大賊의 寢室로 들어갔는데, 그는 무섭게 눈을 뜬 채 자고 있었다. 칼을 맞은 大賊의 목은 끊어졌지만 머리는 天障에 붙었다 다시 몸에 붙기를 몇 차례 反復하였으며, 이때 處女가 재를 짤린 목에 뿌림으로써 끝이 났다.
閑良과 處女는 大賊의 數많은 倉庫를 檢査하여 보았다. 金銀寶貨며 쌀과 牛馬까지 곳間마다 넘쳐났다. 어떤 칸엔 그에게 犧牲된 人骨도 수북하였고, 또 한 곳엔 半生半死의 男女도 가득 있었다.
閑良과 處女는 모든 사람들을 至極精誠으로 看護하여 健康을 되찾게 했다. 그리고 金銀寶貨와 쌀, 소, 말 等을 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恩惠를 잊지않겠다며 거듭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各者 길을 떠났다.
閑良과 處女도 몸에 지닐 수 있는 한의 寶貨를 챙겼으며, 3名의 아가씨들이 이들과 함께 가기를 請함으로 同行하였다. 一行이 구멍 밑에 이르러 閑良이 줄을 흔들었다.
처음엔 反應이 없다가 한참 後에야 信號가 왔다. 地上의 草笠童들은 兄이 죽었다고 判斷하고 돌아서는데 줄이 흔들린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地上으로 救助되었다.
結局 女子 넷은 男子 넷과 各各 짝을 이루게 되었고, 모두들 돌아가 富裕하고 幸福하게 살았다. 處女는 病을 핑계로 貞操를 지켜냈다 한다.
🍎 眞身說話
(부처 或은 菩薩, 神人 等이 사람의모습으로 現世에 出現하여 奇跡으로써 衆生을 濟度하는 內容의 說話)
★ 三國遺事에.
宗敎, 特히 佛敎 說話 類型의 하나이다.
一然이 纂한 三國遺事 中에서 眞身說話의 性格을 띠고 있는 資料들을 찾아보면, 卷 3의 興輪寺壁畵普賢 · 三所觀音衆生寺 · 彌勒仙花未尸郞眞慈寺 · 南白月二聖努肸夫得怛怛朴朴 · 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 · 五臺山五萬眞身 ·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 臺山月精寺五類聖衆, 卷4 의 圓光西學 · 關東楓岳鉢淵藪石記, 卷 5의 廣德嚴莊 · 憬興遇聖 · 眞身受供 · 月明師兜率歌 · 朗智乘雲普賢樹 · 緣會逃命文殊岾 等으로, 三國遺事 中에서도 卷 3∼5의 塔像 · 義解 · 神呪 · 感通 · 避隱에 集中的으로 收錄되어 있다.
이 中 眞身受供의 揷話인 孝成王이 眞身 釋迦를 몰라본 이야기는 이러하다. 孝成王이 처음 王位에 오르자 望德寺를 세우고 落成會를 열어 親히 가서 供養했다. 그 때 한 陋醜한 모습의 比丘僧이 뜰에서 몸을 움츠리고 王을 向하여 請하였다.
“小僧도 또한 齋에 參席하기를 바랍니다.” 王은 그에게 末席에 參禮할 것을 許諾했다.
“그대는 어디 사는가?”
“琵琶嵓에 있습니다.”
“그럼 只今 돌아가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國王이 親히 佛供하는 齋에 參席하였다고 말하지 말라.”
“陛下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眞身 釋迦를 供養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는 말을 마치자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올라 南쪽을 向하여 가 버렸다. 王은 놀랍고 부끄러워 東쪽 山으로 달려 올라가 그가 간 方向을 向하여 멀리서 절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서 찾게 했다.
그는 南山 參星谷이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때를 놓아두고 숨어 버렸다. 使者가 와서 復命하니, 王은 드디어 琵琶嵓 아래에 釋迦寺를 세우고, 또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에 佛無寺를 세워 지팡이와 바리때를 나누어 두었다.
眞身說話 속에서 眞身을 나타내 보이는 神들은 釋迦佛을 비롯하여 觀音菩薩·文秀菩薩·普賢菩薩·彌勒菩薩·地藏菩薩 等이며, 眞身을 目覩하게 되는 人物들은 大體로 修道僧 아니면 護法人으로 나타난다. 勿論 이같이 佛敎의 異蹟을 傳해 주는 眞身說話들은 布敎의 目的上 必要했던 것이겠으나, 이러한 說話는 佛敎뿐만 아니라 如他의 宗敎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 眞짜 富者
朝鮮時代 肅宗 임금이 어느 날 夜行을 나갔다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洞네를 지나게 되었다.
다 쓰러져 가는 집들을 보며 혀를 차고 있는데 어느 움幕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瓦家가 櫛比한 富者 洞네에서도 듣지 못했던 웃음소리에 肅宗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그 緣由를 알아보기 爲해
움幕에 들어가 主人에게 물 한 砂鉢을 請했다.
그 사이 門틈으로 房안을 살펴보니
鬚髥이 허연 할아버지는 새끼를 꼬고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夫人은 옷을 깁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들 얼굴이 어찌나 밝고 맑은지 도무지 근심 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肅宗은 主人에게 물었다.
"形便이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主人은 喜色을 띈 얼굴로
"빚 갚으며 貯蓄 하면서 富者로 삽니다. 그래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가봅니다."
宮闕로 돌아온 肅宗은 今方 쓰러질듯 한 움幕에서 살며 빚도 갚고 貯蓄도 한다는 말이 疑訝해 몰래 알아보았다. 하지만 調査 結果 復命은 그 집에는 正말 아무 것도 없었다.
肅宗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主人에게 예前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다.
主人은 웃으면서 對答했다.
"父母님 奉養하는 것이 곧 빚 갚는 것이고, 제가 늙어서 依支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貯蓄 아니요. 어떻게 이 보다 더 富者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肅宗은 고개를 끄덕이며 宮을 向했다.
🍎 鎭川의 秋千石 이야기
(生居鎭川 死去龍仁)
(忠淸北道 鎭川과 京畿道 龍仁에서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口傳되어 온다.
이는 ‘살아서는 鎭川이 좋고 죽어서는 龍仁이 좋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이 句節에는 삶과 죽음의 秩序를 오가며 생긴 氣막힌 事緣이 있다)
옛날 鎭川 땅에 秋千石이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暫時 잠들었다가 哀絶한 痛哭 소리에 잠을 깬다. 그 痛哭 소리의 主人은 바로 옆에 있던 自己의 아내였고, 곧이어 子息들도 따라 우는 것이다.
“왠 갑작스런 울음이요?” 아내에게 물었지만, 아내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우리를 두고 먼저 저 世上으로 가시다니…. 흑흑!” 그는 싸늘하게 누워 있는 바로 自身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제야 只今 自身은 魂이 된 狀態라는 걸 알아차리고서 멈칫거렸다.
곧이어 저승使者들을 따라 冥府殿으로 引導되어 간 그는 閻羅大王 앞에 엎드렸다.
“어디서 왔느냐?”
“예, 小人은 鎭川에서 온 秋千石이라 하는 者입니다.”
“뭐라?” 閻羅大王은 大驚失色하였다. 龍仁의 秋千石을 불러들여야 했는데, 저승使者들의 失手로 鎭川의 秋千石을 데려온 것이었다.
閻羅大王은 鎭川 땅의 秋千石을 卽刻 풀어주고, 龍仁 땅의 秋千石을 데려오라고 命을 다시 내렸다. 일이 꼬이려 했던지 두 사람은 이름과 生年月日이 똑같았던 것이다.
그는 家族과 再會하기 爲해 이승의 自己 집으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러나 이미 自身의 肉身은 땅에 묻히고 집에는 位牌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몸둥아리를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아내를 連이어 불렀지만 所用없는 짓이었다.
失意에 빠진 채 멍하니 있다가 문득 妙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龍仁 땅 秋千石의 몸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龍仁으로 냅다 뛰었다. 魂이 떠난 龍仁 땅 秋千石의 몸엔 多幸히 若干의 溫氣가 남아 있었다. 그는 얼른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슬프게 痛哭을 하던 龍仁 땅 秋千石의 家族들은 꿈틀대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기뻐 날뛰었다.
“여보, 다시 살아났구려!”
龍仁 땅 秋千石의 몸을 빌린 그는 女人에게 自初至終을 그대로 說明해주었다. 그러나 女人과 子女들은 죽음에서 깨어난 헛소리로만 여겼다.
어떠한 말도 먹혀들지 않자, 그는 하룻밤을 마지못해 보내고 다음날로 卽時 鎭川을 向해 내달렸다.
아내라는 女人과 子息들은 그런 그를 失性한 사람인양 생각하고는 붙잡고자 뒤따라 뛰었다. 鎭川 故鄕집에 到着한 그는 喪服을 입은 아내에게 외쳐댔다.
“여보, 나요 내가 돌아왔소.”
“뉘신지요, 여보라니요…?”
그 女는 돌아온 男便이라 외치는 男子의 말을 곧이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侮蔑感이 들었고 이내 洞네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뒤따라 온 龍仁 땅 秋千石의 아내는 男便이 暫時 미쳤다며 繼續 容恕를 求했다.
그는 繼續 自身의 處地를 必死的으로 說明하지만 洞네사람들에게 매질까지 當하고선 結局 官家로 끌려갔다. 고을 員님은 그의 事緣을 쭉 듣고서 다음과 같은 明快한 判決을 내렸다.
“鎭川 땅의 秋千石은 使者의 잘못으로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왔으나, 自己의 肉身이 이미 埋葬되었으므로 할 수 없이 龍仁 땅에 살던 秋千石이 버리고 간 肉身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노라. 鎭川 땅 秋千石은 祖上의 來歷과 그 家族의 生年月日은 勿論 田畓 等의 財産에 이르기까지 昭詳히 알고 있다. 이런 點으로 보아 只今의 저 秋千石은 鎭川에서 살던 秋千石의 魂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生居鎭川 死居龍仁'할 것을 判決하노니, 兩家의 家族도 그대로 實行토록 하라! ”
鎭川 땅 秋千石의 魂이 들어간 그 사내는 生前에 自己의 主張대로 鎭川 땅에서 家族과 함께 幸福하게 살았고, 以後 世上을 뜨자 그 肉身은 本來 龍仁 땅에 살았던 秋千石의 것이므로 그곳 家族이 찾아가게 되었다.
한便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그 以後부터 ‘生居鎭川 死去龍仁’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傳한다.
現在 忠北 鎭川 땅에 入口에 다다르면 ‘生居鎭川’이라는 標識石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