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필요한 ‘사랑의 감염’
국제성모병원의 관리부장과 시니어타운 마리스텔라의 원장을 겸임하던 2015년 5월, 저는 대한민국을
강타한 메르스(MERS) 감염병 위기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원내 감염을 막기 위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백 번씩 손 소독을 수행하며 전 교직원이 3개월
간 사투를 벌인 끝에 병원과 마리스텔라는 비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상황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건만, 그로부터 불과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2020년,
저는 교구 내 또 다른 병원인 인천성모병원에서 코로나19(COVID19)라는 훨씬 심각한 감염병 위기 상황을 겪어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감염병 중 하나인 1918년 스
페인 독감에 비길 만한,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재앙으로 역사책에 기록될지 모를 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에 수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생명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의료기관 종사자로서 커다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감염병이 더욱 공포스러운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인간 육체에 대한 공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공략하여 분열을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한 이후, 평시에는 사회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분노, 혐오, 이기주의,
편견, 차별 등이 떠올라 갖가지 악의 형태로 체화(體
和)하여 인간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적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인간 상호 간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된 사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신 하느님의 모습은 당신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폭력적이고 변덕스러운 하느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인간이 본받지 못했을 때, 우리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 속 주인은 오직 사랑과 연민의 마음에서 자기 종의 막대한 빚을 조건 없이 탕감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그 종도 당신처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사랑의 선순환에로의 초대입니다.
만약 주인의 커다란 사랑을 체험한 그 종이 자신에게 아주 작은 빚을
진 동료의 빚을 탕감해주었다면, 주인의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선순환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은 주인의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하고도 그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동료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기로 하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랑의 단절이 발생하고 죄악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이나 천재지변, 혹은 현재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등의 재난 상황에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분열하게 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드는 이기심은, 감염병과 유사하게 전파되어 인간 공동체를 좀먹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 시기에 오히려 더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갈등을 치유하고, 인간 사회를 일치하게 하는 이들 또한
존재해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우리 천주교 신자들만큼은 사랑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얼마 전 교황청에서 발
간한 책, 『친교와 희망(Comunione e speranza)』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활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희망, 믿음, 용기를 주었고, 연대와 형제애 안에서 우리를 굳건하게 하는 것
니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위험을 통해 우리는 다른 형태의 감염, 곧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감염’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사랑의 감염’이 이루어져,
많은 이들이 고통 중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고,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며,
함께 힘을 모아 이 코로나 위기의
시기를 잘 극복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고동현 노엘 신부
인천성모병원·행정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