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2021.11.11.)
박성혁 지음
샘앤파커스(2009)
간절한 한걸음이 만든 위대한 기적
이 세상에 어떤 조직이, 이토록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 적 있는가?
이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이토록 가슴 벅찬 꿈을 이뤄낸 적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일,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변변한 특산물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전라도 깡촌이 발칵 뒤집혔다! 대한민국 사람 열에 아홉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외딴 시골마을에서, 축제하나로 관람객 1천500만명에 2천억원 경제효과를 창출해낸 기적을 만든 것이다. 그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 전라남도 함평군.
그들에게 나비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 남들은 그저 기적이라는 쉬운 말로 표현하지만, 그들에게는 습관처럼 몸에 베어버린 체념과 부정을 떨쳐낸 긴 투쟁의 시간이자, 어차피 실패할 거리고 포기해버렸던 기회를 다시 움켜쥔 와신상담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며 하나의 비전을 향해 달려 나간 사람들, 그들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벌어진 이 평범하지 않는 사건은, 성취 바이러스에 중독된 채 지독하게 인내하고 절절하게 소망한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거창한 경영이론이나 방법론도 없이 그저 기본에서 출발하자, 하면 된다는 뚝심만으로 그들은 암울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지옥의 시간을 뛰쳐나왔다.
프롤로그_지금 , 당신의 나비는 꿈꾸고 있습니까>
나비는 함평 나비공장에서 나옵니다.
한 초등학교 3학년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반 전체가 몇 개의 조로 나뉘어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토론하고, 거기에 대한 의견을 조의 대표가 나와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그날의 주제는 나비는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랄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나올 수 있는 답들이란 뻔해 보였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나비가 어디에서 나서 어떠게 자라는지에 대해 모둠마다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드디어 토론을 끝내고 모둠 대표로 발표를 하기 위해 한 어린이가 칠판 앞으로 나왔다. 아이는 자신있게 말문을 열었다.
나비들은 함평의 나비공장에서 마구마구 태어나 서울로 올라옵니다.
하하하... 교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역시 너무나도 황당한 아이의 발표에 폭소가 터져 나왔지만,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함평의 나비공장이요? 그렇다면 거기에서 어떻게 나비가 나오나요?
엄마 아빠랑 나비축제 때 봤는데, 거기 전시관에서 나비들이 뭉게뭉게 태어나서 떼를 지어 나오고 있었어요. 온통 나비 천지예요. 함평에 나비가 많은 걸 보면 아마 공장이 있는 게 분명해요. 그 많은 나비들이 서울에 오려면 차를 못 타니까 날아오다가 중간에 많이 없어져요. 그래서 서울에는 나비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나비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고사하고 나비를 만나는 일조차 드문 도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생각이긴 하지만, 이는 함평의 나비축제가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나비축제를 시작한 지 어언 10년, 이제 함평=나비를 넘어서서 어느덧 나비=함평이 되어버린 것이다.
에버랜드를 이긴 촌동네 축제
봄을 알리는 촉촉한 단비가 추위를 이겨낸 메마른 대지 위로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나비축제 행사장으로 이어지는 진입 도로에는 이른 새벽부터 밀려드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었다.
엑스포 개장시간을 아직 2시간 이상 앞둔 매표소 앞은 조금이라도 일찍 표를 끊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 옆에 아예 돗자리를 펼쳐놓은 가족도 눈에 띄었다.
2008년5월5일. 어린이날이기도 한 이 날은 나비축제가 이룩한 기적의 실체를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목격할 수 있는 날이었다. 1년을 통틀어 나들이객이 가장 많았던 이 날, 용인 에버랜드(55,000명)을 누르고 나비축제(60,709명)가 1일 최다방문객을 기록한 관광지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났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함평이 국내 최대 규모의 지역축제에 만족하지 않고 국내 최대의 테마파크마저 위협한다며 활활 타오르는 나비축제의 성공 열기를 간결하게 짚어냈다.
저 많은 걸 누가 다 이용할까 싶게 넉넉히 준비해둔 대여용 유모차는 이런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찌감치 모두 동이 났다. 10만 평 규모의 습지공원은 즐거운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한껏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메워졌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고 떠드는 소리에 축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살아 있는 나비 33만 마리가 날아다니며, 나비 반, 사람 반의 상상력을 현실로 연출해낸 나비 생태관에서는 유치원생 꼬마들이 환상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해 손뼉을 치며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찾아온 외신 기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연신 바쁜 손놀림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친환경 농업관 역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곳이었다. 바나나, 귤, 사과, 앵두, 배, 키위, 복숭아, 매실...,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일나무가 빼곡이 채워져 있고, 나무들에는 실한 열매가 먹음직스럽게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조와 같은 작물들의 실제 재배 장면까지 한 곳에 모아 두었으니, 실로 오랜만에 날것 그대로의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곳곳에 서서 때론 사진을 찍고, 때론 즐거운 탄성을 내지르며 공간과 계절의 경계를 넘어 눈앞에 그득히 펼쳐진 식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쁘고 풍성하게 누리고 있었다.
40m 길이의 호박터널에는 숟가락 모양, 바나나 모양, 구슬 모양 등 30여가지의 다양하고 진기한 모양의 호박들이 그득히 대롱대롱 매달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넉넉하게 사로잡았다. 살아 있는 누에가 알, 유충, 번데기를 거쳐 나방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을 볼수 있게 전시해둔 누에관에서는 생명 탄생의 경이로운 순간을 휴대전화에 동영상으로 담아두려는 관람객들이 빈틈없이 주욱 늘어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 벌어졌다.
인공연못에는 쉬리나 꺽지 같은 토종 민물고기들이 펄떡거렸고 숲속의 곤충마을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사계절별로 정성들여 꾸며놓은 곤충 표본들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조명을 받아 다양한 빛깔을 뿜어내며 생동감 넘치는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벌어진 민속놀이라든가 미꾸라지 잡기, 가축몰이와 같은 소소한 농촌 체험행사에도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기발한 상상력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실로 놀라운 창조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색적이고 신선한 체험을 즐기고 있었다. 나비축제의 현장은 이토록 생생했고, 사람들의 추억은 따스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나비축제가 벌어지는 이곳은, 바로 전라남도 함평군이다.
믿어지지 않는 변화
10년간 총 53억원을 들인 나비축제는 2,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낳았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대박 수익률을 창출해낸 것이다. 첫 해 나비축제 이후 함평에서 새롭게 시작된 사업이 몇 개 인지를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함평은 새로운 꿈을 품을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 더해, 나비축제와 함께한 10년 동안 함평 곳곳에 들어선 새로운 건물과 시설들, 시원스럽게 확장된 도로들이 너무 많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7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함평사람 정대수 씨의 이야기는, 나비축제가 만들어낸 변화의 폭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정대수 씨는 입국소속을 마친 후,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광주를 거쳐 함평에 도착했다. 7년 만에 밟은 고향땅이었다. 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가족들의 걱정에, 아무리 오랜만이라도 그렇지, 20년 넘게 살았던 고향인데 내가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마중은 무슨 마중, 하며 만류한 그였다. 처음 가보는 곳도 아니고,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닌가? 게다가 함평은 그다지 크지도 않은 작은 동네일 뿐인데 마중이 웬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당연한 자신감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대수 씨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든지 고향마을인 함평의 거리와 풍경들을 세세하게 그려낼 수 있노라고 호언장담한 그였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었던 고향마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70년도 아니고 고작 7년 만인데도 말이다. 정대수 씨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사거리 한가운데서, 그는 몹시 당황했다.
결국 그는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말했다. 전화 거는 내내, 휘둥그레진 눈으로 생소한 거리의 풍경들을 두리번거리면서 말이다.
과거의 함평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경험을 하곤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함평이 이루어낸 비약적인 성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놀란 눈을 손으로 비벼 크게 뜨고 다시 바라봐야 할 만큼,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기적 같고 꿈만 같은 일들이 하나둘씩 차근차근 실현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10년 전까지만 해도 함평은 그저 보잘것없는 촌동네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 10명 중 예닐곱은 함평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지난 10년에 걸쳐 대한민국 함평군에서 실제로 벌어진 생생한 리얼 스토리이다. 믿어지지 않엤지만, 이 이야기들은 동화 속 이야기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다. 필자를 비롯한 함평 사람들 모두가 10년 동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똑똑히 목격할 실제 이야기다.
마치 바이러스가 짙게 퍼져나가고, 세균이 교묘하게 침투해가는 것처럼, 나비축제를 통해 이루어낸 함평의 기적은 상당한 파괴력이 있고, 그만큼 치명적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시작될 나비축제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도 그 놀아운 성취의 바이러스를 개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시길 바란다.
PART 1 젊은 군수의 고민
아무것도 없는 동네
없어도 너무 없는 곳
그냥 가만히 있기나 하쇼!
애송이 군수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근본적이다
어차피를 버려라
단 하나의 키워드
절망이 절실함으로 바뀌다
시방 악수가 문제가 아니랑께
쌀은 쌀대로, 소는 소대로?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적당히 잘이 아니라 최고 중의 최고
온몸을 전율케 할 단 하나의 키워드
체념 앞에 치솟는 오기
PART 2 나비, 알을 깨고 나오다
긴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
온통 반대, 비난, 거부, 악담뿐
제가 이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고작 3개월 동안 10만 마리를?
아이디어가 뭐 별건가?
절망을 물려줄 순 없다
감히 상상히 현실로 바뀌는 기적
안 되면 되게 하고
가장 자신 있는 것?
새 판을 짜는 것이 더 쉽다
숨 막히는 생포작전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
조금만 더 살아 있어다오
못 말리는 현장의 초짜들
불행의 징조? 꿈의 응원!
간절함으로 달아오르다
나도 뭐 도와줄 게 없나 해서
드디어 축제다!
FESTIVAL REPORT 1 9년 동안 아이디어 노트만 17권
FESTIVAL REPORT 2 없는 것도 만든다
PART 3 꿈의 마을이 펼쳐지다
나비, 날아오르다
절대 안 된다 vs. 틀림없이 된다
긴장되는 첫 번째 축제
주유소에 기름이 동나다
무너지는 무대를 떠받친 아찔한 순간
감격스러운 피날레
좀 더 멀리로 눈을 돌리자
절반의 성공
날카로운 지적들
1년 내내 축제를?
화를 자초한 과욕
나 면장의 고민
예정된 실패
청와대에서 나비를 날린다?
하늘이 돕지 않더라도
진정한 시험대
나흘간의 황홀한 열병
FESTIVAL REPORT 3 지역경제가 되살아나 무럭무럭 자란다
FESTIVAL REPORT 4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뜻밖의 답변
FESTIVAL REPORT 5 가장 사소한 것에 주목하라
FESTIVAL REPORT 6 모든 이가 아이디어 리더이자, 직접 뛰는 프로들
FESTIVAL REPORT 7 유모차 대여소 직원의 기지
PART 4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 나비
꿈의 마을이 펼쳐지다
단 한 사람도 들러리는 없다
함평의 백년지계
골프고의 탄생
아빠의 소원은 마을 고등학교 보내기?
교육문제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방법으로
연필 27자루의 와신상담
실패에 종지부를
나비, 천지에 날다
꿈보다 더 소중한 것
꿈의 축제, 세계나비곤충엑스포를 향하여
130만 관람객과, 2천억 경제효과
낙제성적표를 다시 꺼내보면
고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FESTIVAL REPORT 8 설날, 추석보다 반가운 함평의 효자명절, 나비축제
FESTIVAL REPORT 9 특기를 살려 국향대전을 만든 신참 직원
FESTIVAL REPORT10 함평=나비에서 나비=함평으로
FESTIVAL REPORT11 세계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곤충 전시행사
에필로그_나비축제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부록_나비축제 사건일지 1999~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