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의 50프로를 통일사업에 기부하겠습니다”
중국 심양 경찰출신 중국동포가 통일전도사로 나선 배경을 들어본다
[인터뷰] 신바람 나는 통일열차맛집 오픈한 이규호씨
지난 5월 3일 서울 신림동에 신바람나는 통일열차맛집(식당)을 오픈하고 소득의 50프로를 통일사업에 기부하겠다고 SNS통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중국동포가 있어 관심을 모았다.
바로 중국 심양에서 온 이규호씨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씨는 95년도부터 2001년까지 서탑파출소 등에서 근무한 중국공안 출신이라는 점이고, 그가 왜 남북통일에 각별히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 하는 점에도 궁금증이 생긴다.
문자메세지로 초청장을 받은 기자는 5월 3일 개업식에 가고, 또 5월 5일 이규호씨와 2시간 넘도록 인터뷰를 하였다.
이규호씨는 1971년생으로 중국 심양 동릉구 훤하참향 금가만조선족촌에서 태어났다. 약 400호 규모인 금가만조선족촌은 1930년경 일제시대 때 평안도 경상도 등에서 이주해온 조선인 집단부락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씨의 아버지는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 1934년 세 살 때 부모 등에 엎혀 만주 신빈현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1960년 경에 금가만조선족촌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낸 이씨는 직업고중 2년 때 중퇴하고 농사일, 공장 노가다 일을 하며 방황기를 보냈다. 그리고 1992년 21세 나이에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하여 93년 심양시 경찰학교(2년제)에 들어갔다. 95년 8월경부터 99년까지 심양서탑파출소에서 근무를 하고, 2000년~2001년 심양시정부 밀수단속반에서 근무하였다. 2004년부터 2007년 초 까지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을 오가며 미국생활을 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신앙인이 되었고, 2007년 2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2009년까지 서탑지역에서 결손가정의 조선족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다가, 2009년 7월 동포방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
이규호씨가 한국에 처음 온 때는 2000년 신혼여행 때이다. 이때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는 프랜카드에 적힌 글을 접하고 또 미국생활 중 한인타운에서 한인신문, 인터넷신문 등을 보면서 “동북아시대가 온다. 대한민국이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또 “한민족의 뿌리이다. 대한민국이 우리의 뿌리이다” 생각하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 감격적인 것은 2006년 독일월드컵때 한국대 스위스 경기가 열리던 날 뉴욕 맨해턴 식당가에 모인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이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모국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고, 부모님이 생각나고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뀌면서 그의 생활도 바뀌어가기 시작한 셈이다.
1년짜리 미국관광비자가 만료될 즈음, 이씨는 불법체류자로 남느냐, 다시 중국으로 가느냐 하는 기로에 있었다. 그는 중국 공안출신으로서 불법체류자로 남으면 안된다 생각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국에서 번 돈을 거의다 투자하여 부모와 떨어져 사는 조선족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바로 시켜주자는 열정으로 시작하였지만,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았고, 경제적 난관에 부딛혀 타인에게 넘기고, 그는 2009년 사랑하는 모국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비자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 탓이 컸다. 이씨는 정말 간절하게 심양영사관에 편지를 보냈다. 그결과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한 누이의 초청으로 방문취업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희망의 터전처럼 생각했단 모국, 처음엔 금속회사에서, 두 번째는 대구 핸드폰부품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두 번의 실망을 겪는다. 회사 사장들이 필요할 땐 이용해먹고 근로계약을 해주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무단해고 통지를 해온 것이다. 경찰출신인 그는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는 등 법적 싸움을 벌여 피해보상까지 받아내었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차별 받는다고 말하기 전에 알고 대처하면 함부로 못하고, 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저는 그런 것을 두 번의 부당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족 경찰 출신인 이씨의 양심선언
2012년 2월초 뉴스를 통해 국회의원이 옥인교회 앞에서 탈북자북송반대 단식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중국의 탈북자북송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이 뉴스는 심양에서 경찰관으로 활동할 때 탈북자를 색출하고 고문하고 강제북송까지 시킨 바 있는 이규호씨에게 고통스럽게 들렸다. 그때는 공안으로서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생각하였지만, 이것이 탈북자들에겐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일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2월 1일부터 7월 말까지 농성장에서 청소 등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같은해 8월 1일에는 동족의 입장에서 반성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양심선언까지 한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이규호씨의 이런 행동은 사회적 관심도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오해와 견제를 받고, 심지어 중국에 가면 큰일 난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이에 이씨는 “저는 중국이 싫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면서 “당시 조선족 공안이기 때문에 탈북자와 같은 민족으로 내가 하기 싫다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 이 있는데, 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한 것이었고, 같은 동족으로서 미안하고 죄를 지은 것같아서 양심선언을 한 것뿐이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씨는 2013년 4월, 5월 한반도선진화재단(박세일 이사장) 선진통일학교에서 제3기로 참여하면서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국인 지인의 도움으로 통일열차맛집을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일열차맛집은 이규호씨의 통일열망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통일열차맛집은 신림동 고시촌 삼성동시장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주 고객은 한국인 젊은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식당을 통해 통일 전도사로서 역할도 하겠다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다.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16호 2014년 5월 14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16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