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윤의 미술치유] 아름다움의 본능 - 미학적 인간
미(美)는 일상 어디에도 존재한다
노인들의 치매 예방 및 마음 건강을 위해 다양한 주제의 미술 그리기가 권장되고 있다. /셔터 스톡
임성윤 평택대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청소년을 비롯 마음의 상처를 지닌 이들을 미술을 통해 치료하고 있다. 미국에서 미술교육, 예술경영, 심리철학 등을 공부했다. 앞으로 2주에 한번씩 <임성윤의 미술치유>란 제하의 칼럼으로 미술과 인간, 심리 세계를 함께 여행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아름다움은 삶 가운데 어디에나 있다.
잠을 깨우는 아침 햇살,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따스한 커피의 풍미, 오늘 입을 옷의 색상과 모양새를 가늠해 보는 순간, 심지어 치열한 생의 업에서도 미(beauty)는 존재한다.
나무랄데 없는 일의 효율성과 합리성에서도 사람은 미적 쾌감을 경험한다. 이것은 실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이었다.
‘예술’ 이라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유명 예술가와 작품들을 떠올린다. 어떤 것은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고, 평화롭게 하며 또 다른 것들은 (잘은 모르겠지만) 남들이 그렇다하니 뭔가 보고 듣고 하다보니 내면을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니, 어떤 것은 현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마음을 지루하고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배설물로 채워진 통조림은 어떤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까?
18세기 유럽에서 순수예술 (Beaux-Arts) 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독점한 훨씬 이전부터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에서 울주군의 암각화까지 예술은 이미 존재해왔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KBS 천상의 컬렉션
우리는 베토벤과 피카소를 몰랐을 때도 크레용과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박자와 리듬에 몸을 맡겼었다. 이미 삶의 일부분이였던 것에 ‘예술’이라는 명칭과 지위가 부여되면서 오히려 ‘그것’이 가진 ‘무언가’를 잊은 건 아닌지.
예술이 ‘재능’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전제를 믿기 시작하면, 현대인에게 익숙한 감상용 엘리트 예술의 지평 너머 다른 세상이 보이게 된다.
예술가의 똥/ 피에로 만초니 (1961)
인간에겐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 아름다움은 소수의 운 좋은 인간과 평론가의 미감으로 재단될 수 없는 또 다른 예술의 영역이다. 그 누가 인간 하나하나의 고귀한 본능을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미학적 인간 (Homo Aestheticus) – 이것이 미술치료에서 보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본능을 세상에 내보이며 인간은 내면의 평화를 찾게 된다.
글 | 임성윤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