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10 - 향당(鄕黨) - ④ |
| 1 |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궁궐의 문(門)에 들어가실 적에 몸을 굽히시어 문이 작아 들어가기에 넉넉하지 못한 것처럼 하셨다.
鞠躬 曲身也 公門 高大而若不容 敬之至也 鞠躬이란 몸을 구부린다는 것이다. 공문은 원래 높고 크지만 마치 들어갈 수 없는 듯이 하는 것은 공경하기가 지극한 것이다.
南軒張氏曰 入公門 則改容而不敢少肆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공문에 들어간다면 용모를 고쳐서 조금이라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高大則宜無所不容矣 今以眇然之身入之 如不容焉 則心小而敬謹 可知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높고 크다면 용납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지금 자그만한 몸으로 그곳에 들어가면서 마치 용납되지 못하는 것처럼 한다면, 조심하면서도 공경하며 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2 | 立不中門 行不履閾 서 있을 때에는 문 가운데에 서지 않으시고, 다니실 때에 문턱을 밟지 않으셨다.
中門 中於門也 謂當棖闑之間 君出入處也 閾 門限也 禮 士大夫出入公門 由闑右 不踐閾 謝氏曰 立中門則當尊 行履閾則不恪 中門이란 문의 가운데를 말하는데, 문설주와 문지방 사이를 말하는 것이니, 임금이 출입하는 곳이다. 閾은 문지방이다. 예에 따르면, 사대부가 공문에 출입할 적에는 문지방 오른쪽을 통하되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씨가 말하길, “문의 가운데에 서면 높은 것에 해당하고, 문지방을 밟으면 삼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棖如今袞頭相似 闑當中礙門者 今城門有之 古人常掩左扉 人君多出在門外見人 當棖闑之間 爲君位 주자가 말하길, “문설주은 지금의 袞頭와 비슷하다. 문지방은 가운데서 문을 막는 것에 해당하는데, 지금 성문에도 그것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항상 좌측 문짝을 가렸는데, 임금이 대부분 나와서 문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적에 마땅히 문서주와 문지방 사이에서 하였으니, 임금의 자리가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中門之說 曰 䟽云 門中有闑 兩旁有棖 中門謂棖闑之中 然則門之左右扉 各有中 所謂闔門左扉立于其中 是也 혹자가 中門의 설에 관하여 물었다. 말하길, “䟽에 이르길, 대문의 가운데에 문지방이 있고, 양쪽에 문설주가 있으며, 중문이란 문설주와 문지방의 가운데를 말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문의 좌우 문짝에도 각자 가운데가 있으니, 이른바 두 문짝으로 된 대문의 좌측 문짝 그 가운데에 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立不中門 避所尊也 行不履閾 行以度也 非獨入公門爲然 特於此記之耳 남헌장씨가 말하길, “설 때에 中門에 서지 않는 것은 높이는 곳을 피한다는 것이고, 다닐 때에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은 법도로써 다닌다는 것이다. 단지 公門에 들어갈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특별히 여기에서 그것을 기록하였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中間有闑 兩旁有棖 棖是大門兩旁之木 如今壁尺相似 闑是中間兩扉相合之處 又有一木常設而不動 東西兩扉各有中 君出入 則皆由左 出則以東扉爲左 入則以西扉爲左 士大夫出入君門 則皆由右 出以闑西爲右 入以闑東爲右 然雖由右 亦不敢正當棖闑之中 但挨闑旁而行 蓋避君出入處也 行旣不敢當中 則立亦不可當中 故立不中門 쌍봉요씨가 말하길, “중간에 闑이 있고, 양쪽에는 문설주가 있다. 문설주는 대문 양쪽의 나무로서, 지금의 壁尺과 비슷한 것이다. 문지방 가운데의 말뚝은 중간에 양쪽 문짝이 서로 합쳐지는 곳이다. 또한 나무 하나가 항상 설치되어 있어 움직이지 않는다. 동서 양쪽 문짝에는 각자 가운데가 있으니, 임금이 출입할 때에는 모두 왼쪽을 경유한다. 나갈 적에는 동쪽 문짝이 왼쪽이 되고, 들어올 때에는 서쪽 문짝이 왼쪽이 된다. 士와 大夫가 임금의 대문을 출입할 적에는 모두 오른쪽을 이용한다. 나갈 적에는 얼의 서쪽이 오른쪽이 되고, 들어갈 적에는 얼의 동쪽이 오른쪽이 된다. 그러나 비록 오른쪽을 이용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감히 바로 문설주와 얼의 가운데로 다니지는 못하고, 그저 얼 쪽으로 붙어서 다닐 뿐이다. 이는 대체로 임금이 출입하는 부분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다닐 적에도 이미 감히 한가운데로 다니지 못하였으니, 서는 것도 역시 한가운데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설 적에 중문에 서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按鄕黨所記夫子之事 有常禮者 有夫子所行不與他人同者 如入太廟每事問 此夫子不與他人同者 如立不中門行不履閾 此常禮也 오씨가 말하길, “살펴보건대, 향당에서 공자님의 일을 기록한 것 중에는 일상적인 예절인 것이 있고, 공자께서 행하신 바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한 것도 있는데, 예컨대 태묘에 들어가서 매사를 물었다는 것, 이것은 공자께서 타인과 더불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예컨대 설 적에 중문에 서지 않고 다니면서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일상적인 예절이다.”라고 하였다. |
| 3 |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임금의 빈자리를 지나갈 적에 낯빛을 바꾸시고 발걸음은 빨리 하였으며, 그 말은 마치 부족한 것처럼 하였다.
位 君之虛位 謂門屛之間 人君宁立之處 所謂宁也 君雖不在 過之必敬 不敢以虛位而慢之也 言似不足 不敢肆也 位란 비어 있는 임금의 좌석이다. 문과 병풍의 사이를 말하는데, 임금이 신하들의 조회를 받으며 서 있는 곳으로서, 이른바 宁라는 것이다. 임금이 비록 계시지 않더라도 그곳을 지나면 반드시 공경해야 하고, 빈자라라는 이유로 감히 그것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이 마치 부족한 것 같다는 것은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胡氏曰 言過 則虛 可知矣 호씨가 말하길, “지나간다고 말하였으니,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禮記 曲禮下 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而見天子 曰覲 天子當寧而立 諸公東面 諸侯西面 曰朝(依狀如屛風 以絳爲質 高八尺 東西當戶牖之間 綉爲斧文也 亦曰斧依 爾雅曰 門屛之間 謂之寧) 예기 곡례하에, 천자가 依를 당하여 서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覲이라 말하고, 천자가 寧에 당하여 서면, 제공들은 동면하고, 제후들은 서면하는 것을 朝라고 말한다고 하였다(依는 형상이 병풍과 같고, 진홍색을 바탕으로 하며, 높이는 8척이고, 동서로 문과 창의 사이에 가로질러 있으며, 도끼 무늬를 수 놓는다. 또한 斧依라고 말하기도 한다. 爾雅에서는 문과 병풍의 사이를 일컬어 寧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問過位註云 君之虛位 謂門屛之間 朱子曰 如今人廳門之內屛門之外似 周禮所謂外朝也 누군가 묻기를, “過位에 대하여 집주에서 말하길, 임금의 빈 자리라고 하였는데, 문과 병풍의 사이를 말하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지금 사람들의 廳門의 안이나 屛門의 밖과 비슷하니, 주례에서 말하는 소위 外朝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過位色勃如也 位謂門屛之間 人君寧立之處 曰 古今之制不同 今之朝儀用秦制也 古者朝會君臣皆立 故史記謂秦王一旦捐賓客而不立朝 君立於門屛之間 屛者乃門間蕭牆也 今殿門亦設之 三公九卿以下設位於廷中 故謂之三槐九棘者 廷中有樹處 公卿位當其下也 누군가 묻기를, “임금의 빈자리를 지나면 안색을 바꾼다고 하였는데, 그 자리란 門屛之間으로서 임금이 편안히 서는 곳을 말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옛날과 지금의 제도는 같지 않으니, 지금 조회하는 의례는 진나라 제도를 쓰고 있다. 옛날에는 조회할 적에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서서 하였다. 그래서 사기에 ‘진나라 왕이 하루아침에 빈객을 물리치고 조회를 서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임금은 대문과 병풍 사이에 서는데, 병풍이라는 것은 곧 대문 사이의 문 뒤에 세워서 내외를 가리는 담이다. 지금 궁전의 문에도 역시 설치하고 있다. 三公九卿 이하는 廷 안에 자리를 설치하는데, 그래서 이를 일컬어 三槐九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廷 안에 나무를 심은 곳이 있는데, 공경의 자리가 바로 그 아래에 임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天子至尊 何以立而不坐 曰 古無坐見臣下之禮 至秦尊君卑臣 始有君坐臣立之制 쌍봉요씨가 말하길, “천자는 지극히 존귀한데, 어찌하여 앉지 않고 선다는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옛날에는 앉아서 신하를 접견하는 예가 없었다. 진나라에 이르러,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낮추었으니, 비로소 임금이 앉고 신하가 서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門屛之間 謂治朝也 但天子外屛 其屛在路門外 諸侯內屛 其屛在路門內 則寧立之處 天子當在門外屛內 諸侯當在屛外門內 此爲不同爾 門屛制 何如 曰 樹小牆於當門 以蔽內外也 門屛之間을 일컬어 治朝라고 한다. 다만 천자는 병풍 밖에 있으니, 그 병풍은 路門 밖에 있고, 제후는 병풍 안에 있으니, 그 병풍은 路門 안에 있다. 그러한즉 편안히 서는 곳도, 천자는 마땅히 대문 밖 병풍 안에 있어야 하고, 제후는 마땅히 병풍 밖 대문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같지 않을 따름이다. 문병의 제도는 어떠한가? 말하길, 當門에 작은 담을 세워서 내외를 가리는 것이라고 한다. |
| 4 |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 似不息者 옷자락을 잡고 당에 오르실 적에, 몸을 굽히고 숨을 죽여서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하였다.
攝 摳也 齊 衣下縫也 禮 將升堂 兩手摳衣 使去地尺 恐躡之而傾跌失容也 屛 藏也 息 鼻息出入者也 近至尊 氣容肅也 攝은 추어올리는 것이다. 齊는 옷 아래의 꿰맨 곳이다. 예에 의하면, 장차 당에 오르려 할 적에는 양 손으로 옷을 들어 올려서 땅으로부터 한 자 정도 떨어지게 하는데, 옷자락을 밟아서 기울고 넘어져서 용모를 잃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屛은 감춘다는 것이다. 息은 코로 숨이 들락거리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높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기색과 용모가 엄숙해지는 것이다.
朱子曰 攝齊者是畏謹 恐上階時 踏著裳 有顚仆之患 주자가 말하길, “옷 아래를 들어올리는 것은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이니, 계단에 오를 때 치마를 밟아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근심이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升堂攝齊 則手無所執歟 曰 古者君臣所執 五玉三帛二生一死 皆以爲贄而已 笏則搢之 揷於腰間 用以記事而已 不執以爲儀也 宇文周欲復古 乃不修贄而執笏 於是攝齊鞠躬之禮廢 升堂而蹴齊者多矣 혹자가 묻기를, “당에 오르면서 자를 집어들면 손에는 붙잡을 것이 없을 것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옛날에 임금과 신하는 다섯 가지 옥과 세 가지 비단과 두 마리 산 가축과 죽은 가축 한 마리를 모두 예물로 삼았을 따름이다. 笏은 허리 사이에 꽂아 끼워넣는데, 이로써 일을 기록하는 것일 따름이어서, 붙잡지 않는 것을 의례로 삼았다. 우문씨의 주나라에서 옛날 것을 복원하고자 하였는데, 예물을 닦지 않고 홀을 붙잡도록 하였으니, 이에 하의 아랫단을 들추어 몸을 굽히는 예절은 폐지되었고, 堂에 오르다 하의 아랫단을 밟는 사람이 많아졌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初則身如不容 次則言似不足 又次則氣似不息 君愈近則敬愈加也 至於舒氣解顔 若少放矣 而踧踖餘敬 久猶未忘 則聖人所以存心也 可見矣 호씨가 말하길, “처음에는 몸이 문에 용납되지 않는 듯이 하였고, 다음에는 말이 부족한 듯이 하였으며, 또 다음에는 숨을 쉬지 않는 듯이 하였으니, 임금께 가까워질수록 공경함이 더욱 더해졌던 것이다. 기운을 편히 펴고 안색을 푸는 지경에 이르러 조금 마음을 놓았지만, 여전히 공경함한 것은 아직 남아 있는 공경이다. 오래되어도 그래도 아직 잊지 않는 것은 곧 성인께서 마음을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鼻息出入 人之所不能無也 但心敬則氣肅 其息微細自不覺其出入 一似不息者也 코는 숨이 출입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마음으로 공경하면 기운이 엄숙해져서, 그 숨이 미세하게 되어 그것의 출입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되니, 숨을 쉬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逍氏曰 古者諸侯之堂七尺 尺一級 使裳之齊去地尺 則升階不躡之也 소씨가 말하길, “옛날에 제후의 堂은 계단높이가 7척이었는데, 1척이 한 계단이었다. 하의의 아랫단이 땅에서 1척 떨어지게 하면 곧 계단을 오를 적에 그것을 밟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兩手摳衣去齊尺 出記曲禮上 氣容肅 出玉藻篇 註云似不息 양손으로 옷을 추켜들어 아랫단을 1척 땅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은 예기 곡례상에 나오고, 기운과 용모를 엄숙하게 한다는 것은 예기 옥조 편에 나오는데, 그 주석에 이르길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
| 5 | 出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沒階 趨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나와서 한 계단 내려오면 얼굴빛이 펴져서 온화하게 기뻐하시며, 계단을 다 내려와서는 빨리 가는 것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편 것과 같으시며, 제 자리에 돌아와서는 공손해 하였다.
陸氏曰 趨下 本無進字 俗本有之 誤也 ○ 等 階之級也 逞 放也 漸遠所尊 舒氣解顔 怡怡 和悅也 沒階 下盡階也 趨 走就位也 復位踧踖 敬之餘也 ○ 此一節 記孔子在朝之容 육씨가 말하길, 趨자 아래에 본래 進자가 없었는데, 세속본에는 그것이 있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等이란 계단의 등급이다. 逞은 마음대로 편다는 것이다. 점차 높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니 기운과 안색이 편안하게 풀어진다는 것이다. 怡怡는 온화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沒階는 계단을 다 내려온 것이다. 趨는 뛰어서 자기 자리에 가는 것이다. 자리에 복귀한 다음 공손히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의 나머지다. 이 한 절은 공자께서 조정에 계실 때의 용모를 기록한 것이다.
朱子曰 此是到末梢 又加整頓 衆人末梢便撤了 聖人則始乎敬終乎敬 問何以知進字爲衍文 曰 降而盡階 則爲趨而退 不得復有進字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말초에 이르러서도 다시 정돈을 더한다는 것이다. 衆人들은 말초라면 곧 끝내고 마는데, 성인이라면 敬에 시작하여 敬에 끝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무엇으로 進자가 연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堂에서 내려올 적에 계단을 다 내려오면, 곧 빨리 물러나야 하므로, 더 이상 進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出降一等 色始舒也 沒階翼如 復其位 踧踖 始終以敬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나와서 한 계단을 내려가면 안색이 펴지고, 계단을 다 내려오면 새가 날개를 편 듯하고, 제자리에 돌아오면 공손하다는 것은 敬으로써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