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아서 미리--
중봉 바래 아래에 마애불과 석굴이 함께 있다.
토속신앙은 동굴과 관계가 매우 깊다. 물론 동굴을 신앙지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세계적이다. 우선 단군신화를 보면 호랑이와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고행을 한다. 고행을 잘 이겨 낸 곰은 인간으로 환생한다. 새로운 생명으로 보다는 새로운 문화체계에 살게되었다는 뜻이다. 동굴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근원이 된다. 문화가 바뀌는 것을 동굴로 비유할 수 있다. 문화가 바뀌는 가장 큰 원인은 외부의 침공으로 지도체제가 바뀌는 경우이다.
한국의 고대 풍습을 기록한 중국의 사서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시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중 대회가 열렸는데 이를 동맹이라고 한다. 나라의 동쪽에 큰 동굴이 있어서 이를 수혈(隨穴)이라고 한다. 시월 국중대회를 할 때는 수신(隨神)을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 높은 곳(또는 물가)에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 나무로 만든 수신의 신상을 신좌로 모신다.”
“예에서는 호랑이를 신으로 모신다.”
(예는 함경도 지역의 부족국가임으로, 평안도에 터잡은 고구려와는 뿌리가 다릅니다. 다음에 다루어 봅시다.)
이 외에도 구당서라든지, 북사의 고구려 전에 의하면 모두가 신수라는 동굴이 존재하였음을 기록하였다.
학자들 간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동굴은 고구려 제일의 성소이고 수신이란 동굴에 깃들어 있는 신이라는 뜻으로 설명한다. 제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동맹은 하늘에 올리는 제사의례이다. 동맹이라는 천신제는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치루었는지? 제의 자체는 어떤 방식이었는지? 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깊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동굴이 토속신앙에서 의미 있는 기도처였음은 틀림 없다.
그러나 또 하나 짚고 가야할 문제는 중국 사서가 말하는 고구려를 우리의 직계 조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결론이 내려졌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팔공산 자료를 찾으러 다닐 때는 고구려와 신라의 뿌리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고 들었다. 이 말은 고구려와 신라는 조상이 다르다는 뜻이다.
신라가 백제를 치기 위해서 고구려와 동맹을 맺을 생각이었다. 신라는 김춘추를 사신으로 보냈다. 여기서 김춘추가 통역을 데리고 갔느니 아니니 하는 논쟁이 우리의 사학계에서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만약에 통역을 데리고 갔다면, 조상이 달랐다는 뜻이다. 신라와 고구려가 한 종족이라는데에 의문이 남는다. 고대 사회에서는 통치자와 통치를 받는 백성들과 사이에 언어가 다른 경우(종족이 다른 경우이다)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서양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나라의 고대 사회도 백성은 그대로이고 통치세력만 교체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통치자가 바뀌어도 나라를 구성하는 백성은 그대로 그 백성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근간은 통치자와 관계없다는 말도 된다. 어쨌거나 중국 사서가 전하는 고대 조선의 풍습이나 무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여전히 미해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