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가로수와 무궁화나무
이상인
이번 태풍 올가호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주변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의 몰골이다. 수려한 나무들마다 한결같이 그들의 가지들이 꺾여져 흉물스럽게 변했다. 내 친한 친구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왼팔이 잘려졌을 때의 그 끔찍했던 일이 재현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 텃밭에서 열심히 가꾸고 길러 놓았던 우리 집 나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은행나무며 산초나무 두릅나무들을 많이 키우고 있다. 기세 좋은 무궁화도 몇 그루 세워주었다.
그런데 그 텃밭 바로 이웃에는 학교 교정이 있고 그 교정 가에는 아름드리 히말라야 시다 나무가 줄 맞춰 서 있다. 그 나무들이 남쪽을 가로막고 우리 집 텃밭에 그늘을 드리우게 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그걸 늘 불만으로 품고 있는 터인데 이번 태풍의 영향으로 그 큰 나무들의 가지들이 꺾여 내리치면서 텃밭을 덮쳤다. 어이없는 피해를 덮쳐서 더 당한 셈이다. 그 어이없는 나뭇가지들의 충격과 태풍의 힘을 견디지 못했던 우리 집 어린 나무들의 허리가 부러지고 어깨가 으스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두릅나무들은 그 유연한 목질 탓으로 부러지다 못해 문드러졌거나 짓이겨졌다고 해야 옳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와중에서도 가느다란 가지들이 용케도 꺾이지 않은 채 허리 휘인 그대로 견디고 있다가 방해물을 제거해 주자 냉큼 일어서는 게 아닌가. 마치 만세 만세 하며 두 팔을 번쩍 번쩍 올리는 형상 같다. 그것을 모질고 질긴 무궁화나무 가지들의 강인성 조화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은은한 보라 빛깔이며 순백색의 꽃송이까지 수많이 매달고 있는 화려함 그 자체는 어느 거룩함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대견스러웠다.
지난 달 마지막 주일을 택해 진안군 용담댐 수몰지구 현장에 갔었다. 그때 거기에서도 우리나라 꽃 무궁화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고창 문인협회에서 여름철 친목회 나들이를 애환이 서린 수몰지구 현장을 답사해 보기로 정한 것이다. 참으로 잘 정한 일이며, 잘 오셨다고 우리를 대환영해 주시는 그 고장 문화원장 안일 선생님의 친절 맞이는 낯선 우리들을 매우 흐뭇하게 해주었다. 신체적으로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하신 어른이셨는데도 우리를 안내하기 위하여 높은 망향대며 험한 구릉들을 오르내리시면서 성의껏 설명해 주시던 그 극기 정신이 부러웠다. 그 선생님의 연이으시는 말씀에 의하면 용담면과 상서면 일대의 70여 개의 자연 부락이 물에 잠길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곳 주민들은 이미 철수한 상태여서 마을 안은 빈집들이 대부분이었고 들녘의 논밭들도 거의가 방치해 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댐 공사장 근처에 다다르자 오고 가는 운반 차량들과 공사장 가는 특수 기기들의 소음으로 적막강산으로 있어야 할 골짝이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그 곳을 얼핏 지나쳐 어느 외진 마을 앞을 지날 때 일이다. 여기서부터 수몰지구라는 푯말이 보이고 그 푯말 맞은편 도로 가에 꽃담을 둘러친 듯한 무궁화꽃 가로수들이 휘들어진 듯 꽃 피우며 서로를 달래 주는 듯 서 있다. 그러나 그 가로수들 역시 물에 잠길 예정이라고 한다.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무궁화 가로수 거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겪은 기억으로는 이태리 티보리의 거리에서 그리스 고로프 섬 해변로에서 승천하는 듯 용트림하는 듯이 괴기스런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던 아름드리 무궁화나무 가로수를 보면서 감탄한 바 있었는데…
우리나라 안에서는 진안군의 깊은 산골길에 와서 명색 처음 만나는 무궁화 꽃길이며 내 나라꽃의 꽃길인 것이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 반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왜나라 나라꽃인 벚꽃으로 장식한 가로수 거리는 수없이 많다.옛날 왜구들이 맨 먼저 노략질한 곳이 곡창 지대인 전라도 땅이라고 한다. 그 전라도 땅에서 그 치욕을 맨 먼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주 - 군사간 도로변을 이용해서 벚꽃 터널이라는 대 명소를 이루어 놓고 대단히 자랑스러워들 하고 있다. 그 자랑스러워하는 것에도 차원이 있어 보인다. 안일 문화원장님의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진안 땅 안에 산재하고 있는 문화재라고 한다. 그 보물급 문화재들이 지금 막 수장되려고 하는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 하면서도 그걸 재현시키고자 하는 예산 책정이 마련된다 하니 다소 안도의 숨을 돌이킬 수 있다는 말씀도 하신다. 그 구체적인 안을 소상히 알 수 없는 내 입장에서 본다면 또 만약 내게 주어지는 예산권 권한이 있다면 맨 먼저 무궁화나무 가로수 옮기기에 온 힘을 쏟고 싶다. 이번 태풍 올가는 그 생명이 짧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위력은 대단해서 벚꽃나무 가로수들에게도 어김없이 일격을 가했다고 한다. 뿌리째 뽑혀 버린 꽃터널이 가시 무덤처럼 됐다는 소식이 특필화됐다고도 한다. 가시무덤화했다는 벚꽃나무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대듯 들추고 일어섰던 우리 집 텃밭의 무궁화나무들의 가상을 번갈아 가며 되새겨 본다. 어느 쪽 나무가 태풍이라는 험난을 더 이겨낼 수 있을까. 벚꽃나무 가로수가 무궁화나무가 뒤바꿔 있는 거리를 생각해 본다. 그 마음의 거리를 상상해 본다. 동인지 13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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