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4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열왕기서 역시 왕들의 정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들이 정말 하나님 편에 선 자인지 그렇지 않은 자인지 곧 다윗의 길을 따른 자인지 아니면 여로보암을 따른 자인지로 그 평가가 나뉩니다.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역시 자기의 유익을 따라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 편을 들다가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패먕하는 치욕을 당하고 맙니다.
그렇게 패망한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에 의하여 끌려가 할라와 하볼 등 고산 강가에 흩어버립니다.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을 데려와서 사마리아에 살게 하여 이스라엘이 혼혈민족이 되는 수치를 당합니다(왕하 17장).
이런 이스라엘이 바로 나임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죄의 피가 흐르며 아담 안에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아담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가장 비참한 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거기서 건져내시어 아들의 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그 생명으로 살아가오니 이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오늘도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신 그 생명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며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두사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시고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어 이 하루를 살아가는 영적 하루살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11:16-31
제목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영원한 생명 편에 서신 주님을 오늘도 바라보며 따라갑니다.
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18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19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20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23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6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29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31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 나의 묵상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6-17절로써 유덕한 여자와 근면한 남자를 대비하며, 인자한 자와 잔인한 자를 대비시킴으로 인간의 기본 선에 대한 한 쌍의 경구를 제시한다.
둘째는 18-23절로써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켜 그들이 맞이하는 종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셋째는 24-31절로 구제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지혜를 추구하는 자의 마땅한 자요 축복의 첩경임을 교훈하고 있다.
오늘은 21절 말씀을 중심으로 인생의 성패가 힘과 능력에 좌우되는지 아니면 의를 지키는 삶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서 악인이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라는 말은 손을 잡음으로써 서로간의 강한 유대감을 표시하고 협력을 서약했던 고대 근동 지역에서의 관습을 반영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손을 잡아 유대감을 표명할지라도 악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선하게 결집할 수 없음을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솔로몬은 비록 악인이 서로 손을 잡고 결탁하여 강력한 진을 견고히 구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의인은 함께하는 자가 없고, 한없이 나약하며 연약한 위치에 서 있다 할지라도 분명히 구원을 얻을 것임을 증언한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과 그를 해하려고 달려들었던 사울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아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은 20대 초반의 일이었다.
반면 사울은 당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이 둘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뻔한 것 같은 것이었다.
사울은 그의 수많은 군사들을 모아 다윗을 잡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놉 땅의 제사장과 그 일족을 몰살함으로 다윗을 도와주거나 숨겨주는 자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선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가 뻔할 것 같았던 이 둘의 싸움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다윗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사울은 피차 사람의 손을 잡고 견고한 진을 구축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지만, 다윗은 그를 돕는 이 하나 없음에도 오직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과 승리는 얼마나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얼마나 강력한 군대를 소유하였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나와 함께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유능한 참모들이 내 옆에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구원과 승리의 여부는 오직 구원에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으로 나의 편이 되게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영적 전쟁은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 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칼과 몽치를 들고 왔다.
이 때 베드로가 의협심이 일어나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다.
이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26:53-5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이런 일’이란 예수님 당신이 죄인들에게 팔릴 것이란 사실을 가리킨다.
그렇게 기록한 성경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시편 41:9절 말씀이다.
(시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시는 다윗이 쓴 시인데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다 미리 본 자로서 선지자적 예언을 한 글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다윗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분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힘과 능력을 그들을 제거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그들에게 압송되어 가신 것이다.
이 또한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성취하신 것이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굳이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런 능력이 있으셨다.
비근한 예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잡으러 온 그 군인들 앞에서 예수님이 물으신다(요 18:4-6).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를 찾소.
이 때 예수님의 대답, ‘내가 그니라’ 하는 한 말씀 앞에서 그들이 다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요 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그니라’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로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곧 내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런 힘과 능력이 있으셨음에도 우리 주님은 자신을 감추시고 그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십자가 곧 고난의 잔을 마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인이요 의인의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요즘 들어 정치 뉴스를 보면 신물이 난다.
매일 같이 들리는 소식이 이념에 양분화를 넘어 양극화가 되어 정쟁만 쏟아놓는 그런 소식이 나의 마음을 심히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치에 관한 소식을 들을 일이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유튜브나 뉴스를 접하곤 하는데 안 들으면 뭔가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들으면 또 짜증이 나는 것은 정치꾼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그들을 재판하는 판사들마저 이념에 노예가 되어 끌려가는 형국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 뉴스나 유튜브를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습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무슨 결론을 얻으려는 속마음의 발로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어떻게 풀어내지 못하는 속마음의 표출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국민으로서 무조건 정치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윤리의식마저 외면하는 이른 바 정치꾼들이 미운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귀결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정치를 감안했다면 당시 로마 편에 있는 빌라도든지 아니면 수구꼴통이라 할 수 있는 헤롯의 편에 서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전혀 그런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오직 진짜 정치인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셨다.
그곳만이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 생명으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요 믿음임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주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내 편이니 네 편이니 하는 정치 협잡꾼들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진정한 정치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영원한 생명 편에 서신 주님을 오늘도 바라보며 따라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이시며 말 한 마디로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분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신 우리 주님은 진정한 정치꾼이십니다.
이 세상은 좌와 우로 양극화 되어 내 편이 아니면 가족마저도 원수가 되어버리는 시대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가리며 악인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땅에서의 옳음과 그름의 기준은 사회통념상 윤리도덕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기준마저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기준으로만 살아도 정말 잘 산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종은 그런 윤리도덕적 기준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인 영생을 기준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우리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기 원하오니 나를 주의 영으로 장악하여 주옵소서.
인간적 가치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가치가 나를 지배하게 하소서.
그것은 영생이오니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